김동하 유럽배낭 이야기
걷고 또 걸으며 온몸으로 느끼는 폴란드 여행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유럽 대륙 구석구석 뒤진다!
유럽대륙을 도보 횡단하는 대한민국 청년 김동하 여행 이야기
글. 김동하 /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
이제 많이 걸었다 싶으면 20km, 더 이상 못 걷겠다 싶으면 30km다. 40km를 걸으면 온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골반은 좌우로 뒤 틀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앞뒤 허벅지는 곧 끊길 것 같이 팽팽히 늘어난다. 발목과 아킬레스건은 또 어떠한가.
20kg에 육박하는 배낭을 짊어진 몸을 지탱한 채 그 작고 가녀린 근육들이 땅을 디뎌 조금씩 앞으로 옮긴다. 지상의 모든 것들을 땅으로 끌어내리려는 중력을 이겨내 보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러는 동안 발목 아래 있는 발과 발가락은 이미 아작이 난다.
발가락 사이사이 살갗은 수천 번의 마찰 끝에 짓물을 토해 내고, 발바닥은 갈라지고 상처가 나고 굳고를 수없이 반복한 끝에 도저히 사람의 발이라고는 말하기 힘든 형체를 띤다.
50km를 걸은 날 밤은 자다가도 밀려오는 통증에 잠을 깨곤 한다.
하루 종일 걸으면서 마음은 수십 번, 수백 번씩 감정이 요동친다. 발걸음이 가벼워 마주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는 반면, 발이 찢어지게 아프고 어깨가 끊어질 것 같아 감상은커녕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또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한 후 힘차게 오후를 맞이할 때가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초콜릿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끝끝내 식당을 찾지 못해 배를 움켜쥐고 잠들 때도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 훈훈한 감정을 느끼는 날이 있고, 좋지 않은 사람을 만나 마음이 상하는 날도 있다. 기쁠 때가 있고 화날 때가 있으며 슬플 때가 있고 즐거울 때가 있다.
이런 희로애락을 맛보고 뱉고 다시 맛보고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한다. 내게 익숙했던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낯선 유형의 흐름이다.
이 여정은 이 악물고 며칠 동안 50km를 걷는다고 금방 끝나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가자고 타협하며 10km만 간다고 쉽게 끝나는 일도 아니다.
내게 주어진 내 몸의 시간과 내 몸 밖의 시간이 만나는 곳에서 하루를 온전히 마쳐야 한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며 매일을 보내야 끝을 맞이할 수 있는 일이다.
내 한계를 극복하고 이겨 내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내 안으로 보다듬는 것이다.
반나절을 국도에서 걷자면 지루하기가 끝이 없다. 노래를 듣는 일은 이미 오래전에 물렸다. 가끔 팟캐스트를 듣지만 어떤 날은 이마저도 듣기 싫을 정도로 권태가 목 끝까지 차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친구에게 카톡을 보낸다. 그렇게 카톡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다음날은? 그리고 그 다음날은? 그렇게 카톡을 해서는 5개월이란 시간 동안의 지루함을 버텨 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겨움을 이겨 내기 위한 모든 행동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안다. 이겨 낼 것이 아니라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며칠 전 주유소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하던 중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힘이 풀린 눈, 빨간 상처들로 가득한 쇄골. 새까맣게 탄 목과 제멋대로 뻗친 머리카락들. 힘든 하루를 그대로 말해 주고 있었다.
내가 너무 나에게 모질게 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을 기억하는 건 오직 '나'이고, 시간이 흘러 그 '나'를 떠올리며 '그땐 정말 힘들었는데...'라고 웃으며 말하는 것도 오직 '나'일 텐데. 결국 지금 웃는 것도, 우는 것도, 그것을 기억하는 것도 모두 '나'일 것인데. 우리는 꽤나 친한 사이인데 말이다.
매일 달라지는 풍경을 보고 사람들을 본다. 사진을 찍기도 하도 말을 걸어 보기도 한다. 모든 감각들을 열어 놓은 채 걷는 중이다. 이기고 넘어서는 것보다 지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목매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사랑하는 중이다.
글. 김동하 /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
김동하 유럽배낭 이야기
걷고 또 걸으며 온몸으로 느끼는 폴란드 여행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유럽 대륙 구석구석 뒤진다!
유럽대륙을 도보 횡단하는 대한민국 청년 김동하 여행 이야기
글. 김동하 /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
이제 많이 걸었다 싶으면 20km, 더 이상 못 걷겠다 싶으면 30km다. 40km를 걸으면 온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골반은 좌우로 뒤 틀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앞뒤 허벅지는 곧 끊길 것 같이 팽팽히 늘어난다. 발목과 아킬레스건은 또 어떠한가.
20kg에 육박하는 배낭을 짊어진 몸을 지탱한 채 그 작고 가녀린 근육들이 땅을 디뎌 조금씩 앞으로 옮긴다. 지상의 모든 것들을 땅으로 끌어내리려는 중력을 이겨내 보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러는 동안 발목 아래 있는 발과 발가락은 이미 아작이 난다.
발가락 사이사이 살갗은 수천 번의 마찰 끝에 짓물을 토해 내고, 발바닥은 갈라지고 상처가 나고 굳고를 수없이 반복한 끝에 도저히 사람의 발이라고는 말하기 힘든 형체를 띤다.
50km를 걸은 날 밤은 자다가도 밀려오는 통증에 잠을 깨곤 한다.
하루 종일 걸으면서 마음은 수십 번, 수백 번씩 감정이 요동친다. 발걸음이 가벼워 마주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는 반면, 발이 찢어지게 아프고 어깨가 끊어질 것 같아 감상은커녕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또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한 후 힘차게 오후를 맞이할 때가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초콜릿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끝끝내 식당을 찾지 못해 배를 움켜쥐고 잠들 때도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 훈훈한 감정을 느끼는 날이 있고, 좋지 않은 사람을 만나 마음이 상하는 날도 있다. 기쁠 때가 있고 화날 때가 있으며 슬플 때가 있고 즐거울 때가 있다.
이런 희로애락을 맛보고 뱉고 다시 맛보고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한다. 내게 익숙했던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낯선 유형의 흐름이다.
이 여정은 이 악물고 며칠 동안 50km를 걷는다고 금방 끝나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가자고 타협하며 10km만 간다고 쉽게 끝나는 일도 아니다.
내게 주어진 내 몸의 시간과 내 몸 밖의 시간이 만나는 곳에서 하루를 온전히 마쳐야 한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며 매일을 보내야 끝을 맞이할 수 있는 일이다.
내 한계를 극복하고 이겨 내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내 안으로 보다듬는 것이다.
반나절을 국도에서 걷자면 지루하기가 끝이 없다. 노래를 듣는 일은 이미 오래전에 물렸다. 가끔 팟캐스트를 듣지만 어떤 날은 이마저도 듣기 싫을 정도로 권태가 목 끝까지 차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친구에게 카톡을 보낸다. 그렇게 카톡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다음날은? 그리고 그 다음날은? 그렇게 카톡을 해서는 5개월이란 시간 동안의 지루함을 버텨 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겨움을 이겨 내기 위한 모든 행동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안다. 이겨 낼 것이 아니라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며칠 전 주유소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하던 중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힘이 풀린 눈, 빨간 상처들로 가득한 쇄골. 새까맣게 탄 목과 제멋대로 뻗친 머리카락들. 힘든 하루를 그대로 말해 주고 있었다.
내가 너무 나에게 모질게 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을 기억하는 건 오직 '나'이고, 시간이 흘러 그 '나'를 떠올리며 '그땐 정말 힘들었는데...'라고 웃으며 말하는 것도 오직 '나'일 텐데. 결국 지금 웃는 것도, 우는 것도, 그것을 기억하는 것도 모두 '나'일 것인데. 우리는 꽤나 친한 사이인데 말이다.
매일 달라지는 풍경을 보고 사람들을 본다. 사진을 찍기도 하도 말을 걸어 보기도 한다. 모든 감각들을 열어 놓은 채 걷는 중이다. 이기고 넘어서는 것보다 지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목매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사랑하는 중이다.
글. 김동하 /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