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여행] 시먼딩의 심장 속에서 피어난 숨은 성지 — 시먼딩 천후궁

대만 타이베이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시먼딩은 대체로 ‘젊음의 거리’로 기억된다.
네온사인, 뮤직샵, 게임센터, 길거리 패션과 프랜차이즈 카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간.
하지만 그 소란의 정중앙, 마치 시간의 결이 한 겹 더 깊어진 듯한 고요한 문이 하나 있다.
바로 시먼딩 천후궁(西門町 天后宮) 이다.

천후궁은 단순한 사원이 아니다.
바다를 수호하는 신 마조(媽祖) 를 모시고, 해양을 기반으로 성장했던 타이완의 역사와 삶의 신앙이 응축된 장소다.
이곳에서 마조는 단순한 ‘신’이라기보다는 길 위의 사람들을 지켜주는 어머니,
실패와 성공이 끊임없이 엇갈리는 젊음의 거리 속에서 불안을 잠시 내려놓게 해주는 쉼의 존재로 기능한다.

시먼딩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곳은 ‘지켜보는 자리’였다

천후궁의 역사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만으로 건너온 중국 복건 지역의 이민자들은 험한 바다를 건너는 과정에서 ‘누군가 자신들을 보호해주었다’고 믿었고,
그 고마움과 생존의 기원을 담아 마조를 모시는 사원을 세웠다.

흥미로운 것은, 시먼딩이 상업 중심지로 성장한 뒤에도 천후궁은 단 한 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건물은 시대에 따라 보수되고 형태가 조금씩 달라졌지만,
사원은 늘 사람들 사이에 자리했다.
도시는 변했지만, 이곳을 지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경내에 자리한 또 하나의 존재, ‘홍법대사(弘法大師)’

사원을 둘러보다 보면, 마조 외에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금빛 현판에 적힌 이름 — 홍법대사(弘法大師).

홍법대사는 **일본 진언종(眞言宗)의 근원적 스승이자, 일본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 ‘구카이(空海, Kūkai)’**를 이르는 존호다.
그는 불교 수행뿐 아니라 서예, 예술, 공공제도 설계 등 동아시아 문화 전반에 영향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왜 일본 불교의 대사가 대만의 마조 사원에 있을까?” 라는 질문은 자연스럽다.

그 이유는 시먼딩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시기, 시먼딩은 일본 대중문화가 활발히 유입되던 공간이었다.
당시 주민들과 승려들 사이에서, ‘길에서 길로 이어지는 보호’라는 개념 아래
마조 신앙과 진언종 수행은 충돌하지 않고 공존했다.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을 지킨 마조,
마음을 다스려 수행의 삶으로 이끈 홍법대사.
사람들은 두 존재가 서로를 보완한다고 느꼈다.

오늘날 천후궁의 홍법대사상은 종교의 융합이 아니라
대만의 역사와 인간의 삶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이어짐의 증거로 남아있다.


사원의 공기 — ‘기도는 늘 조용히 시작된다’

시먼딩 거리에서 천후궁의 문을 통과하면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향 냄새, 얇은 바람, 천장의 종이 내는 미세한 떨림.
사람들은 빠르게 걸어 들어오지만, 나오기 전에는 한 번쯤 멈춘다.

누군가는 소원을 빈다.
누군가는 돌아갈 용기를 얻는다.
누군가는 단지 쉬었다 간다.

여기서는 그 모든 행위가 동등하게 존중받는다.

오늘의 여행자가 이곳에서 느껴볼 수 있는 것

관광지가 아닌 ‘자리’가 가진 이야기.

천후궁은 화려함보다 묵직한 온기로 설명되는 공간이다.
이곳을 찾는다는 것은
시끄러운 거리의 흐름 속에서 잠시 자신을 되돌아볼 순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마조는 말하지 않는다.
홍법대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걱정이 잠시 내려앉더라.”

**도시는 바뀌고 사람은 떠난다.

그러나 기도는 남는다.**

시먼딩 천후궁은 그 사실을 가장 담담하게 보여주는 장소다.
화려함과 소란 사이에서도 인간의 마음은 조용한 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글 / 사진 에스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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