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세대 변호사 아빠의 육아휴직


몇 달 전 의뢰인들과 회의를 마친 후 만찬을 하기로 예약한 적이 있었다. 나름 중요한 사건이어서 예우를 할 생각으로 사건을 함께 하는 변호사들 세 명이 모두 참석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만찬 당일 젊은 변호사가 겸연쩍은 얼굴로 내 방에 들어와서는 그날 큰 딸아이 유치원 졸업식이어서 저녁 늦게나 합석할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거의 통보였다. 일단 가족들에게 맛있는 저녁 사주라고 하고 돌려보낸 후 문뜩 드는 생각이 “딸아이 유치원 졸업식과 주요 의뢰인과의 저녁 약속! 어느 쪽이 중하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 졸업식을 챙긴 적이 있었나?” 하는 반성도 이어졌다. 물론 없었다. 대학교 4학년인 큰 아이의 경우 유치원은 고사하고 고등학교 졸업식, 대학교 입학식 등 학교와 관련한 어떤 기념식에도 참석해 보지 못했다. 아니 참석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내가 유독 아이들 일을 나 몰라라 하는 부류에 속할 수도 있지만, 주요 의뢰인과의 만찬이 있다면 당연히 딸아이 유치원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구태의연’한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몇 주 뒤 그 변호사를 포함한 젊은 변호사들과 술자리를 가진 기회에 슬쩍 그 ‘문제’를 꺼냈다. “요즘 젊은 아빠들은 유치원 졸업식에도 가야 하고, … 아이들 키우기 어렵지?” 순간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애매모호 하게 변했다. “그렇지요. 뭐! 닦달하는 집사람도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지요.” “아이들은 아빠가 무관심할 때 더 잘 크는 법이야”라면서 일단 분위기를 수습했지만, 육아에 대한 생각이 자못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칼럼의 주제가 ‘젊은 아빠 변호사의 육아’인 것도 그 변호사의 추천이다. 


한국의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1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가 만 8세(초등학교 2년) 이하의 자녀를 위해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 1년 이내의 기간 휴직을 허용해야 하고, 육아휴직 대신에 근로시간 단축을 선택하면 이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애초 육아휴직이 생후 1년 미만의 영아를 위한 것이었는데 생후 3년 미만의 유아를 위한 것으로(2005년) 개선되더니 급기야는 만 8세 이하의 아이를 위한 것으로(2014년) 확대되었다. 아마도 몇 년 뒤에는 만 13세 이하가 될 것 같다. 남성 근로자의 육아휴직이 허용되기 시작한 때는 1995년부터다. 사업주가 육아휴직 또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거부하거나 이를 이유로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대우를 하는 것은 형사처벌까지 된다. 육아휴직 기간 고용보험을 통해 월 급여의 40%를 지급하고, 15%는 복귀 후 6개월 후에 합산해서 지급한다. 


2012년을 기준으로 미국은 1세 영아를 위한 12주의 무급 휴가를 보장한다. 일본도 1세 영아를 위한 1년 휴직에 불과하다. 복지선진국이라는 노르웨이조차 3세 이하의 영아를 위한 휴직만을 허용한다. 우리나라의 육아휴직제도는 스웨덴과 함께 가히 최정상급이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우리나라 좋은 나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거 그림의 떡 아닌가?”하는 의문을 버릴 수 없다. 여성 근로자의 육아휴직은 제법 많이 활용되었지만, 남성 근로자의 육아휴직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니 다행히도 2008년에 355명에 불과하던 남성 육아휴직자가 매년 증가하여 2011년 1,402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체 육아휴직자 중 아직 2.8%에 그치고 있지만, 예상 밖으로 용기있는(?) 아이를 유독 사랑하는(?) 아빠들이 있었다. 남성 육아휴직자가 휴직을 선택한 이유는 ‘어린 자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어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배우자의 육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부인이 아파서’, ‘부인이 이미 육아휴직을 사용하였고, 달리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등 다양했다. 물론 사용자나 회사 분위기가 남성의 육아휴직을 긍정하고,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필자가 궁금했던 것은 “일하던 사람이 육아휴직을 하면 소는 누가 키우지?”였는데, 육아휴직자 대부분이 “동료가 업무를 나누어 맡아 주었다”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직장 동료의 공동체의식이 그림의 떡을 살아 움직이는 제도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일종의 품앗이일 수 있다.


젊은 아빠 변호사들이 이런 품앗이 정신으로 뭉쳐서 한 명의 육아휴직을 위해 다섯 명이 일을 나누어 한다면, “올해는 자네가 먼저 휴직하고, 내년에는 내가 함세”라고 의기투합한다면, 남성 변호사의 육아휴직, 못할 것도없지 않은가?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