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같은 동네 서점 보니 슬로트닉 쿡 북
동네 사람들과 개들이 놀러 오는 특별한 서점이 있다. 이 서점은 큰 거리에 있지도 않고 1층도 아니며 당연히 걸려야 할 큰 간판조차 없다. 이스트 빌리지의 복잡한 보어리(Bowery) 스트릿에서 방향을 틀어 2 스트릿을 따라 한적한 주택가를 걷다 보면 2 애비뉴 조금 못 미친 곳에 4층 타운하우스 건물이 보인다. 그 건물 지하에 요리와 음식 문화에 관한 전문 서적을 취급하는 ‘보니 슬로트닉 쿡 북(Bonnie Slotnick Cook Book)’ 서점이 바로 그곳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길을 걷다가 윈도우와 간판에 끌려 들어가는 손님은 거의 없이 일부러 그곳을 찾아 간 사람과 아는 단골만 들리는 작은 서점이다. 이번 호 특집인 ‘뉴욕서점’ 중 한 곳인 ‘보니 슬로트닉 쿡 북 (Bonnie Slotnick Cook Book)’을 찾아가 서점 주인 보니 블라트닉을 만나보았다.
보니 블라트닉을 만나기로 약속된 시간에 서점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녀는 헬멧과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던 길이었다. 웨스트 빌리지에 사는 그녀는 약 1마일 거리의 서점을 주로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올해 60이 되는 보니는 전형적으로 친절하고 배려심 많아 보이는 백인 중년 여성이다.
보니를 따라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400 스퀘어피트 정도의 아담한 공간이다. 상업적인 시설의 느낌은 전혀 없고 그저 어느 넓은 집 거실과 서재에 들어간 것 같다. 그리고 언뜻 무심하게 편하게 쌓여 있는 것 같은 책과 장식물 사이를 좀더 유심히 관찰하면 서점 구석구석 빠지지 않고 보니의 세심한 손길이 닿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냅킨 하나에도 접어놓은 ‘각’이 다르다. 그녀의 전공이 패션 디자인이란 사실을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약 4,000권의 책은 빵, 소스, 아침 메뉴 등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다. 요리책만큼 음식의 역사나 식사 에티켓, 위인전기 등 관련 서적 및 중고, 희귀 서적도 다양하다.
보니 서점은 정확히 20년 전인 1997년 문을 열었다. 그녀가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고 서점은 직장 근처 오피스 빌딩 지하였다. 직장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고 늘 꿈꾸었던 서점 사업을 조그맣게 시작하려는 소박한 출발이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직접 손으로 쓴 짧은 홍보자료를 배포했는데 뉴욕타임스의 유명 요리 칼럼리스트 플로렌스 파브리칸트( Florence Fabricant) 가 신문에 기사를 실은 것이다.
“그 기사가 난 것이 추수감사절 전날이었어요. 그 날은 평소에 전혀 요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서점에 들러 요리책 코너를 둘러보는 날이거든요. 전화가 빗발치듯 오고, 서점에 사람이 몰려들고 정말 난리가 났죠. 결국,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서점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어요. 2000년에 뉴욕 서점의 중심지인 그리니치 빌리지로 자리를 옮겼죠.
언론의 큰 관심을 받고 빨리 자리를 잡으며 서점 운영이란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지만, 시기가 썩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2000년 초반부터 출판과 서점 사업이 급격히 기울어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탐 행크스와 맥 라이언 주연의 ‘유브 갓 메일’에는 대형 체인 서점이 동네 작은 서점을 몰아내는 시점이 배경이지만 당시는 그 대형 서점들마저 문을 닫는 시기였다. 뉴욕을 대표하는 독립 서점들이 차례로 문을 닫고 보더스 마저 시장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보니 서점은 쿡 북 전문이라는 특수성과 오랜 단골 덕분으로 그럭저럭 버텨나가다가 결국은 2014년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떠나게 되었다. 올라가는 렌트를 겨우 맞춰주다가 결국 ‘4번째로’ 렌트를 올려달라는 건물주 요구에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보니 서점이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문을 닫은 소식은 뉴욕타임즈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보니 서점의 폐점 소식은 그만큼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과 그리니치 빌리지 주민들 그리고 독립 서점가에서는 또 하나의 큰 손실로 여겨질 정도로 파장이 컸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이유로 도움의 손길이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지금 입주한 건물의 주인인 가스와 마고 존스톤 (Garth and Margo Johnston) 남매가 소식을 듣고 기꺼이 자기 건물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보니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서가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보여줬다. 에덴로스 립슨 (Eden Ross Lipson) 이 쓴 일러스트 요리책 ‘애플소스 시즌(Applesauce Season)’이었다. “이 책을 쓴 립슨은 기자이면서 베스트셀러 아동 문학가였어요. 오래 전 이스트빌리지에 타운하우스를 샀고 자녀에게 그 건물을 물려줬어요. 바로 저의 집주인인 가스와 마고 남매입니다. 이 건물 지하실을 아주 저렴하게 임대했는데 정말 큰 보너스는 멋진 뒤뜰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였죠.”
보니는 기자를 뒤뜰로 안내했다. 작지만 분위기 있는 공간. 한겨울을 제외하면 누구라도 모여 앉아 함께 차를 마시거나 저녁에 차가운 맥주라도 나누면 그만일 장소였다. 그런 이유로 ‘동네 사람’들은 이 서점을 자주 찾는다. 굳이 책을 살 필요도 없고 사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그냥 들어와서 보니와 대화를 나누고 뜰에서 쉬다가 가곤 한다. 개를 좋아하는 보니가 늘 간식을 준비하고 있어서 사람뿐만 아니라 산책을 나온 동네 개들 역시 이 서점을 들렀다 가곤 한다.
보니가 기자에게 보여 준 또 다른 곳은 뜻밖에 욕실이었다. 욕실의 벽면에 커다란 지도가 붙어 있었다. 뉴욕시 서점을 그림으로 표시한 지도였다. 아마도 몇십 년 전에 제작된 듯한 지도에는 거리마다 서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보니는 자신의 서점이 있던 웨스트 10 스트릿의 ‘서점거리’를 가리키며, 다소 슬픈 표정을 지었다.
보니는 기자를 문밖까지 배웅하며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했다. 특별히 한국인에게도 많이 알려달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않았다. 기자는 꼭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서점을 나선 뒤, 보니 서점과 동네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비록 내가 이곳에 살지는 않지만, 이 서점이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아주 오래 남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보니 슬로트닉 쿡 북(Bonnie Slotnick Cook Book): 28 E Second St
에스카사 편집부
사랑방 같은 동네 서점 보니 슬로트닉 쿡 북
동네 사람들과 개들이 놀러 오는 특별한 서점이 있다. 이 서점은 큰 거리에 있지도 않고 1층도 아니며 당연히 걸려야 할 큰 간판조차 없다. 이스트 빌리지의 복잡한 보어리(Bowery) 스트릿에서 방향을 틀어 2 스트릿을 따라 한적한 주택가를 걷다 보면 2 애비뉴 조금 못 미친 곳에 4층 타운하우스 건물이 보인다. 그 건물 지하에 요리와 음식 문화에 관한 전문 서적을 취급하는 ‘보니 슬로트닉 쿡 북(Bonnie Slotnick Cook Book)’ 서점이 바로 그곳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길을 걷다가 윈도우와 간판에 끌려 들어가는 손님은 거의 없이 일부러 그곳을 찾아 간 사람과 아는 단골만 들리는 작은 서점이다. 이번 호 특집인 ‘뉴욕서점’ 중 한 곳인 ‘보니 슬로트닉 쿡 북 (Bonnie Slotnick Cook Book)’을 찾아가 서점 주인 보니 블라트닉을 만나보았다.
보니 블라트닉을 만나기로 약속된 시간에 서점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녀는 헬멧과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던 길이었다. 웨스트 빌리지에 사는 그녀는 약 1마일 거리의 서점을 주로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올해 60이 되는 보니는 전형적으로 친절하고 배려심 많아 보이는 백인 중년 여성이다.
보니를 따라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400 스퀘어피트 정도의 아담한 공간이다. 상업적인 시설의 느낌은 전혀 없고 그저 어느 넓은 집 거실과 서재에 들어간 것 같다. 그리고 언뜻 무심하게 편하게 쌓여 있는 것 같은 책과 장식물 사이를 좀더 유심히 관찰하면 서점 구석구석 빠지지 않고 보니의 세심한 손길이 닿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냅킨 하나에도 접어놓은 ‘각’이 다르다. 그녀의 전공이 패션 디자인이란 사실을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약 4,000권의 책은 빵, 소스, 아침 메뉴 등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다. 요리책만큼 음식의 역사나 식사 에티켓, 위인전기 등 관련 서적 및 중고, 희귀 서적도 다양하다.
보니 서점은 정확히 20년 전인 1997년 문을 열었다. 그녀가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고 서점은 직장 근처 오피스 빌딩 지하였다. 직장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고 늘 꿈꾸었던 서점 사업을 조그맣게 시작하려는 소박한 출발이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직접 손으로 쓴 짧은 홍보자료를 배포했는데 뉴욕타임스의 유명 요리 칼럼리스트 플로렌스 파브리칸트( Florence Fabricant) 가 신문에 기사를 실은 것이다.
“그 기사가 난 것이 추수감사절 전날이었어요. 그 날은 평소에 전혀 요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서점에 들러 요리책 코너를 둘러보는 날이거든요. 전화가 빗발치듯 오고, 서점에 사람이 몰려들고 정말 난리가 났죠. 결국,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서점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어요. 2000년에 뉴욕 서점의 중심지인 그리니치 빌리지로 자리를 옮겼죠.
언론의 큰 관심을 받고 빨리 자리를 잡으며 서점 운영이란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지만, 시기가 썩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2000년 초반부터 출판과 서점 사업이 급격히 기울어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탐 행크스와 맥 라이언 주연의 ‘유브 갓 메일’에는 대형 체인 서점이 동네 작은 서점을 몰아내는 시점이 배경이지만 당시는 그 대형 서점들마저 문을 닫는 시기였다. 뉴욕을 대표하는 독립 서점들이 차례로 문을 닫고 보더스 마저 시장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보니 서점은 쿡 북 전문이라는 특수성과 오랜 단골 덕분으로 그럭저럭 버텨나가다가 결국은 2014년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떠나게 되었다. 올라가는 렌트를 겨우 맞춰주다가 결국 ‘4번째로’ 렌트를 올려달라는 건물주 요구에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보니 서점이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문을 닫은 소식은 뉴욕타임즈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보니 서점의 폐점 소식은 그만큼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과 그리니치 빌리지 주민들 그리고 독립 서점가에서는 또 하나의 큰 손실로 여겨질 정도로 파장이 컸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이유로 도움의 손길이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지금 입주한 건물의 주인인 가스와 마고 존스톤 (Garth and Margo Johnston) 남매가 소식을 듣고 기꺼이 자기 건물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보니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서가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보여줬다. 에덴로스 립슨 (Eden Ross Lipson) 이 쓴 일러스트 요리책 ‘애플소스 시즌(Applesauce Season)’이었다. “이 책을 쓴 립슨은 기자이면서 베스트셀러 아동 문학가였어요. 오래 전 이스트빌리지에 타운하우스를 샀고 자녀에게 그 건물을 물려줬어요. 바로 저의 집주인인 가스와 마고 남매입니다. 이 건물 지하실을 아주 저렴하게 임대했는데 정말 큰 보너스는 멋진 뒤뜰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였죠.”
보니는 기자를 뒤뜰로 안내했다. 작지만 분위기 있는 공간. 한겨울을 제외하면 누구라도 모여 앉아 함께 차를 마시거나 저녁에 차가운 맥주라도 나누면 그만일 장소였다. 그런 이유로 ‘동네 사람’들은 이 서점을 자주 찾는다. 굳이 책을 살 필요도 없고 사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그냥 들어와서 보니와 대화를 나누고 뜰에서 쉬다가 가곤 한다. 개를 좋아하는 보니가 늘 간식을 준비하고 있어서 사람뿐만 아니라 산책을 나온 동네 개들 역시 이 서점을 들렀다 가곤 한다.
보니가 기자에게 보여 준 또 다른 곳은 뜻밖에 욕실이었다. 욕실의 벽면에 커다란 지도가 붙어 있었다. 뉴욕시 서점을 그림으로 표시한 지도였다. 아마도 몇십 년 전에 제작된 듯한 지도에는 거리마다 서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보니는 자신의 서점이 있던 웨스트 10 스트릿의 ‘서점거리’를 가리키며, 다소 슬픈 표정을 지었다.
보니는 기자를 문밖까지 배웅하며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했다. 특별히 한국인에게도 많이 알려달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않았다. 기자는 꼭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서점을 나선 뒤, 보니 서점과 동네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비록 내가 이곳에 살지는 않지만, 이 서점이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아주 오래 남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보니 슬로트닉 쿡 북(Bonnie Slotnick Cook Book): 28 E Second St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