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울수록 채워지는 당신의 삶, 미니멀 라이프

비울수록 채워지는 당신의 삶, 미니멀 라이프

(사진출처=123rf)

포화상태란 더할 수 없는 양에 이른 상태, 더는 받아 드릴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인터넷 쇼핑을 통해서 주문한 물건들은 하루에도 몇 박스씩 현관 앞에 쌓이기 일쑤, 모든 동작엔 그에 걸맞은 도구가 필요해졌다. 집 밖을 한번 나가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활동이 필요하고 또 그에 따라 얼마나 많은 도구가 필요한가? 샤워를 한번 하려 해도 클렌징폼, 바디워시, 샴푸, 린스 이에 더해 샤워 타올, 세면볼은 기본이고 각질제거제, 풋케어 용품, 팩까지…. 이루 나열하기 힘든 것들로 우리는 모두 포화상태다. 그러나 이는 비단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손안의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작은 화면 안에 어찌나 많은 이야기가 흩어져 있는지 모른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과연 숨이라도 제대로 쉬고 있는 걸까?


미니멀 라이프란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 등을 최소화하여 꼭 필요한 것들로만 삶을 꾸려가는 단순한 생활의 방식을 뜻한다. 이는 단순히 물건의 양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없앰으로써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는 본질만을 남기고자 했던 예술사조인 미니멀리즘에서 영향을 받아 최근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비우는’으로 시작하는 책들이 죄다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게 되었던 것도,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도 이 미니멀 라이프 열풍 때문이다.


미니멀 라이프의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장 빈번하게 접할 수 있는 영역은 인테리어다. 적은 물건을 사용하고 수납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깔끔한 방식으로 집을 꾸미고자 하는 주부들로 인해서 관련 책자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집값이 천정부지인 도심지에서 가진 물건의 양을 줄이고 수납공간을 늘려 생활의 여유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큰 관심을 끌었다. ‘미니멀라이프'라는 주제의 강의나 책자는 현재도 여전히 인기몰이 중이다. 그러나 미니멀하게 살아가는 것의 장점이 단순히 인스타그램에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집을 올리는 데서 끝나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집을 비움으로써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 또한 바뀌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 것이다. ‘하루에 한가지씩 버리기 운동' 또한 유행 중이다. 이는 가진 것을 하루에 한 가지씩 버림으로써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다. 버림으로써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니, 참 역설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는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서양의 고전,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읽다 보면 자발적 빈곤에 대한 개념이 나온다.


“중국, 인도, 페르시아 및 그리스의 옛 철학자들은 외관상으로 그 누구보다도 가난했으나 내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지금만큼이라도 아는 것이 대단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보다 후대에 살았던 인류의 개혁자들과 은인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 '자발적 빈곤'이라는 이름의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인간 생활의 공정하고도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비우는 것이 오히려 채우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어왔다. 물질이나 생각을 비우는 것이 오히려 누구보다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야망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 특히 사업가의 경우는 이러한 공식이 적용되지 않을 것 같지만,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기업가가 있다. 데라다 창고라는 창고업체의 대표 나카노 요시히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단순한 창고업체이던 데라다 창고는 고가의 미술품을 보관하는 프리미엄 보관업을 통해서 그 주가를 높이기 시작해서 단샤리(미니멀라이프) 열풍을 통해 대박이 났다. 사용하지 않는 물품들을 창고에 보관해주는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 것이다. 나카노 요시히사는 그 자신도 이러한 미니멀한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명품이나 고가의 시계,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며, 사업체 또한 1000억 원 규모를 넘으면 매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가가 사업체의 규모를 키우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면 그의 삶의 가치는 과연 어디 있는 것일까? 나카노는 예술의 거리를 조성하고 예술가에게 돈을 기부하는데 열정을 쏟는다. 운하와 창고로 삭막하던 도쿄의 덴노즈아일을 예술의 거리로 바꾼 것이 바로 그였다. 그의 회사 데라다 창고는 이러한 노고를 인정받아 문화와 예술에 기여한 후원자에게 주는 몽블랑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어떠한 직업을 갖든, 돈이 많든 적든, 삶의 방식을 단순화하고 가진 것을 최소화하는 삶은 뜻밖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몸소 실천해보기 전까지는 ‘채우려고 해도 가진 게 없어서 못 채워’ 혹은 ‘미니멀 라이프도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라고만 생각 해왔다. 하지만, 먼지만 수북이 쌓여 있던 고가의 자전거, 쓰지 않고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들로 빈틈없는 방을 뒤돌아보며 몇 주간의 버리기 연습을 했다. 그 결과, 주변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한결 가벼워졌다. 타지 않는 자전거를 동생에게 주고 나니 집은 더 넓어졌고, 읽지 않는 책들을 중고서점에 팔고 나니 주머니 속에 고마운 이들에게 밥이라도 한 끼 사줄 돈이 생기기도 했다. 밝은 마음은 덤으로 얻은 선물이라고나 할까?


밝은 불빛이 없다면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음악 소리가 없다면 가을의 바람 소리를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코안을 가득 채우는 향수 냄새가 없어진다면 사랑하는 이의 체취를 한결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비울수록 더 가득 차는 소중한 무언가가 등잔 밑, 어두운 그곳에 떨어져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이처럼 내 삶을 더 풍족하게 채우기 위해서는, 오히려 비우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재즈 싱어 Julie London의 Give Me The Simple Life를 들으며 쓰지 않고 쌓여만 가는 물건들과 필요 없이 나를 얽매는 일들을 줄여보는 것은 어떨까?


STORY212 손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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