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실시대, 텅 빈 공간이 던지는 질문: 우리는 왜 ‘비어 있음’에 익숙해져야 하는가

“임대문의”만 남은 거리

서울의 한 상권 밀집지역.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발 디딜 틈 없던 거리 곳곳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나붙어 있다. 문을 닫은 카페, 주인을 잃은 학원, 텅 빈 오피스 빌딩이 도시의 그림자가 되어가고 있다. 공실률 증가는 더 이상 부동산 시장의 국지적 현상이 아니다. 이제 대한민국 전역에 퍼진 구조적 변화다.


숫자로 보는 공실시대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자료에 따르면,

  • 서울 오피스 공실률은 11.3%

  • 중소형 상가 공실률은 전국 평균 12.9%

  • 일부 지방 도시는 20% 이상까지 치솟았다.

공실은 단순한 ‘빈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그 뒤에는 수많은 자영업자의 폐업, 투자자들의 손실, 지역 상권의 침체, 그리고 도시 공동화 현상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공실의 원인: 단순한 불황 그 이상

공실을 야기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 과잉 공급
    부동산 투자 열풍 속 대규모 상가·오피스 신축이 이어졌지만, 수요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 소비 구조 변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소비가 급증하면서 온라인 쇼핑, 배달앱 중심의 소비가 정착됐다. 도심 중심 매장의 필요성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 인구 구조 변화
    고령화, 지방 인구 감소,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 등은 지역 상권의 고사로 이어진다.

  • 기존 업종의 한계
    학원, PC방, 프랜차이즈 커피 등 전통적인 고정수요 업종은 포화상태다. 새로운 소비자 니즈를 충족하지 못한다.

공실이 남기는 도시의 상처

공실은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다.
도시는 텅 빈 공간 속에서 사회적 단절과 정체성 상실을 겪는다.

  • 낮아진 유동인구는 치안과 지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 방치된 건물은 도시의 외관을 훼손하며

  • 투자심리 위축은 결국 지역 전체의 낙후를 부추긴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아닌, ‘유령화(ghosting)’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해법은 있는가? 공실을 채우는 5가지 대안

  1. 공간의 다목적화
    단일 업종 중심의 상가 구조에서 벗어나 복합 문화·커뮤니티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카페+전시, 오피스+교육, 판매+체험이 가능한 유연한 구조가 필요하다.

  2. 공공-민간 협업 플랫폼 구축
    지자체는 공실률을 줄이기 위한 임대료 지원, 리모델링 비용 보조, 단기 임대 연계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3. MZ세대 타깃화 전략
    SNS 확산성이 높은 팝업스토어, 체험 기반 공간으로 전환 시 젊은 세대 유입 가능성 증가.

  4. 스마트 리노베이션 기술 도입
    공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 흐름 분석, 수요 예측, 최적 업종 제안이 가능한 AI 기반 임대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5. 도시 재생 프로젝트와의 연계
    낡은 건물 하나의 리모델링이 아닌, 지역 기반 커뮤니티 재편과 함께 가는 도시 재생 전략이 핵심이다.


텅 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

공실시대는 단순히 공간의 위기가 아니다. 이는 도시의 쓰임, 사람의 흐름,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시대적 징후다. 우리는 이제 ‘공간을 채우는 것’보다, 어떤 가치로 다시 살아나게 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비어 있음은 위기인 동시에 가능성이다. 텅 빈 도시 한가운데, 새로운 흐름은 지금도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글 에스카사 편집부 / 사진 엔바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