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3) 아빠의 모험
산속에 지은 작은 집이었단다. 네 개의 소나무가 정사각형으로 모여있는 곳을 찾아야 했지. 칡 줄기로 나무 사이를 엮어서 지붕과 벽을 만들고 솔가지를 꺾어 얼기설기 얹어 놓았어. 한 벽면에는 문을 만들어서 통행할 수 있게 하고 바닥에는 볏짚을 깔아서 앉거나 누워도 살이 배기지 않도록 했지. 깊은 산 속에 나만의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던 거야.

학교를 갔다 오면 늘 이곳에 가서 놀았어. 가끔 고구마와 감자를 가지고 가서 먹고, 낮잠을 자기도 했지. 엄마한테 심하게 혼이라도 나면 이곳에 피난을 오기도 했단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찾을 수도 없는 비밀의 공간은 가끔 집보다도 편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어. 그곳에 가면 아무런 걱정이나 고민도 없고 몸과 마음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더구나.
동네에 또래 아이들이 없다 보니 야구나 축구 같은 단체 놀이를 할 수 없었어. 작은 동네라서 네 가구 정도밖에 안 되니 아이들 구경하는 게 꽤 힘들었지. 이웃집에 사는 나보다 두 살 많은 근영이 형과, 한 학년 어린 여동생 명희, 그리고 남동생 근수 정도였거든. 우리 집에는 나를 포함해서 줄줄이 태어난 여동생 세 명이 있었어. 그래서 동네에 아이들이라고 해봤자 총 일곱 명이었단다. 근영이 형과 동생들은 수줍음이 많은 편이어서 나와 잘 어울리지 않았고, 내 여동생들은 나이가 어려서 함께 놀 수가 없었어. 거기에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텔레비전도 없었어.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장난감은 당연히 없었지.
그래서 자연스럽게 산과 들판이 내 놀이 친구가 되었단다. 산속을 헤매며 고사리와 취나물을 뜯으러 다녔어. 많이 모으면 장에 내다 팔수가 있었거든. 어디에 가면 나물이 많이 채취할 수 있는지 기억해놓았다가 매번 엄청난 양의 산나물을 뜯어서 엄마에게 큰 칭찬을 듣곤 했지. 산에 널려있는 산딸기, 깨암, 야생 배를 따 먹는 재미는 아주 솔솔했단다.

뒷산에서 톱으로 큰 대나무를 자른 후 활과 창을 만들었어. 대나무를 휜 후 철사를 나무 양 끝에 탱탱하게 묶어주면 멋진 활이 만들어졌지. 그리고 딱딱한 나뭇가지에 뾰족한 쇳조각을 박아서 화살을 만들었어. 동물을 잡으려면 활 쏘는 솜씨가 좋아야 하므로 앞마당에 있는 큰 배나무를 과녁 삼아서 매일 연습을 했단다. 반듯하게 자란 나무를 잘라 끝에 대못을 박아서 창도 만들었어. 산에 다니며 큰 나무를 표적으로 창 던지는 연습을 했어.
날마다 공부도 안 하고 열심히 활쏘기와 창던지기를 연습했건만 노루와 토끼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어. 노루는 겁이 많고 눈치가 빨라사람 인기척이 나면 근처에도 나타나지 않고, 토끼는 발견해도 엄청 빨라서 잡을 수가 없었지. 어느 날 올무를 설치한 곳을 점검하러 다니는데 커다란 물체가 하나 눈에 띄는 거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지. “아,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면 죽어 있는 짐승에 다가간 순간 가슴이 철썩 내려앉더라고. 그렇게 바라던 노루가 잡힌 게 아니라 아랫집 명숙이네 누렁이가 죽어있었던 거야. 누렁이는 그 집에서 키우던 잡종개였는데 산 속에 놀러 왔다가 참변을 당한 거지. 이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어 일주일 내내 혼났어. 물론, 명숙이네에 큰돈을 물어줘야 했고. 그 후 늘 참회하는 마음으로 지내야 했단다.
그래도 좀 돈벌이가 된 것들이 있었지. 우선은 뱀을 잡는 일이야. 자연이 깨끗하다 보니 산과 들에 뱀이 많았거든. 구렁이, 살모사, 독사가 여기저기서 출몰을 했지. 여름에 연못에서 수영하다 보면 물뱀이 종종 옆에 지나가는 일도 많았어. 가장 돈이 되는 게 독사였어. 뱀잡는 막대기를 만들고 농사용 비료부대를 들고 산과 들에 독사를 잡으러 다녔어. 운 좋게 뱀을 만나서 잡게 되면 머리를 막대기로 누른 후 불쏘시개용 집게로 머리를 잡아서 빈 비료부대에 넣으면 되지. 비료부대에는 숨 쉬는 구멍을 뚫어놓으면 돼. 뱀은 먹이나 물을 안 먹어도 한 달 동안 거뜬하게 살더라고. 가끔 뱀 장수가 동네를 지나가거든. 그러면 비료부대에 넣어 둔 뱀을 세어서 한 마리당 천 원씩 팔 수가 있었어. 요즘에도 동물원에 가면 파충류 관을 먼저 들르곤 하지. 뱀이 무섭게 느껴지기보다는 아주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때 뱀을 많이 잡아서일 거야. 무섭거나 징그러운 게 아니라 돈으로 보였거든. 지금은 그때 잡은 뱀들에게 미안한마 음이 많단다.
여름과 가을에 돈벌이가 된 것은 미꾸라지 잡기였어. 논에 물을 가둬놓은 농사용 포강 (늪 혹은 작은 물웅덩이)가 많이 있었는데 그 곳에 미꾸라지가 많이 서식했어. 그물을 가지고 포강을 휘저으면 미꾸라지가 엄청 많이 잡혔거든. 언젠가는 너무 많이 잡아서 플라스틱 통에 다 넣을 수가 없었던 적도 있었어. 집에 가서 다른 통을 가져와 미꾸라지를 담기도 했지. 잡은 미꾸라지는 아랫마을 가물치 양식장에 팔았지.
겨울에는 산에 가서 솔방울을 채취했어. 특히 노란색 황솔이 품질이 좋았거든. 그 솔방울은 가시가 매우 날카로워서 작업용 목장갑을 두세 개 끼어야 했어. 큰 쌀포대 몇 개와 목장갑을 들고 솔방울이 많이 달린 나무를 찾은 후 날렵하게 올라가는 거야. 그리고 여기저기 나무 위를 다람쥐같이 옮겨 다니면서 솔방울을 따서 밑으로 던져 놓는 거야. 손이 닿을 만한 곳의 솔방울을 다 따고 나면 나무에서 내려와 큰 쌀포대에다가 담았어. 조그만 지게를 이용해서 집에 날라놓은 후 큰 손수레에 솔방울 네다섯 포대를 싣고 아랫마을 떡방앗간에 갔지. 솔방울이 떡방앗간 화덕 연료였거든. 떡 방앗간 주인이 내가 딴 솔방울을 아주 좋아했었어. 채취한 황솔은 화력이 무척 좋았고 오래 태울 수가 있었던 거야. 한 포대에 천 원씩 받고 판 후 사 오천 원 돈을 주머니에 넣고 휘파람을 불며집 으로 돌아오곤 했단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든 이유는 딱히 용돈이 없었기 때문이야. 과자, 사탕, 젤리 같은 불량식품이 아주 맛이 있을 때였는데 부모님이 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용돈을 마련해야 했거든. 가끔 논에서 일하거나, 밭에서 온종일 풀을 뽑으면 몇백 원씩 돈을 받곤 했는데 한창 먹을 나이에 턱없이 부족했었지. 다행히 자연 속에서 스스로 돈을 벌 수가 있었기 때문에 일찍 돈 버는데 눈을 뜨게 된 것 같아. 사람들이 나보고 ‘사막의 4인방’이라고 부른 적이 종종 있었어. 생활력이 강해서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보인다는 뜻이야.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하는 환경에 떠밀려지다 보니 생활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야.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만화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었는데 주인공이 꼭 나 같더라고. 학교에 가면 그냥 가서 졸고 있고, 숙제와 공부는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여기저기 모험을 쫓아다니며 말썽만 부렸거든. 그래서 부모님에게 많이 혼이 나고, 숲속의 작은 아지트 집으로 피신을 많이 다녔던 거야.
그곳이 가끔 생각난단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숲속에 지은 집에서 누워있던 기억이 종종 떠오르곤 하지. 그 좁고 허름한 집은 내게 큰 위안과 안전을 주는 공간이었어. 그리운 것은 산속의 집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까? 몇 해전 그곳을 혼자 방문한 적이 있었어.
글 윤성민 박사
에스카사 편집부
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3) 아빠의 모험
산속에 지은 작은 집이었단다. 네 개의 소나무가 정사각형으로 모여있는 곳을 찾아야 했지. 칡 줄기로 나무 사이를 엮어서 지붕과 벽을 만들고 솔가지를 꺾어 얼기설기 얹어 놓았어. 한 벽면에는 문을 만들어서 통행할 수 있게 하고 바닥에는 볏짚을 깔아서 앉거나 누워도 살이 배기지 않도록 했지. 깊은 산 속에 나만의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던 거야.
학교를 갔다 오면 늘 이곳에 가서 놀았어. 가끔 고구마와 감자를 가지고 가서 먹고, 낮잠을 자기도 했지. 엄마한테 심하게 혼이라도 나면 이곳에 피난을 오기도 했단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찾을 수도 없는 비밀의 공간은 가끔 집보다도 편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어. 그곳에 가면 아무런 걱정이나 고민도 없고 몸과 마음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더구나.
동네에 또래 아이들이 없다 보니 야구나 축구 같은 단체 놀이를 할 수 없었어. 작은 동네라서 네 가구 정도밖에 안 되니 아이들 구경하는 게 꽤 힘들었지. 이웃집에 사는 나보다 두 살 많은 근영이 형과, 한 학년 어린 여동생 명희, 그리고 남동생 근수 정도였거든. 우리 집에는 나를 포함해서 줄줄이 태어난 여동생 세 명이 있었어. 그래서 동네에 아이들이라고 해봤자 총 일곱 명이었단다. 근영이 형과 동생들은 수줍음이 많은 편이어서 나와 잘 어울리지 않았고, 내 여동생들은 나이가 어려서 함께 놀 수가 없었어. 거기에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텔레비전도 없었어.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장난감은 당연히 없었지.
그래서 자연스럽게 산과 들판이 내 놀이 친구가 되었단다. 산속을 헤매며 고사리와 취나물을 뜯으러 다녔어. 많이 모으면 장에 내다 팔수가 있었거든. 어디에 가면 나물이 많이 채취할 수 있는지 기억해놓았다가 매번 엄청난 양의 산나물을 뜯어서 엄마에게 큰 칭찬을 듣곤 했지. 산에 널려있는 산딸기, 깨암, 야생 배를 따 먹는 재미는 아주 솔솔했단다.
뒷산에서 톱으로 큰 대나무를 자른 후 활과 창을 만들었어. 대나무를 휜 후 철사를 나무 양 끝에 탱탱하게 묶어주면 멋진 활이 만들어졌지. 그리고 딱딱한 나뭇가지에 뾰족한 쇳조각을 박아서 화살을 만들었어. 동물을 잡으려면 활 쏘는 솜씨가 좋아야 하므로 앞마당에 있는 큰 배나무를 과녁 삼아서 매일 연습을 했단다. 반듯하게 자란 나무를 잘라 끝에 대못을 박아서 창도 만들었어. 산에 다니며 큰 나무를 표적으로 창 던지는 연습을 했어.
날마다 공부도 안 하고 열심히 활쏘기와 창던지기를 연습했건만 노루와 토끼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어. 노루는 겁이 많고 눈치가 빨라사람 인기척이 나면 근처에도 나타나지 않고, 토끼는 발견해도 엄청 빨라서 잡을 수가 없었지. 어느 날 올무를 설치한 곳을 점검하러 다니는데 커다란 물체가 하나 눈에 띄는 거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지. “아,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면 죽어 있는 짐승에 다가간 순간 가슴이 철썩 내려앉더라고. 그렇게 바라던 노루가 잡힌 게 아니라 아랫집 명숙이네 누렁이가 죽어있었던 거야. 누렁이는 그 집에서 키우던 잡종개였는데 산 속에 놀러 왔다가 참변을 당한 거지. 이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어 일주일 내내 혼났어. 물론, 명숙이네에 큰돈을 물어줘야 했고. 그 후 늘 참회하는 마음으로 지내야 했단다.
그래도 좀 돈벌이가 된 것들이 있었지. 우선은 뱀을 잡는 일이야. 자연이 깨끗하다 보니 산과 들에 뱀이 많았거든. 구렁이, 살모사, 독사가 여기저기서 출몰을 했지. 여름에 연못에서 수영하다 보면 물뱀이 종종 옆에 지나가는 일도 많았어. 가장 돈이 되는 게 독사였어. 뱀잡는 막대기를 만들고 농사용 비료부대를 들고 산과 들에 독사를 잡으러 다녔어. 운 좋게 뱀을 만나서 잡게 되면 머리를 막대기로 누른 후 불쏘시개용 집게로 머리를 잡아서 빈 비료부대에 넣으면 되지. 비료부대에는 숨 쉬는 구멍을 뚫어놓으면 돼. 뱀은 먹이나 물을 안 먹어도 한 달 동안 거뜬하게 살더라고. 가끔 뱀 장수가 동네를 지나가거든. 그러면 비료부대에 넣어 둔 뱀을 세어서 한 마리당 천 원씩 팔 수가 있었어. 요즘에도 동물원에 가면 파충류 관을 먼저 들르곤 하지. 뱀이 무섭게 느껴지기보다는 아주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때 뱀을 많이 잡아서일 거야. 무섭거나 징그러운 게 아니라 돈으로 보였거든. 지금은 그때 잡은 뱀들에게 미안한마 음이 많단다.
여름과 가을에 돈벌이가 된 것은 미꾸라지 잡기였어. 논에 물을 가둬놓은 농사용 포강 (늪 혹은 작은 물웅덩이)가 많이 있었는데 그 곳에 미꾸라지가 많이 서식했어. 그물을 가지고 포강을 휘저으면 미꾸라지가 엄청 많이 잡혔거든. 언젠가는 너무 많이 잡아서 플라스틱 통에 다 넣을 수가 없었던 적도 있었어. 집에 가서 다른 통을 가져와 미꾸라지를 담기도 했지. 잡은 미꾸라지는 아랫마을 가물치 양식장에 팔았지.
겨울에는 산에 가서 솔방울을 채취했어. 특히 노란색 황솔이 품질이 좋았거든. 그 솔방울은 가시가 매우 날카로워서 작업용 목장갑을 두세 개 끼어야 했어. 큰 쌀포대 몇 개와 목장갑을 들고 솔방울이 많이 달린 나무를 찾은 후 날렵하게 올라가는 거야. 그리고 여기저기 나무 위를 다람쥐같이 옮겨 다니면서 솔방울을 따서 밑으로 던져 놓는 거야. 손이 닿을 만한 곳의 솔방울을 다 따고 나면 나무에서 내려와 큰 쌀포대에다가 담았어. 조그만 지게를 이용해서 집에 날라놓은 후 큰 손수레에 솔방울 네다섯 포대를 싣고 아랫마을 떡방앗간에 갔지. 솔방울이 떡방앗간 화덕 연료였거든. 떡 방앗간 주인이 내가 딴 솔방울을 아주 좋아했었어. 채취한 황솔은 화력이 무척 좋았고 오래 태울 수가 있었던 거야. 한 포대에 천 원씩 받고 판 후 사 오천 원 돈을 주머니에 넣고 휘파람을 불며집 으로 돌아오곤 했단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든 이유는 딱히 용돈이 없었기 때문이야. 과자, 사탕, 젤리 같은 불량식품이 아주 맛이 있을 때였는데 부모님이 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용돈을 마련해야 했거든. 가끔 논에서 일하거나, 밭에서 온종일 풀을 뽑으면 몇백 원씩 돈을 받곤 했는데 한창 먹을 나이에 턱없이 부족했었지. 다행히 자연 속에서 스스로 돈을 벌 수가 있었기 때문에 일찍 돈 버는데 눈을 뜨게 된 것 같아. 사람들이 나보고 ‘사막의 4인방’이라고 부른 적이 종종 있었어. 생활력이 강해서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보인다는 뜻이야.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하는 환경에 떠밀려지다 보니 생활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야.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만화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었는데 주인공이 꼭 나 같더라고. 학교에 가면 그냥 가서 졸고 있고, 숙제와 공부는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여기저기 모험을 쫓아다니며 말썽만 부렸거든. 그래서 부모님에게 많이 혼이 나고, 숲속의 작은 아지트 집으로 피신을 많이 다녔던 거야.
그곳이 가끔 생각난단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숲속에 지은 집에서 누워있던 기억이 종종 떠오르곤 하지. 그 좁고 허름한 집은 내게 큰 위안과 안전을 주는 공간이었어. 그리운 것은 산속의 집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까? 몇 해전 그곳을 혼자 방문한 적이 있었어.
글 윤성민 박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