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17) 사고의 추억

방과 후 이웃집 근영이 형과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랫마을을 지나던 유일한 신작로는 아스팔트 도로 공사가 마무리되어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었어. 울퉁불퉁한 신작로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멋진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위로 차들이 쌩쌩 달리게 되었단다. 동네 사람들은 서산 읍내에 나가는 게 편리해졌다고 좋아했지. 교통이 편리해지면 더 살기 좋은 마을이 될 거라고 했어. 실제로 오일장에 나갔다고 덜컹거리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보면 차멀미를 하곤 했어. 그런데 새로 생긴 아스팔트 도로 위로 달리는 버스는 훨씬 빠르고 편안했단다.
편리해진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며칠 전 아랫마을 김씨가 경운기를 몰고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가다가 차 사고가 크게 났다고 들었어. 도로가 좋아지다 보니 차들이 빨리 달려서 천천히 가던 경운기와 충돌사고를 일으키게 된 거야. 가끔 도로를 지나다 보면 차에 치인 야생동물을 볼 수가 있었단다. 느림에 익숙하던 시골 마을 사람들과 동물들은 아스팔트 도로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단다.

함께 길을 걷던 근영이 형은 나보다 한 학년 위였지만 키는 훨씬 컸어. 나는 키가 유난히 작은 편에 속했고 형은 키 큰 엄마를 닮아서 반에서 제일 큰 편이었단다. 친절한 근영이 형은 걸음이 느린 나를 데리고 학교에 가곤 했었지. 그 날은 학교가 일찍 끝나서 집에 와서 놀생각에 기분이 들떠 있었단다. 우리 동네로 가기 위해서는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야 했어. 키가 크고 걸음이 빨랐던 근영이 형이 먼저 길어 건너갔단다. 나도 형을 따라서 길을 건너려던 순간 무언가가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지.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단다.
얼마 후 눈을 떠 보니 어떤 아저씨가 도로 위에 누워있는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더구나. 아지랭이가 피어있던 우리 동네 언덕배기에서 밭일하시던 부모님이 아스팔트 도로 쪽으로 황급히 뛰어오시던 모습이 보였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어. 마치 권투 선수의 강펀치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단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차에 치이었던거야. 주막집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완행버스를 추월해서 달려오던 녹색 포니 택시가 갑자기 길을 건너는 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택시의 오른쪽 옆면 거울에 내가 부닥쳐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단다. 그때 충격으로 잠깐 정신을 잃었던 거야.
다행히 사고를 낸 택시 운전사가 사고 현장을 떠나지 않고 나를 돌보고 있었단다. 사고를 목격한 근영이 형이 달음박질해서 우리 부모님에게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한 거였어. 그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밭일하다 말고 맨발로 사고현장에 달려온 거란다.
천만다행으로 많이 다치지 않았단다. 택시 운전사는 전날 차를 자기 집 앞에 세워놓았는데 아침에 나와 보니 오른쪽 옆면 거울이 깨져있었다는 거야. 하는수없이 집에 들어가서 강력한 접착테이프를 이용해서 임시로 거울을 다시 붙여놓은 거였단다. 그래서 내가 거울에 얼굴을 강타를 당했어도 큰 상처가 나지 않았던 것이었어. 또 한 발짝이라도 빨리 길을 건넜더라면 더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지.
택시 운전사 아저씨는 나와 부모님을 태우고 읍내에 있는 서산 의료원 응급실로 데려갔단다. 사고로 겉은 하나도 다친 게 없이 멀쩡했지만, 입안이 충격으로 찢어졌었어. 응급실에서 입안 상처를 수술용실로 대 여섯 번 꿰맨 후 병원문을 나섰단다.
아저씨는 병원 밖에 있는 포장마차로 나와 부모님을 데리고 가셨단다. 저녁 시간 포장마차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어. 아저씨는 연신 미안하다며 어묵과 닭발을 시켜 주셨지. 커다란 대접에 담긴 어묵 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자극했단다. 입안을 몇 발 꿰맨 후였지만 마
취가 아직 풀리지 않아서 어묵을 먹어도 별로 아프지가 않았어.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여서 배가 매우 고팠었나 봐. 택시 운전사 아저씨는 어묵 한 그릇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시더니 한 그릇을 더 시켜 주셨단다. 그때 먹은 어묵이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 같아.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내게 눈치를 주셨어. “아이를 다치게 해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사고 합의를 제안하셨어. 그런데 정작 사고를 당한 나는 별로 다친 게 없는 듯이 어묵 몇 그릇을 비우고 있으니 부모님이 난처하셨던 거야. 다쳤기 때문에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다친 사람은 어묵을 폭풍 흡입하고 있으니 보상금을 받을 명목이 사라진 거지. 그래도 착한 택시 운전사 아저씨는 십여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보상금으로 건네셨단다.
그날 이후 도로를 건널 때는 늘 좌우를 두 세 번씩 살피는 습관이 생겨났단다. 운전을 할 때도 늘 조심해서 운전하게 되었어. 지금까지 27년 동안 운전을 해 왔지만, 아직 교통사고를 내거나 흔한 교통위반 티켓을 받은 적도 없단다. 사고의 기억 때문에 늘 조심해서 길을 걷고 운전하는 좋은 습관을 갖게 된 거야.

엊그제 쇼핑몰을 가다가 뒤에 타고 있던 친척들에게 내가 안전띠를 하라고 종용한 적이 있었어. 대개 앞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안전띠를 착용하는데 뒤에 타고 있는 승객들은 매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그런데 뒷좌석에 앉아 있더라도 안전띠를 매지 않고 자동차 사고를 당하게 되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확률이 안전띠를 착용할 때보다 여덟 배가 높아진단다. 실제로 영화 뷰티플 마인드(A Beautiful Mind)의 주인공인 프린스턴 대학의 수학자, 존 내시(John Nash) 박사와 그의 부인도 뉴저지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어. 안전띠를 매고 있던 택시 운전사는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뒷좌석에 타고 있던 내시 박사와 그의 부인은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단다. 그 사고 소식을 몆 년 전에 듣고는 뒷좌석에 앉을 때는 늘 안전띠를 매는 습관을 생활화하고 있단다.
어떤 사람들은 간혹 교통사고를 당하면 트라우마가 생겨서 아예 차를 타지 못하거나 두려워서 운전하지 않게 되기도 한단다. 또 안전에 대해 지나치게 강박적인 모습을 보여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어. 사고의 충격이 너무커서 헤어나지 못하고 두렵고 불안한 나머지 비슷한 상황을 만나지 않도록 회피하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나치게 예방하고 확인하려는 습관을 키우게 된 거야. 나름대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지만, 살아가는 데 좀 지장이 생길 수가 있겠지.
하지만 사고의 경험이 더 안전하고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단다. 초등학교 때 당한 자동차 사고의 기억이 안전하게 길을 걷고 운전하는 습관을 만들어 준거잖아?. 가능하면 사고를 만나지 않는 게 좋겠지만, 설령 살아가다가 원치 않는 사고나 힘든 일을 경험할 때가 있겠지. 그럴 때마다 그 경험이 가져다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고,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로 삼으면 더 좋지 않을까?
글 윤성민 박사, DSW, LCSW-R, CASAC, RPT-S, ACT
그림 박종진
정리 에스카사 편집
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17) 사고의 추억
방과 후 이웃집 근영이 형과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랫마을을 지나던 유일한 신작로는 아스팔트 도로 공사가 마무리되어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었어. 울퉁불퉁한 신작로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멋진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위로 차들이 쌩쌩 달리게 되었단다. 동네 사람들은 서산 읍내에 나가는 게 편리해졌다고 좋아했지. 교통이 편리해지면 더 살기 좋은 마을이 될 거라고 했어. 실제로 오일장에 나갔다고 덜컹거리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보면 차멀미를 하곤 했어. 그런데 새로 생긴 아스팔트 도로 위로 달리는 버스는 훨씬 빠르고 편안했단다.
편리해진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며칠 전 아랫마을 김씨가 경운기를 몰고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가다가 차 사고가 크게 났다고 들었어. 도로가 좋아지다 보니 차들이 빨리 달려서 천천히 가던 경운기와 충돌사고를 일으키게 된 거야. 가끔 도로를 지나다 보면 차에 치인 야생동물을 볼 수가 있었단다. 느림에 익숙하던 시골 마을 사람들과 동물들은 아스팔트 도로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단다.
함께 길을 걷던 근영이 형은 나보다 한 학년 위였지만 키는 훨씬 컸어. 나는 키가 유난히 작은 편에 속했고 형은 키 큰 엄마를 닮아서 반에서 제일 큰 편이었단다. 친절한 근영이 형은 걸음이 느린 나를 데리고 학교에 가곤 했었지. 그 날은 학교가 일찍 끝나서 집에 와서 놀생각에 기분이 들떠 있었단다. 우리 동네로 가기 위해서는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야 했어. 키가 크고 걸음이 빨랐던 근영이 형이 먼저 길어 건너갔단다. 나도 형을 따라서 길을 건너려던 순간 무언가가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지.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단다.
얼마 후 눈을 떠 보니 어떤 아저씨가 도로 위에 누워있는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더구나. 아지랭이가 피어있던 우리 동네 언덕배기에서 밭일하시던 부모님이 아스팔트 도로 쪽으로 황급히 뛰어오시던 모습이 보였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어. 마치 권투 선수의 강펀치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단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차에 치이었던거야. 주막집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완행버스를 추월해서 달려오던 녹색 포니 택시가 갑자기 길을 건너는 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택시의 오른쪽 옆면 거울에 내가 부닥쳐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단다. 그때 충격으로 잠깐 정신을 잃었던 거야.
다행히 사고를 낸 택시 운전사가 사고 현장을 떠나지 않고 나를 돌보고 있었단다. 사고를 목격한 근영이 형이 달음박질해서 우리 부모님에게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한 거였어. 그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밭일하다 말고 맨발로 사고현장에 달려온 거란다.
천만다행으로 많이 다치지 않았단다. 택시 운전사는 전날 차를 자기 집 앞에 세워놓았는데 아침에 나와 보니 오른쪽 옆면 거울이 깨져있었다는 거야. 하는수없이 집에 들어가서 강력한 접착테이프를 이용해서 임시로 거울을 다시 붙여놓은 거였단다. 그래서 내가 거울에 얼굴을 강타를 당했어도 큰 상처가 나지 않았던 것이었어. 또 한 발짝이라도 빨리 길을 건넜더라면 더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지.
택시 운전사 아저씨는 나와 부모님을 태우고 읍내에 있는 서산 의료원 응급실로 데려갔단다. 사고로 겉은 하나도 다친 게 없이 멀쩡했지만, 입안이 충격으로 찢어졌었어. 응급실에서 입안 상처를 수술용실로 대 여섯 번 꿰맨 후 병원문을 나섰단다.
아저씨는 병원 밖에 있는 포장마차로 나와 부모님을 데리고 가셨단다. 저녁 시간 포장마차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어. 아저씨는 연신 미안하다며 어묵과 닭발을 시켜 주셨지. 커다란 대접에 담긴 어묵 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자극했단다. 입안을 몇 발 꿰맨 후였지만 마
취가 아직 풀리지 않아서 어묵을 먹어도 별로 아프지가 않았어.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여서 배가 매우 고팠었나 봐. 택시 운전사 아저씨는 어묵 한 그릇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시더니 한 그릇을 더 시켜 주셨단다. 그때 먹은 어묵이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 같아.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내게 눈치를 주셨어. “아이를 다치게 해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사고 합의를 제안하셨어. 그런데 정작 사고를 당한 나는 별로 다친 게 없는 듯이 어묵 몇 그릇을 비우고 있으니 부모님이 난처하셨던 거야. 다쳤기 때문에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다친 사람은 어묵을 폭풍 흡입하고 있으니 보상금을 받을 명목이 사라진 거지. 그래도 착한 택시 운전사 아저씨는 십여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보상금으로 건네셨단다.
그날 이후 도로를 건널 때는 늘 좌우를 두 세 번씩 살피는 습관이 생겨났단다. 운전을 할 때도 늘 조심해서 운전하게 되었어. 지금까지 27년 동안 운전을 해 왔지만, 아직 교통사고를 내거나 흔한 교통위반 티켓을 받은 적도 없단다. 사고의 기억 때문에 늘 조심해서 길을 걷고 운전하는 좋은 습관을 갖게 된 거야.
엊그제 쇼핑몰을 가다가 뒤에 타고 있던 친척들에게 내가 안전띠를 하라고 종용한 적이 있었어. 대개 앞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안전띠를 착용하는데 뒤에 타고 있는 승객들은 매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그런데 뒷좌석에 앉아 있더라도 안전띠를 매지 않고 자동차 사고를 당하게 되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확률이 안전띠를 착용할 때보다 여덟 배가 높아진단다. 실제로 영화 뷰티플 마인드(A Beautiful Mind)의 주인공인 프린스턴 대학의 수학자, 존 내시(John Nash) 박사와 그의 부인도 뉴저지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어. 안전띠를 매고 있던 택시 운전사는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뒷좌석에 타고 있던 내시 박사와 그의 부인은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단다. 그 사고 소식을 몆 년 전에 듣고는 뒷좌석에 앉을 때는 늘 안전띠를 매는 습관을 생활화하고 있단다.
어떤 사람들은 간혹 교통사고를 당하면 트라우마가 생겨서 아예 차를 타지 못하거나 두려워서 운전하지 않게 되기도 한단다. 또 안전에 대해 지나치게 강박적인 모습을 보여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어. 사고의 충격이 너무커서 헤어나지 못하고 두렵고 불안한 나머지 비슷한 상황을 만나지 않도록 회피하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나치게 예방하고 확인하려는 습관을 키우게 된 거야. 나름대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지만, 살아가는 데 좀 지장이 생길 수가 있겠지.
하지만 사고의 경험이 더 안전하고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단다. 초등학교 때 당한 자동차 사고의 기억이 안전하게 길을 걷고 운전하는 습관을 만들어 준거잖아?. 가능하면 사고를 만나지 않는 게 좋겠지만, 설령 살아가다가 원치 않는 사고나 힘든 일을 경험할 때가 있겠지. 그럴 때마다 그 경험이 가져다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고,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로 삼으면 더 좋지 않을까?
글 윤성민 박사, DSW, LCSW-R, CASAC, RPT-S, ACT
그림 박종진
정리 에스카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