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상을 바꾸다
그래핀 연구의 선봉장 서울대 홍병희 교수
‘세상을 바꾼다’ 하면 제일 먼저 사회운동가나 정치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사회 구조나 제도의 변화는 혁명이 아니고서야 우리의 삶에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반면, 과학기술자들이 연구실과 실험실에서 추구하고 이루어내는 변화는 빠르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일례로 이메일과 스마트폰이 그러했고, 수술용 로봇의 보급이 그러했다. 기술의 변화, 즉 ‘테크놀러지(technology)’라는 요소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가져온 여러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이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 내는 데 동참하고 있는 세계적인 과학자, 홍병희 교수를 만났다.
노벨상은 흔히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늘이 허락해야 하는 거라고들 한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노벨상. 한국인 과학자 중 이 상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있다. 바로 세계 최초로 ‘그래핀(Graphene)’ 이라는 나노 물질을 대량 생산 하는 기술을 개발한 홍병희 교수이다. 그의 논문은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에게 영향을 끼쳤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저명한 과학저널인 Nature 誌에 2009년에 실린 그의 논문은 2017년 12월 현재 6,000회 이상의 인용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아마 한국 내에서는 최소 120년은 깨지지 않을 신기록이라고 한다. 특히 노벨 위원회는 그의 그래핀 상용화 연구에 주목했다. 2004년 신물질인 그래핀을 발견한 안드레 가임(Andre Geim)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교수는 2010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는 그래핀 신소재의 실용화학 기술을 개발한 홍 교수의 연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물질의 발견이 대단한 업적임에는 분명하지만, 노벨 위원회는 그 물질이 세상에 어떤 이바지를 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고 나서야 그 업적을 소급하여 인정하기 때문이다. 홍병희 교수는 그래핀 실용화학 부분을 선도하는 유일한 과학자로 노벨위원회 초청을 받아 강연도 했다. 그의 연구 업적은 한국 과학자 중 유일하게 스웨덴 노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홍병희 교수는 지금 그래핀을 활용한 바이오 연구에 매진하며 또 다른 노벨상을 꿈꾸고 있다.
꿈의 신소재 그래핀(Graphene)
사람의 눈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는 생소한 나노(Nano)라는 용어에 보통 사람들이 이제 겨우 익숙해져 갈 무렵 여기저기서 그래핀(Graphene) 이라는 또 다른 생소한 용어가 들리기 시작한다. 현재 서울대학교 화학과 교수이자 그래핀의 산업화와 상용화를 실현하고자 설립한 회사, ‘그래핀 스퀘어(Graphene Square)’와 ‘바이오 그래핀(Bio-Graphene)’의 설립 자이기도 한 홍병희 교수를 매료시킨 그래핀이란 대체 무엇일까?
영어로 흑연을 뜻하는 ‘Graphite’에 화학에서 탄소 이중결합 형식을 띤 분자를 뜻하는 접미사인 ‘ene’을 결합해 명명한 그래핀은 탄소의 얇은 막이라고 볼 수 있다. 1930년대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한 나일론과 플라스틱이 의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 큰 변혁을 가져왔다면, 1940년대에 등장한 ‘신이 내려주신 물질’이라는 실리콘은 컴퓨터와 반도체 등 전자산업을 이끌어내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에게 IT의 시대를 선사했다. 실리콘 이후의 시대를 지배할 새로운 소재로 주목받는 그래핀은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고, 다이아몬드보다 열 전도성이 좋아 현재 반도체에서 사용되는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전자를 이동시킬 뿐 아니라 구리보다도 100배 많은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다.
또, 뛰어난 신축성과 유연성 및 투명도를 기반으로 말거나 접거나 입을 수 있는 스크린을 가능하게 하여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display) 시장과 웨어러블 전자 디바이스 시장에 대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그래핀은 전자, 정보통신 분야를 넘어 화학, 에너지, 생명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활용 가능성이 검증된 상태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래핀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대량생산해서 상용화할 수 있는가’인데 한국의 홍병희 교수는 그래핀 분야의 전 세계적인 권위자로서 이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청년 과학자를 매료시킨 나노(Nano)의 세계
홍 교수가 그래핀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04년 미국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 김필립 교수(현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주 작은 머리카락의 몇만 분의 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나노 세계인데요. 그 나노 물질 중 하나가 그래핀입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포스트닥(post-doc: 박사후과정)을 하면서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tube) 연구를 시작했는데요, 이게 그래핀과 상당히 비슷해요. 그래핀이 김밥을 펼쳐놓은 구조라면, 김밥을 똘똘 말아놓은 게 탄소나노튜브라고 할 수 있죠. 그걸 연구하는 과정에서 스카치테이프로 흑연을 떼어내서 그래핀을 만드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으로는 대량 생산이 어려웠기 때문에 화학적으로 대량 생산할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지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물질로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작업이 고도의 장비와 인력, 많은 시간과 비용이 있어야 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핀 소재를 산업에 적용이 가능한 크기와 품질로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인 홍병희 교수와 그의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그래핀 터치스크린 상용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이 디스플레이 산업과 반도체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만큼 그래핀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무궁하고, 그의 연구 업적은 삼성, LG 같은 기업에는 그야말로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핀의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로
10여 년의 시간을 학자로서 그래핀 연구에 매진했던 홍병희 교수는 2012년, 그래핀의 상용화를 위해 ‘그래핀 스퀘어’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고 그래핀의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과감히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었다.
“처음 회사를 만들었을 땐 여러 연구 단체들에 그래핀 샘플과 그래핀 합성 장비를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분야에서 그래핀의 적용 가능성이 입증되면서 그래핀을 실용화, 상용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죠.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은 차세대 OLED 디스플레이에 그래핀을 적용하는 것인데, 그게 성사되면 스마트워치(Smartwatch)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나 차세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Flexible Display) 에도 그래핀이 쓰일 수 있게 됩니다.”
그래핀의 가능성만큼이나 관련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또 그만큼 그래핀 개발 경쟁도 치열한 것이 사실이다. 획기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그래핀을 양산할 수 있는 핵심 기술과 특허를 보유한 그래핀 개발의 선두주자인 홍병희 교수의 업적과 그의 회사는 일찌감치 2014년에 미 경제 주간지 블룸버그 (Bloomberg)를 통해 차세대 모바일 디바이스 스크린 시장에 기여할 대표적 그래핀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홍 교수는 이에 멈추지 않고, 최근 바이오(bio)와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그래핀이 유망한 소재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 발맞춰 또 다른 그의 회사인 ‘바이오 그래핀’을 통해 그래핀 응용 사업의 영역을 확대하였다.
“저희 집안에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분이 계셨어요. 그 일을 계기로 그래핀을 이용해서 특히 파킨슨병이나 치매 치료제 개발을 위한 줄기세포 배양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어요. 그래핀 위에서 줄기세포를 키우면 굉장히 잘 자라거든요. 바이오 분야에서의 그래핀은 향후 건강보조식품을 비롯하여 퇴행성 뇌 질환 치료제와 같은 신약 개발까지 그 적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그래핀이 줄기세포를 통한 신경 및 생체 조직 재생과 안티 에이징(anti-aging: 항노화)에 활용될 수 있다는 건 정말 고무적입니다. 이 분야에서 선두주자라는 건 큰 행운이죠. 현재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연구팀과 함께 그래핀을 사용한 파킨슨병 및 치매 치료제를 개발해서 임상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래핀을 다각도로 응용하기 위한 사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홍병희 교수는 여전히 연구자라는 자신의 본분을 강조하며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친다.
의사가 될뻔한 과학자, 그의 꿈과 가족
돈이나 명예와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고집스럽게 가고자 하는 홍병희 교수의 모습은 그가 과학자가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의대 가라는 소리를 참 많이도 들었는데, 제가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의사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아마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긴 어려웠을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화학을 한 덕분에 저의 재능을 발견할 기회를 얻었고, 제가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이 일치하다 보니 좋은 성과도 얻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런 아빠를 꼭 빼닮아서일까. 그의 딸 셋 중 고등학교 2학년인 첫째 딸은 종군 기자가 꿈이라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걸어온 홍 교수도 부모가 되고 보니 영락없이 자식이 그저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고 만다. 그래서 종군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딸을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하지만, 누구를 탓할까? 돈이나 명예와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고집스럽게 가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딸의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임을 홍 교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묵묵히 딸의 미래를 위해 기도할밖에 사실상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한다.
그는 늘 아내와 세 딸에게 미안하다. 하는 일이 많아서 항상 시간에 쫓기다 보니 다정한 남편이나 모범적인 아버지가 되기는 어렵다.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그래핀 연구와 제품 개발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한시도 쉴 틈이 없는 홍병희 교수가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의 원동력은 가족이다.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은 남편이자 아버지임에도 아내와 세 딸은 항상 그를 자랑스러워하며 온 마음으로 응원하기에 그는 늘 미안하고 고맙다.
“누구보다 아내가 많이 고맙죠. 제가 석사 때 아내를 만나 결혼했는데요. 교사였던 아내는 제가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포스트닥 (post-doc: 박사후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로 자리 잡을 때까지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특히 뉴욕에서 3년 반 있는 동안, 남편은 연구한다고 잘 들어오지도 않고 혼자 애 키우고 살림하고...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도 불평 없이 잘 참아주고 지원해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아이들한테도 그렇죠. 한창 바쁠 때는 애들 얼굴을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 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요즘은 가끔이라도 애들 데리고 놀러 가고, 최대한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데 여전히 쉽지는 않습니다. 항상 많이 미안하죠. 그래도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딸들이 있어 힘이 납니다.”
한국 과학계뿐만이 아니라 세계 과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그래핀 연구의 선봉장(先鋒將)인 홍병희 교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운이 좋게도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스스로를 낮춘다. 그 겸손함은 자신의 연구를 통해 꿈의 신소재 그래핀의 무한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그 혜택이 사회에 환원되어 모두가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인류를 위한 홍 교수의 소망의 근원이다.
앞으로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지만, 홍병희 교수의 대량 상용화 연구를 통해 그래핀이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생산되고 수많은 그래핀 제품들이 사람들의 삶을 더 편리하고 윤택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그가 자랑스런 대한민국 과학자로서 노벨상을 받게 되는 날을 함께 꿈꾸어 본다.
그래핀(Graphene)이란?
흑연을 뜻하는 ‘Graphite’에 탄소 이중결합 형식을 띤 분자를 뜻하는 접미사인 ‘ene’을 결합해 명명한 그래핀은 탄소의 얇은 막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의 안드레 가임(Andre Geim) 교수와 연구원이었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박사가 2004년에 세계 최초로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는 방법으로 그래핀을 분리해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탄소 원자가 육각형으로 벌집처럼 무수히 결합한 평면 구조로 이루어진 나노 물질 그래핀은 두께가 0.2㎚(1㎚는 10억 분의 1m)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강하고 전기 전도율은 실리콘의 100배 이상, 열전도율도 금속인 구리의 100배가 넘는다. 신축성이 좋아 구부리거나 면적의 20~30%를 늘려도 전기적 성질이 손상되지 않으며 빛의 98%를 통과시킬 정도로 투명하다.
이러한 그래핀은 반도체의 정보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줌으로써 실리콘을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로 주목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신축성과 유연성 및 투명도를 기반으로 말거나 접거나 입을 수 있는 스크린을 가능하게 하여 플렉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 시장에 대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현재 그래핀은 전자, 정보통신 분야를 넘어 화학, 에너지, 생명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활용 가능성이 검증된 상태이다.
기획, 진행 Jennifer Lee
글 Juyoung Lee
에스카사 편집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상을 바꾸다
그래핀 연구의 선봉장 서울대 홍병희 교수
‘세상을 바꾼다’ 하면 제일 먼저 사회운동가나 정치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사회 구조나 제도의 변화는 혁명이 아니고서야 우리의 삶에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반면, 과학기술자들이 연구실과 실험실에서 추구하고 이루어내는 변화는 빠르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일례로 이메일과 스마트폰이 그러했고, 수술용 로봇의 보급이 그러했다. 기술의 변화, 즉 ‘테크놀러지(technology)’라는 요소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가져온 여러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이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 내는 데 동참하고 있는 세계적인 과학자, 홍병희 교수를 만났다.
노벨상은 흔히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늘이 허락해야 하는 거라고들 한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노벨상. 한국인 과학자 중 이 상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있다. 바로 세계 최초로 ‘그래핀(Graphene)’ 이라는 나노 물질을 대량 생산 하는 기술을 개발한 홍병희 교수이다. 그의 논문은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에게 영향을 끼쳤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저명한 과학저널인 Nature 誌에 2009년에 실린 그의 논문은 2017년 12월 현재 6,000회 이상의 인용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아마 한국 내에서는 최소 120년은 깨지지 않을 신기록이라고 한다. 특히 노벨 위원회는 그의 그래핀 상용화 연구에 주목했다. 2004년 신물질인 그래핀을 발견한 안드레 가임(Andre Geim)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교수는 2010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는 그래핀 신소재의 실용화학 기술을 개발한 홍 교수의 연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물질의 발견이 대단한 업적임에는 분명하지만, 노벨 위원회는 그 물질이 세상에 어떤 이바지를 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고 나서야 그 업적을 소급하여 인정하기 때문이다. 홍병희 교수는 그래핀 실용화학 부분을 선도하는 유일한 과학자로 노벨위원회 초청을 받아 강연도 했다. 그의 연구 업적은 한국 과학자 중 유일하게 스웨덴 노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홍병희 교수는 지금 그래핀을 활용한 바이오 연구에 매진하며 또 다른 노벨상을 꿈꾸고 있다.
꿈의 신소재 그래핀(Graphene)
사람의 눈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는 생소한 나노(Nano)라는 용어에 보통 사람들이 이제 겨우 익숙해져 갈 무렵 여기저기서 그래핀(Graphene) 이라는 또 다른 생소한 용어가 들리기 시작한다. 현재 서울대학교 화학과 교수이자 그래핀의 산업화와 상용화를 실현하고자 설립한 회사, ‘그래핀 스퀘어(Graphene Square)’와 ‘바이오 그래핀(Bio-Graphene)’의 설립 자이기도 한 홍병희 교수를 매료시킨 그래핀이란 대체 무엇일까?
영어로 흑연을 뜻하는 ‘Graphite’에 화학에서 탄소 이중결합 형식을 띤 분자를 뜻하는 접미사인 ‘ene’을 결합해 명명한 그래핀은 탄소의 얇은 막이라고 볼 수 있다. 1930년대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한 나일론과 플라스틱이 의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 큰 변혁을 가져왔다면, 1940년대에 등장한 ‘신이 내려주신 물질’이라는 실리콘은 컴퓨터와 반도체 등 전자산업을 이끌어내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에게 IT의 시대를 선사했다. 실리콘 이후의 시대를 지배할 새로운 소재로 주목받는 그래핀은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고, 다이아몬드보다 열 전도성이 좋아 현재 반도체에서 사용되는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전자를 이동시킬 뿐 아니라 구리보다도 100배 많은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다.
또, 뛰어난 신축성과 유연성 및 투명도를 기반으로 말거나 접거나 입을 수 있는 스크린을 가능하게 하여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display) 시장과 웨어러블 전자 디바이스 시장에 대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그래핀은 전자, 정보통신 분야를 넘어 화학, 에너지, 생명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활용 가능성이 검증된 상태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래핀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대량생산해서 상용화할 수 있는가’인데 한국의 홍병희 교수는 그래핀 분야의 전 세계적인 권위자로서 이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청년 과학자를 매료시킨 나노(Nano)의 세계
홍 교수가 그래핀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04년 미국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 김필립 교수(현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주 작은 머리카락의 몇만 분의 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나노 세계인데요. 그 나노 물질 중 하나가 그래핀입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포스트닥(post-doc: 박사후과정)을 하면서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tube) 연구를 시작했는데요, 이게 그래핀과 상당히 비슷해요. 그래핀이 김밥을 펼쳐놓은 구조라면, 김밥을 똘똘 말아놓은 게 탄소나노튜브라고 할 수 있죠. 그걸 연구하는 과정에서 스카치테이프로 흑연을 떼어내서 그래핀을 만드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으로는 대량 생산이 어려웠기 때문에 화학적으로 대량 생산할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지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물질로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작업이 고도의 장비와 인력, 많은 시간과 비용이 있어야 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핀 소재를 산업에 적용이 가능한 크기와 품질로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인 홍병희 교수와 그의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그래핀 터치스크린 상용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이 디스플레이 산업과 반도체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만큼 그래핀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무궁하고, 그의 연구 업적은 삼성, LG 같은 기업에는 그야말로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핀의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로
10여 년의 시간을 학자로서 그래핀 연구에 매진했던 홍병희 교수는 2012년, 그래핀의 상용화를 위해 ‘그래핀 스퀘어’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고 그래핀의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과감히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었다.
“처음 회사를 만들었을 땐 여러 연구 단체들에 그래핀 샘플과 그래핀 합성 장비를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분야에서 그래핀의 적용 가능성이 입증되면서 그래핀을 실용화, 상용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죠.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은 차세대 OLED 디스플레이에 그래핀을 적용하는 것인데, 그게 성사되면 스마트워치(Smartwatch)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나 차세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Flexible Display) 에도 그래핀이 쓰일 수 있게 됩니다.”
그래핀의 가능성만큼이나 관련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또 그만큼 그래핀 개발 경쟁도 치열한 것이 사실이다. 획기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그래핀을 양산할 수 있는 핵심 기술과 특허를 보유한 그래핀 개발의 선두주자인 홍병희 교수의 업적과 그의 회사는 일찌감치 2014년에 미 경제 주간지 블룸버그 (Bloomberg)를 통해 차세대 모바일 디바이스 스크린 시장에 기여할 대표적 그래핀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홍 교수는 이에 멈추지 않고, 최근 바이오(bio)와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그래핀이 유망한 소재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 발맞춰 또 다른 그의 회사인 ‘바이오 그래핀’을 통해 그래핀 응용 사업의 영역을 확대하였다.
“저희 집안에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분이 계셨어요. 그 일을 계기로 그래핀을 이용해서 특히 파킨슨병이나 치매 치료제 개발을 위한 줄기세포 배양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어요. 그래핀 위에서 줄기세포를 키우면 굉장히 잘 자라거든요. 바이오 분야에서의 그래핀은 향후 건강보조식품을 비롯하여 퇴행성 뇌 질환 치료제와 같은 신약 개발까지 그 적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그래핀이 줄기세포를 통한 신경 및 생체 조직 재생과 안티 에이징(anti-aging: 항노화)에 활용될 수 있다는 건 정말 고무적입니다. 이 분야에서 선두주자라는 건 큰 행운이죠. 현재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연구팀과 함께 그래핀을 사용한 파킨슨병 및 치매 치료제를 개발해서 임상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래핀을 다각도로 응용하기 위한 사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홍병희 교수는 여전히 연구자라는 자신의 본분을 강조하며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친다.
의사가 될뻔한 과학자, 그의 꿈과 가족
돈이나 명예와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고집스럽게 가고자 하는 홍병희 교수의 모습은 그가 과학자가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의대 가라는 소리를 참 많이도 들었는데, 제가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의사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아마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긴 어려웠을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화학을 한 덕분에 저의 재능을 발견할 기회를 얻었고, 제가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이 일치하다 보니 좋은 성과도 얻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런 아빠를 꼭 빼닮아서일까. 그의 딸 셋 중 고등학교 2학년인 첫째 딸은 종군 기자가 꿈이라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걸어온 홍 교수도 부모가 되고 보니 영락없이 자식이 그저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고 만다. 그래서 종군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딸을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하지만, 누구를 탓할까? 돈이나 명예와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고집스럽게 가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딸의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임을 홍 교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묵묵히 딸의 미래를 위해 기도할밖에 사실상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한다.
그는 늘 아내와 세 딸에게 미안하다. 하는 일이 많아서 항상 시간에 쫓기다 보니 다정한 남편이나 모범적인 아버지가 되기는 어렵다.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그래핀 연구와 제품 개발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한시도 쉴 틈이 없는 홍병희 교수가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의 원동력은 가족이다.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은 남편이자 아버지임에도 아내와 세 딸은 항상 그를 자랑스러워하며 온 마음으로 응원하기에 그는 늘 미안하고 고맙다.
“누구보다 아내가 많이 고맙죠. 제가 석사 때 아내를 만나 결혼했는데요. 교사였던 아내는 제가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포스트닥 (post-doc: 박사후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로 자리 잡을 때까지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특히 뉴욕에서 3년 반 있는 동안, 남편은 연구한다고 잘 들어오지도 않고 혼자 애 키우고 살림하고...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도 불평 없이 잘 참아주고 지원해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아이들한테도 그렇죠. 한창 바쁠 때는 애들 얼굴을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 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요즘은 가끔이라도 애들 데리고 놀러 가고, 최대한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데 여전히 쉽지는 않습니다. 항상 많이 미안하죠. 그래도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딸들이 있어 힘이 납니다.”
한국 과학계뿐만이 아니라 세계 과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그래핀 연구의 선봉장(先鋒將)인 홍병희 교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운이 좋게도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스스로를 낮춘다. 그 겸손함은 자신의 연구를 통해 꿈의 신소재 그래핀의 무한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그 혜택이 사회에 환원되어 모두가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인류를 위한 홍 교수의 소망의 근원이다.
앞으로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지만, 홍병희 교수의 대량 상용화 연구를 통해 그래핀이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생산되고 수많은 그래핀 제품들이 사람들의 삶을 더 편리하고 윤택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그가 자랑스런 대한민국 과학자로서 노벨상을 받게 되는 날을 함께 꿈꾸어 본다.
그래핀(Graphene)이란?
흑연을 뜻하는 ‘Graphite’에 탄소 이중결합 형식을 띤 분자를 뜻하는 접미사인 ‘ene’을 결합해 명명한 그래핀은 탄소의 얇은 막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의 안드레 가임(Andre Geim) 교수와 연구원이었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박사가 2004년에 세계 최초로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는 방법으로 그래핀을 분리해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탄소 원자가 육각형으로 벌집처럼 무수히 결합한 평면 구조로 이루어진 나노 물질 그래핀은 두께가 0.2㎚(1㎚는 10억 분의 1m)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강하고 전기 전도율은 실리콘의 100배 이상, 열전도율도 금속인 구리의 100배가 넘는다. 신축성이 좋아 구부리거나 면적의 20~30%를 늘려도 전기적 성질이 손상되지 않으며 빛의 98%를 통과시킬 정도로 투명하다.
이러한 그래핀은 반도체의 정보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줌으로써 실리콘을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로 주목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신축성과 유연성 및 투명도를 기반으로 말거나 접거나 입을 수 있는 스크린을 가능하게 하여 플렉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 시장에 대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현재 그래핀은 전자, 정보통신 분야를 넘어 화학, 에너지, 생명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활용 가능성이 검증된 상태이다.
기획, 진행 Jennifer Lee
글 Juyoung Lee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