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6) 오늘부터 줄반장 해라

얼마 전 커다란 황금색 오랜지 한 개를 담임 선생님에게 드리겠다며 도시락 가방에 넣어 간 적이 있었지? 돌아와서는 선생님이 아주 맛있게 드셨다며 기뻐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의 반응에 신이 나서 자꾸 자꾸 갖다 드리고 싶어질 거야. 어떤 행동을 해서 상대방으로부터 칭찬과 관심을 받으면 다음에 또 하고 싶어진단다.
따스한 봄볕에 나른해진 오후 어느 날,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흑판에 적은 수업내용을 칠판지우개로 지우고 계셨어. 임창호 선생님은 키가 180㎝가 넘고 얼굴도 멋지게 생긴 분이었단다. 늘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셨어. 더구나 온화한 미소와 친절까지 겸비하신 분이어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단다.
한참 동안 칠판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지우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손에있던 지우개를 놓쳐서 바닥에 떨어뜨리셨어. 키가 매우 크신 분이어서 지우개를 바닥에서 주울 때마다 허리를 많이 숙여야 했지. 아마 허리가 많이 아프셨을 거야. 또 지우개에는 하얀색 분필 가루가 많이 묻어 있어서 선생님의 검은색 양복을 더럽히곤 했지.
키가 작았던 나는 학년마다 줄 제일 앞자리에 앉곤 했어. 그 날따라 선생님의 칠판지우개가 내 책상 바로 앞에 떨어진 거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우개를 주워드렸지. 선생님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성민이가 칠판지우개를 주워주니 허리가 안 아픈데” 하시며 칭찬하시는 거야. 키가 작았기 때문에 지우개를 줍는 것은 아주 잘할 수 있었거든. 그날 초등학교를 4년 동안 다니면서 선생님으로부터 난생 처음 칭찬을 들었단다.
같은 학년 동급생보다 한 살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었기 때문에 키가 작았고 운동도 잘 못 했어. 학교에 다녀오면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공부는 늘 뒷전이었지.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은 아이들 공부를 챙겨줄 여력이 없으셨어. 그래서 숙제를 제대로 해간 적도 별로 없었단다. 동아전과나 표준전과 같은 참고서가 있었으면 숙제할 의욕이 좀 생겼을 텐데, 연필이나 공책도 부족한 상황이어서 구매할 엄두도 내지 못했었지. 미술 시간에 필요한 도화지와 크레용이 없어서 늘 옆자리에 앉은 친구 것을 빌려 쓰곤 했단다.
양조장 부잣집 딸 하연옥과 아랫동네 주막집 아들 김현호는 공부를 잘해서 늘 전교 1, 2 등을 다투었지. 하연옥은 얼굴이 백옥같이 하얗고 긴머리에 예쁜 치마만 입고 다녔어. 더군다나 지역 유지이신 부모님이 학교 행사에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시니까 선생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단다. 김현호는 차분한 성격에 지도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매년 반장을 도맡아 하고 있었지. 시험을 봤다 하면 매번 전교 1등을 하곤 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우상 같은 존재였어.
연옥이나 현호 수준은 아니더라도 뭐 잘하는 거라도 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칭찬받을 만한 거리가 전혀 없었거든. 그런데 선생님이 나를 칭찬하신 거야.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지도력을 발휘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고작 바닥에 떨어진 칠판지우개 하나 재빠르게 주워드린 것밖에 없었거든.
그 후 선생님이 떨어뜨린 칠판지우개를 도맡아 주워드렸어.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지우개로 칠판까지도 지워드렸지. 키가 작았기 때문에 펄쩍펄쩍 뜀뛰기를 해서 여간해선 손이 닿지 않는 칠판 끝부분까지 지우는 모습을 보시고는 선생님이 재미있다고 많이 웃으셨단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는 여전히 잘 못 했지만, 칠판 잘 지우는 거로 선생님의 인정과 귀염을 받던 나는 조금 으쓱해져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단다. 선생님은 성품이 온화하셔서 학생들에게 매를 드시거나 크게 혼내시는 분이 아니었어.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집중을 안하고 떠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 그날따라 아이들이 너무 소란스럽게 떠들길래, 뒤를 돌아보며 “야!, 조용히 해”라고 큰소리를 질렀지.
그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어. “이거 큰일 났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반장, 부반장, 부장 같은 학급 임원도 아닌 주제에 큰소리로 호통을 쳤으니 아이들과 선생님이 나를 뭐라고 생각했겠어?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어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지.얼굴에 식은땀이 부슬부슬 나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
그때 조용히 미소를 보내시던 선생님은 나를 보며 “오늘부터 네가 줄반장을 해라”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순간 얼굴을 번쩍 들고 선생님을 바라보았지. 선생님은 나를 보시면서 “성민이가 도와줘서 고맙다”고 격려해 주시는거야. “자기가 뭐라도 되나?”라며 수군대던 반 아이들이 나를 많이 안 좋게 봤을 거야. 그런데 선생님이 ‘줄반장’이라는 권위를 부여해 주시니까 아이들에게 호통을 친 내 실수가 금세 만회가 된 거야. 친구들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지. 왕따를 당하지도 않고 말이야.
집에 돌아와서는 부모님에게 큰 자랑을 늘어놓았단다. “엄마! 내가 학교에서 줄반장이 되었어!” 엄마도 기분이 좋으셨나 봐. 이웃집 근영이 엄마에게도 내가 줄반장 되었다고 슬쩍 얘기하시더라고. 그럴 법도 한것이 뭐 생전 상이나 칭찬을 받아봤어야지. 그런 내가 줄반장이 되었으니 자랑할 만한 일이었지.
사실, 줄반장은 학급에서 없는 직책이었단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반장과 부반장을 맡았고, 그 밑에 여러 명의 부장을 둘 수가 있었어. 줄반장은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선생님이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시기위해 생각해 낸 ‘신의 한 수’였던 거야.
다음날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리겠다며 얼룩이 젖소에게서 짠 생우유를 빈 식용유 병에 가득 담아 갖다 드리라고 했어. 좀 보잘것 없는 선물이었지만 마음을 담아 드린 거라서 선생님이 좋아하셨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수줍게 드렸지. 수업이 다 끝나서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선생님이 그 우유를 어떻게 하실까?”하는 조바심이 있어서 지켜보고 있었어. 빈 교실에 남아 있던 선생님은 옆 반 총각 선생님을 불러서 엽차 잔에다가 “이거 귀한 거야”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눠드시는 거야. 순간, “어, 저 우유 끓여 먹어야 하는데”라는 걱정이 들면서도, 기분이 아주 좋아지더라고. “보잘것 없는 선물을 귀하게 여기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신나서 집에 돌아왔단다.

그 전에는 학교 가기 싫어서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곤 했었어. 어느 날은 지각할 것 같아서 학교 가는 중간에 혼자 산에 올라가 도시락을 먹고 놀다가 친구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집에 돌아온 적도 있었단다. 그냥 책가방 메고 학교만 왔다 갔다 했었고 의욕도 없었지. 그런데 줄반장도 되고 선생님의 칭찬과 사랑을 받다보니 학교생활과 공부에 대한 즐거움이 생겨났어. 자꾸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숙제도 하게 되고 성적도 조금씩 올라가게 되었단다.
집에서 키운 강아지나 화초도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훨씬 건강하게 크는 법이란다. 누구나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도,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누구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단다. 사소한 재능이라도 자꾸자꾸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지. 그것을 알아채고 키워주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일 거야. 그래서 삶 속에서 좋은 스승과 멘토를 만나는 것은 좋은 친구와 배우자를 만나는 것과 함께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란다.
사람의 운명을 바꾸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한단다.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게 되면 ‘운이 지질히도 없다’라는 말을 하지. 그러나 모든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단다. 아무 노력 없이 얻는 운의 결과가 불행이 되는 경우가 있고, 또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행운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기도 하지.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나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느냐는 것일 거야. 삶에 존재하는 두 가지 본질 중에 내가 어떤 것을 마음에 담아두느냐에 따라서 행운과 불행이 결정된단다.
모든 선생님이 다 나를 인정해준 것은 아니었을 거야. 또 사람들에게 외롭고 서러운 대우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단다. 그럴때마다 이렇게 생각한단다. “선생님들이 어떻게 모든 아이를 똑같이 대할 수가 있을까?” 또 “어떤 선생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꼭 못난 건아니야.” “임창호 선생님같이 보잘것없는 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신분이 계시잖아.” 그 생각을 마음에 품으니 학교와 선생님을 바라보는 내 생각이 훨씬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단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선생님을 찾아뵙지는 못했단다. 하지만 선생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관심은 늘 내 마음속에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지. 지금도 썩 잘하는 게 없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나를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믿음 때문일 거야. 그 긍정적인 믿음을 품게 되면 힘든 일과 도전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단다. 지금도 “나는 선생님이 임명한 줄반장이야!”라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단다.
글 윤성민 박사
에스카사 편집부
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6) 오늘부터 줄반장 해라
얼마 전 커다란 황금색 오랜지 한 개를 담임 선생님에게 드리겠다며 도시락 가방에 넣어 간 적이 있었지? 돌아와서는 선생님이 아주 맛있게 드셨다며 기뻐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의 반응에 신이 나서 자꾸 자꾸 갖다 드리고 싶어질 거야. 어떤 행동을 해서 상대방으로부터 칭찬과 관심을 받으면 다음에 또 하고 싶어진단다.
따스한 봄볕에 나른해진 오후 어느 날,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흑판에 적은 수업내용을 칠판지우개로 지우고 계셨어. 임창호 선생님은 키가 180㎝가 넘고 얼굴도 멋지게 생긴 분이었단다. 늘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셨어. 더구나 온화한 미소와 친절까지 겸비하신 분이어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단다.
한참 동안 칠판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지우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손에있던 지우개를 놓쳐서 바닥에 떨어뜨리셨어. 키가 매우 크신 분이어서 지우개를 바닥에서 주울 때마다 허리를 많이 숙여야 했지. 아마 허리가 많이 아프셨을 거야. 또 지우개에는 하얀색 분필 가루가 많이 묻어 있어서 선생님의 검은색 양복을 더럽히곤 했지.
키가 작았던 나는 학년마다 줄 제일 앞자리에 앉곤 했어. 그 날따라 선생님의 칠판지우개가 내 책상 바로 앞에 떨어진 거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우개를 주워드렸지. 선생님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성민이가 칠판지우개를 주워주니 허리가 안 아픈데” 하시며 칭찬하시는 거야. 키가 작았기 때문에 지우개를 줍는 것은 아주 잘할 수 있었거든. 그날 초등학교를 4년 동안 다니면서 선생님으로부터 난생 처음 칭찬을 들었단다.
같은 학년 동급생보다 한 살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었기 때문에 키가 작았고 운동도 잘 못 했어. 학교에 다녀오면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공부는 늘 뒷전이었지.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은 아이들 공부를 챙겨줄 여력이 없으셨어. 그래서 숙제를 제대로 해간 적도 별로 없었단다. 동아전과나 표준전과 같은 참고서가 있었으면 숙제할 의욕이 좀 생겼을 텐데, 연필이나 공책도 부족한 상황이어서 구매할 엄두도 내지 못했었지. 미술 시간에 필요한 도화지와 크레용이 없어서 늘 옆자리에 앉은 친구 것을 빌려 쓰곤 했단다.
양조장 부잣집 딸 하연옥과 아랫동네 주막집 아들 김현호는 공부를 잘해서 늘 전교 1, 2 등을 다투었지. 하연옥은 얼굴이 백옥같이 하얗고 긴머리에 예쁜 치마만 입고 다녔어. 더군다나 지역 유지이신 부모님이 학교 행사에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시니까 선생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단다. 김현호는 차분한 성격에 지도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매년 반장을 도맡아 하고 있었지. 시험을 봤다 하면 매번 전교 1등을 하곤 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우상 같은 존재였어.
연옥이나 현호 수준은 아니더라도 뭐 잘하는 거라도 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칭찬받을 만한 거리가 전혀 없었거든. 그런데 선생님이 나를 칭찬하신 거야.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지도력을 발휘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고작 바닥에 떨어진 칠판지우개 하나 재빠르게 주워드린 것밖에 없었거든.
그 후 선생님이 떨어뜨린 칠판지우개를 도맡아 주워드렸어.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지우개로 칠판까지도 지워드렸지. 키가 작았기 때문에 펄쩍펄쩍 뜀뛰기를 해서 여간해선 손이 닿지 않는 칠판 끝부분까지 지우는 모습을 보시고는 선생님이 재미있다고 많이 웃으셨단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는 여전히 잘 못 했지만, 칠판 잘 지우는 거로 선생님의 인정과 귀염을 받던 나는 조금 으쓱해져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단다. 선생님은 성품이 온화하셔서 학생들에게 매를 드시거나 크게 혼내시는 분이 아니었어.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집중을 안하고 떠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 그날따라 아이들이 너무 소란스럽게 떠들길래, 뒤를 돌아보며 “야!, 조용히 해”라고 큰소리를 질렀지.
그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어. “이거 큰일 났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반장, 부반장, 부장 같은 학급 임원도 아닌 주제에 큰소리로 호통을 쳤으니 아이들과 선생님이 나를 뭐라고 생각했겠어?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어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지.얼굴에 식은땀이 부슬부슬 나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
그때 조용히 미소를 보내시던 선생님은 나를 보며 “오늘부터 네가 줄반장을 해라”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순간 얼굴을 번쩍 들고 선생님을 바라보았지. 선생님은 나를 보시면서 “성민이가 도와줘서 고맙다”고 격려해 주시는거야. “자기가 뭐라도 되나?”라며 수군대던 반 아이들이 나를 많이 안 좋게 봤을 거야. 그런데 선생님이 ‘줄반장’이라는 권위를 부여해 주시니까 아이들에게 호통을 친 내 실수가 금세 만회가 된 거야. 친구들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지. 왕따를 당하지도 않고 말이야.
집에 돌아와서는 부모님에게 큰 자랑을 늘어놓았단다. “엄마! 내가 학교에서 줄반장이 되었어!” 엄마도 기분이 좋으셨나 봐. 이웃집 근영이 엄마에게도 내가 줄반장 되었다고 슬쩍 얘기하시더라고. 그럴 법도 한것이 뭐 생전 상이나 칭찬을 받아봤어야지. 그런 내가 줄반장이 되었으니 자랑할 만한 일이었지.
사실, 줄반장은 학급에서 없는 직책이었단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반장과 부반장을 맡았고, 그 밑에 여러 명의 부장을 둘 수가 있었어. 줄반장은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선생님이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시기위해 생각해 낸 ‘신의 한 수’였던 거야.
다음날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리겠다며 얼룩이 젖소에게서 짠 생우유를 빈 식용유 병에 가득 담아 갖다 드리라고 했어. 좀 보잘것 없는 선물이었지만 마음을 담아 드린 거라서 선생님이 좋아하셨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수줍게 드렸지. 수업이 다 끝나서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선생님이 그 우유를 어떻게 하실까?”하는 조바심이 있어서 지켜보고 있었어. 빈 교실에 남아 있던 선생님은 옆 반 총각 선생님을 불러서 엽차 잔에다가 “이거 귀한 거야”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눠드시는 거야. 순간, “어, 저 우유 끓여 먹어야 하는데”라는 걱정이 들면서도, 기분이 아주 좋아지더라고. “보잘것 없는 선물을 귀하게 여기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신나서 집에 돌아왔단다.
그 전에는 학교 가기 싫어서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곤 했었어. 어느 날은 지각할 것 같아서 학교 가는 중간에 혼자 산에 올라가 도시락을 먹고 놀다가 친구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집에 돌아온 적도 있었단다. 그냥 책가방 메고 학교만 왔다 갔다 했었고 의욕도 없었지. 그런데 줄반장도 되고 선생님의 칭찬과 사랑을 받다보니 학교생활과 공부에 대한 즐거움이 생겨났어. 자꾸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숙제도 하게 되고 성적도 조금씩 올라가게 되었단다.
집에서 키운 강아지나 화초도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훨씬 건강하게 크는 법이란다. 누구나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도,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누구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단다. 사소한 재능이라도 자꾸자꾸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지. 그것을 알아채고 키워주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일 거야. 그래서 삶 속에서 좋은 스승과 멘토를 만나는 것은 좋은 친구와 배우자를 만나는 것과 함께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란다.
사람의 운명을 바꾸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한단다.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게 되면 ‘운이 지질히도 없다’라는 말을 하지. 그러나 모든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단다. 아무 노력 없이 얻는 운의 결과가 불행이 되는 경우가 있고, 또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행운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기도 하지.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나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느냐는 것일 거야. 삶에 존재하는 두 가지 본질 중에 내가 어떤 것을 마음에 담아두느냐에 따라서 행운과 불행이 결정된단다.
모든 선생님이 다 나를 인정해준 것은 아니었을 거야. 또 사람들에게 외롭고 서러운 대우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단다. 그럴때마다 이렇게 생각한단다. “선생님들이 어떻게 모든 아이를 똑같이 대할 수가 있을까?” 또 “어떤 선생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꼭 못난 건아니야.” “임창호 선생님같이 보잘것없는 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신분이 계시잖아.” 그 생각을 마음에 품으니 학교와 선생님을 바라보는 내 생각이 훨씬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단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선생님을 찾아뵙지는 못했단다. 하지만 선생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관심은 늘 내 마음속에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지. 지금도 썩 잘하는 게 없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나를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믿음 때문일 거야. 그 긍정적인 믿음을 품게 되면 힘든 일과 도전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단다. 지금도 “나는 선생님이 임명한 줄반장이야!”라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단다.
글 윤성민 박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