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4) 기다림을 연습하기

시골에는 오일장이라는 게 있었단다. 5일마다 한 번씩 읍내에서 열리는 큰 시장이었지. 그날이 되면 읍내 공터에 촌부들이 우시장을 열고, 각 마을에 사는 시골아낙네들이 밭과 논에서 채취한 각종 농산물을 한아름 들고 와서 노상 좌판을 열었지.


엄마가 오일장에 가는 날이면 나도 종종 따라가곤 했어. 큰 보따리에 고추, 오이, 호박, 가지, 산나물을 바리바리 담아서 아랫마을 주막집 앞 버스정거장까지 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거든. 산과 들에서 놀기를 좋아했던 내가 장에 따라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단다. 바로, 점심때가 되면 읍내 동원 반점에서 자장면이나 우동을 먹을 수가 있었던 거야.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중국집이 없었기 때문에 읍내에 나가야만 먹을 수가 있는 음식이었어.

시장에 나가 좌판을 벌여놓고 가져온 농산물을 파는 데 여기저기서 온 아낙네들이 물건을 서로 팔고 있어서 경쟁이 무척 심했어. 시간이 왜 그렇게 느리게 가는지…. 그때는 한 시간이 꼭 열 시간처럼 느껴졌단다. 책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이 길바닥에 그냥 앉아서 기다리는 거지. 종종 물건을 사시라고 호객행위를 하곤 했지만, 손님이 늘 오는 게 아니어서 마냥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단다. 아니면 땅바닥에 막대기로 그림을 그리거나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곤 했지.

하루는 심심해서 엄마에게 말도 없이 시장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하러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린 적도 있었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길을 잃었더니 정신이 하얗게 되어서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 불안하거나 공포감이 생기면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어서 머리가 꽉 막혀버리지. 그래서 시장을 몇 바퀴를 돌아도 엄마를 찾을 수가 없었던 거야. 마음을 진정하고 천천히 찾아보면 금방 엄마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아주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침착함을 보이기란 쉽지 않았어. 한참을 울면서 엄마를 찾고 있는데, 저 앞에서 엄마가 뭘 사고 있더라고. 아마 나를 잃어버렸는지 모르시는 것 같았어. 다행히 엄마를 찾았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미아 신세가 될 뻔했던 거야.

오랜 기다림끝에 점심때가 되면 허기진 끼니를 때워야 하니까 옆집 아낙네에게 펼쳐놓은 물건을 맡아달라고 하고는 중국집에 갔지. 시장 안쪽에 있던 동원 반점은 아주 작은 규모의 중국집이었는데, 노랑 노랑한 면발에 구수한 국물의 우동과 후각을 자극하는 자장면이 유명했었어. 중국집에 도착하기 수십 미터 전부터 맛있는 자장면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데, 아침을 제대로 못 먹고 온 터라 뱃속은 벌써 꼬르륵꼬르륵 전쟁이 일어났단다.

중국집에 가면 주로 우동이나 자장면을 먹곤 했어. 아침 내내 물건을 팔았지만, 돈이 별로 없으셨는지, 아니면 집에 두고 온 동생들 생각이나셨는지 엄마는 늘 한 그릇만 시키셨어. 유명한 그룹 지오디(GOD)의 노래, ‘어머님께’에 이런 가사가 있단다.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룹 멤버들의 경험을 노래로 만든 거래. 그중에 박준형이라는 멤버의 실화 이야기인데 원래는 자장면이 아니라 잡채였다고 하더라. 잡채라고 하면 이상하니까 자장면이라고 바꾼 거라고 하더라고. 그분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랐었나 봐.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서 누가 잡채를 가져오면 드시지 않고 꼭 가져오셨던 거야 있는 아들 준다고.


엄마들은 다 그런가 봐. 자식 생각하면서 배고프고 먹고 싶은데도 자장면이 싫다고 하고. 자식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는 마음일 거야. 그런 엄마 덕분에 자장면 한 그릇을 혼자서 거의 다 먹어치웠으니, 참 철이 없어도 많이 없었지. 지금이야 자장면이 귀하지가 않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먹을 게 없었는지. 그때 먹은 자장면 맛을 늘 기억하고 있단다. 너무 맛있었거든. 지금은 아무리 자장면을 먹어도 그 맛이 나지가 않아. 뭐든지 풍족하면 그 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지. 없을 때, 아주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이 있었겠지. 그래서 결핍도 가끔 필요하단다. 너무 많으면 귀한 줄 모르고 맛있는 줄 모르거든. 항상 넘쳐나고 늘 맛을 보니까 그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거야. 그때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시장에와서 자장면을 먹을 수가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먹어보는 자장면이 그렇게 맛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가져온 물건은 밤 9시가 다 돼서야 다 팔 수가 있었단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아침 첫차를 타고 집에 9시 30분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거지. 이제 물건을 다 판 돈으로 시장에서 고등어 두 마리, 닭발 한 자루, 돼지고기 두 근과 돼지비계 몇 덩어리, 뻥튀기 세 봉지, 가족들 줄 양말 몇 켤레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단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즐거운지. 보따리 속에 들어있는 뻥튀기와 고등어를 먹을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집에 돌아오곤 했었지.

가끔은 엄마가 혼자 시장에 가시곤 했단다. 그러면 물건을 커다란 자전거에 싣고는 아랫마을 버스정거장까지 배달했지.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한참 놀다가 저녁 대 여섯시가 되면 버스정거장에 엄마 마중을 나간단다. 물건을 다 팔고 시장에서 사 오신 식료품과 공산품들을 다시 싣고 가야 하거든.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대체 몇 시에 돌아오실지 모른다는 거야. 전화기가 있던 시절이 아니니까 무조건 일찍 나가서 기다려야 했어.


포장이 되지 않은 신작로에 노랑색 서령버스 한 대가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오면 얼른 나가서 둘러보지. 엄마는 그 버스 안에 안 계셨어. 차가 한 시간에 한 대밖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또 한 시간을 그냥 기다려야 했단다. 버스정거장 앞에 조그만 냇가가 있었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가 송사리나 가재를 잡으며 놀곤 했지. 돌멩이를 주어서 물에 던져 튀기는 놀이도 하고, 다리 난간에 올라가서 아슬아슬하게 저 끝까지 걷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또 버스 한 대가 멀리서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단다. 그럼 엄마가 왔나 싶어서 얼른 정거장에 나가보지만, 그 차에도 안 계신 거야. 한참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덧 밤 10시가 금세 넘어간단다. 대개 엄마는 막차를 타고 오셨어. 그래도 엄마의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또 물건을 빨리 팔았으면 일찍 오실 수도 있어서 일찍 나가서 몇 시간씩 기다릴 수 밖에 없었지.


시장에 다녀온 엄마를 만나서 보따리를 자전거 뒤에 싣고 돌아오는 길은 아주 희망에 차 있었단다. 우리 집 똥개 누렁이를 데리고 간 날, 엄마와 나, 그리고 누렁이는 하얀 달빛을 뒤로하고 집을 향해 걷고 있었어. 버스정거장에서 한 삽 십 분쯤 걸으면 멀리 우리 집이 보인단다. 집이라고는 달랑 네 채밖에 되지 않는 산골 마을, 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플래시 (휴대용전등기)를 켜고 길을 찾아 집에 도착했지. 오랜 기다림 속에 엄마의 보따리를 열어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단다. 흔히 먹을수 없는 시장에서 사 온 과자가 그 안에 들어있었거든. 5일을 기다려서 먹을 수 있는 과자여서 그런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간식거리였단다.


4학년 때가 되어서 드디어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어. 그동안 호롱불에 의지해서 살았는데 마을 전체가 완전 다른 세상이 된 거지. 아버지는 며칠 후 다리가 네 개 달리고 미닫이문이 있는 텔레비젼을 사오셨어. 일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텔레비전을 틀자 뽀빠이 이상용과 백설희가 진행하는 ‘모이자 노래하자’라는 프로그램이 나오는 거야. 텔레비전으로 처음 본 프로그램이었지. 산과 들에서만 놀다가 텔레비전이 생기니까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매일 텔레비전만 보기 시작했는데, 엄마가 전압변환기를 감춰버려서 평상시에는 잘 볼 수가 없었지. 일주일 내내 기다렸다가 주말에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는데, 매우 토요일 밤에 볼 수 있는 토요명화와 일요일 밤에 방영되는 명화극장을 제일 좋아했어. 토요일 밤이 되면 졸린 눈을 비비고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리지.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황야의 무법자’라는 영화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총잡이들의 멋진 영웅담에 흠뻑 빠지곤 했지.


지금은 세상이 매우 빨라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 거야. 어디를 가든 편리하게 자가용을 이용하면 되고, 버스, 지하철도 금방금방 오잖아. 인터넷으로 보고 싶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골라서 볼 수 있고, 케이블을 켜면 수백 개의 채널에서 프로그램이 방영되지. 너무 빠른 것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햄버거집이나 식당에 가서 음식이 조금 늦게 나오면 바로 불평을 하고, 차가 조금 막히거나, 지하철이 제시간에 안 오면 안절부절못하고 화를 내곤 한단다. 조금 기다리다 보면 음식이 나올 것이고, 빨리 가거나 느리게 가거나 결국 종착지는 똑같은데도 말이야.


중요한 것은 빨리 먹고, 가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야. 오래 기다렸다 음식을 먹으면 더 맛이 있고, 천천히 걷다 보면 길에 있는 꽃 하나, 나뭇가지 위의 새 소리, 골짜기에 드리운 안개, 그리고 파란 하늘 위에 놓인 구름도 보이기 시작한단다. 기다림은 불편함이 아니라 기회이자 축복일 수 있단다.


글 윤성민 박사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