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선분

바이올리니스트 정선분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산다. 뉴욕 클래시컬 유스오케스트라 뉴저지 디렉터로 70여 명의 유스 단원을 지도하고, Jersey City Philharmonic Orchestra 오퍼레이션 디렉터, Cresskill High School Summer Music Program, Harrington Park School Enrichment Program 강사와 클로스터 Sun Violin Studio를 운영하며 수많은 제자를 키우고 있다. 또한 연주가로서 솔로, 앙상블 활동도 활발하게 해내고 있다.

그뿐이랴, 바쁜 와중에도 방송까지,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무엇이든 척척 해내고 있다. 그녀의 뜨거운 삶의 열정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두 아이의 엄마와 아내로 프로페셔널 뮤지션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 정선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최고를 만들어 내는 멋진 그녀를 만나 좀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오므로 때를 소중히 여긴다는 말은 딱 맞는 말임에 틀림이 없어요.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잡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노력하는 시간들은 평생해 온 일과는 다른 기쁨을 안겨주기 때문이죠."


20대 마지막 해에 선택한 모험
“20대 후반 어느 날, 연주, 집, 레슨 또 레슨…… 쳇바퀴 같던 제 삶에 변화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가족을 설득하여 미국 이민을 결정했죠.” 부모님과 친구들, 안정된 직장, 제자들, 정든 집과의 이별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다면 이 정도의 희생은 감내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정선분은 미국으로 오게 된다.

9월 학기에 시작되는 학제에 맞추어 남편과 딸을 먼저 보낸 후 아들과 남아 주변 정리를 하던 그녀는 미국에서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미국 입국과 동시에 그녀를 기다린 건 유학생도, 음악가도 아닌 가정 주부로서의 평범한 삶이었다고 한다. 보호자 없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교하거나 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 것이 허용이 안 되는 미국에서 자녀에게 얽매여 ‘꼼짝마’ 생활에 바로 적응을 해야만 했었다고. 이민을 오기 전,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5년 동안 연간 103회의 전국 순회 공연을 소화하며 숨돌릴 틈 없이 지냈던 그녀에게는, 당시의 평범한 주부의 삶이 오히려 새로운 도전이자 새로운 세계였을 것이다.


잊혀졌던 나의 꿈 다시 찾기,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

하지만 미국에 와서 갑자기 많은 시간이 주어진 그녀. ‘내가 이러려고 미국에 왔나?‘하는 회의감과 혼돈 속에서 연주가로서의 정체성마저 잃을 정도가 되었단다. 하지만 먼저 유학 온 학교 동기와 선후배의 위로와 격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영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콜럼비아 대학 ALP 프로그램을 적극 추천했던 친구, 바이올린을 그만두면 안 된다고 격려해주었던 선배, 항상 함께 연주하자며 연락해 주고 오디션 준비를 위한 정보를 알려주었던 후배들은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만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들은 제가 미국에서 음악인으로 첫발을 내디딜 수있게 도와준 은인들이죠.”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가자 은인들의 조언대로 다시 바이올린 연습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육아와 가사노동은 물론이고 늦은 밤까지 해야만 했던 토플 공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새로운 꿈을 향한 그녀의 의지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마침내 학교로, 첫 꿈을 이루다
드디어 2년 동안의 고된 입시 준비 끝에 매네스 음대의 전문 연주자 과정에 입학하게 되어 미국에서의 첫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입학의 기쁨도 잠시, 학교의 재정지원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마련을 위해 한 해를 보내야만 했다고 한다. 남은 일 년마저도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마는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자, 지도 교수님이신 Ann Setzer 선생님이 엄격한 지도를 하기 시작하셨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봐도 가족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겨 내지 못할 일이었다. “두 달 가까이 되는 여름 음악캠프인 Meadow Mount School of Music의 참가를 허락해 준 남편 덕분에 매일 5시간 이상의 개인 연습과 티칭 조교를 하면서 수련의 시간을 보냈는데, 천우신조로 한미 장학재단의 장학금 수혜자로 선발되어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가족, 지도교수, 그녀 자신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시카고 심포니 악장인 Robert Chen과의 Master Class에 참가하는 기회도 얻고 좋은 성적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매주 금요일은 어느새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매년 3회 이상의 정기연주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대견하고, 이렇게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지요."


음악 동료와 이룬 꿈, 유스 오케스트라
음악가로서의 꿈이 같은, 어린 학생들과의 학교생활은 그녀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주었다. 그들의 참신한 음악적 해석은 큰 자극제가 되었고, 미래에 함께 해야 할 일을 설계하는 일은 행복했다고 한다. 결국졸업 후에 하나 둘씩 각자의 꿈을 이루어 갔다. 2012년 봄 뉴욕 유스 오케스트라 창단을 시작으로 그해 여름, 뉴저지에서도 12명의 아이들로 유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마땅한 연습장소가 없어 어학원과 교회를 옮겨 다니며 유랑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학생들의 실력은 꾸준히 늘어 2013년에 포트리 오피스를 마련하고 정착하게 되었다. 주변분들의 도움과 사랑,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지도로 많은 연주기회를 갖게 되고 카네기홀에서의 공연을 기점으로 뉴욕, 뉴저지 단원이 70명이 넘는 2관 편성의 유스 오케스트라로 성장하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매주 금요일은 어느새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매년 3회 이상의 정기연주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대견하고, 이렇게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지요.”

라디오 방송 진행자로의 외도
“‘기회는 우연히 찾아오므로 때를 소중히 여긴다.’라는 말은 딱 맞는 말임에 틀림이 없어요.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잡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노력하는 시간들은 평생 해 온 일과는 다른 기쁨을 안겨주기 때문이죠.” 방송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매네스 동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같이 진행할 수 있는 코너가 있으면 연락달라고 한마디 툭 던진 적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개편에 맞춰 클래식과 관련된 방송을 계획하고 있다며 일주일에 한 번 방송을 부탁한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라디오를 들으며 DJ가 되는 꿈을 꿔 보기는 했지만,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결과는 좋았다. 클래식의 저변확대와 쉽고 재미있는 클래식 음악 해설을 컨셉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방송된 ‘정선분의 클래식 따라잡기’는 6개월간 청취자의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의 메이저 무대에 서다.
메네스 졸업 후 타운 라이브러리 초청으로 피아니스트 John Gavalchin과 함께한 조인트 리사이틀은 매번 앉을 자리도 없을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지인들과 결성한 Trio Be도 관객들의 사랑으로 순회 연주를 이어갔다. 더 좋은 무대, 잘 준비된 연주를 목표로 기획한 2015년 9월 링컨센터 Bruno Walter Auditorium 독주회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2016년 7월 6일, 연주자에겐 꿈의 무대로 불리우는 카네기
Weill Hall 독주회를 만석에 가까운 관객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무척 떨리는 무대였지만, 음악을 즐기며 연주했던 무대였다고 그녀는 기억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딸의 연주하는 모습을 가장 보고싶어 하시는, 제 인생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신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남네요.” 하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위해 2017년 여름, ‘Four Souvenirs in NY’ 란 주제로 카네기홀 독주회 때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Evan Solomon와 음악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시 새로운 꿈, 미래를 향하여
지난 2016년 5월 17일, Jersey City Philharmonic Orchestra 는 금난새 지휘자를 초청하여 창단 연주회를 가졌다. Jersey city는 뉴저지의 큰 도시 중 하나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진 곳이나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그런 도시에 오케스트라를 창단함으로써 한인의 저력을 보여주었으니 같은 한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Jersey City Philharmonic Orchestra오페레이션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매사에 열정적인 그녀는 2017년 Spring Concert 를 시작으로 시민과 함께 성장하는 오케스트라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또한 2017년 2월에 예정된 하와이대 초청 연주와 서울 연주를 위해 그녀는 오늘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두 자녀와 제자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는 엄마이자 선배, 성실한 아내, 최고의 연주를 선사하는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녀의 끊임없는 행진에 S·CASA가힘찬 응원을 보낸다.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