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음악인이 들려주는 생활 속 음악이야기 과거의 나 돌아보기

전문 음악인이 들려주는 생활 속 음악이야기 과거의 나 돌아보기

한없이 놀고 싶었던 초등학교 6학년, 뮤직 컴페티션에 참가하기 위해 방안에서 연습만 했던 쉼 없는 준비과정과 본선에서 마신 고배는 어린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연습했던 나의 노력이 부족해 쓸쓸한 패배자로 끝나버린 이 허무한 게임이 싫었던 나는 다시는 컴페티션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10년이 지난 후, 제2회 서울 국제 음악 콩쿠르 실황을 라디오로 들으면서 나의 성급했던 결정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만약 그때 좋은 성적으로 입상했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결과에 상관없이 꾸준히 도전했더라면 나도 지금 권위 있는 국제 컴페티션에 참가해서 저들과 나란히 실력을 겨루고 있지 않았을까? 라며 나와는 다른 연주자들의 모습에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었다.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컴페티션은 아직도 내게 상처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마음속에 남아 있지만, 퀸 엘리자베스 컴페티션을 보면서 젊은 음악인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노력의 결실에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음악인으로 성장한 나를 발견한 값진 경험을 했다.



퀸 엘리자베스 컴페티션

지난 5월 8일부터 한 달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던 퀸 엘리자베스컴페티션은 벨기에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인 유진 이자이(Eugene Ysaye) 생전에 국제 컴페티션을 만들고 싶었던 그의 뜻을 기려 1937년이자이 컴페티션으로 개최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 후 벨기에 왕비의 이름으로 컴페티션 명칭이 변경되었다. 올해는 첼로 부문이 새로 신설되어 1회 대회 우승자를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한다는것에 많은 음악인들과 애호가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보통 2주간 진행되는 여느 국제 대회와는 달리 대회 기간이 한 달인 이유는 12명의 최종 결선자가 발표된 뒤 공개하는 신작의 준비 때문이다. 일주일간 최종 결선자들은 Chapelle Musicale Reine Elizabeth에서 외부와 접촉을 하지 못하는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출판된 적이 없는 곡을 준비하고 최종 결선에서 연주한다.


2015년 바이올린 부문 때처럼 이번에도 한국인 우승자가 또 나오지 않겠냐는 기대감과 7주간 Meadowmount School of Music 동고동락했던 4명의 연주자가 본선에 진출해 경합을 벌여 다른 때보다 필자는 더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다. 쟁쟁한 실력 참가자들의 대결이니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살벌함과 심사 결과에 의해 참가자에서 관람객으로 입장이 바뀌는 냉정함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약육강식 그 자체였다.



감동의 무대

음악 캠프 동기생들인 Sihao He와 Brannon Cho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의 연주를 최종 결선 무대에서 보여줬다. 혼신을 다하는 연주에 땀을 비오듯이 쏟고 그 땀방울이 악기와 지판에 묻어 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고 관객들도 연주가 끝난후 환호했다. 흘린 땀은 단순한 땀이 아니라 2년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본선제 1라운드에서 끝내야 했던 그들이 정신적인 고통과 심적인 압박감을 이겨내고 재도전에 성공한 노력의 결실임을 나는 느낄수 있었다. 함께 지켜보던 아들도 “엄마 어떻게 심사할수 있어? 둘다 너무 잘해. 누가 심사위원이야? 이건 심사위원에게 고문이야!” 라며 나와 생각을 같이했다.



열정어린 지도

Northwestern 대학교에서 Sihao He와 Brannon Cho를 finalist로 키워낸 명 교수 Hans Jensen은 컴피티션 기간 내내 제자들과 함께 했다고 한다. 여름 음악캠프에 지도했던 학생까지 5명을 본선에 진출시킨 Jensen 교수는 학생들 간의 무한 경쟁을 유도하여 단시간에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학기 중에도 제자를 위해서라면 식사를 거르는 것은 물론이고 잠도 주무시지않고 레슨을 하셔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들었다. 이런 열정 어린 지도로 2년 전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연주했던 제자들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훌륭하게 키워낸 Jensen 교수는 지도 선생으로서 최종 결선 무대를 지켜보는 것이 가장 보람되고 가슴 벅찬순간이었을 것이다. 또, SNS에 컴피티션 기간 동안 함께해준 지도교수에게 감사함을 표시하는 제자의 글 속에서 스승을 향한 존경심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부모의 헌신

컴피티션에 출전하는 아들에게 좋은 악기를 사주기 위해 부모님이 집을 팔아 마련한 자신의 악기를 소개하는 Brannon Cho의 영상을 보면서 딸의 악기 구입을 위해 작은 집으로 옮기셨던 부모님 생각에 한 번 더 눈시울을 붉혔다. 악기를 바꿔줄 때마다 실력이 늘었다고 이야기하시며 가장 중요한 고3 때 형편이 어려워 악기를 바꿔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마음의 짐이 시라며 말씀하시는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가진 것을 다 털어서라도 후원하는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과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음악 세계에서 부족함 없이 공부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컴페티션의 교훈

1등만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사회적 통념에 의한 나의 낡은 사고방식이 깨진 것은 시상식 때였다. 최종 결선자 12명 모두는 입상 결과에 상관없이 심사위원들과 관객들에게 축하를 받고 환한 웃음으로 인사하며 시상식을 축제로 이끌어 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1, 2 등수를 잊고 ‘그동안 수고 많았어, 축하해’라는 박수를 쳐본 게 처음이었던 거 같다. Sihao He는 등수에 들지는 않았지만 4000유로의 상금과 ’Toshio Hosokawa 작곡의 ‘Sublimation’ 을 세계초연을 하는 연주자로 기록되었고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가실황 CD에 수록되고, Laureates’ Concert 참가하는 기회도 가졌다.


Brannon Cho는 6등과 브뤼셀 시티상을 수상하고 8000유로의 상금과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작품 119가 실황 CD에 수록되고, Laureates’ Concert에서 연주했다. 시대를 함께하는 음악인의 마음, 학생을 지도하는 스승의 자세,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헌신, 심사하는 심사위원의 고충까지 깨닫게 해주었던 2017 퀸 엘리자베스 컴피티션에서 얻은 감동과 교훈은 내 가슴속에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글 정선분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