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rd Street library

맨해튼 5번가와 6번가 사이 53번 스트리트에는 모던 아트의 성지인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있다. ‘교과서에서 보던 그림’을 직접 볼 수 있는 모마는 파리의 루브르,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과 함께 평생 한 번은 방문해보고 싶은 미술관으로 꼽힌다.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모마 바로 맞은 편에, 뉴욕공공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의 분관 중 하나인 ‘53번 스트리트 라이브러리(53rd Street Library)’가 지난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 도서관에는 ‘Adult Librarian’이란 직함을 가진 친근한 외모의 한인 사서 이초롱 씨가 근무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구 도서관학과)를 나와 유학생으로 미국에 온 이초롱 씨는 뭐든 두드려보는 열정적인 남편을 만나미국에 정착하고, 작은 시골 도서관을 거쳐 맨해튼 심장부의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에스카사는 뉴욕 도서관을 찾아가 이초롱 씨를 통해 새로운 변신을 마친 53번 스트리트 라이브러리 공립도서관이 표방하는 ‘미래의 도서관’ 얘기와 함께 두 부부(이초롱-문인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53번 스트리트 라이브러리
53 스트리트 라이브러리는 뉴욕공공도서관 분관으로 2016년 6월 27일 문을 열었다. 1955년 문을 열어 2008년까지 운영되었던 도넬(Donnell) 도서관이 8년 동안 2300만 달러의 공사비를 들여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했다. 도넬 도서관은 많은 양의 장서를 자랑했고, 특히 뉴욕도서관 중에서 비영어권 도서가 가장 많은 지점으로 유명했다.

5층 빌딩이었던 도넬 도서관 건물은 2008년 개발업체에 팔려 지금은 50층 건물인 바카라 호텔이 되었다. 처음 목표는 3년 안에 다시 개장하는 것이었지만 금융 위기 이후 계속 개발이 늦춰지다가 지난해에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저명한 건축회사인 TEN Arquitectos가 디자인을 맡아 첨단의 내, 외관 시설을 자랑한다. 46대의 랩탑을 포함한 68대의 컴퓨터가 제공되고 커뮤니티 미팅 룸은 12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주소: 18 West 53rd Street (212) 714-8400
출처:
https://www.nypl.org/about/locations/53rd-street



“밖에서 언뜻 보니 도서관 같지가 않네요. 들어와 보니 더욱 도서관같지가 않습니다.” 기자가 처음 한 말이다.

도서관 이용자들 대부분 그렇게 말씀 하세요. 처음엔 여기가 도서관 인 줄 몰랐다고요. 흔히 생각하는 도서관의 분위기와 무척 다르니까요. 일단 정숙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잖아요. 이용자들의 대부분은 긍정적인 의미의 놀라움을 표현해요. 그래서 한번 와 보면 먼 곳에 사시는 분들도 계속 찾아 오시죠.



이곳은 뉴욕 공공 도서관임을 나타내는 특유의 붉은 색 깃발이 없다. 1945년 이전 지어진 이른바 프리워(pre-war) 빌딩들이 즐비한 뉴욕시에서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이 고색창연한 벽돌 건물에 위치한 것과 달리, 전체 외관이 유리로 되어 있는 이곳은 무심코 보면 이 부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급 리테일 상점이나 모마와 관련된 서점으로 보이기 쉽다. 천정까지 이어진 책장 대신 그림들로 장식된 긴 갤러리를 지나면 목조로 된 계단을 통해 지하층으로 연결된다. 폭이 넓은 이 계단은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기능적 목적 외에 이용자들이 앉아서 책을 보거나 쉴 수 있고, 영화가 상영되는 대형 스크린이 마주하고 있어 극장의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더구나 계단에 앉은 이용자들은 비스듬히 누워있거나 심지어 아예 런치까지 먹고 있다니! 잠깐 둘러보았지만, 확실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서관과는 다른 공간이다. 건축상도 받은 건물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TEN Arquitectos이라는 유명한 멕시코 건축 설계 회사의 작품입니다. 도서관은 3개의 층으로 이루어지는데, 각 층이 단층 적으로 나눠 있지 않고 1층부터 지하 2층까지 오픈된 형태로 이어져 있어서 탁 트인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입구 층은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그것을 통해 아래층이 내려다보여요 "어, 나도 저기 들어가서 함께 어울리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구조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공공도서관에 비해 이곳은 특히 ‘쉴 수 있다’,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라는 것이 큰 장점이에요. 맨해튼은 어딜 가나 너무 사람들이 많고 특히 뉴욕현대미술관이 있는 이 부근은 언제나 인파로 넘쳐나죠. 그럴 때 우리 도서관에 들어오시면 밖에서 느끼고 있던 피곤함과 치열함이 다 사라지게 되실 거에요.


이 도서관의 사서 이초롱씨는 문헌정보학 전공으로 한국에서 대학을, 미국에서 대학원 석사를 받았다. 영어가 완벽한 2세도, 1.5세도 아닌 ‘순수한’ 유학생 이씨가 미국의 도서관 시스템중에서도 가장 크고 명망 있는 뉴욕 공공 도서관에 채용된 것은 분명 행운과 노력이 어울린 결과다. 여기에 남편 문인규 씨의 엄청난 조력(?)이 있었다. 이초롱-문인규 부부의 연애사를 잠시 들어봤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다가, 보스턴 시몬스 대학(Simmons College)으로 유학을 왔어요. 공부를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가 공무원이 되는 소박한 꿈을 꾸었죠. 실제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국회도서관과 대학원을 오가며 평범하게 살았어요. 그런데 조금 평범하지 않은, 꿈많고 진취적인 남편을 만나 인생의 방향을 틀어 다시 미국으로 왔습니다. 우연히 남편을 만나게 된 통로는 페이스북이에요. 페북으로 온 메시지가 시작이었죠. 

남편은 당시 다른 주에서 보스턴으로 박사 과정을 와서 학교 관계망에 한인으로 보이는 제 이름을 찾아내서 연락했대요. 하지만 전 이미 한국에 있는데 말이죠! 제 답신은 ‘미안하지만 난 한국에 있다. 그래도 학교 근처 맛집이나 가볼 만한 곳은 알려줄 수 있으니 필요하면 연락하라’ 고 했지요. 남편은 저보다 7살 연상이라 처음엔 나이차때문에 대화도 안통할 것 같았지요. (웃음) 그런데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저희는 점점 가까워졌어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로 말이죠. 페이스북 친구가 된 지 몇 달 만에 남편은 오로지 저를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와서 꼬박 일주일을 데이트하고, 그해 8월 우리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시몬스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한 이초롱의 남편 문인규씨. 연애만큼이나 자신의 영역에서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그도 역시 유학생 신분으로 시작해서 여러 사회복지 기관에 도전해 뜻을 이룬사람이다. 초롱 씨가 가진 잠재력을 알아보고, 때로는 서운할 정도로 호되게 아내를 내몰았다. 그런 남편 덕에 아내 초롱씨가 지금의 자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스턴 외곽의 작은 타운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미국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마치자 남편이 저만 두고 교환 학생 자격으로 한국으로 가버렸어요. ‘6개월 동안 다녀올 테니 도서관 자원봉사(발런티어)라도 하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요. 용기가 없었던 저는, 두 달을 버티다가 결국 타운의 작은 도서관 인터뷰를 하고, 파트타임 자리를 얻게 되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을 어필하며 정규직 인터뷰도 통과하게 됐죠. 그런데 기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남편이 두 번째로 저를 떠났습니다. 

이번엔 뉴욕으로요. 저는 이대로 남을 것인가, 남편을 따라갈 것인가 갈등하다가 결국, 우스터의 도서관에서 일하는 틈틈이 뉴욕 뉴저지 퀸즈 어디든 도서관에 전화를 걸었어요. 전화 인터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곳은 압박 면접으로 제가 현재 하는 프로그램을 공격적으로 물어본 곳도 있었어요. 마침내 지금 제가 일하는 53번 스트리트 라이브러리(53rd Street Library)에서 오퍼를 받게 됐고, 저는 정식 사서로서 직업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저희 부부를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초롱이는, 남편이 이야기하는 대로 어느샌가 다 하고 있어..”라고요. 2015년 뉴욕으로 잠시 여행을 왔을 때, 남편이 42가에 있는 뉴욕 공공 도서관 본관 사자상 앞에 저를 세우더니 한 말을 또렷이 기억해요. “너의 미래의 직장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자.” 남편 말대로 그로부터 일 년 뒤 2016년 5월 저는 뉴욕 공공 도서관 '53번 스트리트 라이브러리'의 정규직 사서가 되었습니다.


초롱 씨가 도서관에서 하는 일, 일과는 어떤 거죠?
출근하면 일반 도서관과 같이 오픈 준비를 합니다. 다른 도서관 이용자들이 요청한 도서리스트를 보고 책을 찾거나 우리 도서관 이용자들이 주문한 책들이 다른 도서관에서 배달되면 정리를 하기도 하죠. 그리고 도서관이 문을 열면 주로 4곳의 인포메이션 서비스 장소 (Circulation desk) 를 순회하며 대출업무와 레퍼런스(Reference) 업무를 합니다. 한국말로는 참고 봉사서비스라고 하는데 이용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주는 것으로 아주 다양한 범주를 다룹니다. 일반적으로 하는 일과 외에, 특별 프로그램이 있는 날에는 그 프로그램 진행을 맡습니다. 

저는 어덜트 라이브러리안(Adult Librarian) 이어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매주 진행하는 고정 프로그램으로는 컬러링 프로그램(Coloring Program)이 있어요. 시리즈로 기획하거나 일회성 프로그램들도 있는데 평균 한 달에 서너 개씩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연, 예술 프로그램도 포함이죠. 그리고 저는 아동 도서 담당자들과 같이 일을 할 기회가 종종 있는데 제가 한국 사람이어서 담당자가 스토리텔링 시간에 한국 노래를 불러달라든지 한국 책을 읽어달라든지 해서 가끔 같이 진행을 합니다.



한인 라이브러리안으로서 한인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제가 처음 일했던 보스턴의 도서관은 한국인 이용자들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 관련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 해도 수요가 없고 도서관에서도 관심이 없어 아쉬웠죠. 하지만 뉴욕에서는 도서관 이용 한인들도 많고 외국인들도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매니저와 동료들도 다인종을 위한 프로그램 기획과 실행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뉴욕에 있는 한인 작가분들 그리고 각종 공연 예술 활동을 하는 분들과 협업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입니다. 이미 한국 동화책 만드시는 작가분과 프로그램을 진행했고요. 10월에도 한국 전통 음악과 악기를 소개하는 강의와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요.


53번 스트리트 라이브러리(53rd Street Library)는 점점 변화할 미래의 도서관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라이브러리안이 직업인 초롱 씨가 생각하는 미래의 도서관은 어떤 거죠?
도서관이 책을 읽는 공간만이 아닌 커뮤니티 센터로서 그리고 복합 문화 공간의 역할을 더 많이 하게 될 겁니다. 그동안 도서관 하면 떠올렸던 이미지 즉 정숙한 분위기와 많은 장서가 아닌 누구나 와서 쉬고, 대화하고, 정보와 오락을 얻는 장소로서 기능하게 되겠죠. 다인종 사회인 뉴욕은 이미 지역의 도서관이 이민자를 위한 교육과 정보의 제공 장소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고 그 기능은 계속 확대될 것입니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고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집니다. 특히 디지털화의 속도는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죠. 도서관은 그 시대에 발맞추어야 하고 한발 더 나아가야 지속적인 존재 이유를 갖게 되겠죠.


이초롱 씨의 대학 전공인 문헌정보학과의 명칭은 그녀의 교수님들이 공부할 당시에는 도서관학과였다. 책이라는 개념이 변화하는 시대에 책을 다루는 학문을 시작한 셈이다. 20년 전 인터넷으로 책 판매를 한다는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내세운 아마존은 이제 시장 가치가 세계 5위안에 드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자 제프 베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맞먹는 세계 1위 부호가 되었다. 그 와중에 미전역에 수천 개의 매장을 거느렸던 거대 도서 체인점 보더스(Borders)는 블록버스터 비디오, 타임레코드 등의 기업과 함께 '낡은 산업'이 되어 시장에서 사라졌다. 

뉴욕시 어디에나 볼 수 있던 대형 서점 반즈 앤노블(Barns and Nobles) 역시 이젠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뉴욕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의 수와 뉴욕 도서관에 지원되는 기금은 역설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시대지만 사람들은 종이책을 읽는 즐거움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심 속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공공시설로서의 도서관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형 서점들을 몰아냈던 아마존이 거꾸로 뉴욕을 비롯한 대도시에 오프라인 서점을 계속 열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유모차를 끌고 들어와 아이들을 맘대로 놀게 하고, 계단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영화를 볼 수 있는 도서관이 5번가 한복판에 들어선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인 사서의 노력으로 뉴욕의 한인 작가와 예술가들이 새로운 발표의 무대를 얻게된다면 더욱 반가운 일이 될 것이다.


기획 Jennifer Lee 글 Won Young Park, Jenny Lee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