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의 재발견, 배제된 것으로부터 예술을 발견하다 픽셀 작가 박종규

오류의 재발견, 배제된 것으로부터 예술을 발견하다 픽셀 작가 박종규

작가 박종규를 처음 마주한 곳은 2017년 12월 대봉동의 작은 책방 개업식이었다.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공간과는 다르게 그와의 첫 만남은 신선했는데, 소극적이던 많은 작가와 달리 그는 스스로 미술 작가임을 밝히고 가감 없이 자신을 PR했다. 알고 보니 그는 미술은 물론 패션과 인문학까지 강의하는 명성 있는 작가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마침 대구 근교의 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새하얀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귓가에 맴도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내 시선을 집중시켰다.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이 기호화되어 회화와 조각, 미디어아트, 설치 미술 등의 다양한 작품으로 재탄생되었고 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시를 관람하고 일주일 뒤, 에스카사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준 박종규 작가를 만나 그의 예술세계와 예술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인당 미술관에서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이 가던 작품은 소리가 나던 작품이었어요. 평면 작업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작품활동을 하시는데, 먼저 그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작품관에 대해 듣고 싶네요.
저는 다양한 매체로 작품을 선보이는 편인데, 그때 보신 작품은 아이폰으로 풍경을 촬영해서 색깔에 따라 반응하게끔 암호화시킨 2015년 작품이에요. 예를 들어 우리는 경치나 풍경을 보면 ‘산, 하늘, 바다’처럼 각각의 단순한 형태로 인식하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색에 따라 암호가 반응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놔서 자세히 보면 형태와 색이 아닌 암호로 표현되죠.

또 이 작품에서 들리는 소리는 따로 집어넣은 게 아니라 촬영하던 현장의 소리가 들어간 거예요. 귀 기울여보면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소리, 열차 소리 등 여러 소리가 나죠. 이런 다양한 소리가 합해져 마치 잡음처럼 들리는데 이러한 부분이 저의 작업 방향과 맞아서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작품에 쓰인 것처럼 저는 주로 ‘노이즈'를 소재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죠.  

잡음이 예술로 승화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네요. 노이즈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은데, 이러한 작품관을 형성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미니멀리즘적 측면에선 작업 할 때, 선택을 제외한 나머지는 배제시킵니다. 그런데 저는 제거한 부분들, 혹은 오류 같은 것에 오히려 미술적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이런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디지털 이미지 속 노이즈가 떠 올랐죠. 디지털 이미지는 픽셀로 이루어져 있고 픽셀을 파고들면 늘어지는 선이 나타나고 조금 더 파고들면 닷(Dot) 형상들이 나타나죠. 이런 ‘노이즈'를 소재로 작업을 시작했고 영상화시키기도 하며 설치미술로 완성했습니다.

저는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로 작품을 선보이지만 큰 틀은 하나예요. 노이즈라는 하나의 개체가 다채로운 형태로 변형되고 보는 방식에 따라 또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죠. 어떤 작가들은 작업 하나하나가 별도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제가 만든 작품 전체가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의 제목은 없고 전시의 이름만 존재할 뿐이죠.


그렇다면 이런 작품들을 관객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저는 ‘작품이 가지는 자족적 생명력’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즉, ‘작품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작품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진다.’라고 여기죠. 어느 곳에 놓이냐에 따라서 이 작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내 작품에 어떤 의도를 담았기 때문에 그 의도가 누군가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모두 관람객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시가 시작되면 제 작품은 각기 다른 해석을 통해 항상 새롭게 태어나죠. 제 작품을 제가 생각하는 어떠한 한 의미로서 규정짓고 싶지는 않아요.

‘작품이 가지는 자족적 생명력'이라는 독특한 작품관을 형성하신 배경이 있나요?
우리가 진리처럼 생각했던 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뒤바뀔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 역시 엎어지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도 바뀌잖아요. 저는 50년을 넘게 살면서 겪어온 저의 환경과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혼란스러웠어요. ‘과연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진실일까?’,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끝까지 잘못된 것일까?’라고 질문하게 되었죠.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바르다고 생각했던 게 틀리기도, 틀렸다고 생각했던 게 맞기도 했죠. 이처럼 저의 작업 속에서도 배제한 부분과 선택한 부분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는 거죠.

지난 3월, 작가 박종규는 미국 최대 아트페어인 뉴욕의 아모리쇼에서 인터렉티브 미디어 작업을 포함한 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아모리쇼에서 선보인  Embodiment 시리즈와  Encoding 시리즈는 작가가 그간 Encoding시리즈, Maze of Onlookers 시리즈를 통해 다루었던 이미지가 2, 3차원에서 벗어나 4차원의 가상공간 속 비물질로 확대되었고, 순환하며 작품과 관객이 조우하는 3차원의 공간 안에 동시적 현존을 띄는 양상으로 진화했다.

앞으로 열릴 전시와 그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부분이 있을까요?
3월에는 뉴욕 아모리 쇼와 홍콩의 아트바젤에 참가했어요. 오는 4월은 경기도 광주의 영은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있고, 5월은 뉴욕의 신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있어요. 전시는 계속 있었고 앞으로도 쭉 있기 때문에 전시 방향에 대한 생각을 항상 갖고 있죠. 예를 들어 3월에 열렸던 아트바젤과 아모리쇼에서는 Embodiment 계통의 작업을 선보였는데 그중 한 전시는 관객 참여 형태였죠.

주민번호나 개인 아이덴티티 번호로 기하학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번호를 누르면 바로 현장에서 재현되는 방식의 참여 미술이었죠. 이런 작업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문제, 과정에 대한 문제를 보여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텍스타일에 패턴화하여 패션과 접목한 아트 상품을 선물로 건넸다. 자신의 작품집이나 팜플렛이 아닌, 일상 속에서 작가의 작업물을 더 긴밀한 형태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선물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일상 속 소품에 작품을 적용하시는 실행력을 보면 패션에 대해서도 조예가 있으신 것 같아요.
외국에 있을 때 패션업계에서 잠시 일을 했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대학교 패션디자인과에서 3년 정도 강의를 했습니다. 작품활동에 집중할 수 없어 금방 본업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사실 중소기업청의 지원을 받아 패션 회사를 설립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패션과는 나름 긴밀한 관계라고 할 수 있죠.

어떻게 아트 상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사실 기하학적인 그림은 잘 안 팔려요. 그래서 작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요. 기하학은 텍스타일화 하기 쉽잖아요. 꼭 입는 옷뿐만 아니라 홈패션에서도 접목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 형태로 제품화되어 나오면 작가가 더 알려지고 작게나마 돈도 받을 수 있잖아요. 저는 아트상품 시장이 한국에서 더 활성화되기를 꿈꿔요. 뉴욕, 파리, 런던과 같은 대도시에서 다양한 아이템들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콜라보 활동을 지속해서 할 생각이에요.


Embodiment 2017, Video installation LED display hanging from the ceiling


작가님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예술은 일상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코드를 조금씩 바꾸면 모든 곳에 미술이 적용되죠. 특히 ‘예술적 상상력이 과학적 현실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이미 예술이 상상했던 것을 과학은 현실화시켜 입증하고 있어요. 과학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추상성에 대한 문제에 과학이 관심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A.I.는 인간을 닮으려고 노력합니다, ‘아름다운 것'이 뭔지 사람은 알고 있지만, 과학은 아직 그것을 명명할 수 없죠.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에 뛰어났지만 I.T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애플의 최고 경영자 까지 올라갔잖아요. 예술적 상상력이라는게 결국 과학과 연결이된다는 것이죠. 예술은 우리의 일상 속 깊은 곳까지 손을 뻗치고 있으며 언젠가 예술이 모든 것을 주도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박종규는 ‘이제 나를 찾아와주길 바라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말하며, 특히 요즘은 ‘SNS라는 최고의 전시공간이 있지 않냐’며, 50대라는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신선한 대화를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프랑스 출신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는 2차대전 때 다락방에 숨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그러면 화상이나 갤러리스트들이 직접 그곳으로 찾아갔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스스로 자신을 알려야 해요. 그래서 저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큰 무대에 진출하는 실행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국제 아트페어나 대형 전람회에 많이 참여해서 수많은 외국 미술관을 비롯한 메이저급 화랑과 컬렉터들에게 작품을 알린다면 더 큰 세상에서 빛을 볼 기회도 많아질 겁니다. 대구에도 좋은 작가가 참 많은데 이 지역 안에서만 머물러있기 때문에 쉽게 발견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현시대의 작가라면 나를 내보일 수 있는 큰 무대를 찾아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 역시 더 넓은 세상에 저와 제 작품을 알리기 위해 앞으로 부단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글 손시현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