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다 피기 전에도 아름답다” 실력으로 ‘여왕’이 된 발레리나 서희

“꽃은 다 피기 전에도 아름답다” 실력으로 ‘여왕’이 된 발레리나 서희

Hee Seo in Other Dances. Photo: Erin Baiano. (Provided by ABT)

새초롬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며 한 발끝으로 도도하게 서 있는 한국인 줄리엣. 세계 3대 발레단 중 하나인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American Ballet Theatre)의 서희다. 2009년, 군무 무용수(코르 드 발레: Corps de Ballet)로는 이례적으로 대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역을 맡으며 실력을 인정받은 뒤, 2011년, 또 한 번 솔로이스트(Soloist)로는 드물게 ‘여자 무용수의 로망’이라는 ‘지젤’로 발탁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서희는 ABT의 수석 무용수(Principal Dancer)로 뉴욕의 중심에 우뚝 섰다.

그로부터 2018년 현재까지 서희는 “무용수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한 역할도 빼놓지 않고 다 해봤다” 할 만큼 수많은 역할을 소화해내며 세계 정상급 발레리나로서의 위용을 떨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개인적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그간 받고 얻고 이룬것을 세상과 나누고자 ‘서희 재단(Hee Seo Foundation)’을 설립하였다. 제2, 제3의 서희를 꿈꾸는 수 많은 발레 꿈나무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발로 뛰고 있는 그녀를 에스카사 편집부가 만나 보았다.



Hee Seo in Romeo and Juliet. Photo: John Grigaitis. (Provided by ABT)

2018년 4월, 뉴욕에서는 세계 최대 유소년 발레 콩쿠르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YAGP:Youth America Grand Prix)'가 개최된다. 매년 전 세계에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어린(9-19세) 발레인들이 참가하여 경연을 펼치는 꿈의 무대이다. 세계 유수 발레 학교 입학 및 발레단 입단 특전이 주어지는 대회인 까닭에 한국의 발레인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참가를 열망한다. 호주(3개 지역), 프랑스, 브라질, 일본과 미국 내 18개 지역에서만 개최되었던 이 대회의 예선이 2016년부터 ‘YAGP Korea’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열리게 되었다.

아메리칸발레 시어터(ABT)의 수석 무용수 서희가 본인의 이름을 걸고 설립한 재단(‘사단법인 서희’)이 이룬 첫 번째 쾌거였다. 그녀는 당시 “이건 시작 일 뿐”이라며 앞으로 그녀가 해나갈 수많은 일들에 대한 남다른 각오를 보였다. 그 후, 2017 YAGP Korea 개최는 물론, 한국 전역에 걸친 마스터 클래스 투어를 성공리에 마친 뒤, 현재 올 4월 뉴욕 결선을 앞둔 한국 참가자들의 최종 준비를 돕고 있다. 서희가 한국 발레 영재들의 해외 진출을 위해 이토록 애쓰는 이유는 “내가 그렇게 이 자리에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Hee Seo in Le Corsaire. Photo: Rosalie O’Connor. (Provided by ABT)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건 내 몫
어린 시절, 운동 삼아 동네 문화센터에서 발레 수업을 들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 초등학교 6학년 때, 지원한 배드민턴부가 꽉 차서 차선으로 발레부에 들어갔고, 선화예술학교의 발레 콩쿠르에 참가하여 입상하면서 선화예중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그렇게 발레리나가 되는 첫걸음을 떼고 1년 뒤, 워싱턴 DC의 키로 프발레학교(Kirov Academy of Ballet; 전 유니버설발레아카데미) 교장이 선화에 와서 실시한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3년간의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우연한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어 낸 데에는 재능과 더불어 그녀의 당찬 성격도 한몫을 한 듯 보인다.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가서 외롭고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저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발레를 배우는 게 신나고 재밌어서 방학 때 집에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보다는 제가 발레를 늦게 시작한 편이라, 일찍 시작한 다른 애들을 따라가는게 힘들었어요. 오랜 시간에 걸쳐 익혀야 할 것을 단시간에 흡수하려고 하다 보니 겉보기엔 비슷해도 당연히 오래 한 친구들보다 내공이 떨어졌죠. 발레가 벼락치기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니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발레에 빠져 지낸 3년은 결코 무상하지 않았다. 키로프발레학교에서 수학하던 2003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Prix de Lausanne)에서 입상하면서 세계의 발레 학교 어디든지 선택해 가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된다. 같은 해, 뉴욕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 대상 획득으로 미국에서의 생활을 화려하게 마무리하고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발레단(Stuttgart Ballet) 산하 존크랑코발레아카데미(John Cranko Ballet Academy)로 옮긴다.

그곳에서는 학생들을 발레단 공연에 임시 단원으로 투입하여 ‘로미오와 줄리엣’, ‘백조의 호수’ 같은 대작들을 단원들과 함께 공연하도록 해 주었다. 덕분에, 프로 무용수로 발돋움하는 데 필수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공연 무대에서 드러내보일 수 있었다. 그 결과, 1년 만에 슈투트가르트와 ABT스튜디오컴퍼니(ABT Studio Company: ABT의 단원이 되기 전에 훈련을 받는 곳으로16~20세인 12명–남녀 각 6명–의 무용수로 이루어져 있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게 된다.


Hee Seo in La Bayadère. Photo: Rosalie O’Connor. (Provided by ABT)


‘사람의 삶’을 표현할 줄 아는 발레리나
독일과 미국 두 발레 강국의 대표적 발레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을 때 미국 뉴욕을 자신의 활동 무대로 선택한 이유는, “무용수로서의 경력도 중요하지만, 사람으로서의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는 부모님의 조언 덕분이었다. 그때의 결정이 두고두고 흡족한 까닭은, 문화, 예술, 경제,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도시에서 무용수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정말 많은 경험을 쌓고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 삶에서 발레가 가장 우선이긴 하지만, 발레밖에 모르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발레는 무용수로서 제 ‘일’인 만큼 ‘근무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요. 그렇지만, ‘퇴근’ 후에는 ‘발레리나 서희’가 아닌 ‘사람 서희’로서의 삶을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즐기고요. 무용이 아닌 다른 문화 예술도 많이 접하려고 해요.


그녀에게는 이 두 삶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처럼 완전히 분리되어있거나 상반되어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사람’으로서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발레 연기도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으로서의 제 삶이 중요한 건, 살면서 경험하는 것들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 연기를 통해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걸 관객들도 느끼게 하려면 제가 그 감정을 아는 게 중요하기도 하고요. 물론, 모든 경험을 다 할 수는 없으니까 모든 감정을 다 알고 표현할 수도 없겠죠.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으로 죽은 지젤이 죽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그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제가 머리로 알기는 어렵죠. 하지만, 제가 살면서 기본적으로 사랑이 있다는 걸 믿기 때문에 지젤의 감정을 제 나름대로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고, 그 상상력을 바탕으로 저만의 지젤을 연기할 수 있어요.

발레 연기는 수학 공식 같지 않아서 정답이 없다. 같은 무용수가 같은 배역을 연기한다고 해도 그 연기는 매번 다르다. 관객들이 같은 무용수의 작품을 여러 번 보는 이유이고, 발레단에서 좀처럼 공연 실황을 녹화하지 않는 이유이다. 이런 예측불가능함이 발레의 매력이라면, 훌륭한 무용수는 같은 역할이라도 자신만의 색깔로 개성 있게 표현해내는 무용수일 것이다. ABT의 예술감독 케빈 매켄지(Kevin McKenzie)는 “서희의 가장 큰 자산은 역할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하는 통찰력이다.”(2011년 4월 23일 자. 중앙일보. “세계 발레 ‘백조’로 떠오르는 25세의 발레리나 서희”)라고 평하며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였다. 이는 그녀가 사람으로서의 삶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더 나은 연기를 위한 통찰력과 상상력을 키웠기 때문이 아닐까.


Hee Seo in Other Dances. Photo: Erin Baiano. (Provided by ABT)


뉴욕의 ABT, ‘최고’가 되기 위한 ‘최적’의 환경
발레리나 서희는 ‘최고’의 자리에 서 있다. 그녀가 2004년 ABT 스튜디오컴퍼니의 훈련생으로 시작해 2012년 ABT의 수석 무용수가 되기까지 8년이 걸렸다. 6년간 신중히 기초를 다지고 주역이 된 후, 빠르게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모든 스텝을 다 밟아서 그 당시엔 더디다고 느껴졌는데, 지나고 보니 왜 그런 시스템이 있는지 이해가 돼요. 힘들긴 했지만, 제가 무용수로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그 시간 동안에 발레가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발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깨달았으니까요. 작은 역할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함부로 임하고 나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는 걸 알고부터는 늘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공연하게 되었어요.

줄리엣이 되고 솔로이스트가 되었을 때나, 지젤이 되고 수석 무용수가 되었을 때, 그녀가 한없이 기뻤던 것은 이례적인 캐스팅 콜이나 승진 그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같이 일하며 자신을 지켜봐 왔을 뿐만 아니라 발레를 정말 잘 아는 동료들과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축하, 즉 그들의 ‘인정(認定)’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승진은, 외부에서 영입된 무용수가 아니라 ABT에서 성장한 무용수의 승진이었다는 점에서 ABT 단원들에게도 큰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서희의 승진에 대해서는 매번 통보하는 이나 듣는 이나 담담했다. “얹혀주는 건 네 역량으로 해내는 것”이라는 암묵적으로 합의된 원칙이 있는 듯, 그녀는 어떤 배역이든 “알겠습니다”라는 담백한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Hee Seo in Giselle. Photo: Gene Schiavone. (Provided by ABT)


단장님께서 주신다니까 그냥 알겠다고 하고 준비했어요. 이것저것 물어보면 날아갈 것 같기도 했고요. (웃음) 대신 공부를 정말 많이했죠. 책도 찾아 읽고 영화도 보고요. 다른 무용수들이 연기한 비디오를 보면서 그들이 그 역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보고, 또 제가 직접 하면 어떨지를 상상하면서 다시 보기도 하고요.

그녀가 처음으로 주역을 맡아 연기한 열여섯 살 줄리엣은 무용 비평가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뉴욕 타임즈는 그녀를 “ABT의 가장 매혹적인 발레리나”라며 극찬했다. (앞에 인용된 2011년 4월 23일 자 중앙일보 기사) 마흔 살이 넘은 무용수가 은퇴 공연으로 주로 할 만큼 복잡하고 심오한 여인의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지젤을 맡았을 때도 그녀는, 스물네 살이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그녀만의 지젤을 성공적으로 표현해내어 찬사를 받았다.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내용만 보면, 제가 대작의 주역만 연기한 것 같지만, 사실 안 해 본 역할이 없다고 할 정도로 크고 작은 작품들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런 저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보고 발레단에서 지젤을 맡긴 것 같아요. 스물네 살인 제가 표현하는 지젤이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제 연기만이 가지는 아름다움이 있을거라고 믿으면서 무대에 섰어요.

ABT는 정기적인 승급 심사 없이 단원들의 활동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평가하면서 각 무용수의 역량에 맞게 역할을 맡긴다. 더불어, 어떤 역할을 함으로써 소속 무용수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이런 ABT의 시스템은 서희가 성장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되어 주었다. 그녀는 벅차다 싶은 역할이 주어질 때마다 어린 시절 선생님에게서 들었던 말 한마디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키로프발레학교 시절, 발레가 마음처럼 잘되지 않아 슬퍼하던 자신에게 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다 피지 않은 꽃도 아름다운 것이다.” 그녀는 그 말을 되새기며 주어지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냄으로써 믿어준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그 결과, 세계적인 발레단을 대표하는 수석 무용수가 되었다.

그 타이틀은 당연히 무겁고 부담스러웠다. 한번은 그 부담감으로 울면서 선배인 줄리 켄트(Julie Kent)에게 너처럼 오래 하면 괜찮냐고 물었더니, “오래 해도 똑같은데 어떻게 핸들링을 하는지는 배우게 된다”고 했다. 그 말대로 이제는 공연 때마다 부담감이 어느 정도인지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감당하는 법을 배운 그녀의 연기는 무대에서 ‘여왕(姬)’처럼 활짝 피어 빛난다.



발레리나 서희는 발레를 시작한 때부터 ABT 수석 무용수가 되기까지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후원해 준 모든 손길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이제는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한국의 발레 꿈나무들에게 돌려주고자 열심히 뛰고 있다. 그녀가 후원금을 모아 설립한‘서희 재단’은 발레 학도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비롯하여 외국 발레단 오디션 개최, 콩쿠르 입상자의 해외 발레단 입단 지원, 유명 발레 무용수의 마스터 클래스 개최 등 세계 수준의 무용수를 발굴하고 양성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계획, 추진하고 있다. YAGP의 보드 멤버인 그녀가 YAGP 예선의 한국 유치를 이루어 낸 것도 그 결실 중 하나이다. 그녀는, “한국에 재능 있는 학생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서서 콩쿠르를 유치하고 더 많은 학생이 본선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그녀가 그 아이들이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다.

서희는 주 6일(공연이 있는 기간), 하루 9시간을 연습하고 공연을 한다. 그리고 “휴식 시간”에 재단 일을 한다. 공연이 없는 여름이 되면 틈틈이 한국에 가서 마스터 클래스를 개최한다. 그녀는 어린 발레 학도들에게 아직 “다 피지 않은” 그들의 발레도 아름다움을 알려주며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준다. 또한,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의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정답이 없어서 정형화될 필요가 없는 발레처럼. 그녀는 머지 않은 미래에 성장한 그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 설 날을 그린다.


기획 Jennifer Lee 글 Juyoung Lee 영문 Taylor Lee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