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 교수와 함께하는 북클럽

현경 교수와 함께하는 북클럽



현경 교수와의 인터뷰를 위해 유니언 신학교를 찾은 건 지난해 늦가을의 정취가 깊어지던 어느 화요일이었다. 그날은 마침 매달 4번째 화요일에 열리는 북클럽 모임이 진행 중이었다. 현경을 비롯한 10여 명의 여성 참석자들은 노자의 도덕경을 주제로 자신들이 읽은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교환하며 하며 2시간여 동안 진지하고 활기찬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에 임하는 회원들의 태도에서도 교양인의 모임다운 세련됨이 나타났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 겪는 개인적인 일들을 도교의 관점에서 새롭게 풀이해 보는 회원들의 의견이 제시될 때마다 다른 회원들은 동의와 긍정으로 화답하며 경청했다.

말을 하는 것보다 잘 들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대화와 토론이라는 것을 회원들이 다년간의 북클럽 모임을 통해 체득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과연 남성들만으로 이런 모임을 할 때 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배려의 분위기가 2시간 동안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빅토리아 목 회장은 “고인이 되신 최월희 문학 교수님을 모시고 가톨릭 여신자들이 모여 시작한 북클럽이 이제 10년째를 맞았다”고 소개했다.



그동안 북클럽이 소화한 책들의 목록을 보면 다양한 주제와 쟝르에 걸쳐 영미권은 물론 한국과 기타 지역 유수 작가들의 책들로 이루어졌다.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윌리암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 체홉의 <단편집>, 헨리 제임스의 <워싱톤 스퀘어>,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노자의 <도덕경>, 토마스 하디의 <테스>, 소크라테스의 <플라톤의 대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황석영의 <손님>, 뮈리엘 바르베리의 <고슴도치의 우아함>,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길 위의 인생>, 아룬다이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토니 모리슨의 <비러브드>, 엘리스 워커의 <칼라 퍼플>, 이 근수의 <그리움의 차도>, 한 강의 <채식주의자>, 시몬드 보봐리의 <제2의 성>, 힐러리 멘틀의 <월프 홀>, 제프리 쵸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이외에도 페르시아가 자랑하는 오마르 카이암과 하피즈의 시와 서정주의 시도 포함되어 있다.

만만치가 않은 커리큘럼이다. 가볍게 읽고 와서 가볍게 대화를 나누기엔 대부분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해석은 물론 텍스트를 독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난해한 문장으로 유명한 책들도 끼어 있다. 제대로 읽지 않고 자리에 참석해 대충 아는 지식으로 끼어들만한 교재들이 아니다. 하지만 숙제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이런 ‘부담감’이 북클럽 모임을 장기간 이어 갈 수 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회원들은 공통으로 “클럽이 주는 의무감이 바쁜 생활 속에서 책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하고, 그렇게 해서 완독을 거치면 큰 보람과 기쁨을 얻는다”고 동의한다.



목 회장은 “북클럽을 만나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중학교 때 읽었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다시 읽으며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헷세의 철학에 빠지게 되었고, 흑인의 노예사가 배경인 토니 모리슨의 <비러브드> 와 엘리스 워커의<칼라퍼플>을 읽으며 그들의 처절한 고통이 와 닿았다는 것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는 남성 우월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힘없는 저항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목 회장은 “책을 통하여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상과 생각 또 시대의 변화를 바라보며 좀 더 풍성한 삶이 되기”를 기대했다.

원혜경 뉴저지훈민학당 교장은 그동안 가장 좋았던 교재로 도덕경을들었다. 15년 전에 읽었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니 책의 감성과 철학이 다르게 다가오고 새로웠기 때문이다. 원 원장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고집스러워지고 강퍅해 질수 있는데 아마도 자신에 대한 불안감과 자신감의 결여에 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내면과 외면이 한결같이 나이 듦을 즐기면서 익어가고 싶은 마음에 도덕경이 다가왔다.”고 평했다. 이전에는 선호하는 책만 읽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고 했는데 북클럽을 통해서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그에게는 쉼이 되는 동시에 도전이어서 흥미롭다.



박영숙 씨가 선택한 가장 유익했던 독서는 무게감이 더한다. 엥겔스의 <영국에 있어서의 노동자 계급의 상태(Die Lage der arbeitenden Klasse in England, 1845)>를 꼽았다. 엥겔스를 읽으면서 공산주의의 원리나 태생의 정당화 등을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면서 읽게 된 가장 유익한 책이 되었다.

“좋은 책은 언제라도 나약해질 수 있는 내 판단력에 등불이 된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권씩은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다. 북클럽에 참여한 것이 독서를 독려시켜주는 자극제가 되었다. 또한,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범주의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박영숙 씨가 밝힌 ‘북클럽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이유다.

이날은 마침 북클럽 모임만이 아니고 할로윈과 현경 교수의 신간 기념파티를 겸하는 자리였다. 신학교 내 교실에서 모임을 마친 회원들은 학교 건물 내 옥상에 있는 현경의 자택으로 자리를 옮겨 흥겨운(더 정확히 표현하면) 광적인 뒤풀이를 벌였다.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