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oul and heart at the tip of my fingers
손 끝에 나의 영혼과 온 마음을 담는다
지 두 화 가 指 頭 畵 家 구구 킴
(지두화가 구구킴 사진출처=본사취재)
유형과 무형의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쓸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만들어 쓸 수 있는 도구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인간의 몸,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도 인간의 목소리일 것이고, 가장 정교한 소통의 도구가 되는 것도 온몸으로 표현하는 인간의 몸짓일 것이다. 단순히 살과 뼈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속에는 마음이 담기고 영혼이 담겨서이리라.
지두화(指頭畵)라고도 불리는 핑거 페인팅(Finger Painting) 아티스트인 김종해 작가. 구구 킴(GuGu Kim)이란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붓이나 연필과 같은 도구가 아닌 자신의 손가락으로만 그림을 그린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폭 3m, 높이 2m가 넘는 대작이다 보니 오랜 작업 시간 동안 지문이 없어질 만큼 손가락을 너무 문질러서 피가 나기도 하고, 최근에는 고된 작업에 팔꿈치 뼈가 부서져 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구구 킴이 핑거 페인팅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마음에서 손끝으로, 다시 손끝에서 캔버스로 전해지는 그 느낌 때문이다.
뉴욕, 엘에이, 댈러스 그리고 중국과 일본, 독일 등 세계 각지에서 모던 클래식이즘(Modern Classicism) 작가로 호평받고 있는 구구 킴을 직접 만나 보았다.
(지두화가 구구킴 사진출처=본사취재)
핑거 페인팅 – 신개념 아트의 선도자
천장이 높은 그의 갤러리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구구 킴의 작품은 모두 대작이지만 보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대신 오히려 감상하는 사람을 끌어 안아주는 따스함이 있다. 안 그래도 키가 무척이나 큰 작가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서야만 작업이 가능할 정도의 높이의 작품들은 모두 말 그대로 그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새색시>처럼 멀리서 보면 귀엽고 모던한 포스터와 같은 매끄러운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고, <동반자>와 같이 1000호나 되는 어마어마한 캔버스 크기를 가득 메운 얼굴을 맞댄 친근한 노부부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도 있다. 그런데 어느 작품이든지 가까이서 보면 수십만 개의 손가락 자국들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다. 보는 이의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가능할 수 있을까?
“광주의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그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 동안 종종 손에 묻은 숯검댕이를 종이에 문지르며 놀고는 했죠. 어느 날 그 기억이 나는 거예요. ‘아,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재미있겠다’ 하고 말이죠. 그런데 손가락이 캔버스에 닿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있는 그대로 손가락을 타고 내려가 캔버스에 직접 옮겨지는 그 느낌 말이에요.”
음악과 예술에 대한 갈망이 컸던 구구 킴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 현대미술과 패션, 공간 디자인 등을 공부한다. 20년이 넘게 일본에서 산 덕분에 유창하게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구구 킴은 일본에서 건축디자인 사무소를 운영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핑거 페인팅 아티스트로 일본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구구 킴의 작품을 본 외국의 미술평론가들은 그만의 작품세계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특히 하버드 아트 뮤지엄 큐레이터인 Robert D. Mowry 박사는 알아주는 구구 킴의 열렬한 팬으로 그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며 김환기 이후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질 차세대 아티스트로 주저 없이 구구 킴을 꼽는다.
특정 화풍을 넘어선 작품 세계
보통 화가들을 보면 어느 특정 화풍에 매료되어 평생 그것을 추구하거나, 혹은 화풍의 변화를 겪더라도 눈에 띄게 작품에 반영이 될 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구구 킴의 작품 세계는 확연히 다르다. 클래식한 모노톤의 실사 작품이 그의 화풍인가 싶으면 바로 다음 작품에는 꽤나 에로틱한 모습을 한 여인이 등장하고, 그런 작품에 익숙해질까 싶으면 서너 살짜리 아이가 그렸나 싶을 정도의 동심으로 가득 찬 그림을 들고나온다. 구구 킴은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 싶은 것일까?
“손가락으로 그렸는지 혹은 붓이나 연필로 그렸는지가 제게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무슨 화풍을 따라 그렸느나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에겐 ‘무엇을 그렸느냐’만이 중요한 거지요. 모노톤의 실사와 같은 그림이든, 사랑하는 두 사람을 그린 그림이든, 자전거 타는 아이를 그린 그림이든 그 안에 담긴 순수함을 그려내고 싶어요. 그림의 대상을 그려내는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제 모든 그림 속에 담긴 일관된 주제는 순수함입니다.”
그 압도적인 작품의 크기와 수십만 개의 손가락 자국을 이용해 그린 그림을 보면 한눈에 구구 킴의 예술적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엔 호기심 반, 신기함 반으로 그의 작품을 대하지만 친근한 대상을 그린 그의 작품 뒤에 숨겨진 순수함이란 삶의 메시지를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두고 찬찬히 구구 킴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동시(童詩)의 따스함과 수필의 담백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그림을 그린 작가와 보는 이 사이에 교감이 아닐까.
(지두화가 구구킴 사진출처=본사취재)
모노톤(Monotone), 그 비움의 미학
간혹 알록달록 색채감 있는 작품도 하더니 최근 들어 더욱 단색의 모노톤 작품을 고집하는 구구 킴. 특히 검은색에 대한 그의 사랑은 유난하다. 그저 블랙 앤 화이트의 세련미를 표현하고자 하는 걸까?
“아니에요. 순수함을 더욱 극대화해서 표현하고 싶은 거지요. 그림은 기본적으로 빛과 어둠의 구도로 되어 있어요. 이 빛과 어둠 속에서 보이는 사물 안에 있는 거추장스럽고 쓸데없는 것을 다 빼고 나면 본질만 남게 되지요. 그것을 검은색의 모노톤으로 표현을 한 것이에요. 검은색이라는 색깔 자체도 마찬가지거든요. 모든 색을 하나하나 빼 나가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검은색이지요. 얼마만큼 뺄 수 있느냐가 중요해요. 빼지 못하면 불안해서 더할 수밖에 없는데 완벽함은 더 이상 더할 게 없는 게 아니라 뺄 게 없는 상태이거든요.”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했던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라고 한 말을 그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구구 킴의 모노톤 작품을 보면 빛(여백)과 어둠(손가락 끝이 찍히는 부분)의 양에 따라 같은 작품도 어느 시점에 보았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한 작품을 시작하면 그의 마음에 흡족할 때까지 멀리 세워두고 보면서 손끝과 손바닥으로 캔버스를 문지르기를 반복한다. 손가락 끝이 한 번 닿고 안 닿고에 따라 작품 속 소녀는 수줍은 미소를 띨 수도, 눈물 고인 슬픈 미소를 띨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의민족과 검을 현(玄) – 동양화가 아닌 한국화를 알리고 싶다
구구 킴이 모노톤에 더욱 애착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검은색이 우리 민족의 색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색인 검은색을 가지고 우리나라 모노톤의 작품은 현대적이지 않다는 세계 미술계의 선입견을 깨뜨려 주고 싶은 욕심도 있다.
“검을 현(玄)이라고 하죠. 사실 완벽하게 검은색은 없다고 봐요. 우리 민족의 검은색은 진한 쪽빛 색깔이 도는 검은색이지요. 그 검은색이 여백의 미를 살려주는 하얀 도화지나 하얀 캔버스와 만날 때 음과 양이 합쳐지고 온전한 하나가 됩니다.”
사실 검을 현(玄)이라는 한자 속에는 ‘검다’는 의미 외에도 ‘오묘하고 신묘하다’는 뜻도 있으니 그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충분히 마음에 와닿는다. 이런 구구 킴의 속내를 알아주고 발현해 주는 재료가 바로 핑거 페인팅에 쓰이는 물기 없는 숯이나 목탄, 파스텔, 그리고 돌가루인 석채이다.
“사실 동양화라는 장르는 없어요. 이것은 일제 강점기에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를 다 뭉뚱그려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에요. 동양화가 아닌 한국의 혼이 담긴 한국화를 그려서 국격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진정한 우리나라의 한국화는 김홍도 이후로는 민화가 그 명맥을 이어왔다고 할 겁니다.
단순히 서양 물감과 재료로 한국 풍경을 그렸다고 한국화가 되지는 않지요. 작품을 그린 재료로 한국화냐 서양화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퓨전이라는 말이 있지요. 한국의 빛과 어둠, 하늘과 땅, 기쁨, 슬픔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새로운 한국화를 그릴 겁니다. 한국화도 그렇게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탄생할 수 있고, 그것을 감상하는 전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 미술의 격을 알리고 싶어요.”
10여 년 전부터 세계 각지의 갤러리 및 미술관에서 개인전 및 초대전을 열고 있는 구구 킴은 아트 마이애미(Art Miami), 아트 뉴욕(Art New York), 유럽아트페어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으며, 미국 텍사스와 중국 상하이에서 세계 최초로 거장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함께 하는 ‘미켈란젤로 & 구구 킴 특별 기획전’도 가졌다. 올 2018년 5월엔 일본 영화사에서 그의 모노톤 작품 세계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갤러리를 방문하기도 했다.
하루에 열다섯 시간이 넘는 고된 극한의 작업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으면서도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작가 구구 킴. 당뇨로 고생하다 이젠 그의 품 안에 한 줌 쏙 들어올 만큼 작아진 어머니를 35년 만에 처음 안아보며 눈물을 왈칵 쏟아버린 여린 구구 킴의 마음속에 이렇듯 강인한 소신과 철학이 담겨 있기에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고통도 잊은 채 매일매일 캔버스 앞에 선다. 수십만 개의 손가락 자국이 남겨져야 작품이 되는 그의 그림은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고행이고, 사랑이고 예술이며 인생인 퍼포먼스이다.
오직 손끝과 손바닥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핑거 페인팅 아티스트, 지두화가(指頭畵家) 구구 킴. 그가 올여름 다시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함께 상해로 간다!
글 Sarah Chung / 영문 Juwon Park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
My soul and heart at the tip of my fingers
손 끝에 나의 영혼과 온 마음을 담는다
지 두 화 가 指 頭 畵 家 구구 킴
(지두화가 구구킴 사진출처=본사취재)
유형과 무형의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쓸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만들어 쓸 수 있는 도구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인간의 몸,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도 인간의 목소리일 것이고, 가장 정교한 소통의 도구가 되는 것도 온몸으로 표현하는 인간의 몸짓일 것이다. 단순히 살과 뼈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속에는 마음이 담기고 영혼이 담겨서이리라.
지두화(指頭畵)라고도 불리는 핑거 페인팅(Finger Painting) 아티스트인 김종해 작가. 구구 킴(GuGu Kim)이란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붓이나 연필과 같은 도구가 아닌 자신의 손가락으로만 그림을 그린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폭 3m, 높이 2m가 넘는 대작이다 보니 오랜 작업 시간 동안 지문이 없어질 만큼 손가락을 너무 문질러서 피가 나기도 하고, 최근에는 고된 작업에 팔꿈치 뼈가 부서져 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구구 킴이 핑거 페인팅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마음에서 손끝으로, 다시 손끝에서 캔버스로 전해지는 그 느낌 때문이다.
뉴욕, 엘에이, 댈러스 그리고 중국과 일본, 독일 등 세계 각지에서 모던 클래식이즘(Modern Classicism) 작가로 호평받고 있는 구구 킴을 직접 만나 보았다.
(지두화가 구구킴 사진출처=본사취재)
핑거 페인팅 – 신개념 아트의 선도자
천장이 높은 그의 갤러리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구구 킴의 작품은 모두 대작이지만 보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대신 오히려 감상하는 사람을 끌어 안아주는 따스함이 있다. 안 그래도 키가 무척이나 큰 작가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서야만 작업이 가능할 정도의 높이의 작품들은 모두 말 그대로 그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새색시>처럼 멀리서 보면 귀엽고 모던한 포스터와 같은 매끄러운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고, <동반자>와 같이 1000호나 되는 어마어마한 캔버스 크기를 가득 메운 얼굴을 맞댄 친근한 노부부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도 있다. 그런데 어느 작품이든지 가까이서 보면 수십만 개의 손가락 자국들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다. 보는 이의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가능할 수 있을까?
“광주의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그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 동안 종종 손에 묻은 숯검댕이를 종이에 문지르며 놀고는 했죠. 어느 날 그 기억이 나는 거예요. ‘아,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재미있겠다’ 하고 말이죠. 그런데 손가락이 캔버스에 닿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있는 그대로 손가락을 타고 내려가 캔버스에 직접 옮겨지는 그 느낌 말이에요.”
음악과 예술에 대한 갈망이 컸던 구구 킴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 현대미술과 패션, 공간 디자인 등을 공부한다. 20년이 넘게 일본에서 산 덕분에 유창하게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구구 킴은 일본에서 건축디자인 사무소를 운영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핑거 페인팅 아티스트로 일본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구구 킴의 작품을 본 외국의 미술평론가들은 그만의 작품세계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특히 하버드 아트 뮤지엄 큐레이터인 Robert D. Mowry 박사는 알아주는 구구 킴의 열렬한 팬으로 그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며 김환기 이후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질 차세대 아티스트로 주저 없이 구구 킴을 꼽는다.
특정 화풍을 넘어선 작품 세계
보통 화가들을 보면 어느 특정 화풍에 매료되어 평생 그것을 추구하거나, 혹은 화풍의 변화를 겪더라도 눈에 띄게 작품에 반영이 될 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구구 킴의 작품 세계는 확연히 다르다. 클래식한 모노톤의 실사 작품이 그의 화풍인가 싶으면 바로 다음 작품에는 꽤나 에로틱한 모습을 한 여인이 등장하고, 그런 작품에 익숙해질까 싶으면 서너 살짜리 아이가 그렸나 싶을 정도의 동심으로 가득 찬 그림을 들고나온다. 구구 킴은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 싶은 것일까?
“손가락으로 그렸는지 혹은 붓이나 연필로 그렸는지가 제게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무슨 화풍을 따라 그렸느나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에겐 ‘무엇을 그렸느냐’만이 중요한 거지요. 모노톤의 실사와 같은 그림이든, 사랑하는 두 사람을 그린 그림이든, 자전거 타는 아이를 그린 그림이든 그 안에 담긴 순수함을 그려내고 싶어요. 그림의 대상을 그려내는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제 모든 그림 속에 담긴 일관된 주제는 순수함입니다.”
그 압도적인 작품의 크기와 수십만 개의 손가락 자국을 이용해 그린 그림을 보면 한눈에 구구 킴의 예술적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엔 호기심 반, 신기함 반으로 그의 작품을 대하지만 친근한 대상을 그린 그의 작품 뒤에 숨겨진 순수함이란 삶의 메시지를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두고 찬찬히 구구 킴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동시(童詩)의 따스함과 수필의 담백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그림을 그린 작가와 보는 이 사이에 교감이 아닐까.
(지두화가 구구킴 사진출처=본사취재)
모노톤(Monotone), 그 비움의 미학
간혹 알록달록 색채감 있는 작품도 하더니 최근 들어 더욱 단색의 모노톤 작품을 고집하는 구구 킴. 특히 검은색에 대한 그의 사랑은 유난하다. 그저 블랙 앤 화이트의 세련미를 표현하고자 하는 걸까?
“아니에요. 순수함을 더욱 극대화해서 표현하고 싶은 거지요. 그림은 기본적으로 빛과 어둠의 구도로 되어 있어요. 이 빛과 어둠 속에서 보이는 사물 안에 있는 거추장스럽고 쓸데없는 것을 다 빼고 나면 본질만 남게 되지요. 그것을 검은색의 모노톤으로 표현을 한 것이에요. 검은색이라는 색깔 자체도 마찬가지거든요. 모든 색을 하나하나 빼 나가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검은색이지요. 얼마만큼 뺄 수 있느냐가 중요해요. 빼지 못하면 불안해서 더할 수밖에 없는데 완벽함은 더 이상 더할 게 없는 게 아니라 뺄 게 없는 상태이거든요.”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했던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라고 한 말을 그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구구 킴의 모노톤 작품을 보면 빛(여백)과 어둠(손가락 끝이 찍히는 부분)의 양에 따라 같은 작품도 어느 시점에 보았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한 작품을 시작하면 그의 마음에 흡족할 때까지 멀리 세워두고 보면서 손끝과 손바닥으로 캔버스를 문지르기를 반복한다. 손가락 끝이 한 번 닿고 안 닿고에 따라 작품 속 소녀는 수줍은 미소를 띨 수도, 눈물 고인 슬픈 미소를 띨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의민족과 검을 현(玄) – 동양화가 아닌 한국화를 알리고 싶다
구구 킴이 모노톤에 더욱 애착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검은색이 우리 민족의 색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색인 검은색을 가지고 우리나라 모노톤의 작품은 현대적이지 않다는 세계 미술계의 선입견을 깨뜨려 주고 싶은 욕심도 있다.
“검을 현(玄)이라고 하죠. 사실 완벽하게 검은색은 없다고 봐요. 우리 민족의 검은색은 진한 쪽빛 색깔이 도는 검은색이지요. 그 검은색이 여백의 미를 살려주는 하얀 도화지나 하얀 캔버스와 만날 때 음과 양이 합쳐지고 온전한 하나가 됩니다.”
사실 검을 현(玄)이라는 한자 속에는 ‘검다’는 의미 외에도 ‘오묘하고 신묘하다’는 뜻도 있으니 그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충분히 마음에 와닿는다. 이런 구구 킴의 속내를 알아주고 발현해 주는 재료가 바로 핑거 페인팅에 쓰이는 물기 없는 숯이나 목탄, 파스텔, 그리고 돌가루인 석채이다.
“사실 동양화라는 장르는 없어요. 이것은 일제 강점기에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를 다 뭉뚱그려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에요. 동양화가 아닌 한국의 혼이 담긴 한국화를 그려서 국격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진정한 우리나라의 한국화는 김홍도 이후로는 민화가 그 명맥을 이어왔다고 할 겁니다.
단순히 서양 물감과 재료로 한국 풍경을 그렸다고 한국화가 되지는 않지요. 작품을 그린 재료로 한국화냐 서양화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퓨전이라는 말이 있지요. 한국의 빛과 어둠, 하늘과 땅, 기쁨, 슬픔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새로운 한국화를 그릴 겁니다. 한국화도 그렇게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탄생할 수 있고, 그것을 감상하는 전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 미술의 격을 알리고 싶어요.”
10여 년 전부터 세계 각지의 갤러리 및 미술관에서 개인전 및 초대전을 열고 있는 구구 킴은 아트 마이애미(Art Miami), 아트 뉴욕(Art New York), 유럽아트페어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으며, 미국 텍사스와 중국 상하이에서 세계 최초로 거장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함께 하는 ‘미켈란젤로 & 구구 킴 특별 기획전’도 가졌다. 올 2018년 5월엔 일본 영화사에서 그의 모노톤 작품 세계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갤러리를 방문하기도 했다.
하루에 열다섯 시간이 넘는 고된 극한의 작업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으면서도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작가 구구 킴. 당뇨로 고생하다 이젠 그의 품 안에 한 줌 쏙 들어올 만큼 작아진 어머니를 35년 만에 처음 안아보며 눈물을 왈칵 쏟아버린 여린 구구 킴의 마음속에 이렇듯 강인한 소신과 철학이 담겨 있기에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고통도 잊은 채 매일매일 캔버스 앞에 선다. 수십만 개의 손가락 자국이 남겨져야 작품이 되는 그의 그림은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고행이고, 사랑이고 예술이며 인생인 퍼포먼스이다.
오직 손끝과 손바닥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핑거 페인팅 아티스트, 지두화가(指頭畵家) 구구 킴. 그가 올여름 다시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함께 상해로 간다!
글 Sarah Chung / 영문 Juwon Park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