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위에서 춤을 추다 음악을 그리는 화가 권기철

전시장에 들어서자 다채로운 색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힘 있는 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곧이어 시각적 율동감이 청각까지 자극한다. 30호 크기의 화폭에는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여러 작품이 아닌 하나의 큰 작품 같았다. 한 악기의 독주가 아닌, 오케스트라의 향연. 이것이 내가 권기철 작가의 작품을 접한 첫 느낌이었다. 음악, 자연, 일상 그리고 감정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형상화하는 작가 권기철. 그가 선보이는 추상적 드로잉은 물음표를 던지고 작품을 마주하는 이들은 느낌표를 건져 올린다.그가 해석하는 음악과 미술의 접점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음악을 그리는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작품에서 리드미컬함을 느낄 수 있는데, 작품관이나 작업방식 또한 음악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작품활동에 있어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저는 작업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오디오 전원을 켭니다. 음악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 저를 예열해준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뭔가 느낌이 확 잡히지 않을 때 음악을 듣기도 하고, 붓을 들기 전 단계에서 음악을 들으며 호흡 정리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항상 음악과 함께 작업하다 보면, 음악에 몸을 싣고 리듬에 내 생각들이 실려서 완성되는 작품도 많아요.
또 12년간 대구시립교향악단의 포스터 그림을 그렸습니다. 1년에 15회에서 20회 정도의 시향 연주를 하는데, 매회 미리 연주곡을 듣고 떠오르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 그림이 매 연주회마다 포스터가 됐죠. 그런 과정에서 클래식을 더 많이 알아가기도 했어요. 음악은 이처럼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만큼 제 그림에 하나의 키워드로서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음악 중에서도 클래식 쪽, 그중에서도 특히나 현악기의 선율에 굉장히 매력을 느끼죠. 이런 것들이 제 그림에 ‘선작업’과 맞물려서 진행되고 있어요.
12년간 대구시립교향악단의 포스터를 그릴 정도라면 음악은 역시 작가님께 굉장히 긴밀한 무언가임이 확실하네요. 그렇다면 선작업 역시 음악에서 시작된 것인가요?
제 그림의 중심에는 항상 획이 있죠. 서양방식으로 이야기하면 선이죠. 하지만 제 선의 출발은 음악이 아닌 한자 한일(一)자 였습니다. 이 선을 함축적으로 얘기해서 한일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한일자의 시작은 아주 어린 시절 붓글씨를 쓰면서부터였어요. 붓글씨를 배울 때 제일 먼저 한일자를 중봉선으로 긋는 연습을 합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토대가 되면 그 후 창의적으로 변형할 수 있죠.
그래서 제 작품은 한일자가 변용된 작품이 많아요. 선이 다른 곳으로 꺾이기도 하고 둥글게 가기도 하는데, 이것을 변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토벤 심포니를 어떤 지휘자, 어떤 연주자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각각 달라지듯이 저는 한일자로 변용 변주를 하는 것이죠. 한일자는 붓글씨로 쓰는 서체이자 디자인적으로 이야기했을 때는 일종의 타이포(typo)가 되죠. 이처럼 제 그림 속에는 타이포가 던져진 부분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한자 한일(一)자는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일자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즉,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툼한 성경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랑’이라 할 수 있듯이, 한 단어를 가지고도 여러 가지 의미로 풀어볼 수 있는 것이죠.
또 한일자는 ‘궁할 궁(窮)’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결핍’으로 해석하고 결핍도 일종의 좋은 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좋은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즐겁고 행복한 쾌(快)에만 빠져있다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아요. 오히려 정반대의 지점인 ‘외로움, 고독함, 슬픔’ 이런 감정의 현상과 깊게 침잠이 될 때 굉장히 좋은 작품이 나오죠. 이처럼 결핍이 몰고 가는 힘이 제 작업에 많이 작용하고, 그런 작업이 음악과 함께 맞물려 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작품관을 가지기까지 그 첫 시작이 궁금해지네요.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그림을 그리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누구의 권유나 어떤 상황 때문이 아니었죠. 제가 그림을 그리던 첫 기억이 다섯 살 땐데 그때부터 이미 제 손엔 붓이 들려있었고 그림을 그렸고 붓글씨를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사고로 오른손을 잘려서 장애 4급을 판단을 받고 말았죠. 그때부터는 잘 움직이지 않는 손에 붓을 꽂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손으로 글쓰기부터 섬세한 인물 작업까지 변함없이 계속 해왔죠. 이처럼 그림은 처음부터 제게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했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하셨고 어려서부터 붓글씨를 쓰셨다고 하셨는데, 과거부터 현재까지 화풍에 변화가 있었다면 그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90년 후반까지는 구상작업과 산수화를 했어요. 특히 90년대 후반까지는 구상작업을 주로 했죠. 2000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추상 작업으로 들어섰죠. 그런데 평면 작업을 주로 하다 보면 허기가 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대신 작품 디스플레이를 다양하게 시도해서 3차원의 공간 작업으로 2차원의 결핍을 해소하곤 해요. 그래서 전시마다 디스플레이 역시 직접 참여합니다.
또 제가 디자인 쪽에도 관심이 많아요. 특히 그래픽 디자인을 참 좋아 합니다. 그래서 디자인을 주제로 책을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10여 년 전 캘리그라피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6명의 창립멤버 중 한 사람이 저예요. 현재까지도 꾸준히 캘리그라피 작업을 하고 있어요. 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의 그 손글씨 그리고 국제오페라 축제의 글씨, 대구문화회관 심볼 로고도 제가 쓴 손글씨죠.
대구를 대표하는 지역의 로고까지 권기철 작가님의 손글씨라니, 알고 보니 더 놀랍네요. 참 다방면으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일상 속 예술이란?
상투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예술은 우리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일상은 사실 매우 단조롭잖아요. 그 단조로운 일상을 툭툭 건드리는 게 바로 예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삶의 활력소'라는 말처럼 작가님의 작품이 사람들의 일상에 활력이 될 때 기쁨을 느끼시는 편인가요?
저는 전시장에 그 결과물을 걸어놓고 불특정다수가 하는 평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평가라도 제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 그림을 혐오스럽게 보는 사람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로 아무 신경이 쓰이지 않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자기 정체성을 강화하고 자기를 꿰뚫어 보는 행위입니다. 이쪽으로 몰아가다 보면 역설적으로 자기 도그마(dogma)도 상당히 심화되죠.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 중에는 어찌 보면 이기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꽤 볼 수 있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작품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쁨을 느낄 때는 언젠지 궁금해지네요.
내가 왜 그림을 그리고 있지? 라고 생각했을 때 딱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내 작업실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뛰어다니고 있을 때’요. 이를테면 무아지경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바탕 작업을 마친 후에 붓을 딱 놓고 나면, ‘내가 이렇게 했구나’ 하며 뿌듯한 마음이 들곤 해요. 대부분 화가라면 자신의 그림을 불특정다수가 좋아한다면 자신도 기쁨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피드백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저는 오로지 작업 자체를 즐기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서 말씀해주세요.
오는 7월에는 제주도 이중섭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작업이 있었는데, 작업실의 여건상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곧 이런 점들이 해소될 것 같아요. 지금 가창에 짓고 있는 제 작업실이 곧 마무리되면 그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죠. 저만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상상하니 설레고 앞으로 더욱 기대됩니다.
글 손시현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
선 위에서 춤을 추다 음악을 그리는 화가 권기철
전시장에 들어서자 다채로운 색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힘 있는 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곧이어 시각적 율동감이 청각까지 자극한다. 30호 크기의 화폭에는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여러 작품이 아닌 하나의 큰 작품 같았다. 한 악기의 독주가 아닌, 오케스트라의 향연. 이것이 내가 권기철 작가의 작품을 접한 첫 느낌이었다. 음악, 자연, 일상 그리고 감정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형상화하는 작가 권기철. 그가 선보이는 추상적 드로잉은 물음표를 던지고 작품을 마주하는 이들은 느낌표를 건져 올린다.그가 해석하는 음악과 미술의 접점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음악을 그리는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작품에서 리드미컬함을 느낄 수 있는데, 작품관이나 작업방식 또한 음악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작품활동에 있어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저는 작업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오디오 전원을 켭니다. 음악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 저를 예열해준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뭔가 느낌이 확 잡히지 않을 때 음악을 듣기도 하고, 붓을 들기 전 단계에서 음악을 들으며 호흡 정리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항상 음악과 함께 작업하다 보면, 음악에 몸을 싣고 리듬에 내 생각들이 실려서 완성되는 작품도 많아요.
또 12년간 대구시립교향악단의 포스터 그림을 그렸습니다. 1년에 15회에서 20회 정도의 시향 연주를 하는데, 매회 미리 연주곡을 듣고 떠오르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 그림이 매 연주회마다 포스터가 됐죠. 그런 과정에서 클래식을 더 많이 알아가기도 했어요. 음악은 이처럼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만큼 제 그림에 하나의 키워드로서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음악 중에서도 클래식 쪽, 그중에서도 특히나 현악기의 선율에 굉장히 매력을 느끼죠. 이런 것들이 제 그림에 ‘선작업’과 맞물려서 진행되고 있어요.
12년간 대구시립교향악단의 포스터를 그릴 정도라면 음악은 역시 작가님께 굉장히 긴밀한 무언가임이 확실하네요. 그렇다면 선작업 역시 음악에서 시작된 것인가요?
제 그림의 중심에는 항상 획이 있죠. 서양방식으로 이야기하면 선이죠. 하지만 제 선의 출발은 음악이 아닌 한자 한일(一)자 였습니다. 이 선을 함축적으로 얘기해서 한일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한일자의 시작은 아주 어린 시절 붓글씨를 쓰면서부터였어요. 붓글씨를 배울 때 제일 먼저 한일자를 중봉선으로 긋는 연습을 합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토대가 되면 그 후 창의적으로 변형할 수 있죠.
그래서 제 작품은 한일자가 변용된 작품이 많아요. 선이 다른 곳으로 꺾이기도 하고 둥글게 가기도 하는데, 이것을 변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토벤 심포니를 어떤 지휘자, 어떤 연주자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각각 달라지듯이 저는 한일자로 변용 변주를 하는 것이죠. 한일자는 붓글씨로 쓰는 서체이자 디자인적으로 이야기했을 때는 일종의 타이포(typo)가 되죠. 이처럼 제 그림 속에는 타이포가 던져진 부분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한자 한일(一)자는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일자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즉,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툼한 성경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랑’이라 할 수 있듯이, 한 단어를 가지고도 여러 가지 의미로 풀어볼 수 있는 것이죠.
또 한일자는 ‘궁할 궁(窮)’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결핍’으로 해석하고 결핍도 일종의 좋은 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좋은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즐겁고 행복한 쾌(快)에만 빠져있다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아요. 오히려 정반대의 지점인 ‘외로움, 고독함, 슬픔’ 이런 감정의 현상과 깊게 침잠이 될 때 굉장히 좋은 작품이 나오죠. 이처럼 결핍이 몰고 가는 힘이 제 작업에 많이 작용하고, 그런 작업이 음악과 함께 맞물려 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작품관을 가지기까지 그 첫 시작이 궁금해지네요.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그림을 그리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누구의 권유나 어떤 상황 때문이 아니었죠. 제가 그림을 그리던 첫 기억이 다섯 살 땐데 그때부터 이미 제 손엔 붓이 들려있었고 그림을 그렸고 붓글씨를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사고로 오른손을 잘려서 장애 4급을 판단을 받고 말았죠. 그때부터는 잘 움직이지 않는 손에 붓을 꽂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손으로 글쓰기부터 섬세한 인물 작업까지 변함없이 계속 해왔죠. 이처럼 그림은 처음부터 제게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했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하셨고 어려서부터 붓글씨를 쓰셨다고 하셨는데, 과거부터 현재까지 화풍에 변화가 있었다면 그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90년 후반까지는 구상작업과 산수화를 했어요. 특히 90년대 후반까지는 구상작업을 주로 했죠. 2000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추상 작업으로 들어섰죠. 그런데 평면 작업을 주로 하다 보면 허기가 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대신 작품 디스플레이를 다양하게 시도해서 3차원의 공간 작업으로 2차원의 결핍을 해소하곤 해요. 그래서 전시마다 디스플레이 역시 직접 참여합니다.
또 제가 디자인 쪽에도 관심이 많아요. 특히 그래픽 디자인을 참 좋아 합니다. 그래서 디자인을 주제로 책을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10여 년 전 캘리그라피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6명의 창립멤버 중 한 사람이 저예요. 현재까지도 꾸준히 캘리그라피 작업을 하고 있어요. 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의 그 손글씨 그리고 국제오페라 축제의 글씨, 대구문화회관 심볼 로고도 제가 쓴 손글씨죠.
대구를 대표하는 지역의 로고까지 권기철 작가님의 손글씨라니, 알고 보니 더 놀랍네요. 참 다방면으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일상 속 예술이란?
상투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예술은 우리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일상은 사실 매우 단조롭잖아요. 그 단조로운 일상을 툭툭 건드리는 게 바로 예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삶의 활력소'라는 말처럼 작가님의 작품이 사람들의 일상에 활력이 될 때 기쁨을 느끼시는 편인가요?
저는 전시장에 그 결과물을 걸어놓고 불특정다수가 하는 평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평가라도 제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 그림을 혐오스럽게 보는 사람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로 아무 신경이 쓰이지 않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자기 정체성을 강화하고 자기를 꿰뚫어 보는 행위입니다. 이쪽으로 몰아가다 보면 역설적으로 자기 도그마(dogma)도 상당히 심화되죠.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 중에는 어찌 보면 이기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꽤 볼 수 있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작품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쁨을 느낄 때는 언젠지 궁금해지네요.
내가 왜 그림을 그리고 있지? 라고 생각했을 때 딱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내 작업실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뛰어다니고 있을 때’요. 이를테면 무아지경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바탕 작업을 마친 후에 붓을 딱 놓고 나면, ‘내가 이렇게 했구나’ 하며 뿌듯한 마음이 들곤 해요. 대부분 화가라면 자신의 그림을 불특정다수가 좋아한다면 자신도 기쁨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피드백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저는 오로지 작업 자체를 즐기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서 말씀해주세요.
오는 7월에는 제주도 이중섭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작업이 있었는데, 작업실의 여건상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곧 이런 점들이 해소될 것 같아요. 지금 가창에 짓고 있는 제 작업실이 곧 마무리되면 그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죠. 저만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상상하니 설레고 앞으로 더욱 기대됩니다.
글 손시현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