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계의 새바람 가수 권미를 만나다

큰 키와 시원한 이목구비를 소유한 그녀는 당당하게 자신을 가수이자 결혼한 두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라고 소개했다. 인터뷰 내내 밝은 에너지로 분위기를 압도했던 가수 권 미, 대구가 낳은 대형스타를 예감하며 그녀가 당당히 가수로 방송무대에 오르기까지 아름다운 도전의 풀 스토리를 공개했다.


그녀가 방송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tvN 슈퍼디바에서다. 대구대표 주부가수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프로그램 종방과 더불어 우리 기억에서 잠시 사라지는 듯했다. 기억이 잊혀질 때 쯤 그녀는 새 앨범을 들고 성인가요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트로트는 인생이 녹아있어 좋습니다.” 트로트는 제 전부라며 트로트 예찬론을 늘어놓던 가수 권 미. 인터뷰 내내 뼈 속 까지 트로트 가수임을 알 수 있었다. 성인가요계에서는 이미 실력을 인정받았으니 이제는 팬들의 사랑만 남았을 대구출신 가수 ‘권 미’ 그녀의 트로트계의 횡보가 심상치 않다.


반갑습니다. 요즘 왕성한 활동으로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가을 행사 철이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종횡무진 많이 바쁘게 지냅니다. 공연장 외 매주 화요일 라디오 방송(대구 원음방송 98.3MHz. 아침의 향기 ‘권미의 향기까페’) 고정 게스트로 출연해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갖고 있습니다. 라디오 방송은 한 1년 가까이 돼 가는데 생방송으로 신청곡을 라이브로 들려드리고 음악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대구에서 또 뵐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신인가수들에게는 꿈의 무대이기도 한 전국노래자랑 스케줄이 잡혀 있어요. 11월 3일 수성못에서 펼쳐지는 전국노래자랑 수성구편입니다. 많이들 오셔서 경연도 즐기시고 제 노래도 많이 응원 해주셨으면 합니다. 


신곡을 발표한 것으로 아는데 어떤 곡인지 소개 좀 해 주시죠?
데뷔앨범입니다. ‘말로만 사랑’이라는 타이틀곡으로 지금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전 히어로 멤버이자 같은 대구출신 작곡가 권주일 씨가 노랫말과 곡을 써 주셨어요. 남녀 간의 사랑을 재미있는 가사로 풀고 있습니다. 세미 트로트라 가볍게 어깨도 흔들며 다 같이 따라 부르기에는 편한 곡입니다. 2014년 3월 야심차게 발매했었는데 당시 4월 전 국민이 슬퍼해야만 했던 세월호 사건으로 행사들이 다 취소되면서 음반 홍보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 같은데 다행히 반응이 좋아 전국으로 돌고 있습니다. 또 같은 미니앨범에 수록된 ‘인생’ ‘사랑’이란 곡 모두 반응이 좋습니다.


어떻게 가수로 데뷔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포토그래퍼이자 지금 매니저인 남편을 대학 때 지인 소개로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저도 평범하게 가정주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내재된 끼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재미삼아 나간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대구·경북지역에서 주최하는 가요제는 죄다 찾아다니며 상을 휩쓸었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주부대상 오디션 프로그램인 tvN ‘2012 슈퍼디바’ 출전을 하면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명절음식을 함께 준비하던 형님(윗동서)께서 오디션프로그램 광고를 보시고는 “동서도 저기 나가봐라. 우승하면 상금도 많이 주더라”하시며 툭 던진 말이 시작이 됐습니다. 대구예선을 무난히 통과했고 트로트가 아닌 여러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16강 본선무대 앞에서 아쉽게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노래자랑에서 좋은 결과만 받던 저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심사자들의 평가는 엇갈렸지만 어쨌거나 결과에 승복해야만 했고 그때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시댁이 교육자 집안이라 경연대회까지는 허용해도 가수활동을 반대했었는데 오디션 프로그램 이후 둘째 며느리가 안타까웠던지 가수 데뷔를 적극 밀어주셨습니다.


전공이 성악이던데 지금은 트로트 가수입니다. 언제부터 트로트 가수가 꿈이었나요?
돌이켜 생각하면 어릴 때부터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 트로트였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김연자씨의 노래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어른들 앞에서 곧잘 ‘수은등’을 열창하곤 했다고 합니다. 제가 트로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운명의 곡이었던 것 같습니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흥얼거리는 건 클래식이 아닌 트로트였고 노래방에서 누가 노래를 시키면 맨 먼저 부르는 노래가 트로트였습니다.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질문이 더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성악이나 트로트나 똑같이 목소리로 감정을 실어 노랫말을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발성이 다른 점은 있으나 저에게는 성악이 트로트의 기초가 됐기에 노래를 전달 하는데 좀 더 이로운 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KBS어린이 합창단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대구예술대학교에서 정통 클래식인 성악(소프라노)을 전공했습니다. 결혼 후 평범하게 아이들을 키우며 전공을 살려 수성구에서 피아노학원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학원생도 많아 나름 수익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트로트가 제 인생이자 트로트 없이는 못사는 가수가 되었습니다.


1978년생 171cm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그녀는 2014년 자신의 첫 데뷔앨범 ‘말로만 사랑‘을 발표 하고 트로트계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 얼핏 보면 1970년대 여배우를 연상케 하는 깊은 눈매와 시원한 외모가 먼저 들어왔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 매너로 그녀는 성인가요 관계자 사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가수이다.


무대에서 보면 신인가수라고 하기에는 말솜씨나 무대매너가 탁월 하다고 들었습니다. 또 다른 방송 경력이 있습니까?
특별한 경력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노래경연대회(영남가요제, 대구 컬러풀가요제, 옻골가요제, 낙동가요제 등)에 나가 자주 수상을 하다 보니 어떻게 저를 알고 지역케이블 방송(HCN 대구방송 ‘동네야 놀자’)에서 연락이 와 심사위원으로 방송에 참여를 했었습니다. 혹시 이 기사를 읽으시면 저를 기억하는 참가자도 있을 것 같네요. “꿈을 잃지 마세요!” 저처럼 가수를 꿈꾸는 동네 이웃들의 노래를 듣고 심사평도 하며 방송 진행자와 호흡을 맞추다보니 방송 무대가 익숙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저처럼 가수를 꿈꾸는 이들은 노래경연을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많이 찾습니다. 꿈을 가진 이들을 위해 특히나 날개를 펼치지 못한 노래 잘하는 주부들을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시 부활됐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그렇다면 가수 데뷔를 2014년으로 생각하는 게 맞을까요?
앨범 발매가 2014년도이니 정식 데뷔는 2014년이 맞을 것 같습니다만 저는 지인들에게 무명가수로 데뷔한지 15년이라고 말합니다. 왜나하면 트로트를 본격적으로 노래한 건 전공인 성악과를 졸업한 이후라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음반 발매 전 늘 일상에서 트로트를 부르며 경연대회를 찾아다녔고 그렇게 수상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무대 수상경력으로 (사)대한가수 협회에서 인증하는 가수인증서도 받았습니다. 그러니 남들이 몰라줘도 가수는 가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행사관계자분들이 어떻게 저를 아시고 대구·경북지역 작은 무대에 초대가수로 올려주셨습니다. 그때는 당연히 제 노래가 아닌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불렀지만 이미 그때부터 저는 무명가수라고 생각하고 늘 데뷔하는 신인가수의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곡이 생겨 최근 TBC가요 TOP10이며 성인가요 콘서트와 같은 큰 방송무대에서 제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무척 좋았습니다. 아직은 무명가수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이름을 알려야죠.


취미와 직업은 다를 수 있는데 집안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당연히 반대하셨습니다. 저는 시댁 어른들께 제일 먼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요즘은 가수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연예인 진출을 꺼리는 게 다반사입니다. 더구나 딸이 아닌 며느리가 가수가 되겠다고 나섰을 때 찬성하는 시댁이 얼마나 될까요? 저희 집도 마찬가지였다고 봅니다.
결혼하고 집안 살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제 복이라 생각할 만큼 시댁에 사랑도 많이 받았구요. 그래서 노래자랑에 나가 수상하고 상품을 받아오면 늘 예쁘게 봐주셨어요. 오히려 지금 제 일을 도와주는 남편이 더 반대를 했던 걸요~. 그것 또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 혹시나 하는 걱정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기로 시댁에서 적극 밀어 주셨 습니다. 며느리를 믿으셨던 것 같습니다.  가수로 데뷔하고 활동이 늘어나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이에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엄마 가수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가수가 꿈인 둘째 딸이 무슨 소리하냐고 엄마인 가수가 자랑스럽다고 하더라구요. 정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자랑 같지만 얼마 전에 시어머님께서 며느리 노래연습 원 없이 하라고 집안 연습실을 만들어 방음부스를 설치해 주셨습니다. 저는 복 받은 엄마이자 며느리인 주부 가수입니다.


혹시 닮고 싶은 가수, 삶의 맨토로 생각하는 가수가 있나요?
네.. 바로 김연자 선생님이십니다. 어릴 적 라디오에서 들었던 김연자씨의 노래는 하나도 빠짐없이 따라 부르고 연습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 11월 전국노래자랑에서 그분을 만나 뵙게 될 것 같아 무척이나 설레고 기쁩니다. 그리고 저의 롤 모델은 요즘 방송에서 주부로 왕성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 가수 김혜연 선배님이십니다. 주로 행사장을 많이 다니다보니 여자 트로트 가수들은 결혼생활을 병행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어 안타깝게도 가수의 길을 도중하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하고 육아에 살림에... 그럼에도 트로트계를 평정하고 계시니 정말 슈퍼우먼이 따로 없지 않습니까. 저는 두 아이 모두 사춘기를 지났고 다행스럽게도 알아서 잘 자라주고 있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도 가수이기 전 주부이기에 집안일, 가수 일 모두 놓치지 않는 여러분들께 희망이 되는 주부가수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이제 막 시작단계이지만 가수활동 중 기뻤던 일이 있다면?
노래방에 제 곡이 올라갔을 때입니다. 사실 신인가수들에게는 이것만큼 기쁜 일이 없습니다. 노래방 음원선정 기준이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노래방에 제 노래가 올라간 날, 그날은 펑펑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반대가 심했던 제 신랑이 매니저 일을 자처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아직은 신인이지만 그래도 빼놓을 수 없는 ‘권미사랑 팬까페’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안 날, 행사장에서 제 노래를 따라하는 팬을 발견한 날, 장터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께서 노래 참 잘한다며 집에 가서 먹으라고 농산물을 챙겨주시던 날... 그러고 보니 기쁘고 감사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꼭 감사하는 분들께 보답할 수 있는 가수 권미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활동 계획과 포부를 말씀해주시죠?
늘 초심의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여러분 곁을 다가가려 합니다. 2015년의 목표는 ‘제 이름 가수 권미를 알리자‘로 목표를 세웠습니다. 생각보다 많이들 저를 불러주셔서 지면을 빌어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6년 목표는 ‘제 노래를 알리자’로 잡았습니다. 가수 권미하면 ‘말로만 사랑’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게 부지런히 발로 뛸 생각입니다. 다음 목표는 트로트 가수들의 또 다른 꿈의 무대 ‘가요무대’에 설 수 있게 열심히 노래 부를 생각입니다. 정말 트로트 가수로 대승해서 가수 장윤정씨처럼 제 이름을 건 TV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너뿐이라고 매달리던 너... 정 때문에 사랑 때문에 살아온 나야... 말로만 사랑 말이라도 못하면...” 타이틀 곡 노랫말에는 익숙해진 부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결혼하고 꽤 시간이 지난 이웃집 박 씨 아주머니가 우리집에 놀러와 엄마에게 털어놓던 푸념 섞인 넋두리 같다. 결혼하기 전엔 사랑한다고 너 밖에 없다고 하더니 이제는 대화하다 말이 막히면 말로만 사랑한다고 내뱉고는 자리를 뜬다. 노랫말 마지막 부분 여자들의 마음을 대신하는 “잊지 마세요 그대 눈길만 바라보던 꽃이 랍니다” 노래를 듣고 공감하지 않을 주부가 어디 있겠는가. 가수 권 미 “말로만 사랑” 오늘 라디오를 켜고 신청곡을 올려보자.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