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작은 쪽 창 너머로 아침 햇살 한줄기 들어오면 흙이 묻은 앞치마를 둘러매고 물레질을 시작한다. 갓 구워낸 새하얀 머그잔에 남편이 정성 들여 볶아 만들어 준 커피를 가득 담아 물레 곁에 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도예에 입문하는지 어느덧 여섯 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여정이 그녀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친다. 세월을 거치며 그릇이 더 그릇다워지듯, 흙을 빚는 연륜을 따라 그는 어쩌면 자신을 더 자신답게 빚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손끝으로는 흙의 부드러운 촉감을, 물레를 밟는 발끝으로는 욕심과 절제의 균형을 조절하며 오늘도 송영실 씨는 도자기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팔리세이즈 파크웨이(Palisades parkway)를 타고 허드슨 강 변을 20분 남짓 달리다가 다시 로컬 길을 10여 분 운전해서 들어가면 라버 베일(River Vale) 이라는 조용한 타운을 만난다. 그리고 거기 도예공방 혜윰이 있다. 겉 보아서는 그저 평범한 가정집 같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치 작은 갤러리처럼 집 안 곳곳에 도자기들이 즐비하다. 하얀색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스웨터를 어깨에 감아 두른 도예작가 송영실씨가 기자를 환하게 맞아준다. 손수 빚어 만든 갈잎색의 다기세트를 테이블 위에 가만히 내려놓고 짙은 보랏빛 티를 우려낸다. “아, 이 차는 크림색 찻잔에 담아 마셨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운 낯빛이 역력하다. 예술가들은 차 한 모금에도 차의 빛깔과 찻잔의 인연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도자기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기자에게 그녀는 “희로애락”이라고 말하고 조용히 웃는다. 그건 아마도 그에게 도자기란 삶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성싶다. 흙냄새 그윽한 혜윰 공방에서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저는 도자기 빚는 사람 송영실 이고요, 여기 혜윰에서 작업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면을 통해 인사드리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혜윰공방은 송영실씨에게 개인 작업실이자 도예교육장이다. 직접 흙을 굽고 글씨를 새겨 만든 혜윰 표짓돌이 작업대 위에 가만히 놓여있다.
혜윰은 ‘생각’이라는 순수우리말입니다. 처음 작업실을 꾸미고 작업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지요. 흙을 만지면서 창작에 대한 생각, 물레를 밟으면서 작품에 대한 생각, 또 학생들을 가르치고 소통하면서도 늘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다 보니 이곳이 제게는 생각의 산실이 된 거죠. 일테면 내 생각이 머무는 곳, 그래서 혜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되었어요.
20년 넘게 패션디자이너로 살았고, 미술의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치면서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도자기를 선택했고 그래서 행복하다.
“한국에서 홍익대학교 공예과 재학 중 가족을 따라 이민을 오게 되었어요. 이민 오자마자 뉴욕에 있는 Parsons에 입학했는데 거기서는 공예가 아닌 Commercial Art를 전공했죠. 졸업 후 Jade Eastern이라는 의류회사에 패션 디자이너로 입사해서 20년 넘게 근무했어요. 이후, 개인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시간에 쫓겨 미처 하지 못했던 드로잉, 페인팅 등 순수미술 작업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도자기를 전공한 후배를 만나면서 도예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은 그림을 그릴 때도, 또 패션 디자인을 할 때도 늘 도자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도예는 다른 장르와 달리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갖고 바로 시작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물레도 필요하고 가마도 사야 하고 작업도 만만치 않아서 첫발 내딛기가 어려웠는데, 마침 공예과 후배가 용기를 줬던 거죠.
출발은 그저 우연처럼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도자기가 제게는 필연이 아니었나 싶어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개인 작업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저도 참 신기할 따름이죠.”
차를 따르는 손 마디에서 금새라도 흙냄새가 날 것 같은 그는 스스로를 이런 사람이라고 말한다.
“저는 한마디로 좀 무던한 사람 같아요. 처음 입사한 직장을 20년 이상 다닌 것만 봐도 아시겠지만, 어떤 일을 시작하면 비교적 지구력이 있는편이에요. 뭐랄까, 타고난 재능에 의존하기보단 꾸준히 노력하는 타입이라고 할까요. 부정적으로 말하면 변화를 두려워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번 길을 들어서면 그 길 끝에 뭐가 있나 일단 끝까지 가보는 사람이죠. 좀 미련해 보이기도 하겠지만요.”
예술가에게 지구력이 없다면 그건 오히려 큰 불행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던함과 끈기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늦었지만 자기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을 소개해드리면, 요리와 베이킹을 좋아하는 대학생 아들, 그리고 버클리에서 보컬을 전공하는 노래하는 딸,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이라면 언제든 조건없이 지원해주는 남편 이렇게 네 식구에요. 다행히 제가 도예를 하는 것에 모두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있고, 전시회나 도자기 정기 세일 같은 이벤트도 열심히 도와줍니다. 제게는 천군만마 같은 존재들이죠.”
타임푸어(time poor)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좀처럼 흙을 만져볼 기회가 없는데, 이처럼 매일같이 흙과 함께 사는 송영실씨의 일상은 남들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작가로서, 또 가르치는 사람으로써 의 삶을 들여다본다
“작업을 위한 일과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규칙적으로 작업하려고 노력해요. 더러는 집중이 안 돼서 작업을 거르는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밤새 시간이 쌓이는 줄도 모르고 새벽까지 일할 때도 있어요.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한마디로 설렘이죠. 무형의 흙으로 태를 만들고 색을 입히고 구워 유형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은 항상 긴장되고 흥분되는 일이라 그 기쁨이 제일 큽니다. 도자기 작업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은 바로 ‘도자기의 선’인데요, 물레를 밟고 손으로 도자기를 빚으며 작품의 선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덧 무념의 경지를 경험하게 되거든요. 이게 뭔가 도를 닦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한 가지에 집중을 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는 거죠.
혹시라도 그 선이 조금이라도 틀어지게 되면 내가 의도했던 작품의 캐릭터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거든요. 도자기는 그렇게 예민한 작업이라 늘 나를 긴장시키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차원에선 무척 행복한 일이죠. 한편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얻는 기쁨도 무척 큽니다.
배우는 학생들의 실력이 나날이 발전해 간다거나, 또 완성된 자신의 작품을 보며 성취감을 얻을 때는 아주 보람이 있고 흐뭇하거든요. 여름방학 동안은 아이들을 위한 클래스도 진행이 되는데, 어른들은 어떤 실용적인 목표물을 정해놓고 작업을 하는 다소 목표지향적인 성향이 있지만, 아이들은 흙을 이용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시도로 작업을 하는 그 순간을 에누리 없이 즐긴다는 점이 서로 다르더군요.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었죠.”
소리소문 없이 많은 사람이 혜윰을 다녀갔고 지금도 여러 학생들이 이 곳에서 작업하고 있다. 또 혜윰뿐만 아니라 Korean Community Center를 통해서도 도자기 클래스를 지도했던 송 작가의 도예교육에는 나름대로 세 가지 지침이 있다.
“그간 공방을 스쳐 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많은 학생이 이곳에 와서 작업하고 있고, 또 KCC를 통해서 도자기 강의도 해왔어요. 도자기 과목을 가르칠 때 전제되는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배우는 분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수업 분위기가 편안하고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죠. 왜냐하면 도예는 무엇보다 작업 환경이 실제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혜윰에서는 세 가지 정도의 틀에서 지도하는데요, 먼저는 도자기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아야 하므로 처음부터 너무 엄격하게 지도하지는 않습니다. 흙을 만지는 일도, 물레를 돌리는 일도 생각처럼 녹록지 않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여러 모양으로 제 도움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혼자의 힘으로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죠.
기대와 설렘으로 첫 수업을 들어온 학생이 물레의 중심을 잡느라 진이 빠져서 도자기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또 두 번째로는 물레 사용이 너무 힘겨운 분들에겐 물레 대신 손으로 빚어 만드는 방법을 권해드리죠. 손작업하는 동안 흙과 친숙해지면 물레 사용이 한결 쉬워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세 번째로 저는 학생들 서로 간의 소통을 중요시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을 하다 보면 뜻밖에 서로를 통해 배우고 얻는 것이 많거든요. 작품의 다양성, 아이디어, 그리고 방법 등을 공유하며 함께 발전해 나가는 거죠. 때로는 작업을 멈추고 함께 차를 마시며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예술작업은 삶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해에는 그간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했다고 한다. 혜윰 공방의 학생들과 KCC 수강생들이 함께 준비했던 첫 전시회의 풍경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었다.
“그동안 제 개인적으로는 여러 단체의 기금마련을 위한 전시회에 참여했고 또 판매했었는데 작년에 KCC 갤러리에서 혜윰 학생들과 KCC 수강생들이 함께 첫 전시회를 열었어요.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마련한 행사였는데 제게는 참 의미 있는 자리였어요. 앞으로도 지속해서, 또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할 계획이고요, 또 저의 첫 개인전도 구상 중입니다. 이런 여러 전시 기회를 통해 무엇보다 도자기를 많이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도자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작품성 보다는 실용적인 생활도자기를 선호하는 가정주부들이 많다. 그 점을 고려해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 맞춰 작업실을 오픈하고 있다.
“작업하고 싶은 분은 누구나 오셔서 배울 수 있어요. 매주 화, 수, 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수업이 진행되고, 1시부터 3시까지는 각자 자유롭게 작업하실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주 1~2회를 권하고 있지만, 개인 선택에 따라 횟수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또 여름방학 동안은 아이들 클래스도 오픈하고요. 대다수의 수강생이 생활도자기를 선호하지만, 특별히 작품활동을 하기 원하시는 분들은 구별해서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해마다 Mother’s Day와 Christmas 두 번에 걸쳐 정기세일을 하고 있는데 다녀가신 분들의 지속적인 요청이 있어서 전화나 이메일로 주문 제작을 하기도 합니다.”
도예라고 하면 상당히 요원한 취미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 선뜻 마음을 내기가 어렵기도 하고 또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분야라고도 생각하기 쉬운데 송영실 작가는 도자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도예를 흔히 어렵고 복잡한 취미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돈이 많이 드는 활동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흙이나 재료 구매가 쉽고 가격도 저렴해서 실제로는 여타의 미술활동과 대동소이합니다. 아시다시피 현대사회의 가장 큰 화두가 건강과 웰빙이잖아요. 그래서 다들 올개닉 푸드에 대한 관심들이 높죠. 저는 그런 먹거리에 대한 욕심 이 전에 그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여기서 만드는 생활도자기는 모두 천연 흙과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식기부터 건강을 지켜주거든요. 또 물레를 밟고, 빚고 깎으며 온갖 정성을 쏟아 만든 자신의 작품이 식탁에 올라왔을 때의 정서적 충족감과 성취감은 아마 다른 예술 장르에서는 얻기 어려운 도자기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차분히 도자기 예찬을 말하는 그의 얼굴이 ‘참 좋은 사람’ 같은 친근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날마다 흙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 그도 점점 자연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혜윰이라는 말처럼 그의 손끝에서 자기 생각이 빚어지고, 그 생각이 사물이 되는 이 예술적행위가 그에게 무한한 행복을 주는 것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행복합니다. 이 말이 도자기로 인한 제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말같네요. 앞서도 언급했듯이 삶의 희로애락이 도예라는 예술 행위 안에 모두 들어있거든요. 저는 제가 빚는 항아리 속에, 그릇 속에 그리고 여타의 작품들 속에 제 생각과 마음과 삶의 경험을 새겨넣게 되니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틈틈이 책도 읽고 작품도 구상하고 드로잉도 하죠. 그렇게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보내는 모든 시간이 저는 다 행복합니다.”
행복하다는 말을 끝으로 두시간 남짓했던 기자와의 대화는 끝이 났다. 흙과 더불어 사는 사람, 손끝으로 생각을 빚어내는 혜윰공방. 문득 예술가로 사는 그의 삶이 한없이 부러웠다. 요란스럽지 않고 마치 도자의 향기처럼 자신의 삶을 차분히 만들어가는 도예작가 송영실씨. 그는 자신을 통해 도자기가 좀 더 보편화하길 기대한다는 마지막 바램도 잊지않았다.
혜윰 공방 509 Alosio Dr. River Vale NJ 07675 TEL 201-803-1305
도예작가 송영실 youngartmaker@hotmail.com
S.CASA 편집부
작업실 작은 쪽 창 너머로 아침 햇살 한줄기 들어오면 흙이 묻은 앞치마를 둘러매고 물레질을 시작한다. 갓 구워낸 새하얀 머그잔에 남편이 정성 들여 볶아 만들어 준 커피를 가득 담아 물레 곁에 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도예에 입문하는지 어느덧 여섯 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여정이 그녀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친다. 세월을 거치며 그릇이 더 그릇다워지듯, 흙을 빚는 연륜을 따라 그는 어쩌면 자신을 더 자신답게 빚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손끝으로는 흙의 부드러운 촉감을, 물레를 밟는 발끝으로는 욕심과 절제의 균형을 조절하며 오늘도 송영실 씨는 도자기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팔리세이즈 파크웨이(Palisades parkway)를 타고 허드슨 강 변을 20분 남짓 달리다가 다시 로컬 길을 10여 분 운전해서 들어가면 라버 베일(River Vale) 이라는 조용한 타운을 만난다. 그리고 거기 도예공방 혜윰이 있다. 겉 보아서는 그저 평범한 가정집 같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치 작은 갤러리처럼 집 안 곳곳에 도자기들이 즐비하다. 하얀색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스웨터를 어깨에 감아 두른 도예작가 송영실씨가 기자를 환하게 맞아준다. 손수 빚어 만든 갈잎색의 다기세트를 테이블 위에 가만히 내려놓고 짙은 보랏빛 티를 우려낸다. “아, 이 차는 크림색 찻잔에 담아 마셨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운 낯빛이 역력하다. 예술가들은 차 한 모금에도 차의 빛깔과 찻잔의 인연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도자기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기자에게 그녀는 “희로애락”이라고 말하고 조용히 웃는다. 그건 아마도 그에게 도자기란 삶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성싶다. 흙냄새 그윽한 혜윰 공방에서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저는 도자기 빚는 사람 송영실 이고요, 여기 혜윰에서 작업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면을 통해 인사드리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혜윰공방은 송영실씨에게 개인 작업실이자 도예교육장이다. 직접 흙을 굽고 글씨를 새겨 만든 혜윰 표짓돌이 작업대 위에 가만히 놓여있다.
혜윰은 ‘생각’이라는 순수우리말입니다. 처음 작업실을 꾸미고 작업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지요. 흙을 만지면서 창작에 대한 생각, 물레를 밟으면서 작품에 대한 생각, 또 학생들을 가르치고 소통하면서도 늘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다 보니 이곳이 제게는 생각의 산실이 된 거죠. 일테면 내 생각이 머무는 곳, 그래서 혜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되었어요.
20년 넘게 패션디자이너로 살았고, 미술의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치면서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도자기를 선택했고 그래서 행복하다.
“한국에서 홍익대학교 공예과 재학 중 가족을 따라 이민을 오게 되었어요. 이민 오자마자 뉴욕에 있는 Parsons에 입학했는데 거기서는 공예가 아닌 Commercial Art를 전공했죠. 졸업 후 Jade Eastern이라는 의류회사에 패션 디자이너로 입사해서 20년 넘게 근무했어요. 이후, 개인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시간에 쫓겨 미처 하지 못했던 드로잉, 페인팅 등 순수미술 작업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도자기를 전공한 후배를 만나면서 도예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은 그림을 그릴 때도, 또 패션 디자인을 할 때도 늘 도자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도예는 다른 장르와 달리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갖고 바로 시작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물레도 필요하고 가마도 사야 하고 작업도 만만치 않아서 첫발 내딛기가 어려웠는데, 마침 공예과 후배가 용기를 줬던 거죠.
출발은 그저 우연처럼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도자기가 제게는 필연이 아니었나 싶어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개인 작업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저도 참 신기할 따름이죠.”
차를 따르는 손 마디에서 금새라도 흙냄새가 날 것 같은 그는 스스로를 이런 사람이라고 말한다.
“저는 한마디로 좀 무던한 사람 같아요. 처음 입사한 직장을 20년 이상 다닌 것만 봐도 아시겠지만, 어떤 일을 시작하면 비교적 지구력이 있는편이에요. 뭐랄까, 타고난 재능에 의존하기보단 꾸준히 노력하는 타입이라고 할까요. 부정적으로 말하면 변화를 두려워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번 길을 들어서면 그 길 끝에 뭐가 있나 일단 끝까지 가보는 사람이죠. 좀 미련해 보이기도 하겠지만요.”
예술가에게 지구력이 없다면 그건 오히려 큰 불행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던함과 끈기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늦었지만 자기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을 소개해드리면, 요리와 베이킹을 좋아하는 대학생 아들, 그리고 버클리에서 보컬을 전공하는 노래하는 딸,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이라면 언제든 조건없이 지원해주는 남편 이렇게 네 식구에요. 다행히 제가 도예를 하는 것에 모두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있고, 전시회나 도자기 정기 세일 같은 이벤트도 열심히 도와줍니다. 제게는 천군만마 같은 존재들이죠.”
타임푸어(time poor)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좀처럼 흙을 만져볼 기회가 없는데, 이처럼 매일같이 흙과 함께 사는 송영실씨의 일상은 남들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작가로서, 또 가르치는 사람으로써 의 삶을 들여다본다
“작업을 위한 일과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규칙적으로 작업하려고 노력해요. 더러는 집중이 안 돼서 작업을 거르는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밤새 시간이 쌓이는 줄도 모르고 새벽까지 일할 때도 있어요.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한마디로 설렘이죠. 무형의 흙으로 태를 만들고 색을 입히고 구워 유형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은 항상 긴장되고 흥분되는 일이라 그 기쁨이 제일 큽니다. 도자기 작업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은 바로 ‘도자기의 선’인데요, 물레를 밟고 손으로 도자기를 빚으며 작품의 선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덧 무념의 경지를 경험하게 되거든요. 이게 뭔가 도를 닦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한 가지에 집중을 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는 거죠.
혹시라도 그 선이 조금이라도 틀어지게 되면 내가 의도했던 작품의 캐릭터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거든요. 도자기는 그렇게 예민한 작업이라 늘 나를 긴장시키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차원에선 무척 행복한 일이죠. 한편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얻는 기쁨도 무척 큽니다.
배우는 학생들의 실력이 나날이 발전해 간다거나, 또 완성된 자신의 작품을 보며 성취감을 얻을 때는 아주 보람이 있고 흐뭇하거든요. 여름방학 동안은 아이들을 위한 클래스도 진행이 되는데, 어른들은 어떤 실용적인 목표물을 정해놓고 작업을 하는 다소 목표지향적인 성향이 있지만, 아이들은 흙을 이용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시도로 작업을 하는 그 순간을 에누리 없이 즐긴다는 점이 서로 다르더군요.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었죠.”
소리소문 없이 많은 사람이 혜윰을 다녀갔고 지금도 여러 학생들이 이 곳에서 작업하고 있다. 또 혜윰뿐만 아니라 Korean Community Center를 통해서도 도자기 클래스를 지도했던 송 작가의 도예교육에는 나름대로 세 가지 지침이 있다.
“그간 공방을 스쳐 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많은 학생이 이곳에 와서 작업하고 있고, 또 KCC를 통해서 도자기 강의도 해왔어요. 도자기 과목을 가르칠 때 전제되는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배우는 분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수업 분위기가 편안하고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죠. 왜냐하면 도예는 무엇보다 작업 환경이 실제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혜윰에서는 세 가지 정도의 틀에서 지도하는데요, 먼저는 도자기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아야 하므로 처음부터 너무 엄격하게 지도하지는 않습니다. 흙을 만지는 일도, 물레를 돌리는 일도 생각처럼 녹록지 않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여러 모양으로 제 도움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혼자의 힘으로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죠.
기대와 설렘으로 첫 수업을 들어온 학생이 물레의 중심을 잡느라 진이 빠져서 도자기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또 두 번째로는 물레 사용이 너무 힘겨운 분들에겐 물레 대신 손으로 빚어 만드는 방법을 권해드리죠. 손작업하는 동안 흙과 친숙해지면 물레 사용이 한결 쉬워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세 번째로 저는 학생들 서로 간의 소통을 중요시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을 하다 보면 뜻밖에 서로를 통해 배우고 얻는 것이 많거든요. 작품의 다양성, 아이디어, 그리고 방법 등을 공유하며 함께 발전해 나가는 거죠. 때로는 작업을 멈추고 함께 차를 마시며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예술작업은 삶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해에는 그간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했다고 한다. 혜윰 공방의 학생들과 KCC 수강생들이 함께 준비했던 첫 전시회의 풍경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었다.
“그동안 제 개인적으로는 여러 단체의 기금마련을 위한 전시회에 참여했고 또 판매했었는데 작년에 KCC 갤러리에서 혜윰 학생들과 KCC 수강생들이 함께 첫 전시회를 열었어요.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마련한 행사였는데 제게는 참 의미 있는 자리였어요. 앞으로도 지속해서, 또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할 계획이고요, 또 저의 첫 개인전도 구상 중입니다. 이런 여러 전시 기회를 통해 무엇보다 도자기를 많이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도자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작품성 보다는 실용적인 생활도자기를 선호하는 가정주부들이 많다. 그 점을 고려해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 맞춰 작업실을 오픈하고 있다.
“작업하고 싶은 분은 누구나 오셔서 배울 수 있어요. 매주 화, 수, 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수업이 진행되고, 1시부터 3시까지는 각자 자유롭게 작업하실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주 1~2회를 권하고 있지만, 개인 선택에 따라 횟수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또 여름방학 동안은 아이들 클래스도 오픈하고요. 대다수의 수강생이 생활도자기를 선호하지만, 특별히 작품활동을 하기 원하시는 분들은 구별해서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해마다 Mother’s Day와 Christmas 두 번에 걸쳐 정기세일을 하고 있는데 다녀가신 분들의 지속적인 요청이 있어서 전화나 이메일로 주문 제작을 하기도 합니다.”
도예라고 하면 상당히 요원한 취미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 선뜻 마음을 내기가 어렵기도 하고 또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분야라고도 생각하기 쉬운데 송영실 작가는 도자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도예를 흔히 어렵고 복잡한 취미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돈이 많이 드는 활동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흙이나 재료 구매가 쉽고 가격도 저렴해서 실제로는 여타의 미술활동과 대동소이합니다. 아시다시피 현대사회의 가장 큰 화두가 건강과 웰빙이잖아요. 그래서 다들 올개닉 푸드에 대한 관심들이 높죠. 저는 그런 먹거리에 대한 욕심 이 전에 그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여기서 만드는 생활도자기는 모두 천연 흙과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식기부터 건강을 지켜주거든요. 또 물레를 밟고, 빚고 깎으며 온갖 정성을 쏟아 만든 자신의 작품이 식탁에 올라왔을 때의 정서적 충족감과 성취감은 아마 다른 예술 장르에서는 얻기 어려운 도자기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차분히 도자기 예찬을 말하는 그의 얼굴이 ‘참 좋은 사람’ 같은 친근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날마다 흙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 그도 점점 자연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혜윰이라는 말처럼 그의 손끝에서 자기 생각이 빚어지고, 그 생각이 사물이 되는 이 예술적행위가 그에게 무한한 행복을 주는 것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행복합니다. 이 말이 도자기로 인한 제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말같네요. 앞서도 언급했듯이 삶의 희로애락이 도예라는 예술 행위 안에 모두 들어있거든요. 저는 제가 빚는 항아리 속에, 그릇 속에 그리고 여타의 작품들 속에 제 생각과 마음과 삶의 경험을 새겨넣게 되니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틈틈이 책도 읽고 작품도 구상하고 드로잉도 하죠. 그렇게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보내는 모든 시간이 저는 다 행복합니다.”
행복하다는 말을 끝으로 두시간 남짓했던 기자와의 대화는 끝이 났다. 흙과 더불어 사는 사람, 손끝으로 생각을 빚어내는 혜윰공방. 문득 예술가로 사는 그의 삶이 한없이 부러웠다. 요란스럽지 않고 마치 도자의 향기처럼 자신의 삶을 차분히 만들어가는 도예작가 송영실씨. 그는 자신을 통해 도자기가 좀 더 보편화하길 기대한다는 마지막 바램도 잊지않았다.
혜윰 공방 509 Alosio Dr. River Vale NJ 07675 TEL 201-803-1305
도예작가 송영실 youngartmaker@hotmail.com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