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표현하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무용가 이송희

뉴욕에서 춤꾼으로 살게 된 인연(Karma) 무대에서 표현하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무용가 이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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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땅에 살고 있지만, 한인 동포가 많은 뉴욕, 뉴저지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은 '우리의 문화'를 접할 기회가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분명 행운이다. 각종 퍼레이드나 정기 공연을 통해 혹은 인근의 다인종 학생이 많은 학교에서 전통 음악과 무용을 접할 기회는 늘 열려있다. 현지인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어린 2세들에게 자신들의 뿌리를 알려주는 활동을 하는 이들의 숨은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실제로 뉴욕 지역에서 꾸준히 전통 예술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서 이들의 활발한 활동에 새삼 박수를 보내게 된다. 동포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소개되는 단체나 개인의 공연 소식 중 귀에 익숙한 한국 무용가 이송희도 그중 한 분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뉴욕에서 지금의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배경까지 알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스카사가 이송희씨를 만나 질문한 내용도 그런 소소한 궁금증인 개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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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씨가 사는 퀸즈 서니사이드의 한 커피샵에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청바지 차림의 그녀는 30대로도 보일 정도로 '핏'한 체격이었다. 역시 무용을 하는 분이라 다르다고 감탄했는데, 가깝게 마주 앉은 그녀의 피부 역시 실제 나이를 전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공연장에서 무대 의상과 분장을 한 모습만 봤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예의 상이 아닌 진심으로 몸매와 피부에 대한 덕담을 건네니까 “아이를 안 낳봐서 그런가?”라고 웃으며 대꾸한다. “오래전부터 아침엔 사과 정도로 가볍게 먹고 나이 먹을수록 체력관리를 더 하게 돼요. 무대에 계속 오르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죠.”

무조건 무용이 좋아서 부산여대 체육학과 소속으로 현대무용과 고전무용을 배우다.
특별한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중2 때 그냥 무용이 좋아서 시작했죠. 교직에 있던 어머니가 원래 저에게 피아노를 시켰는데 썩 흥미를 느끼지못했어요. 그러다가 어머님 친구분이 대학에서 무용을 가르치셨는데 그분에게 배우게 되었던 거에요. 해보니까 피아노보다는 훨씬 재밌고 적성에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용 학원을 꾸준히 다녔고 부산여대에 입학했어요. 당시엔 학교에 무용학과는 없고 체육학과 소속으로 현대무용과 고전무용을 각각 전공, 부전공으로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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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립 무용단에서 심사를 거쳐 수석 무용수로 19년 동안 활동
부산 시립 무용단원으로 시작했어요. 당시엔 서울 국립, 서울 시립 그리고 부산 시립 3개의 무용 단체밖에는 없었어요. 부산시 소속이었기때문에 우리 신분은 공무원 별정직이었고 2년마다 심사를 통해 계속 무용단에서 남아 활동하는 구조였어요. 그래서 처음엔 단원으로 이후엔 계속 심사를 거쳐 수석 무용수로 활동했어요. 정확하게 19년을 부산 시립 무용단에 있었네요.

이송희씨는 무용단 수석으로 ‘히로시마 그날 이후’, ‘아비를 기다리며’, ‘찔레꽃’등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 활동했다. 무용단의 프로그램 중 고전 무용과 현대 무용 창작극을 함께 한 경력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학교와 직장까지 만 40세가 되도록 부산을 벗어나지 않았던 그녀가 뉴욕에 오게 된 계기는 새로운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40대에 뉴욕 연수를 와서 앨빈 앨리(Alvin Alley)에게서 무용을 배우다
같은 부산시 소속 예술 단체 중 교향악단, 어린이 합창단, 국악단 등은 매년 단원들을 해외 연수를 시켜주는 기회가 있었는데 무용단원은 해당이 되지 않았어요. 고전무용단이 무슨 해외 연수가 필요한가? 인간문화재에게 배우는 것이 낫다는 인식 때문이었죠. 한 단체에서 20년을 몸담았고, 무용수로서는 노년이라 할 수 있는 40대에 들어서면서 나자신은 물론 무용단에 새로운 기운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거의 3년을 단장님을 졸랐어요. 연수를 보내달라고. 결국, 1997년 유급 1년, 무급 1년의 조건으로 뉴욕에 2년간 연수 허락이 났고 앨빈 앨리(Alvin Alley)에게서 무용을 배울 기회가 생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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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꿔준 허드슨 길드 극장에서의 공연 그리고 뉴욕타임즈 리뷰기사
앨빈 앨리에게서 열심히 춤을 배우면서 바쁘게 1년이 지나갔어요. 연수를 온 것이기 때문에 결과물을 보여줘야 했는데 지금은 돌아가신 한동신 선생님이 작은 무대라도 마련하고 언론사에 연락해서 미디어 노출을 해서 성과물을 남겨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며 도와줬죠. 그래서 올린 무대가 97년 12월 허드슨 길드 극장에서의 공연이었어요. 창작 현대무용 카르마와 승무, 살풀이춤이었는데 너무나 뜻밖에도 그 공연의 리뷰가 뉴욕타임스 아트 섹션에 실렸어요. 사진도 크게 곁들여서. 정말 행운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죠.


뉴욕타임즈의 권위있는 무용평론가 잭 앤더슨 (Jack Anderson)의 리뷰는 이런 내용이었다.


한국의 댄서 이송희의 무대는 현재와 과거의 안무가 공존하며 영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그녀는 ‘카르마’에서 능숙한 현대적 안무를 보여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한국 전통 춤사위를 보여준 2개의 솔로 ‘승무’와 ‘한풀이 춤’이었다.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으로 가득 찬 ‘승무’는 금욕주위와 신비주의의 느낌을 전달했고 얼굴과 손을 가린 의상은 세속을 벗어나 명상을 찾는 이의 모습이었다. 


세심하게 계산된 움직임의 속도는 삶의 영속적인 리듬감을 의미했고 긴 소매에서 빠져나온 손이 역동적으로 북을 두드릴 때 그녀는 기쁨으로 충만한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나타내는 듯했다. 이송희의 현대 무용 솔로 ‘카르마’는 약간은 과도한 신비함을 보여줬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영적인 고통을 겪는 듯한 인물을 연기했는데 때때로 불길한 분위기를 가진 다른 댄서의 위협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마지막의 높은 점프를 통해 모든 고난이 극복되었음을 표현했다.


1년간의 연수 기간 막바지에 귀국과 체류 사이에서 고민하던 이송희씨에게 뉴욕타임스 리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뉴욕에 남아 무용을 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것 외에도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활동 할 수 있는 필요조건인 비자를 해결해 줬기 때문이다. 그녀가 예술인 비자 전문 이민 변호사를 찾아갔을 때 그 변호사는 수북이 준비해 간다른 모든 서류를 제쳐놓고 “이 기사 하나면 됩니다”라고 뉴욕타임스 카피본 하나만 챙겼을 정도였다. 변호사의 장담대로 그녀는 곧 비자를 받았고 불과 3년 뒤에 영주권까지 얻었다. 9.11 테러 직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행운이기도 했다.


13년 동안 유지된 청사초롱 무용단
누구나 마찬가지겠죠. 저에게는 주위 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박윤숙, 박수연 선배 등 먼저 뉴욕에 와서 전통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분들이 강습과 무대 기회를 주셨어요. 강습 기회가 생길 때마다 열심히 해 나갔고 특히 뉴저지 지역 어머님들의 요청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작되었던 청사초롱 무용단은 13년 동안 유지하기도 했죠. 한편으로는 내 작품을 준비하면서 외부 지원을 신청했어요. 2013년 카르마 2, 카르마 3으로 퀸즈 예술 위원회에서 그랜트를 받기도 했죠. 즉 외부 공연, 강의 등은 전통 무용을 주로 하면서 현대 창작무용 개발도 함께 해왔던 셈입니다.


내 삶의 터전인 뉴욕과의 인연을 멈추지 않을 나의 춤으로 표현하다
적어도 앞으로 한 10년은 끄떡없이 춤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제 춤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저의 대표적인 연작 시리즈 카르마를 계속 무대에 올릴 것이고, 어린 세대에게 전통 무용을 가르치는 것도 사명감으로 계속해나갈 것이고요. 무엇보다 기회만 있으면, 불러만 주면 어디든 가서 제 무용을 보여드려야죠. 우리는 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는 운명이쟎아요. 그리고 뉴욕이라는 곳이 저와 인연이 닿은 것이죠. 제 춤의 무대가 되었으니까요.


이송희씨는 현재 한국 공연 예술센타(대표 박수연) 단원으로 활약중이다.


글 Won Young Park 사진 스튜디오 엠, 김도영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