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브릭은 물감, 공간은 캔버스로 패브릭 드로잉 작가 정다운

패브릭은 물감, 공간은 캔버스로 패브릭 드로잉 작가 정다운

‘패브릭 드로잉(Fabric Drawing)’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천 위에 그리는 그림’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 정다운, 그녀의 패브릭 드로잉은 천이 물감이 되고, 공간이 캔버스가 되는 예술이다. 기존의 화이트 큐브로 대변되는 미술관 속 예술작품과 달리, 예측 불허하고 역동적인 그녀의 패브릭 붓질은 공간의 제약이 없고 그 공간의 한 구성 요소가 된다. 패브릭 래핑으로 폐건물에 색을 입히고, 층과 층 사이 허공을 패브릭이라는 물감을 칠해 캔버스를 만들어버리는 독창적이고 유연한 그녀만의 작품세계는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패브릭 드로잉 작가, 정다운을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정다운 작가님. 이런 패브릭 드로잉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안녕하세요. 정다운 작가입니다. 서양화를 전공한 제가 ‘천(Fabric)’ 작업을 하게 되기까지는 남다른 고민과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물감, 캔버스, 붓. 서양화 실기실의 참 익숙한 풍경이죠. 그리고 비슷한 주제와 기법으로 그림을 그려요.

그때 저는 이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것들을 제 관점에서 해석하고 자유롭게 표현했죠. 그러다 흔히 볼 수 있었던 옷의 소재인 천에 저만의 해석을 더 했어요. 당연히 그 과정은 쉽지 않았고, 한동안 제대로 된 작업 한 점 나오지 않았죠. 그러다 옷 위에 액션 페인팅을 더한 첫 설치작품을 완성하고 계속해서 색다른 표현 기법을 연구했어요. 그 후 오직 옷만을 가지고 쌓기, 묶기, 매달기, 굳히기 등을 시도하며 캔버스에서도 완전히 탈피했죠. 그렇게 제 손이 붓이 되었고, 옷이 캔버스 천과 물감을 대신하는 ‘패브릭 드로잉 (Fabric Drawing)’을 완성했습니다.

패브릭 드로잉으로 첫 번째 전시를 하고 나서 다행히도 많은 분의 흥미와 관심을 얻어, 여러 전시 초대와 공모 당선, 기사에 실리는 등 다양한 기회를 통해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신진작가로서 경력이 많지 않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게되니 천과 옷감들로 고군분투하던 그때가 참 소중히 생각되네요.


패브릭 드로잉은 어떤 것인가요? 작업방식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제 작업의 표현수단을 위한 소재는 천(Fabric)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작업에 행하는 기법에 따라 다양한 천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질감을 보실 수 있어요.

조형적 구성방식을 분석하면 정형화된 구조의 캔버스 틀을 기초적 지지대로 삼아 그 위에 캔버스를 짜듯 천을 고정합니다. 이때 고정하는 힘의 세기의 정도에 따라 질감과 속성이 다른 천들이 다양하게 표현되죠. 여러 가지 질감과 색의 천을 조형적으로 연출하며, 당기고 묶고 늘어뜨리기, 감싸기, 더 나아가 팽창시키고 왜곡시킵니다. 그 천들은 반복 중첩되어 패턴으로 재구성되고, 이미지 안의 다층적 구조를 형성하며 계속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제 작업 방식은 임의의 구성에서 우연의 결과를 얻고, 이렇게 반복되는 행위들은 규칙성을 갖고 하나의 화면을 완성합니다. 천과 함께 캔버스에 물감을 사용하여 함께 구성하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제 작품은 관람객이 보기에 따라 천도 될 수 있고, 빈 공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물감인 것처럼 여러 가지 착시를 제시해요.


저도 실제로 작가님의 작품을 접했을 때 페인팅 작품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때 보았던 작품이 에스카사 1월호의 표지를 장식해주었는데요, 패브릭 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면 참 다양한 곳에서 전시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설치 작업도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네. 설치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을 시작으로 네 차례의 설치를 했어요. 첫 번째는 주로 설치작가님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미술관에 초대를 받았는데, 참 궁금했어요. 서양화를 전공해 제대로 된 설치 작품이 없었던 저를 어떤 확신으로 초대를 하셨는지가요. 제 작품에서 다양한 가능성이 보인다는 말씀 해주시더라고요.

넓이 2.2m, 깊이 10m, 높이 2.2m의 컨테이너 공간이었는데, 도구도 잘 다루지 못하였고 기술이 부족했지만, 왠지 성취욕과 도전의식이 생겨 다른 작가님들보다 며칠을 더 걸려 완성했습니다. 아직도 그 작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락해주시는 관계자분들이 많으세요. 또 다른 작업으로는 필동 ‘예술통’에 여러 설치 작업이 있습니다. 예술가의 참여를 통해 건축의 구조체와 예술의 조화, 감상자 혹은 건물을 이동하는 사람들의 실용성, 편의성 모두의 조화를 이루는 작업이었어요. 흔히 주로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나 미술관이 아닌 구조였기에 계단에서 사다리 타는 고공작업, 작업해보지 않았던 지지대를 두고 며칠을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보람을 느끼는 설치였죠. 요즘은 시간적 체력적 한계로 의미가 있는 공간에서 꼭 하고 싶은 작업만 하고 있어요. 현재는 낙후된 지역의 건물에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다양한 곳, 경험하지 못한 곳에서의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네덜란드 라이스바이크텍스타일 비엔날레(Rijswijk Textile Biennial 2017)’에 초청되어 전시에 참여하셨는데, 유럽권에서의 첫 전시가 색다르셨을 것 같아요.
2016년 여름에 네덜란드의 예술가를 위한 매거진에서 한 기자분이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2017년에 있을 Textile Biennial에 전시를 하면 좋을 거 같다며 포트폴리오를 요청했고, 6개월 후 미술관에서 24명의 international artist 작가로 초대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동안은 아시아권에서 전시했지만 유럽권은 처음 이었기에 기대도 되고 기뻤습니다.

작가들에게 해외 전시를 할 시 부담되는 운송, 보험, 도록을 다 지원해 주는 등의 시스템이 참 놀라웠어요. 그때 프레임 작업 여섯 점을 전시했는데, 만약 제가 ‘프레임 작품이 아니라 설치작품을 했더라면 더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은 남더라고요. 그래도 여러 나라 사람들이 SNS에 제 작품을 공유해주시기도 하고 꽤 반응이 좋았어요.


아트1 주최의 ‘2017 아티커버리(articovery)’ 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TOP 1로 선정되기도 하셨는데요, 이 외에도 기억에 남는 페어 라던가 여러 가지 경험담 들려주세요.
사실 여러 일정으로 아티커버리가 진행되는 4개월 동안 큰 관심이나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TOP1이 되고, 신문이며 인터넷 기사까지 보도해주셔서 저에게는 좋은 이력이 됐죠. 저는 작가 활동 시작부터 아시아권의 페어에 여러 차례 참여했어요.

그리고 페어를 통해 중국, 홍콩 등 기업에서의 협업 제안도 받기도 했죠. 그러다 2017년에는 많은 전시와 페어보다는 집중과 선택의 시간을 갖기로 했기에 작년에 참가한 KIAF와 대구아트페어는 ‘앞으로 매해 작품을 선보이자’하는 계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두 페어 모두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국내 활동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이번 겨울에는 서울에서 단체전, 설치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획 중인 프로젝트로는 웨딩과 패브릭 드로잉 그리고 작가입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준비를 하는데 제가 사용하는 천과 웨딩드레스의 천을 함께 사용하여 작업을 시도하려 합니다. 낙후된 지역의 건물을 감싸는 래핑 설치작업입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석사 논문을 쓰고 있어요. 계속되는 작품 활동으로 졸업이 많이 늦어졌죠.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계획하는 모든 일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 2년간 많은 전시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작업으로 중요한 전시를 꾸려나가는 것이 저에게나 제 작업을 응원해주시는 분들과 작품을 보시는 모든 분에게 최선이라 생각했어요.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고민하는 것 또한 작업의 일부이며, 실질적으로 몸을 쓰지 않는 순간에도 불안해 하지 않으려 해요.

마음이 준비되어야 어떤 일이든 잘 해내는 것처럼요. 제일 중요한 것은 저 스스로가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작업을 하는 겁니다. 아직 더 나아가야 할 길이 멀기에, 저의 일상이 흔들림 없이 꾸준히 노력해 예술가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으로 열심히 성장하고 싶습니다.


글 손시현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