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전역을 커버하는 기독교 복음방송인 단비 TV의 인기 아나운서 최지혜씨가 7월 표지를 장식해 주었다. 미스코리아 출신다운 늘씬한 키에 편안한 외모를 지닌 그녀는 부드러운 방송 진행으로 입사 10개월 만에 뉴욕 일대에선 이미 유명인이다. 화면에 나타난 여유 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취재도 하고, 뉴스를 위한 오프닝 클로징 멘트를 직접 작성하는 등 교민사회와 미주 한인 사회 현안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최지혜 씨. 대학생 시절부터 방송인의 꿈을 키우다가 SBS CNBC 리포터부터 시작하여 KBS, 디지털 조선일보 리포터, KEB하나외환은행, RBS TV 아나운서와 전문 MC, 키움증권 채널K 앵커, 시황 캐스터 등 한국에서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다가 돌연 미국으로 건너와 한인 기독교방송 ‘단비 기독교TV’에 몸담게 되기까지 그녀의 방송 너머 이야기가 궁금하다.
지혜 씨 안녕하세요. ‘단비 TV’를 모르는 분을 위해 간단한 안내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단비 TV 아나운서 최지혜입니다. 단비 TV는 미 동부 뉴욕, 뉴저지 지역을 넘어서 미주 전역으로 방송되는 기독교 복음 방송국입니다. 우리 방송은 타임워너케이블 채널 1487번으로 하루 24시간 동안 말씀과 찬양, 인터뷰, 설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시청자와 만나고 있지요. 단비의 사전적 의미는 ‘꼭 필요한 때 알맞게 내리는 비’라는 뜻인데 크리스천이라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고 봐요. 그점을 단비 방송이 놓치지 않고 시청자에게 전해주자는 큰 뜻을 담고 있어요. 말 그대로 오랜 가뭄 끝에 만난 반가운 빗방울 같은 방송 사역을 하는 겁니다. 찬양곡 ‘빈들의 마른 풀 같이’에서 “시들은 나의 영혼에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라는 구절이 있는데 부족하지만 제가 단비 TV에서 조금이나마 ‘성령의 단비를 붓는 작은 역할’이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쉼터에 있는 청년을 대상으로 무료 스피치 강의 등 한국에서 여러 방송사를 거치며 다양한 방송일을 하셨죠? 그 뒤 어떤 계기로 미국으로 와서 기독교방송을 하게 되었는지 지혜 씨의 방송 이력이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3년간 방송 활동을 했었어요. 이곳 단비 기독교 TV에서 활동한 지는 10개월 정도 되어 갑니다. 한국에서 처음 방송 활동을 시작한 게 지하철 METRO TV 리포터였어요. 그 후 SBS CNBC에서 경제 방송을 하게됐고, 외환은행 사내방송 아나운서와 키움증권 채널 K 그리고 기독교 방송 C채널을 거쳐 지금의 단비 기독교 TV로 오게 되었죠. 한국에서 일할 때, 세속적인 표현으로 얘기하면 ‘돈을 벌 기회’가 많이 보였어요. 특히 경제 방송을 할 때는 주식전문가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조금만 팁을 받으면 금방 부자가 될 것도 같았죠 (웃음) 하지만, 제가 자라온 환경 탓인지 돈보다는 사람답게 사는 게 더 중요해 보였어요. 아버지는 공무원이시고 어머니는 농협원이신데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저를 봉사현장으로 종종 데리고 가셨어요. 크게 부족한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부자도 아니었던 가정환경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정성으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걸 보고 옆에서 따라 했어요. 그러면서 돈보다는 나눔의 기쁨이 크다는 걸 자연스레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이런 저에게 ‘돈과 투자’를 다루는 경제방송은 물음표를 많이 줬어요. 문득 든 생각이 “내가 가진 달란트가 ‘목소리’와 ‘소통’이라면 투자 정보를 전하는 것 이상으로 더 가치 있는 곳에 쓰고 싶다”라는 욕구가 샘솟았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무작정 사표를 썼습니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 두면 부모님 걱정도 크셨겠네요. 사표까지 쓰면서 지혜 씨가 하고 싶은 일이 궁금해집니다.
물론 부모님은 제가 하루아침에 일을 그만두니 걱정이 많으셨어요. 하지만 저는 걱정보단 꿈으로 가득 찼어요. 그 후 제가 바로 한 일이 꿈 없고 배고픈 청년들이 모이는 쉼터에 가서 무료 스피치 강의, 상담소를 열었어요. 그곳에서 많은 청년들, 고등학생들 그리고 어르신들을 만났죠. 그분들에게 힘이 되는 컨텐츠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동안 제 안에 있던 갈급한 마음도 조금씩 채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어느 정도 재충전이 됐을 무렵, 다시 방송 쪽으로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어요. Job consultant이신 지인분께서 “지혜 씨 혹시 일 할 생각 있어? 뉴욕에 기독교 방송이 있는데, 크리스천이면서 방송 사역자를 찾고 있대. 선교지에 갈 일도 있을 테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나운서 실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대.” 라고 말씀하셨죠. 그 전화 받자마자 준비해서 일 년 후 이곳에 오게 됐어요.
쉼터 얘기 좀 더 들려주세요. 무료 스피치 강의는 지혜 씨가 만든 컨텐츠인가요?
처음 그곳을 간 이유는 저 자신이 조금 쉬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 있는 그냥 빈 터였어요. 그곳을 만든 분은 쉼터를 운영할 기획을 고민하느라 어떤 것도 시작을 못 하고 있더군요. 그냥 쉬러 오는 분들에게 자리를 제공하고, 배고픈 분들에게 밥을 주기만 하더라고요. 저 역시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분이 유독 한숨을 크게 쉬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다가가 물었죠. “선생님은 뭐가 그렇게 힘드세요?” 그러자 ‘몇 년간 취업에 연속해서 실패했고, 집에서도 눈치만 받아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고 말해버렸어요. 전 그날부터 쉼터에 오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자신감을 주는 스피치에 관한 강연을 하게 됐고요. 2가지 시리즈로 나눠서 매주 강연을 하는데, 매회 사람들로 가득 차고 다들 수업이 끝나면 처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가더라고요. 제가 살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수 있다는 게 정말 귀한 거구나 싶더군요. 제겐 그 일이 무척 소중하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눌수록 20대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속이 꽉 찬 얘기만 하시는군요. 어떻게 보면 출세의 길을 버리고 미국으로 오셨는데 작은 방송사에 머물며 본인이 준비한 만큼 빛을 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아쉬움보다는 지금의 현재 제 모습에 만족하고 지금 하는 일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본인이 원하는 최고 수준까지 갔던 사람이 명예와 돈의 늪에 빠져서 헤매는 걸 봤어요. 저는 단계적으로 세웠던 목표를 이뤄본 경험이 있어요. ‘목표에 도달하면 행복할 거야. 큰일을 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예상한 뒤 그 목표를 이루어 냈을 때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 가장 잘나가던 시절이 오히려 저에게는 가장 우울했던 시간이었어요. 그시절 제가 교회에 가서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뒤로 두고 세상을 즐겼던 시간의 절망을 압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다시 보고 싶어요.”라고 기도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기엔 굴러 들어온 복을 왜 차버리느냐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저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결국, 내려놓았고 돌고 돌아 제가 쓰임 받을 곳인 이곳에 마침내 오게 되었어요.
크리스천의 사명을 갖고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맡고 계시는 프로그램이나 회사 생활 좀 들려주세요. 10개월 차 미국살이 소감도 들려주시고요.
지금 하는 프로그램은 단비 TV 뉴스, 단비 같은 사람들, 믿음의 현장, 비즈니스 산책, 뉴저지 뉴욕 연합 찬양대회 MC 등을 맡고 있어요. 일반 직장인처럼 저도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해요. 출근하자마자 하루 일정을 점검하고, 짧게 묵상을 합니다. 하루를 다져보는 시간이죠. 9시반에는 직장예배를 드리고 그 이후에는 취재를 나가거나 미주 한인, 교민사회 소식들을 체크합니다. 매주 인터뷰가 있어서 인터뷰 준비를 하고, 설교 편집 등을 하며 정신없이 보내고 있어요. 비즈니스 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은 뉴욕 뉴저지의 한인업소들을 탐방하고, 먼 미국 땅에서 기업을 세운 한인들의 성공 신화를 듣고 전합니다. 짧은 뉴스이지만 뉴스도 진행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위해 일주일을 고생하는 단비 기독교 TV는 늘 뜨겁고 생동감 넘칩니다. 제가 일반 방송사에 있을 때는 다음 스텝을 위한 목표가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그게 없어요. 제 마음을 완전히 쏟아붓고 있는 거죠. 이런 저 자신이 신기할 정도예요. 전화 한 통으로 결정한 것도 그렇습니다. 친한 친구가 많아서 한국처럼 지낼 수 있는 서부에 있는 방송사에 갈 뻔 했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뉴욕으로 오게 되었어요. 지금 10개월 차 뉴욕에서의 생활을 맘껏 즐기고 있습니다.
여가시간에 주로 뭘 하고 지내시나요? 특별한 취미나 특기가 있나요?
매일 2~3마일 정도 걸어 다녀요. (웃음) 특기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저는 피아노와 가야금을 연주할 수 있어요. 피아노는 5살 때부터, 가야금은 9살 때부터 해오고있어요. 서양악기와 동양악기의 오묘한 조합이죠. 제가 대가족에서 자라서 늘 집에서 민요를 부르면서 조부모님께 가야금으로 재롱을 떨곤 했었어요. 나중에 제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게 된다면 제 가야금과 피아노를 물려주고 싶어요. 책도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 게 목표에요. 출퇴근 시간이 총 1시간 반 정도 되는데, 그 시간이 제겐 꿀맛 같은 독서 시간입니다. 최근 읽은 책은 팀 켈러 (Tim Keller) 목사님의 ‘결혼을 말한다’라는 책이에요. 제가 요즘 결혼에 관심이 많아서요. 제게 어떤 배우자를 보내주실까…. 하는 맘으로 읽었어요. (기자가 데이트 상대는 있나는 질문에) 아직 교제하는 이성이 없거든요. 이상하게 아무도 접근을 안 하네요. (하하)
혹시 이 글을 읽으실 독자분 중에 지혜 씨 배우자가 나타나실 수도 있는데 본인의 결혼관이나 원하는 이상형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잘하면 에스카사가 중매쟁이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웃음)
특별하게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라는 어떤 조건보다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비전을 가진 사람’이에요. 각자의 꿈을 응원하고 이뤄나가는데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저도 지금 아나운서를 하고 있다고 해서 꿈이 끝난 건 아니거든요. 지금도 몇십 개의 꿈을 꾼답니다. (웃음) 어렸을 때부터 봐온 부모님은 항상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해주는 분들이셨어요. 그런 가족을 보면서 ‘나도 엄마처럼’이라는 말을 많이 했었어요. 저도 두 분 부모님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습니다.
말씀을 참 잘하시는데 어릴 때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셨나요?
제 전공은 영문학이에요. 사실 제 진로를 정하고 대학에 진학하지는 않았어요. 저도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죠. 부모님이 “너는 성격이 밝으니 영문학과를 가서 무역해도 좋겠다.”라고 하셨죠. 한국에서만 계속 자라다가,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다른 나라 문화를 접하게 되고 배우게 되었어요. 그때 문득 ‘취업을 하고 방송을 하게 되면 해외로도 나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하고 제 미래에 대해서 spectrum을 넓힐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어요. 제가 방송 쪽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대해 알아봤죠. 처음 문을 두드렸을 때, 관계자분들이 제게 “너는 너무 평범하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오히려 저한테 자극이 되었고, 그렇게 6개월 정도 혼자 공부한 후 다시학원에 갔더니 “달라졌네? 시작해보자” 하셨어요. 학원 수강생이 매달 200명 정도 되는데, 그중에 스타성이나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 방송국을 들어가요. 정말 바늘구멍만큼 좁은 문입니다.
제가 23살에 미스코리아를 나갔던 경력이 있거든요. 광주지역 본선도 나가고 인기상도 받게 됐어요. 그게 하나의 이력이 되었는지 SBS CNBC에서 합격이 됐다고 연락이 왔죠. 대회 끝나자마자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나운서 하면 항상 단정하고 정장 차림의 화려한 모습을 생각하기 쉬운데, 전 좀 달랐어요. 어느 날은 갈색 야상 점퍼와 운동화 차림에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방송국에 갔더니 경비아저씨가 노숙자인 줄 알고 “저기요” 하면서 잡으신 거에요. (웃음) 출입증카드도 분명히 찍었는데 말이죠! “아 우리 아나운서시구나… 미안해요. 나는 아가씨가 옷을 너무 편하게 입고 와서….”라고 하셨어요. 그때 저희 회사 분들이 다 웃으셨죠. 저는 예나 지금이나 화려한 것보다는 평범하고 수수한 게 좋아요.
지혜 씨의 소탈함을 잘 설명하는 일화로군요. (웃음) 방송하면서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현장에 나가는 방송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모든 촬영 때마다 재밌는 일도 많이 생기고, 일촉즉발의 순간도 만났죠. 가장 기억에 남는건 지하철 TV 리포팅을 하는 날이었는데 1호선부터 4호선까지 모든 역을 가서 촬영하는 콘셉이었어요. 1호선부터 4호선까지 역 개수가 100개가 넘으니까 카메라 감독님께서 “지혜 씨가 갈 수 있는 만큼만 하자”라고 말씀하셨어요. 근데 막상 처음 해보는 콘셉이라 제가 재밌어서 지치질 않았던 거죠. 나중에 카메라 감독님께서“ 어쩜 지치지도 않냐”고“, 이거면 충분하다” 하며 촬영 중단을 외치셨어요. 나중에 시계를 보니 11시간 동안 촬영을 했더라고요. 종일 돌아다닌 거죠. 저에게 하시던 말씀이 “7살짜리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더니, 지혜 씨 보면서 내가 오늘 많이 배웠다!” 하셨어요. 제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도 스스로 알게 됐고요. (하하)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지혜 씨는 얘기도 드라마를 보는 듯 실감 나게 표현을 잘하시는군요. 연기 쪽으로 가도 잘했을 것 같은데요. (웃음)
연기도 조금 하긴 했습니다. (웃음) 단편 영화도 찍어봤고 짧게나마 모델활동과 CF 경험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저하고는 잘 안 맞았어요. 몇번 기획사 제의도 있었지만, 달콤하고 쉬운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연기 경험을 통해 내가 갈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때 시기에 더 신앙심도 깊어졌어요. 지금 방송일을 하면서는 반대로 제가 너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 일을 하면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분들도 만나게 되고, 직접 인터뷰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거든요. 울컥 눈물이 날 때도 잦아요. 크리스천 방송이다 보니 사역하시는 분들을 많이 뵈게 되는데 그분들의 미래나 비전을 듣고 나면 제 삶에도 울림이 와요. 인터뷰 중에 그분들이 삶의 위기를 어떻게 넘기시는지 듣고 배워요. 제가 상상도 못 할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도 많아서 숙연해질 때도 있고요. 지금 하는 일은 신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큰 보람을 느껴요.
인터뷰를 마치려니 아쉽군요. 마지막 질문으로 만 27년 살면서 가장빛나는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죠?
회사를 그만두고 쉼터에서 일하면서 가족들이랑 함께 지낼 때가 기억이 나요. 16살부터 부모님과 떨어져서 기숙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부모님의 품이 늘 그리웠어요. 쉬는 동안 부모님과 오랜 시간 깊은 대화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혼란스런 시기에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셨어요. 아이러니하게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기도 했거든요. 제또래 친구들이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저는 번아웃(Burn-out)이 되어 있었던 거죠.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내가 중간시점에 와서 혼란스럽다는 후회도 들었어요.‘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게 뭘까? 내가 하는 일이 빛이 나지 않고 화려하기만 하네?’라는 많은 의문점이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게 됐죠. 화려한 것과 빛이 나는 건 다르다는 것을요. 지금은 그런 혼란의 시기를 지나서 시청자들을 섬기는 방송을 하며 보람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좌우명이 ‘Do the Light Thing’이거든요? 빛이 되는 삶을 살자! 는 말이에요. 이 신조를 지금은 하루하루 실천하며 사는 기분이에요.
인터뷰를 마치며
봉사가 몸에 밴 훌륭한 삶을 살아오신 부모님에게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나눔의 기쁨을 배운 최지혜 아나운서. 아름다운 외모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태도와 고운 마음씨를 가진 그녀의 방송은 앞으로 미주 한인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거로 예상된다. 장시간 촬영과 인터뷰에도 지친 표정 하나 없이 미소 띤 얼굴로 진행에 응해주어 에스카사 스텝 모두를 놀라게 한 최지혜 아나운서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아울러 표지 촬영에 협조해주신 단비 TV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진행 Jennifer Lee 글 Jenny Lee
미주 전역을 커버하는 기독교 복음방송인 단비 TV의 인기 아나운서 최지혜씨가 7월 표지를 장식해 주었다. 미스코리아 출신다운 늘씬한 키에 편안한 외모를 지닌 그녀는 부드러운 방송 진행으로 입사 10개월 만에 뉴욕 일대에선 이미 유명인이다. 화면에 나타난 여유 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취재도 하고, 뉴스를 위한 오프닝 클로징 멘트를 직접 작성하는 등 교민사회와 미주 한인 사회 현안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최지혜 씨. 대학생 시절부터 방송인의 꿈을 키우다가 SBS CNBC 리포터부터 시작하여 KBS, 디지털 조선일보 리포터, KEB하나외환은행, RBS TV 아나운서와 전문 MC, 키움증권 채널K 앵커, 시황 캐스터 등 한국에서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다가 돌연 미국으로 건너와 한인 기독교방송 ‘단비 기독교TV’에 몸담게 되기까지 그녀의 방송 너머 이야기가 궁금하다.
지혜 씨 안녕하세요. ‘단비 TV’를 모르는 분을 위해 간단한 안내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단비 TV 아나운서 최지혜입니다. 단비 TV는 미 동부 뉴욕, 뉴저지 지역을 넘어서 미주 전역으로 방송되는 기독교 복음 방송국입니다. 우리 방송은 타임워너케이블 채널 1487번으로 하루 24시간 동안 말씀과 찬양, 인터뷰, 설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시청자와 만나고 있지요. 단비의 사전적 의미는 ‘꼭 필요한 때 알맞게 내리는 비’라는 뜻인데 크리스천이라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고 봐요. 그점을 단비 방송이 놓치지 않고 시청자에게 전해주자는 큰 뜻을 담고 있어요. 말 그대로 오랜 가뭄 끝에 만난 반가운 빗방울 같은 방송 사역을 하는 겁니다. 찬양곡 ‘빈들의 마른 풀 같이’에서 “시들은 나의 영혼에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라는 구절이 있는데 부족하지만 제가 단비 TV에서 조금이나마 ‘성령의 단비를 붓는 작은 역할’이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쉼터에 있는 청년을 대상으로 무료 스피치 강의 등 한국에서 여러 방송사를 거치며 다양한 방송일을 하셨죠? 그 뒤 어떤 계기로 미국으로 와서 기독교방송을 하게 되었는지 지혜 씨의 방송 이력이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3년간 방송 활동을 했었어요. 이곳 단비 기독교 TV에서 활동한 지는 10개월 정도 되어 갑니다. 한국에서 처음 방송 활동을 시작한 게 지하철 METRO TV 리포터였어요. 그 후 SBS CNBC에서 경제 방송을 하게됐고, 외환은행 사내방송 아나운서와 키움증권 채널 K 그리고 기독교 방송 C채널을 거쳐 지금의 단비 기독교 TV로 오게 되었죠. 한국에서 일할 때, 세속적인 표현으로 얘기하면 ‘돈을 벌 기회’가 많이 보였어요. 특히 경제 방송을 할 때는 주식전문가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조금만 팁을 받으면 금방 부자가 될 것도 같았죠 (웃음) 하지만, 제가 자라온 환경 탓인지 돈보다는 사람답게 사는 게 더 중요해 보였어요. 아버지는 공무원이시고 어머니는 농협원이신데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저를 봉사현장으로 종종 데리고 가셨어요. 크게 부족한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부자도 아니었던 가정환경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정성으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걸 보고 옆에서 따라 했어요. 그러면서 돈보다는 나눔의 기쁨이 크다는 걸 자연스레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이런 저에게 ‘돈과 투자’를 다루는 경제방송은 물음표를 많이 줬어요. 문득 든 생각이 “내가 가진 달란트가 ‘목소리’와 ‘소통’이라면 투자 정보를 전하는 것 이상으로 더 가치 있는 곳에 쓰고 싶다”라는 욕구가 샘솟았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무작정 사표를 썼습니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 두면 부모님 걱정도 크셨겠네요. 사표까지 쓰면서 지혜 씨가 하고 싶은 일이 궁금해집니다.
물론 부모님은 제가 하루아침에 일을 그만두니 걱정이 많으셨어요. 하지만 저는 걱정보단 꿈으로 가득 찼어요. 그 후 제가 바로 한 일이 꿈 없고 배고픈 청년들이 모이는 쉼터에 가서 무료 스피치 강의, 상담소를 열었어요. 그곳에서 많은 청년들, 고등학생들 그리고 어르신들을 만났죠. 그분들에게 힘이 되는 컨텐츠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동안 제 안에 있던 갈급한 마음도 조금씩 채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어느 정도 재충전이 됐을 무렵, 다시 방송 쪽으로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어요. Job consultant이신 지인분께서 “지혜 씨 혹시 일 할 생각 있어? 뉴욕에 기독교 방송이 있는데, 크리스천이면서 방송 사역자를 찾고 있대. 선교지에 갈 일도 있을 테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나운서 실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대.” 라고 말씀하셨죠. 그 전화 받자마자 준비해서 일 년 후 이곳에 오게 됐어요.
쉼터 얘기 좀 더 들려주세요. 무료 스피치 강의는 지혜 씨가 만든 컨텐츠인가요?
처음 그곳을 간 이유는 저 자신이 조금 쉬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 있는 그냥 빈 터였어요. 그곳을 만든 분은 쉼터를 운영할 기획을 고민하느라 어떤 것도 시작을 못 하고 있더군요. 그냥 쉬러 오는 분들에게 자리를 제공하고, 배고픈 분들에게 밥을 주기만 하더라고요. 저 역시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분이 유독 한숨을 크게 쉬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다가가 물었죠. “선생님은 뭐가 그렇게 힘드세요?” 그러자 ‘몇 년간 취업에 연속해서 실패했고, 집에서도 눈치만 받아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고 말해버렸어요. 전 그날부터 쉼터에 오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자신감을 주는 스피치에 관한 강연을 하게 됐고요. 2가지 시리즈로 나눠서 매주 강연을 하는데, 매회 사람들로 가득 차고 다들 수업이 끝나면 처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가더라고요. 제가 살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수 있다는 게 정말 귀한 거구나 싶더군요. 제겐 그 일이 무척 소중하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눌수록 20대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속이 꽉 찬 얘기만 하시는군요. 어떻게 보면 출세의 길을 버리고 미국으로 오셨는데 작은 방송사에 머물며 본인이 준비한 만큼 빛을 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아쉬움보다는 지금의 현재 제 모습에 만족하고 지금 하는 일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본인이 원하는 최고 수준까지 갔던 사람이 명예와 돈의 늪에 빠져서 헤매는 걸 봤어요. 저는 단계적으로 세웠던 목표를 이뤄본 경험이 있어요. ‘목표에 도달하면 행복할 거야. 큰일을 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예상한 뒤 그 목표를 이루어 냈을 때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 가장 잘나가던 시절이 오히려 저에게는 가장 우울했던 시간이었어요. 그시절 제가 교회에 가서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뒤로 두고 세상을 즐겼던 시간의 절망을 압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다시 보고 싶어요.”라고 기도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기엔 굴러 들어온 복을 왜 차버리느냐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저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결국, 내려놓았고 돌고 돌아 제가 쓰임 받을 곳인 이곳에 마침내 오게 되었어요.
크리스천의 사명을 갖고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맡고 계시는 프로그램이나 회사 생활 좀 들려주세요. 10개월 차 미국살이 소감도 들려주시고요.
지금 하는 프로그램은 단비 TV 뉴스, 단비 같은 사람들, 믿음의 현장, 비즈니스 산책, 뉴저지 뉴욕 연합 찬양대회 MC 등을 맡고 있어요. 일반 직장인처럼 저도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해요. 출근하자마자 하루 일정을 점검하고, 짧게 묵상을 합니다. 하루를 다져보는 시간이죠. 9시반에는 직장예배를 드리고 그 이후에는 취재를 나가거나 미주 한인, 교민사회 소식들을 체크합니다. 매주 인터뷰가 있어서 인터뷰 준비를 하고, 설교 편집 등을 하며 정신없이 보내고 있어요. 비즈니스 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은 뉴욕 뉴저지의 한인업소들을 탐방하고, 먼 미국 땅에서 기업을 세운 한인들의 성공 신화를 듣고 전합니다. 짧은 뉴스이지만 뉴스도 진행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위해 일주일을 고생하는 단비 기독교 TV는 늘 뜨겁고 생동감 넘칩니다. 제가 일반 방송사에 있을 때는 다음 스텝을 위한 목표가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그게 없어요. 제 마음을 완전히 쏟아붓고 있는 거죠. 이런 저 자신이 신기할 정도예요. 전화 한 통으로 결정한 것도 그렇습니다. 친한 친구가 많아서 한국처럼 지낼 수 있는 서부에 있는 방송사에 갈 뻔 했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뉴욕으로 오게 되었어요. 지금 10개월 차 뉴욕에서의 생활을 맘껏 즐기고 있습니다.
여가시간에 주로 뭘 하고 지내시나요? 특별한 취미나 특기가 있나요?
매일 2~3마일 정도 걸어 다녀요. (웃음) 특기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저는 피아노와 가야금을 연주할 수 있어요. 피아노는 5살 때부터, 가야금은 9살 때부터 해오고있어요. 서양악기와 동양악기의 오묘한 조합이죠. 제가 대가족에서 자라서 늘 집에서 민요를 부르면서 조부모님께 가야금으로 재롱을 떨곤 했었어요. 나중에 제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게 된다면 제 가야금과 피아노를 물려주고 싶어요. 책도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 게 목표에요. 출퇴근 시간이 총 1시간 반 정도 되는데, 그 시간이 제겐 꿀맛 같은 독서 시간입니다. 최근 읽은 책은 팀 켈러 (Tim Keller) 목사님의 ‘결혼을 말한다’라는 책이에요. 제가 요즘 결혼에 관심이 많아서요. 제게 어떤 배우자를 보내주실까…. 하는 맘으로 읽었어요. (기자가 데이트 상대는 있나는 질문에) 아직 교제하는 이성이 없거든요. 이상하게 아무도 접근을 안 하네요. (하하)
혹시 이 글을 읽으실 독자분 중에 지혜 씨 배우자가 나타나실 수도 있는데 본인의 결혼관이나 원하는 이상형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잘하면 에스카사가 중매쟁이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웃음)
특별하게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라는 어떤 조건보다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비전을 가진 사람’이에요. 각자의 꿈을 응원하고 이뤄나가는데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저도 지금 아나운서를 하고 있다고 해서 꿈이 끝난 건 아니거든요. 지금도 몇십 개의 꿈을 꾼답니다. (웃음) 어렸을 때부터 봐온 부모님은 항상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해주는 분들이셨어요. 그런 가족을 보면서 ‘나도 엄마처럼’이라는 말을 많이 했었어요. 저도 두 분 부모님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습니다.
말씀을 참 잘하시는데 어릴 때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셨나요?
제 전공은 영문학이에요. 사실 제 진로를 정하고 대학에 진학하지는 않았어요. 저도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죠. 부모님이 “너는 성격이 밝으니 영문학과를 가서 무역해도 좋겠다.”라고 하셨죠. 한국에서만 계속 자라다가,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다른 나라 문화를 접하게 되고 배우게 되었어요. 그때 문득 ‘취업을 하고 방송을 하게 되면 해외로도 나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하고 제 미래에 대해서 spectrum을 넓힐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어요. 제가 방송 쪽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대해 알아봤죠. 처음 문을 두드렸을 때, 관계자분들이 제게 “너는 너무 평범하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오히려 저한테 자극이 되었고, 그렇게 6개월 정도 혼자 공부한 후 다시학원에 갔더니 “달라졌네? 시작해보자” 하셨어요. 학원 수강생이 매달 200명 정도 되는데, 그중에 스타성이나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 방송국을 들어가요. 정말 바늘구멍만큼 좁은 문입니다.
제가 23살에 미스코리아를 나갔던 경력이 있거든요. 광주지역 본선도 나가고 인기상도 받게 됐어요. 그게 하나의 이력이 되었는지 SBS CNBC에서 합격이 됐다고 연락이 왔죠. 대회 끝나자마자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나운서 하면 항상 단정하고 정장 차림의 화려한 모습을 생각하기 쉬운데, 전 좀 달랐어요. 어느 날은 갈색 야상 점퍼와 운동화 차림에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방송국에 갔더니 경비아저씨가 노숙자인 줄 알고 “저기요” 하면서 잡으신 거에요. (웃음) 출입증카드도 분명히 찍었는데 말이죠! “아 우리 아나운서시구나… 미안해요. 나는 아가씨가 옷을 너무 편하게 입고 와서….”라고 하셨어요. 그때 저희 회사 분들이 다 웃으셨죠. 저는 예나 지금이나 화려한 것보다는 평범하고 수수한 게 좋아요.
지혜 씨의 소탈함을 잘 설명하는 일화로군요. (웃음) 방송하면서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현장에 나가는 방송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모든 촬영 때마다 재밌는 일도 많이 생기고, 일촉즉발의 순간도 만났죠. 가장 기억에 남는건 지하철 TV 리포팅을 하는 날이었는데 1호선부터 4호선까지 모든 역을 가서 촬영하는 콘셉이었어요. 1호선부터 4호선까지 역 개수가 100개가 넘으니까 카메라 감독님께서 “지혜 씨가 갈 수 있는 만큼만 하자”라고 말씀하셨어요. 근데 막상 처음 해보는 콘셉이라 제가 재밌어서 지치질 않았던 거죠. 나중에 카메라 감독님께서“ 어쩜 지치지도 않냐”고“, 이거면 충분하다” 하며 촬영 중단을 외치셨어요. 나중에 시계를 보니 11시간 동안 촬영을 했더라고요. 종일 돌아다닌 거죠. 저에게 하시던 말씀이 “7살짜리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더니, 지혜 씨 보면서 내가 오늘 많이 배웠다!” 하셨어요. 제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도 스스로 알게 됐고요. (하하)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지혜 씨는 얘기도 드라마를 보는 듯 실감 나게 표현을 잘하시는군요. 연기 쪽으로 가도 잘했을 것 같은데요. (웃음)
연기도 조금 하긴 했습니다. (웃음) 단편 영화도 찍어봤고 짧게나마 모델활동과 CF 경험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저하고는 잘 안 맞았어요. 몇번 기획사 제의도 있었지만, 달콤하고 쉬운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연기 경험을 통해 내가 갈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때 시기에 더 신앙심도 깊어졌어요. 지금 방송일을 하면서는 반대로 제가 너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 일을 하면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분들도 만나게 되고, 직접 인터뷰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거든요. 울컥 눈물이 날 때도 잦아요. 크리스천 방송이다 보니 사역하시는 분들을 많이 뵈게 되는데 그분들의 미래나 비전을 듣고 나면 제 삶에도 울림이 와요. 인터뷰 중에 그분들이 삶의 위기를 어떻게 넘기시는지 듣고 배워요. 제가 상상도 못 할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도 많아서 숙연해질 때도 있고요. 지금 하는 일은 신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큰 보람을 느껴요.
인터뷰를 마치려니 아쉽군요. 마지막 질문으로 만 27년 살면서 가장빛나는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죠?
회사를 그만두고 쉼터에서 일하면서 가족들이랑 함께 지낼 때가 기억이 나요. 16살부터 부모님과 떨어져서 기숙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부모님의 품이 늘 그리웠어요. 쉬는 동안 부모님과 오랜 시간 깊은 대화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혼란스런 시기에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셨어요. 아이러니하게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기도 했거든요. 제또래 친구들이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저는 번아웃(Burn-out)이 되어 있었던 거죠.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내가 중간시점에 와서 혼란스럽다는 후회도 들었어요.‘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게 뭘까? 내가 하는 일이 빛이 나지 않고 화려하기만 하네?’라는 많은 의문점이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게 됐죠. 화려한 것과 빛이 나는 건 다르다는 것을요. 지금은 그런 혼란의 시기를 지나서 시청자들을 섬기는 방송을 하며 보람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좌우명이 ‘Do the Light Thing’이거든요? 빛이 되는 삶을 살자! 는 말이에요. 이 신조를 지금은 하루하루 실천하며 사는 기분이에요.
인터뷰를 마치며
봉사가 몸에 밴 훌륭한 삶을 살아오신 부모님에게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나눔의 기쁨을 배운 최지혜 아나운서. 아름다운 외모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태도와 고운 마음씨를 가진 그녀의 방송은 앞으로 미주 한인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거로 예상된다. 장시간 촬영과 인터뷰에도 지친 표정 하나 없이 미소 띤 얼굴로 진행에 응해주어 에스카사 스텝 모두를 놀라게 한 최지혜 아나운서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아울러 표지 촬영에 협조해주신 단비 TV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진행 Jennifer Lee 글 Je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