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s young artist
grabs the world's attention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 세계의 주목을 받다!
한국예술과 LA 거리의 만남, 벽화가 데이브 영 김
흔히들 그라피티(벽화)라고 하면 부정적인 면들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벽화들은 실로 아름다운 건물들의 외관에서 어울리지 않는 낙서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만나본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그런 낙서로 취급받는 애물단지 작품들과는 견줄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여느 벽화들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은 우리네 한국인의 정서를 너무나도 아름답고 섬세히 담고 있어 더더욱 정감 있고 친숙하게 다가왔다.
더욱이 그의 작품이 그려진 부근의 한국인 커뮤니티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하니 그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Asian Pacific American Heritage Month Award를 수상한 바 있기도 한 데이브 영 김은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젊은 예술가였다. 그의 한국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은 인터뷰 내내 우리 취재진을 집중케 하였다.
벽화가로서 당신의 예술적인 영감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온 것입니까?
80년대와 90년대 LA는 그야말로 거리예술의 정점을 찍는 시기였어요. 그 찬란한 시기 속 LA에서 저와 제 예술가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거리예술에 눈을 뜬 거 같아요. 비록 고등학교 이후에 잠시 예술활동을 중단하긴 했었지만 늘 주의 깊게 지켜봐 왔던 거 같아요. 정형화된 미술교육을 받아오면서도 늘 거리예술, 특히 그라피티에 대한 열정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포기하려 하면 할수록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그는 이후에도 그의 그라피티에 대한 열정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 중에서도 그를 그라피티의 세계로 확실히 끌어들였던 사건 하나를 들려주었다.
제가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였을 때 일인데요. 어느 날 과속으로 경찰에게 잡힌 적이 있었어요. 근데 때마침 제 운전면허증이 하루 차이로 만기가 되어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법원까지 가게 되고 지역 봉사활동으로 제가 저지른 잘못을 만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림 공부를 하는 지역 아이들을 돕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어떤 분이 제가 그린 그라피티 작품을 알아보고선 그 뒤로 지역 예술팀에 참여하게 되고 그 팀과 같이 작업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의 예술활동 중에 특별히 힘들었던 시기나 혹은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있었나요?
제게는 저를 늘 지지해주는 부모님이 계셔요. 원래 부모님은 자식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제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도 같이 주셨어요. 그래도 저희 부모님은 아직 전형적인 한국 부모님이십니다
특히 교육적인 측면에서는요!(웃음) 사실 저는 그리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적어도 학업적인 면에서는요. 그래서 저희 부모님은 저를 많은 과외활동으로 이끄셨는데 그것들도 딱히 저는 관심이 없었던거 같아요, 미술 과외활동을 하기 전까지는요. 부모님은 저에게 예술가가 되라고 하신적은 없지만 제 재능을 알아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큰 어려움 없이 부모님의 뜨거운 지지 속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 세계속에 주목을 받다!
11th Annual Asian Pacific American Heritage Month Award를 수상했는데 수상소감 한마디 부탁해요.
처음에 후보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조금 당황했었어요. 솔직히 제가 얼마만큼의 작품활동을 했는지 저조차도 가늠하기 힘들었지요. 더군다나 같이 후보에 오른 다른 아티스트들이 너무나도 저명한 사람들이 많아서 제가 뽑힐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시상식에서 누군가가 “너야 너!” 해주기 전까지는 제가 뽑힌 줄도 몰랐어요.(웃음) 그 상을 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큰 영광이고 이 상을 받기까지 참 많은 고뇌와 노력이 있었던 거 같아요. 제게 주어진 3분이라는 시간 동안 시상식에서 제 작품인생을 이야기할 때는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할지 곤란하기도 했지만 참 벅찼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이 상이 많은 젊은 한국 아티스트들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도 있어요.
혹자들은 말하죠. “자기 자신이 자신에게 가장 혹독한 비평가이다.” 라고요. 데이브씨는 어떤가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만족하는 편인가요?
자기 작품을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배제하고 보는 것은 예술가로서 중요한 덕목인 것 같습니다. 월급 받는 예술가들은 특히 이런 점에서 참 힘이 들죠.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예술가에게나 보는 이에게나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술은 보이고 공감될 때 비로소 예술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제 작품 속에 그리고 제 마음속에 늘 초대하는 편이죠! 마지막으로 음악가인 제 아내도 저에게 많은 조언과 솔직한 평을 많이 해주는 편이에요.
피, 땀, 그리고 눈물- 벽화의 진정한 색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쏟나요?
작품마다 틀린 것 같아요. 그 작품에 쓰이는 테크닉이나 작품 크기 등이 다르니까요. 제가 한 작업 중에 가장 큰 작품이고 또한 엄청난 교훈을 주었던 작품은 오클랜드의 한 레스토랑에 있는데 완성까지 한달이나 걸렸어요. 그도 그럴 것이 140ft 넓이에 25ft 높이의 작품이었으니까요! 제 선조들에 대해서 알게 된 것들을 표현한 작품인데 매우 뜻 깊은 작업이었어요. 보통 다른 작업들은 잘 계획된 작업일 경우에는 10일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비용을 말씀 드리자면 재료비로만 최소 1,500불은 넘을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저는 윗옷을 걸치지 않고 작업하는 버릇이 있어요. 작업실이 때때로 무지하게 덥거든요! (웃음)
미국내에서 한국예술은 토속적인 색감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예술가로서 특히 추구하는 색이나 스타일이 있나요?
딱히 추구하는 것은 없지만 보시는 분들께서 제 작품들 속에서 많은 공통 분모를 찾아 주셨어요. 제가 저 나름대로의 선들과 이미지들을 고수 한다고요. 지금은 청록색에 빠져 있는 편이죠. 공교롭게도 많은 한국예술 에서 이 색이 이용되고 있지요.
본인 작품들 중에 가장 힘들고 길었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을 들자면?
사실은 지금 그 기억에 남을 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짧은 다큐 멘터리인데 대학원 시절 알게 된 음악가인 두 친구들과 같이 만들고 있어요. 그 두 친구 역시 저와 같은 Korean-American이예요. 저희 모두 한국에 대한 긍지와 관심을 두던 터라 다 같이 한국을 직접 가서 경험한 한국의 역사와 현재를 카메라에 담기로 했죠. 서울, 부산, 광주, 김천, 제주 등을 다니며 저희 작품도 홍보하고 지금도 활동비를 모금해가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우리가 다시 만들거나 혹은 배워나가는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대단한 프로젝트인 것 같네요! 언제쯤 볼 수 있나요?
올해 안에 끝내는 것으로 일단 목표를 잡고 있어요. 이 다큐멘터리는 저에게 아주 특별한 작품이예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담고있고 특히나 제 예술활동과 한국과의 깊은 연관성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기 때문이죠. 이번 프로젝트로 인해서 이야기 속에서만 들어오던 한국에 계신 많은 친지 분들과도 만났고 제가 갖고 있던 한국 문화에 대한 생각들이 이번 경험을 통해 많이 바뀌게 된 계기였던 거 같아요.
캔버스 뒤의 숨겨진 열정
작품활동 이외에 어떤 것들을 하세요? 취미나 특기가 있다면 말해 주세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친지 분들과 텃밭을 가꿀 기회가 있었어요. 그래서 요새는 텃밭 가꾸기에 푹 빠져있죠. 쉽지 않은 작업인거 같아요. 여러가지를 저희 집 뒷마당에 키우는데 그 중에서도 애호박이 참 잘되고 있어요!(웃음)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것도 참 좋아해요. 저한테서 예술을 뺀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서 단지 저는 형식을 바꾼 예술을 할 뿐이죠.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를 말씀해 주세요.
일단 지금 작업 중인 다큐멘터리와 다른 벽화들을 마치는 거고요, 테네시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도 있는데 그것도 무사히 마치는 거예요. 제가 워낙 일 욕심이 많아서 많은 일들이 진행 중인데 이 속에서 제 한계도 새삼 느껴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렇게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직접 만나본 Dave Young Kim 은 여느 가벼운 젊은 거리 예술가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성찰과 긍지를 예술로 승화시킬 줄 아는 진정한 이 시대의 한국적인 아티스트였다. 한국인들조차 때로는 외면하는 한국 전통문화와 한국인에 대한 긍지를 우리는 이번 취재를 통해 먼 이국 땅에서 자란 젊은 한국 청년에게 배운 것 같다. 앞으로 그의 작품들과 행보가 더욱더 기대된다.
글 Edward Leary_Creative Editor 번역 강유일_정리 에스카사 편집부
Korea's young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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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젊은 아티스트, 세계의 주목을 받다!
한국예술과 LA 거리의 만남, 벽화가 데이브 영 김
흔히들 그라피티(벽화)라고 하면 부정적인 면들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벽화들은 실로 아름다운 건물들의 외관에서 어울리지 않는 낙서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만나본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그런 낙서로 취급받는 애물단지 작품들과는 견줄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여느 벽화들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은 우리네 한국인의 정서를 너무나도 아름답고 섬세히 담고 있어 더더욱 정감 있고 친숙하게 다가왔다.
더욱이 그의 작품이 그려진 부근의 한국인 커뮤니티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하니 그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Asian Pacific American Heritage Month Award를 수상한 바 있기도 한 데이브 영 김은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젊은 예술가였다. 그의 한국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은 인터뷰 내내 우리 취재진을 집중케 하였다.
벽화가로서 당신의 예술적인 영감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온 것입니까?
80년대와 90년대 LA는 그야말로 거리예술의 정점을 찍는 시기였어요. 그 찬란한 시기 속 LA에서 저와 제 예술가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거리예술에 눈을 뜬 거 같아요. 비록 고등학교 이후에 잠시 예술활동을 중단하긴 했었지만 늘 주의 깊게 지켜봐 왔던 거 같아요. 정형화된 미술교육을 받아오면서도 늘 거리예술, 특히 그라피티에 대한 열정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포기하려 하면 할수록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그는 이후에도 그의 그라피티에 대한 열정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 중에서도 그를 그라피티의 세계로 확실히 끌어들였던 사건 하나를 들려주었다.
제가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였을 때 일인데요. 어느 날 과속으로 경찰에게 잡힌 적이 있었어요. 근데 때마침 제 운전면허증이 하루 차이로 만기가 되어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법원까지 가게 되고 지역 봉사활동으로 제가 저지른 잘못을 만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림 공부를 하는 지역 아이들을 돕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어떤 분이 제가 그린 그라피티 작품을 알아보고선 그 뒤로 지역 예술팀에 참여하게 되고 그 팀과 같이 작업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의 예술활동 중에 특별히 힘들었던 시기나 혹은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있었나요?
제게는 저를 늘 지지해주는 부모님이 계셔요. 원래 부모님은 자식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제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도 같이 주셨어요. 그래도 저희 부모님은 아직 전형적인 한국 부모님이십니다
특히 교육적인 측면에서는요!(웃음) 사실 저는 그리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적어도 학업적인 면에서는요. 그래서 저희 부모님은 저를 많은 과외활동으로 이끄셨는데 그것들도 딱히 저는 관심이 없었던거 같아요, 미술 과외활동을 하기 전까지는요. 부모님은 저에게 예술가가 되라고 하신적은 없지만 제 재능을 알아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큰 어려움 없이 부모님의 뜨거운 지지 속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11th Annual Asian Pacific American Heritage Month Award를 수상했는데 수상소감 한마디 부탁해요.
처음에 후보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조금 당황했었어요. 솔직히 제가 얼마만큼의 작품활동을 했는지 저조차도 가늠하기 힘들었지요. 더군다나 같이 후보에 오른 다른 아티스트들이 너무나도 저명한 사람들이 많아서 제가 뽑힐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시상식에서 누군가가 “너야 너!” 해주기 전까지는 제가 뽑힌 줄도 몰랐어요.(웃음) 그 상을 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큰 영광이고 이 상을 받기까지 참 많은 고뇌와 노력이 있었던 거 같아요. 제게 주어진 3분이라는 시간 동안 시상식에서 제 작품인생을 이야기할 때는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할지 곤란하기도 했지만 참 벅찼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이 상이 많은 젊은 한국 아티스트들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도 있어요.
혹자들은 말하죠. “자기 자신이 자신에게 가장 혹독한 비평가이다.” 라고요. 데이브씨는 어떤가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만족하는 편인가요?
자기 작품을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배제하고 보는 것은 예술가로서 중요한 덕목인 것 같습니다. 월급 받는 예술가들은 특히 이런 점에서 참 힘이 들죠.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예술가에게나 보는 이에게나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술은 보이고 공감될 때 비로소 예술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제 작품 속에 그리고 제 마음속에 늘 초대하는 편이죠! 마지막으로 음악가인 제 아내도 저에게 많은 조언과 솔직한 평을 많이 해주는 편이에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쏟나요?
작품마다 틀린 것 같아요. 그 작품에 쓰이는 테크닉이나 작품 크기 등이 다르니까요. 제가 한 작업 중에 가장 큰 작품이고 또한 엄청난 교훈을 주었던 작품은 오클랜드의 한 레스토랑에 있는데 완성까지 한달이나 걸렸어요. 그도 그럴 것이 140ft 넓이에 25ft 높이의 작품이었으니까요! 제 선조들에 대해서 알게 된 것들을 표현한 작품인데 매우 뜻 깊은 작업이었어요. 보통 다른 작업들은 잘 계획된 작업일 경우에는 10일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비용을 말씀 드리자면 재료비로만 최소 1,500불은 넘을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저는 윗옷을 걸치지 않고 작업하는 버릇이 있어요. 작업실이 때때로 무지하게 덥거든요! (웃음)
미국내에서 한국예술은 토속적인 색감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예술가로서 특히 추구하는 색이나 스타일이 있나요?
딱히 추구하는 것은 없지만 보시는 분들께서 제 작품들 속에서 많은 공통 분모를 찾아 주셨어요. 제가 저 나름대로의 선들과 이미지들을 고수 한다고요. 지금은 청록색에 빠져 있는 편이죠. 공교롭게도 많은 한국예술 에서 이 색이 이용되고 있지요.
본인 작품들 중에 가장 힘들고 길었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을 들자면?
사실은 지금 그 기억에 남을 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짧은 다큐 멘터리인데 대학원 시절 알게 된 음악가인 두 친구들과 같이 만들고 있어요. 그 두 친구 역시 저와 같은 Korean-American이예요. 저희 모두 한국에 대한 긍지와 관심을 두던 터라 다 같이 한국을 직접 가서 경험한 한국의 역사와 현재를 카메라에 담기로 했죠. 서울, 부산, 광주, 김천, 제주 등을 다니며 저희 작품도 홍보하고 지금도 활동비를 모금해가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우리가 다시 만들거나 혹은 배워나가는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대단한 프로젝트인 것 같네요! 언제쯤 볼 수 있나요?
올해 안에 끝내는 것으로 일단 목표를 잡고 있어요. 이 다큐멘터리는 저에게 아주 특별한 작품이예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담고있고 특히나 제 예술활동과 한국과의 깊은 연관성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기 때문이죠. 이번 프로젝트로 인해서 이야기 속에서만 들어오던 한국에 계신 많은 친지 분들과도 만났고 제가 갖고 있던 한국 문화에 대한 생각들이 이번 경험을 통해 많이 바뀌게 된 계기였던 거 같아요.
작품활동 이외에 어떤 것들을 하세요? 취미나 특기가 있다면 말해 주세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친지 분들과 텃밭을 가꿀 기회가 있었어요. 그래서 요새는 텃밭 가꾸기에 푹 빠져있죠. 쉽지 않은 작업인거 같아요. 여러가지를 저희 집 뒷마당에 키우는데 그 중에서도 애호박이 참 잘되고 있어요!(웃음)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것도 참 좋아해요. 저한테서 예술을 뺀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서 단지 저는 형식을 바꾼 예술을 할 뿐이죠.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를 말씀해 주세요.
일단 지금 작업 중인 다큐멘터리와 다른 벽화들을 마치는 거고요, 테네시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도 있는데 그것도 무사히 마치는 거예요. 제가 워낙 일 욕심이 많아서 많은 일들이 진행 중인데 이 속에서 제 한계도 새삼 느껴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렇게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글 Edward Leary_Creative Editor 번역 강유일_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