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올바르게 보여주는 ‘똑똑한 상자’ 만들기 MBC 프로듀서 조성현

세상을 올바르게 보여주는 ‘똑똑한 상자’ 만들기
MBC 프로듀서 조성현


사람들이 텔레비전만 켜면 그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울고 웃고 한다는 이유로 TV는 종종 ‘바보상자’라 불리며 경계 시 되곤 한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배운 많은 것 중에 TV를 통해 보고 들은 것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시청자가 멍하니 앉아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메시지에 반응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미있게’ 전달되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습득하고 있는 것인지 하는 이 오래된 효과 논쟁에서 후자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리도록 돕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 아닐까? 


10년 넘게 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프로듀서(PD)로 일해 온 조성현, 그는 우리가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 유용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해 왔다. 수많은 미디어가 홍수를 이루는 이 시대에, 지상파 방송사의 시사교양 PD로 사는 그의 소신과 소견이 궁금해졌다.


지상파,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 포함, TV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의 수를 헤아릴 수가 없고, 채널과 방송 시간을 기억하여 ‘본방사수’(해당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에 맞춰 시청하는 것)를 하는 시청자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상파 방송사의 위상도 예전 같지는 않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신력 있는 시사 정보를 얻고자 할 때나 양질의 교양 프로그램을 보고자 할 때는 여전히 지상파 채널을 먼저 돌아보게 된다. 


조성현 PD는 MBC에서 그런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있다. 보도국 기자들이 아닌 PD들이 만드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PD수첩>의 제작을 맡고 있는 그는, “자본의 논리로 보자면 생산할 필요가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제작됨으로써 사회가 얻게 되는 이익이 여전히 존재하죠. 그리고 그게 지상파 방송, 공영 방송이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하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드러낸다. 올해로 입사 11년 차가 된 조성현 PD는 <PD수첩>, <불만제로>, <남극의 눈물>, <휴먼다큐 사랑>,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DMZ, 더 와일드> 등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들을 통해 삶과 세상을 배웠다고 한다.

휴먼 다큐, 다른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일의 무게
조성현이 PD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휴먼다큐 사랑 - 너는 내 운명>이라는 프로그램 을 병원에서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와 함께 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암 투병하는 환자들 얘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였는데요. 그걸 같이 보면서 아버지한테도 저한테도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해야 할 것들, 늦추면 안 되는 것들, 예를 들어, 아버지에 대한 감정 표현도 하게 되고 그랬어요. 또 그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좋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PD를 한번 해보자는 마음에 시험 준비를 하게 됐죠.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제작 부문(당시, 교양제작국)에 지원하여 입사한 후,(한참 후이지만)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휴먼다큐 사랑>을 비롯하여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MBC 스페셜> 등을 제작하며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또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다큐멘터리 한 편이 그의 인생에 큰 의미가 되었듯이, 그도 자신이 만드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되기를 바랐다. 실제로 몇몇 프로그램들은 그에게 PD로서의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작년에 MBC 스페셜로, <시골에 가게를 차렸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요. 서울에서 시골로 이주해 가게를 차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었어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방송이 나가고 나서 방송을 본 손님들이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방송이 나가기 전에, 그분들 가게에 많은 사람이 와서 좋은 기운을 받고 가면 좋겠다, 그래서 그분들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방송이 나가고 실제로 그런 일이 생겼다니 뿌듯했어요.

하지만, 조성현 PD는 다른 사람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과 그들의 깊은 이야기를 TV 프로그램에 담아내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무엇보다, 더 극적인 상황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출연진의 삶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은 덜어내고 기대하는 모습만 프로그램에 담아내야 하는지도 고민이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가면, 일단 어떤 식으로든 출연진의 삶에 개입하게 되기 때문에, 제가 그 자리에 없었어도 그랬을 거라 생각되는 모습을 담으려면 그 개입의 적정선을 지키는 게 중요한데 그 한계가 모호하니까요. 또,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 뭔지는 아는데 그게 진실이 아닐 경우에는 어떻게 편집을 해야 할까, 그 사람들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도 고민이죠. 예를 들어,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휴먼 다큐를 촬영하다 보면 약한 사람이라고 항상 선한 모습만 보이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시청자들이 약하고 선한 사람의 모습을 기대한다고 거기에만 맞춰서 편집하면, 나중에 이야기가 실제와 다르게 미화되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죠.


조 PD는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휴먼 다큐를 찍게 되면 ‘실패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다고 했다.

20년 전쯤에 MBC에서 <성공시대>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제가 얼마 전에, 그때 <성공시대>에 나왔던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한 번 찾아봤어요. 놀랍게도 대부분이 사업 실패로 무일푼이 되었거나 범죄를 저질러 구속되었거나 그렇더라고요. 사업이 승승장구하던 그때는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20년이 지나고 보니 20년을 가는 성공담이 하나도 없는데, 그걸 성공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공이라는 잣대가 잘못된 잣대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반대로 접근을 해보고 싶어요. 


성공했다고 알고 있었지만 실패한 그 사람들을 따라가면서 진짜 성공은 무엇이고, 계속해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가치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어떤 것을 봤을 때 한 사람의 삶을 잘 살았다, 못 살았다 얘기할 수 있을까, 실패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등등을 한 번 ‘망한’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서 생각해 보는 겁니다. ‘성공시대’가 아니라 ‘실패시대’가 되는 거죠.


물론, 휴먼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만 삶의 진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가 현재 맡고 있는 <PD수첩>도 어찌 보면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성현 PD는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고 또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탐사보도, 바른 소리를 찾아가는 의미 있는 여정
조 PD가 현재 담당하고 있는 <PD수첩>은 은폐되었거나 드러나지 않은 사건을 파헤쳐 세상에 알리는 대표적인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다. 입사하자마자 조연출로 일했던 프로그램도 <불만제로>(삶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는 목표하에 식품과 생활 안전, 가격거품 등 일상적인 소재에 대한 정확한 정보 및 안전한 대안을 제시하는 프로그램)라는 사회 고발 프로그램이었고, 회사를 잠시 떠나 있었을 때도 <뉴스타파>라는 인터넷 탐사뉴스 프로그램을 했다. 아름다운 휴먼 다큐에 이끌려 PD가 되었는데,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프로그램들을 주로 하게 된 배경을 굳이 말하자면 “성격에 맞아서가 아닐까” 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어요. 새로운 걸 찾아다니면서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걸 즐기고요.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계속하는 건, 어떤 사명감에 불타서라기보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하고 옳다고 믿는 걸 하는데, 덕을 보는 시청자들이 있고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니 옳은 일이 되는 거 같아요. 다행히 제가 겁이 없는 성격이라 계속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는 자신의 성격을 ‘구타유발자’라는 말로 표현한다. 자신이 구타를 유발한 예로, 중학교 시절 실내화를 챙겨오지 않았다고 자신을 체벌하는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어머님이 빨아주신 실내화가 아직 안 말랐고, 밖에서 신던 운동화는 벗었으며, 더러워지는 건 내 발이지 학교 건물이 아닌데 내가 왜 맞아야 하느냐?”고 질문을 하는 바람에 더 호되게 맞은 일이 있다고 한다.(PD 저널. 2017.01.12. “어느 PD의 고백 ⑧: 웰컴 투 구타유발자 클럽 [조성현 MBC PD의 고백]) 이 에피소드에서 굳이 잘못한 부분을 찾으라면, 선생님을 공경해야 하는 예의에 어긋났다고 해야 할까?


조 PD는 스스로 자신을 한국 문화에 안 맞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은 나이나 연배, 혹은 지위가 아니라, 오직 자기가 하는 행동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문화적 가치 판단은 뒤로하고, 그의 성격이 불합리함을 참지 못하고 ‘입바른 소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는 점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에는 그가 적임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는 데 거침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더 신중하고 면밀하게 따져보고 고민하게 된다고 말한다.



탐사보도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잖아요. 잘못된 보도가 나가면 한 사람의 인생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그걸 누가 책임져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제보자나 피해자의 말을 신뢰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선의를 가지고 제보를 해 주는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제보자의 말이 100% 맞는 건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실일 수 있겠지만, 그 외 여러 가지 측면을 다 고려한 진실이라는 건 다른 그림으로 그려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프로그램을 만들 때, 최대한 여러 측면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피해자를 만나 취재를 할 땐, 진술의 구체성과 정확성을 면밀하게 따져 보고요. 피해자의 입장만 방송되는 일이 없도록 사건 당사자에게는 본인의 입장을 해명할 수 있는 반론권을 충분히 주고, 반론이 있으면 반드시 함께 전달하죠. 저뿐만 아니라 모든 PD가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는 만큼 프로그램 제작 시 위협을 느끼게 되는 경우나 힘든 점은 없는지 물었더니, “처음 한 두 번 폭행을 당했을 때는 정말 억울하고 싫었는데, 나중에 가니까 그런 일들은 그냥 벌어지겠거니 해요.” 한다. 취재 과정이 다 녹화되고 있거나 녹취되고 있다는 걸 알면 사람들도 그만큼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기 때문에...

그동안 다행히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상황까지 간 적은 없다고 했다. 또, 보도국 기자들과 달리 PD들은 ‘출입처’처럼 정해져 있는 정보원이 없어서 매번 “맨땅에 헤딩”하듯 취재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대신, 빚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눈치 볼 필요 없이 취재한 것을 다 방송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단다.

특별히 힘든 일 없이 즐기면서 일하고 있다지만, 보도 내용 때문에 고소를 당하기도 하는 등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로서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다만,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그것을 중심에 두고 있기에 다른 것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하는 듯 보인다. 딱 한 가지, 사랑하는 이가 생기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하게 된 현실적인 고민을 빼고는 말이다.


직선적이며 까칠하다는 평을 듣는다는 조성현 PD는 2016년 결혼을 한 뒤로 아내에게만은 지극한 사랑꾼이 되었다. 그러면서 전에는 없던 불평이 생겼다. “싱글이었을 땐 일 때문에 자주 출장을 가고 하는 게 즐거운 것 중 하나였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장기간 출장을 가는 게 싫어졌어요. 일이 끝나고 돌아가서 쉴 때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 마음이 안 좋고요. 그래서 38살까지 그런 관계를 만들지 않고 살았는데...... (웃음)” 이렇게 현실적인 고충이 생겼지만, 그래도 그는 미지의 영역을 함께 해 나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행복하다. “서로 신뢰하며 미지의 벽을 같이 깨나가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에 같이 발을 디딜 수 있게 하는 게 사랑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답게 자신의 가정도 아름답게 꾸려나갈 자질이 보인다. 그는 우디 앨런(Woody Allen: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배우, 코미디언으로 활동해 온 미국 유명인)을 좋아해서 뉴욕을 배경으로 우디 앨런을 만나러 가는 로드 다큐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데, 웬지 그 길을 아내와 손잡고 함께 떠나게 될 것 같다.


글 Juyoung Lee /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