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마천루 시대를 연 상징적인 건물 Fred French Building

맨해튼 마천루 시대를 연 상징적인 건물 Fred French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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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효하는 20년대


1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20년대는 미국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급격하게 변동했던 시기다. 외형적인 경제적 성장이 특히 눈부셨다. 20년부터 29년까지 10년간 국민소득은 2배로 올랐고 처음으로 도시 거주자들의 수가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늘어난 소득은 소비의 급증을 불러왔다. 자동차와 생활용품, 의류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소비자들의 시선을 잡기 위한 광고와 광고를 싣는 신문도 급성장했다. 월가는 활황을 넘어 투기의 수준으로까지 연중 상승세를 지속했다.

 루이 암스트롱과 듀크 앨링턴이 활동하던 이 시기에 재즈는 연령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인기를 얻었다. 영화관에 관객이 몰리면서 6천석 규모의 초대형 극장이 타임스퀘어에 들어섰다. 그리고 라디오의 등장은 NBC와 CBS 방송을 탄생시키며 진정한 대중문화 시대의 탄생을 알렸다. 미국이 매스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대중문화와 대량 소비 사회로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시기가 ‘포효하는 20년대(Roaring 20’s)’로 불린다. 그리고 소비와 대중문화의 중심지 뉴욕만큼 정신없이 질주하던 이 시기의 정수를 잘 보여주는 도시는 없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의 ‘길드 시대’가 5 애비뉴를 중심으로 고급 저택들이 들어서던 ‘백만장자의 거리’를 탄생시켰다면 20년대는 그랜드 센트럴 역을 중심으로 한 미드타운 42가를 중심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빌딩들이 경쟁적으로 올라간 마천루(Skyscraper) 시대를 열었다. 부동산 개발업자, 미디어 황제, 대기업 오너 들은 더 높고 더 아름다운 빌딩을 건설하면서 그것을 자신들의 성공과 자존심의 상징으로 여겼다. 전 세계인들에게 맨해튼 하면 떠오르는 미드타운 마천루의 숲이 탄생했고 당시에 세워진 많은 빌딩이 랜드마크나 히스토릭 건물로 지정되어 보존되면서 여전히 뉴욕의 스카이라운의 중요한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20년대 미드타운 고층 빌딩 건설 붐을 가장 앞장서서 이끌었던 인물이 부동산 업계의 타이쿤으로 불리던 프레드 프렌치였고, 그의 이름을 딴 5 애비뉴 45 스트릿의 38층 프레드 프렌치 빌딩은 마천루(skyscraper)라는 단어를 탄생시키며 20년대 뉴욕을 상징하는 선두 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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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프렌치


프레드 프렌치는 1883년 브롱스에서 태어났다. 그가 10살이 되기전 주정뱅이였던 부친은 세상을 떠났고 어린 프렌치는 신문 배달, 유리창 닦기, 잔디 깎기 등의 일을 하며 가계를 도왔다.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전업으로 나설 각오였지만 어머니의 강한 만류로 학교에 남았다. 영특한 학생이었던 프렌치는 퓰리처 장학금으로 명문 호 레이스 만에 진학했고 프린스턴 대학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귀족과 명문 가족들의 자녀로 가득한 프린스턴의 속물적 학생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1년 만에 중퇴한다. 프렌치는 이후 텍사스와 뉴멕시코 등에서 닥치는 대로 노동을 하고 심지어 서아프리카까지 가서 돈을 벌었다. 뉴욕에 돌아온 그는 콜롬비아 대학 엔지니어링 과정으로 다시 공부하며 일을 했다. 창문도 없는 하루 1불 숙박비의 호텔에서 기거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할 정도로 가난한 그였지만 톨스토이와 체홉 등 문호들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사람은 어려울 때라도 끊임없이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그의 인생관이었다.

프렌치는 27세가 되던 1910년 자신의 이름을 단 회사를 설립하고 어머니의 집을 담보로 빌린 적은 돈으로 부동산 임대 사업을 시작했고 낡은 건물을 매입해 개조해서 매매하는 개발 사업도 병행했다. 그 후 브롱스 지역에 수십 동의 아파트를 건설해 본격적인 부동산 개발자로서 자본과 기술을 축적했다. 1920년 그는 뉴욕 부동산의 거물이 되는 일생일대의 과감한 투자를 시도한다. 25만 달러를 빌려 매디슨 애비뉴 41스트릿에 16층 오피스 빌딩을 세운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공업, 미디어, 문화 중심지였던 20년대 뉴욕에는 사무실 공간을 찾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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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에 큰 성공을 거둔 프렌치는 이후 미드타운의 땅을 광범히 하게 매입했다. 후에 프레드 프렌치 빌딩이 들어서는 5 애비뉴45 스트릿도 그중 일부였다. 그는 1925년 그 땅에 자신의 인생을 모두 담은 빌딩을 짓기 시작했다. 프렌치 빌딩이 완성된 1927년 맨해튼에는 모두 30개의 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건설 광풍의 연도였다. 그중에서 프렌치 빌딩은 가장 높은 빌딩의 명성을 2년간 가질 수 있었다. 1929년 인근에 크라이슬러 빌딩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한편 주거용 건물로 대표적인 프렌치의 프로젝트는 미드타운 동쪽 끝에 세워진 대규모 주택단지 '튜더 시티(Tudor City)' 와 2 브릿지 지역으로 불리는 맨해튼 브리지와 브루클린 브릿지 사이 로어맨해튼의 '니커버커 빌리지(Knickerbockers Village)' 다. 편의, 오락, 체육 시설을 모두 갖춘 대형 아파트 단지 들었고 뉴욕에서 처음 시도된 형태의 주거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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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의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38층 높이의 이 건물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점 외에도 탁월하게 아름다운 아르데코(Art Deco) 양식으로 5번가의 국제적 명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부동산 개발업자이며 엔지니어로서 프레드 프렌치는 구조와 실용성만 추구하지 않았다. 빌딩의 가치를 높이려면 디자인과 장식에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믿었고 이 건물이 그의 개발 철학을 대표하는 양식인 셈이다. 프랑스풍의 장식과 디자인이 돋보이는 건물의 외관은 특히나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칼데아의 예술에 영향을 받아서 '맨해튼의 메소포타미아'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45년 랜드 마크 보존위원회는 프렌치 빌딩을 랜드마크로 지정하면서 “전통과 선구자적인 모더니즘 사이의 양식적 타협을 이룬 가장 훌륭한 사례 중 하나로 남아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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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꼭대기에 있는 직사각형 타워의 4면 장식은 유리 도자기가 재료였고 붉은 테라코타가 사용되었으며 메소포타미아 시대를 연상하는 말의 문양이 외관을 장식한다. 건물의 모든 청동 작품 특히 엘리베이터 문은 러시아계 예술가인 빈센트 글린스키 (Vincent Glinsky)가 작업했다. 1986 년 뉴욕시 랜드 마크 보존위원회 보고서에서 명시했듯이 얇은 금 베니어로 덮인 청동 즉 금박의 엘리베이터는 이 건물의 중요한 예술작품이다.

이 빌딩은 뉴욕을 찾는 이들에게 플랫 아이언, 엠파이어 스테이트, 크라이슬러 빌딩 등에 비교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뉴욕의 스카이라인 위로 뾰족하게 드러나는 첨탐도 없고, 건물 전체가 태양광을 반사하는 번쩍거림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입구도 크지 않아 복잡한 5 애비뉴를 걷다 보면 건물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디테일을 즐길 수 있는, 100년 전 재즈 시대의 뉴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빌딩이다.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