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이는 ‘근대로의 여행’

1. 동산선교사주택
1910년 무렵 선교 활동을 하기 위해 대구에 온 미국인 선교사들이 블레어 선교사를 위해 지은 집이다. 굵은 벽돌로 된 2층 집으로 대구 근대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붉은 벽돌과 담쟁이 덩굴이 어우러져 이색적이고 고풍스럽다. 1989년 6월 15일 대구유형문화재 제 26호로 지정되었다.


2. 3.1만세운동길
3.1운동 당시 계성학교와 신명학교, 성서학당, 대구고등보통학교 등 대구의 학생들이 이곳을 지나 3.1운동 집결지인 장터로 행진을 했다고 전해진다. 계단이 90개 놓여있고, 수레와 자전거를 끌기 좋게 양 쪽 구석은 편평하게 다듬어져 있다.

3. 계산성당 - 계산예가
계산성당이 1899년 최초에 지어졌을 당시에는 한옥이었다. 그러나 1901년 화재로 모두 불타 없어지고, 1902년에 프와넬 신부가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고딕 양식의 건물로 외벽을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로 쌓아 올렸다. 사적 제290호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계산예가는 근대 역사 문화 시설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체험관이다. 대구 근대 미술의 역사, 음악의 역사, 문화의 역사 등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4. 이상화, 서상돈 고택
민족저항 시인 이상화가 1939년부터 1943년 작고하기 전까지 살았던 집. 1999년부터 고택을 보존하자는 시민운동이 펼쳐지면서 허물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군인공제회에서 인근에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하면서 고택을 매입해 2005년 대구시에 기부해 채납했다.
대구시는 고택을 보수했고, 고택보존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안에 다양한 전시물을 설치해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상화 고택 옆에 자리한 서상돈 고택은 실제 집이 있던 위치는 아니다. 이상화 고택을 조성하면서 서상돈의 생가를 옆에 함께 복원하여 짓게 되었다. 대구에서 지물 행상과 포목상으로 부를 축적한 서상돈은 1907년 정부가 일본에 빚을 많이 져 국권을 상실한다고 생각하여 김광제 등과 함게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5. 뽕나무 골목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 왔다가 귀화 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이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주사충은 처음 경상감영 자리에 터를 잡았었는데 관사를 지으라고 나라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계산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곳에서 뽕나무를 심고 길쌈을 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 일대를 뽕나무 골목이라 부른다. 당시 심은 뽕나무는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자치단체에서 골목을 새로 포장하고 뽕나무 몇그루를 심었다. 또 골목 벽에는 두사충의 설화가 벽화로 그려져 재미있는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6. (구)제일교회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30호. 1896년 미국 북장로파 개신교교회는 경북지역을 선도할 선교기지를 대구에 설립하기로 하고, (구)제일교회 자리에 정완식씨가 소유했던 초가 5동 기와집 1동의 저택을 매입했다. 대구 · 경북 지역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야소교회당’이 탄생했다. 야소교회당이 제일교회의 옛이름이다.
성도들이 늘면서 1933년 현재의 모습인 붉은 벽돌조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1936년에는 이주열 권사와 교인들의 헌금으로 고딕 양식의 5층 종각을 완공했다. (구)제일교회 건물은 계산성당 다음으로 유명한 대구 근대건축물이다.
7. 한의약 박물관 - 종로와 진골목 - 화교협회
대구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은 옛 약령시 사람들의 삶과 체취를 직접 보고 느끼며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 교육, 문화, 관광이 어우러진 한방문화공간이다. 한방차를 시음하고 자신의 건강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한방체험실과 대구의 한의약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한방역사실 등이 있다.
종로는 1900년대 초까지 영남제일관이 있던 자리에서부터 북쪽으로 길게 뻗은 길이며, 진골목은 ‘길다’라는 뜻을 가진 골목으로 대구의 부자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다. 또한, 이곳 종로는 대구 근대기 중국 화교들이 많이 정착한 곳으로 이곳에 화교협회와 소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1929년 지어진 화교협회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돼있다.
글 권윤수
에스카사 편집부
사진자료 중구청
아는만큼 보이는 ‘근대로의 여행’
1. 동산선교사주택
1910년 무렵 선교 활동을 하기 위해 대구에 온 미국인 선교사들이 블레어 선교사를 위해 지은 집이다. 굵은 벽돌로 된 2층 집으로 대구 근대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붉은 벽돌과 담쟁이 덩굴이 어우러져 이색적이고 고풍스럽다. 1989년 6월 15일 대구유형문화재 제 26호로 지정되었다.
2. 3.1만세운동길
3.1운동 당시 계성학교와 신명학교, 성서학당, 대구고등보통학교 등 대구의 학생들이 이곳을 지나 3.1운동 집결지인 장터로 행진을 했다고 전해진다. 계단이 90개 놓여있고, 수레와 자전거를 끌기 좋게 양 쪽 구석은 편평하게 다듬어져 있다.
3. 계산성당 - 계산예가
계산성당이 1899년 최초에 지어졌을 당시에는 한옥이었다. 그러나 1901년 화재로 모두 불타 없어지고, 1902년에 프와넬 신부가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고딕 양식의 건물로 외벽을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로 쌓아 올렸다. 사적 제290호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계산예가는 근대 역사 문화 시설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체험관이다. 대구 근대 미술의 역사, 음악의 역사, 문화의 역사 등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4. 이상화, 서상돈 고택
민족저항 시인 이상화가 1939년부터 1943년 작고하기 전까지 살았던 집. 1999년부터 고택을 보존하자는 시민운동이 펼쳐지면서 허물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군인공제회에서 인근에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하면서 고택을 매입해 2005년 대구시에 기부해 채납했다.
대구시는 고택을 보수했고, 고택보존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안에 다양한 전시물을 설치해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상화 고택 옆에 자리한 서상돈 고택은 실제 집이 있던 위치는 아니다. 이상화 고택을 조성하면서 서상돈의 생가를 옆에 함께 복원하여 짓게 되었다. 대구에서 지물 행상과 포목상으로 부를 축적한 서상돈은 1907년 정부가 일본에 빚을 많이 져 국권을 상실한다고 생각하여 김광제 등과 함게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5. 뽕나무 골목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 왔다가 귀화 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이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주사충은 처음 경상감영 자리에 터를 잡았었는데 관사를 지으라고 나라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계산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곳에서 뽕나무를 심고 길쌈을 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 일대를 뽕나무 골목이라 부른다. 당시 심은 뽕나무는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자치단체에서 골목을 새로 포장하고 뽕나무 몇그루를 심었다. 또 골목 벽에는 두사충의 설화가 벽화로 그려져 재미있는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6. (구)제일교회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30호. 1896년 미국 북장로파 개신교교회는 경북지역을 선도할 선교기지를 대구에 설립하기로 하고, (구)제일교회 자리에 정완식씨가 소유했던 초가 5동 기와집 1동의 저택을 매입했다. 대구 · 경북 지역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야소교회당’이 탄생했다. 야소교회당이 제일교회의 옛이름이다.
성도들이 늘면서 1933년 현재의 모습인 붉은 벽돌조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1936년에는 이주열 권사와 교인들의 헌금으로 고딕 양식의 5층 종각을 완공했다. (구)제일교회 건물은 계산성당 다음으로 유명한 대구 근대건축물이다.
7. 한의약 박물관 - 종로와 진골목 - 화교협회
대구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은 옛 약령시 사람들의 삶과 체취를 직접 보고 느끼며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 교육, 문화, 관광이 어우러진 한방문화공간이다. 한방차를 시음하고 자신의 건강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한방체험실과 대구의 한의약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한방역사실 등이 있다.
종로는 1900년대 초까지 영남제일관이 있던 자리에서부터 북쪽으로 길게 뻗은 길이며, 진골목은 ‘길다’라는 뜻을 가진 골목으로 대구의 부자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다. 또한, 이곳 종로는 대구 근대기 중국 화교들이 많이 정착한 곳으로 이곳에 화교협회와 소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1929년 지어진 화교협회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돼있다.
글 권윤수
에스카사 편집부
사진자료 중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