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가수 故 김광석(1964~1996)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가사이다.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줄여서 김광석길)에 가면 이 노래를 거의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다. 스피커를 통해 김광석의 노래가 여러 곡 흘러나오지만, 유독 이 노래가 머릿속을 맴돈다. 잔잔한 선율과 포근한 그의 음색이 골목길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김광석길은 어둡고 으슥해서 안전에 취약한 어느 골목길을 밝게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일단 회색 시멘트벽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넣는 방법이 채택됐다. ‘어떤 그림을 그릴까?’. ‘어떤 이야기를 입힐까?’ 등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김광석길을 기획한 인디053의 이창원 대표는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두고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어요. 자치단체와 문화계 등 각계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요.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이 대구 출신이기 때문에 김 전 회장의 이야기를 그려 넣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아이디어를 짜내어 보아도 ‘이 사람이다.’하는 인물들이 딱히 없어서 김 전 회장 쪽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였죠.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전 회장 이야기도 나왔지만, 이미 삼성상회 터에 상징물 같은 게 세워져 있어서 애초에 제외됐고요. 하지만 저는 경제계 인물 같이 딱딱한 이미지로 가닥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문화계 쪽은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가수 김광석이 대구 출신이라는 걸 생각해냈어요.”
대구 중구 대봉동은 김광석이 태어나 5살까지 자란 그의 고향이다. 김광석은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대봉동 방천시장 내 ‘번개전파상’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러다가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학창시절부터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김광석길 프로젝트는 2010년 11월 본격 시작됐다. 20명의 지역 미술 작가들이 김광석에 관한 이야기를 벽화로 그렸다. 아주 환하게 웃고 있는 김광석, 오토바이를 탄 김광석, 포장마차 사장으로 변한 김광석 등 친근하고 익살스러운 그의 모습을 벽에 그렸다. 좁고 기다란 골목길의 한 쪽 벽면을 수많은 그림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수성교 방면의 골목 입구에는 김광석이 벤치에 앉아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 동상이 있다. 또 골목 중간쯤에는 실물 크기의 김광석이 기타를 들고 서 있는 동상이 있다. 손영복 작가의 작품이다. “서 있는 김광석 동상은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요. 골목을 찾는 분들이 동상 옆에 서서 함께 사진도 찍고 추억을 많이 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164센티미터 작은 체구의 김광석 동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또 이색적인 코너가 관광객들을 맞는다. 자물쇠와 군번줄을 직접 걸어놓을 수 있도록 한 곳이다.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 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졌다. 자물쇠와 군번줄을 걸어 놓으면 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연인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
시커먼 벽면에 그림만 그려 넣었을 뿐인데 골목 전체가 딴 판으로 변했다. 허름했던 골목 안 건물들은 새롭게 고쳐지거나 새로 지어졌다. 그 자리에 분위기 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는가 하면 아기자기하고 예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가게가 자리를 잡았다. 또 새로운 문화와 예술이 더해지고 있다. 가끔 대학생들이 손수 만든 액세서리를 비롯해 미술 작품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이른바 ‘버스킹’이라 불리는 깜짝 공연도 펼쳐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광석길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덩달아 유명세를 타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 첫 번째 인물은 화가 이동원 씨다. 이동원 작가는 처음엔 이 골목에 미술 작업실을 차렸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작업실에서 마카롱을 굽고 있다. 취미 삼아 만들다가 지인들에게 먹어보라고 선물로 줬더니 반응이 아주 좋아 지금은 이 골목을 찾는 손님들에게 판매를 하고 있다. 취미가 본업이 되어 버렸다. “굉장히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신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소통도 하고, 문화 예술가들과 교류도 하게 되어서 아주 행복해요. 저는 이 골목에 작업실을 차렸을 뿐인데, 이렇게 많이 변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물론 지금은 작품 활동보다 마카롱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지만요.” 라며 방금 구운 마카롱을 오븐에서 꺼냈다.
두 번째 인물은 가수 채환 씨다. 채 씨는 김광석 닮은 목소리를 가진 인물로 어느 방송매체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다. 방송 출연 전에는 무명가수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유명 인물이 되었다. 김광석길이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더 바빠졌다. 채 씨는 김광석길에 생긴 소공연장에서 김광석 관련 음악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광석이 형은 지금 가고 없지만, 광석이 형이 뛰어놀던 골목에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채 씨는 어린 시절부터 김광석을 무척 좋아해서 아버지를 졸라 대봉동으로 이사를 온 적도 있다고 한다. “광석이 형이 이 골목서 딱지 따먹기, 구슬 따먹기도 하며 놀았다는 생각으로 이 동네서 사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주 행복했죠.”
김광석길은 죽어가던 바로 옆 전통시장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방천시장은 사실상 시장으로서의 구실을 못 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대형마트로 다 빠져가면서 방천시장 안에서는 손님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았다. 그런데 시장 바로 옆에 김광석길이 생기고 나서는 많이 달라졌다. 음식점들이 많이 생겨나 저녁마다 손님들로 북적인다. 물론 전통시장 본래의 기능을 되찾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죽어가던 시장이 조금씩 살아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방천시장>
신천 제방을 따라 개설된 시장이라 해서 방천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방 이후 만주나 일본 등지로부터 돌아온 사람들이 호구지책으로 장을 열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의 3대 시장으로 손꼽혔다. 특히 60~70년대에는 싸전과 떡전으로 유명세를 탔다. 한 때는 점포수가 1,0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큰 시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50~60군데 점포만이 남아 있다.
S.CASA 편집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가수 故 김광석(1964~1996)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가사이다.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줄여서 김광석길)에 가면 이 노래를 거의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다. 스피커를 통해 김광석의 노래가 여러 곡 흘러나오지만, 유독 이 노래가 머릿속을 맴돈다. 잔잔한 선율과 포근한 그의 음색이 골목길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김광석길은 어둡고 으슥해서 안전에 취약한 어느 골목길을 밝게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일단 회색 시멘트벽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넣는 방법이 채택됐다. ‘어떤 그림을 그릴까?’. ‘어떤 이야기를 입힐까?’ 등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김광석길을 기획한 인디053의 이창원 대표는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두고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어요. 자치단체와 문화계 등 각계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요.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이 대구 출신이기 때문에 김 전 회장의 이야기를 그려 넣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아이디어를 짜내어 보아도 ‘이 사람이다.’하는 인물들이 딱히 없어서 김 전 회장 쪽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였죠.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전 회장 이야기도 나왔지만, 이미 삼성상회 터에 상징물 같은 게 세워져 있어서 애초에 제외됐고요. 하지만 저는 경제계 인물 같이 딱딱한 이미지로 가닥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문화계 쪽은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가수 김광석이 대구 출신이라는 걸 생각해냈어요.”
대구 중구 대봉동은 김광석이 태어나 5살까지 자란 그의 고향이다. 김광석은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대봉동 방천시장 내 ‘번개전파상’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러다가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학창시절부터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김광석길 프로젝트는 2010년 11월 본격 시작됐다. 20명의 지역 미술 작가들이 김광석에 관한 이야기를 벽화로 그렸다. 아주 환하게 웃고 있는 김광석, 오토바이를 탄 김광석, 포장마차 사장으로 변한 김광석 등 친근하고 익살스러운 그의 모습을 벽에 그렸다. 좁고 기다란 골목길의 한 쪽 벽면을 수많은 그림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수성교 방면의 골목 입구에는 김광석이 벤치에 앉아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 동상이 있다. 또 골목 중간쯤에는 실물 크기의 김광석이 기타를 들고 서 있는 동상이 있다. 손영복 작가의 작품이다. “서 있는 김광석 동상은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요. 골목을 찾는 분들이 동상 옆에 서서 함께 사진도 찍고 추억을 많이 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164센티미터 작은 체구의 김광석 동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또 이색적인 코너가 관광객들을 맞는다. 자물쇠와 군번줄을 직접 걸어놓을 수 있도록 한 곳이다.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 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졌다. 자물쇠와 군번줄을 걸어 놓으면 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연인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
시커먼 벽면에 그림만 그려 넣었을 뿐인데 골목 전체가 딴 판으로 변했다. 허름했던 골목 안 건물들은 새롭게 고쳐지거나 새로 지어졌다. 그 자리에 분위기 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는가 하면 아기자기하고 예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가게가 자리를 잡았다. 또 새로운 문화와 예술이 더해지고 있다. 가끔 대학생들이 손수 만든 액세서리를 비롯해 미술 작품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이른바 ‘버스킹’이라 불리는 깜짝 공연도 펼쳐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광석길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덩달아 유명세를 타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 첫 번째 인물은 화가 이동원 씨다. 이동원 작가는 처음엔 이 골목에 미술 작업실을 차렸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작업실에서 마카롱을 굽고 있다. 취미 삼아 만들다가 지인들에게 먹어보라고 선물로 줬더니 반응이 아주 좋아 지금은 이 골목을 찾는 손님들에게 판매를 하고 있다. 취미가 본업이 되어 버렸다. “굉장히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신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소통도 하고, 문화 예술가들과 교류도 하게 되어서 아주 행복해요. 저는 이 골목에 작업실을 차렸을 뿐인데, 이렇게 많이 변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물론 지금은 작품 활동보다 마카롱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지만요.” 라며 방금 구운 마카롱을 오븐에서 꺼냈다.
두 번째 인물은 가수 채환 씨다. 채 씨는 김광석 닮은 목소리를 가진 인물로 어느 방송매체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다. 방송 출연 전에는 무명가수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유명 인물이 되었다. 김광석길이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더 바빠졌다. 채 씨는 김광석길에 생긴 소공연장에서 김광석 관련 음악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광석이 형은 지금 가고 없지만, 광석이 형이 뛰어놀던 골목에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채 씨는 어린 시절부터 김광석을 무척 좋아해서 아버지를 졸라 대봉동으로 이사를 온 적도 있다고 한다. “광석이 형이 이 골목서 딱지 따먹기, 구슬 따먹기도 하며 놀았다는 생각으로 이 동네서 사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주 행복했죠.”
김광석길은 죽어가던 바로 옆 전통시장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방천시장은 사실상 시장으로서의 구실을 못 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대형마트로 다 빠져가면서 방천시장 안에서는 손님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았다. 그런데 시장 바로 옆에 김광석길이 생기고 나서는 많이 달라졌다. 음식점들이 많이 생겨나 저녁마다 손님들로 북적인다. 물론 전통시장 본래의 기능을 되찾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죽어가던 시장이 조금씩 살아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방천시장>
신천 제방을 따라 개설된 시장이라 해서 방천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방 이후 만주나 일본 등지로부터 돌아온 사람들이 호구지책으로 장을 열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의 3대 시장으로 손꼽혔다. 특히 60~70년대에는 싸전과 떡전으로 유명세를 탔다. 한 때는 점포수가 1,0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큰 시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50~60군데 점포만이 남아 있다.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