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마지막 낭만, 내 사랑 사근동

2017-02-27

사근동은 나의 제2 고향이다. 1973년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이사를 왔으니 어느새 인연 맺은 지 만 44년이 넘었다. 나는 이곳에서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교에 대학까지 마쳤다. 그리고 이곳을 떠났다가, 20년 뒤인 2006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이곳은 서울 한양대 기숙사 뒷마을이다. 마을 한 쪽은 청계천에 면해 있고, 다른 쪽은 왕십리로 나가는 고갯길로 이어져 있는데, 입지 상 외지인들이 올 일이 거의 없다. 그런 이유로 오래 동안 이곳은 마을 주민들과 우리 대학 학생, 교직원들만의 전용공간이었다.

이 동네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청계천 판자촌의 심장부였다. 그 때는 지금보다 이 동네가 훨씬 북적댔다. 대한민국 천지사방에서 서울로! 서울로! 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 때 이곳은 돈 없는 시골 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보금자리였다. 우리 집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청계천 아이들의 일원이 되어 이곳 사근초등학교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이 시절 나는 어딜 가도 사는 동네를 말하지 못했다. 사근동이라고 하면 왠지 동네 이름부터 촌스러워 보였고. 사람들이 '사근'이란 말을 '삭았다' 혹은 '썩었다'의 의미로 해석해, 가끔은 '썩은동' 에서 사냐고 되묻기도 했다. 어린 시절 싹튼 내 콤플렉스는 바로 이 동네에서 시작된 게 틀림없다. 그런 기억의 동네니, 사근동은 내 기억 속에서 항상 애증의 장소였다.

사근동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장동으로 넘어가는 산자락에는 판자촌 시절 지어진 조악한 건물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40년이 넘도록번듯한 건물 하나 들어서지 않았고, 그 흔한 대형 수퍼마켓도 이곳만은 비껴갔다. 오로지 우리 학생들이 들락날락하는 음식점, 커피숍 그리고 구멍가게 몇 개가 전부다.도심에서 5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외딴 섬과 같은 동네가 있다니! 독자들은 믿겨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곳을 거의 매일같이 들른다. 단골 산책코스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점심은 이곳에서 해결하고, 커피 한 잔도 이곳에서 마신다. 이곳 음식점 분위기는 서울의 다른 동네와는 사뭇 다르다. 어느 집을 가도 맛있고 푸짐한 가정식 백반이 나오고 주인장들의 인심도 후하다. 최근에는 커피 전문점도 두어 곳 들어 왔는데 그 맛이 별다방, 콩다방 보다 낫다. 그윽한 향의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창밖의 오래된 동네를 감상하는 걸 상상해 보시라. 눈을 감으면 판자촌 시절 이곳을 뛰어놀던 아이들 모습이 선하다. 동료교수들은 내가 왜 날마다 이곳에 가서 밥 먹기를 좋아하는 지 잘 모를 거다.

그런대로 맛있는 음식점 몇 군데가 있어서 가는 모양이라 생각할 것이다. 동네 한 바퀴를 거닐면서 옛일을 추억하는 박아무개 교수, 그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나로선 매일같이 시간여행을 하는 것인데... 점심 시간 짬을 이용해 고향에 다녀 오는 것인데... 저 집은 내가 살았던 집, 저 약국은 40년 전에도 있었는데, 어! 그 약사님 아직도 계시네.

아, 저 집은 내가 고시공부 할 때 자주 갔던 구멍가게네, 저기서 라면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우리 대학에서 이런 추억을 간직하며 이곳을 거니는 이가 나 외에 누가 있으랴. 나는 사근동을 올 때마다 이 마을의 미래를 생각한다. 이 마을과 오랜 인연을 가진 이의 최소한의 책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마을이 현재 모습을 간직한 채 앞으로도 계속 가야 하는지. 아니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도록 무언가를 바꾸어야 할지.

이 마을을 바꾼다면 어떤 식으로 바꾸어야 서울에서 가장 유니크한 마을을 만들어 이곳과 인연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큰 행복을 안겨줄지... 이런 것들이 내 고민 중 하나다.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