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드라마세트장에서 추억을 남기다.

2017-01-05

영화나 TV드라마를 보다보면 극에 몰입해 내가 주인공이 되고 상대배우가 되기도 한다. 주인공의 슬픈 가족사에 눈물을 훔치고 악역 연기자에 분노하며 모니터 밖 드라마의 또 다른 연출자인양 훈수를 뜬다.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드라마 속 그 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10월, 최근 여행객들에게 핫 플레이스로 각광받는 순천드라마세트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상반된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김수현 작가의 「사랑과 야망」은 1987년 76%라는 엄청난 드라마 시청률을 보이며 2006년 SBS에서 같은 작가에 의해 리메이크 됐다. 화제의 그 드라마가 만들어진 세트장이 바로 전라남도 순천에 위치한 순천 드라마세트장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 집안의 가족사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게 했던 태준, 태수, 미자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 나중에 그 가족이 서울로 올라가 살게 되는 달동네, 옛날 종로거리 등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중국 속 한류 열풍으로 최근 중국 예비신랑 신부들은 한국 드라마세트장을 찾아가 웨딩화보를 찍는 것이 유행이라는데...이곳에서는 어떤 드라마 속 명장면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좁은 골목길,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쓸쓸한 나무 전봇대가 눈에 들어온다. 담장대신 둘러져 있는 녹슨 철조망, 시대를 대변하는 일본식 목재건물의 파출소와 낡은 우체통, 시간을 거슬러 그때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쿵짝 쿵짝 소리를 따라가면 추억의 음악실도 나오고 매표소에서 직접 표를 끊고 줄을 서서 기다리던 80년대 서울 변두리 극장가도 만날 수 있다. 그러다보면 좁은 골목길 동행자와 자연스레 어릴 적 살았던 에피소드를 서로 나누게 된다. 내가 살던 동네 풍경, 더운 여름날 구멍가게에서 맛 본 아이스게끼의 추억, 나이로 보면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을법한 풍경마저도 분위기에 도취 돼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묘한 마력에 빠져든다.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거리풍경,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보았던 반공방첩이란 표어마저도 반가운 곳이다. 골목을 들어서면 코 흘리던 시절 동무들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뛰쳐나올 것만 같다. 추억의 향수를 즐기며 골목길을 누비다 다정한 모녀 관람객의 재미난 대화도 엿듣게 된다. “엄마가 이런 곳에서 자랐어?” 20대 딸은 엄마 팔짱을 끼고 신기한 듯 묻는다. “되게 못 살았네” 엄마 대답 이전에 이미 답을 하는 젊은 딸, 그저 엄마는 미소로 답한다. 그러고 보면 그리 긴 세월도 아닌데 세대 간 자라온 공간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우리는 참 많이 발전된 나라에 살고 있다. 가난이 부끄럽지 않은 그때 그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음이 자랑스러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이다.

 




드라마 세트장에서 놀아보자.

평면TV가 대중화된 요즘 드라마세트장 입구에는 그 시대를 반영이라도 하듯 브라운관TV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통과하도록 입구를 꾸며놓았다. 드라마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라는 의미일까. 입장료 3천원(성인기준)을 내고 입구에 들어서면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며 드라마 포스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빛과 그림자’도 눈에 들어온다. 세 갈래로 나눠진 골목길 중 바로 정면으로 나 있는 길에는 1980년대 서울 변두리를 재현한 거리가 보인다. 골목길로 보이는 큰 건물엔 빛바랜 페인트칠로 당시 상영작을 알리는 영화간판이 걸려 있는 순양극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역시 배우 안재욱이 주연으로 나온 ‘빛과 그림자’의 배경이자 극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여기서 기념사진은 필수인 듯하다. 극장 앞에는 마치 1980년대 러브스토리를 재현이라도 하듯 검은색 치마의 교복과 교련복을 입은 데이트 족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그 시절 복장을 입고 사진도 찍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체험이 운영되고 있었다. 신통방통한 기분에 극장 안으로 들어서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고고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크리스마스트리에서나 봄직한 꼬마전구들이 천장에 달려있고 벽에는 그 시절 영화 포스터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한켠에서는 추억놀이라도 하는 듯 50대 계모임에서 온 것 같은 아주머니들이 아직은 녹슬지 않은 춤 스텝을 밟으며 소녀시대 웃음으로 깔깔거리며 넘어간다. 순천시가 조성하고 운영하는 이곳 오픈 드라마세트장은 2006년 2월 개장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순천읍내(1950년대 후반~1970년대), 서울 봉촌동 달동네(1960년대), 서울 변두리(1980년대)를 3개 마을로 재현해 둔 곳인데 다른 드라마세트장보다 꾀나 디테일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듯하다. 세트장 내에서 맨 아래 위치한 순천시 읍내를 재현한 곳과 그 위 서울 변두리를 재현한 곳, 바로 언덕 위에 달동네를 둘러 볼 수 있다

 

순천여행이 처음인 나는 순천이 고향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순천 자랑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자연생태가 가장 잘 보존된 순천생태학습지인 순천만부터 바람에 속삭이는 갈대밭의 운치, 에덴의 동쪽, 제빵왕 김탁구 최근 영화 허삼관의 촬영지로 각광받으며 관광객들이 연일 줄을 서는 순천영화세트장까지… 그러고 보니 순천은 자연의 운치와 근대도시의 추억, 전라도 진미밥상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여행지인 듯 했다.

 



먹고살기 힘들던 그 시절, 그러나 아날로그가 가져다 준 따뜻함

1950~1970년대 순천읍내로 들어 가 보자. 이 시대는 지금의 4O대 후반 이상 세대들에게 아날로그가 주는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에덴의 동쪽, 허삼관 등 우리나라 근대화시기를 배경으로 다룬 드라마와 영화들의 촬영배경 장소로 주로 쓰이는 공간들이다. 낯설지 않은 ‘기름 짜줍니다’라는 정겨운 방앗간 안내 글씨. 어린이날 최고 선물세트였던 과자 종합선물세트 상자가 구멍가게 안에 놓여있다. 성동 광업소와 신동양 극장. 고시촌 등 엄마 어렸을 적에를 연상케 하는 풍경들이 즐비하다. 평일이라 사람 발길은 별로 없어 쓸쓸할 법도 한데 이런 텅 빈 거리가 오히려 추억을 떠올리기엔 안성맞춤인 듯하다. 낡은 구두들이 널빤지에 늘어서 있고 구두닦이가 금방이라도 시내 골목을 누비며 “따꺼~~”를 외칠 것만 같다. 조금은 세련된 듯 한 오래된 건물 귀퉁이 삼양꽃집도 눈에 들어오고 반공방첩이라는 글귀와 함께 파출소가 보인다. 어린이들이 어릴 때 먹던 유일한 국민 영양소 원기소 광고가 약국 유리창에 붙여져 있고 우리나라 최초 조미료인 미원 광고 포스터도 보인다. 드라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터풍경과 철물을 취급한 한일상회, 검은 뿔테 안경의 언니, 오빠들이 참고서를 사러 자주 드나들었을 제일서점, 신문보급소를 지나 불고기와 냉면 맛이 끝내줬을 것 같은 대성식당, 가게 앞에 자리한 커다란 가마솥 앞에 쓰인 그 시절 철자법대로 설농탕과 곰탕이라 쓰여진 명조체 안내판, 지금은 사라진 떡 방앗간 등 걷다보면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 속에 드라마 장면들이 오버랩 된다. 친절하게도 방영된 드라마 촬영지에 대한 안내판이 있어 편리했는데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라는 안내문이 서있는 곳에는 추억의 빵들이 진열돼 있고 빵집 오른편엔 실물크기의 김탁구와 양미순이 포토존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걷다보면 낡은 칠판, 책걸상이 있는 학교 교실 풍경은 칠판 위 애국을 상징하던 태극기와 교훈·반훈을 중요시하던 그 시절 학교 풍경을 그대로 엿볼 수 있게 한다. 봉화고 3학년 2반 건물에 들어서면 앞서 언급한 7080복고의상 체험장에서 의상 대여를 받을 수 있는데 50분에 2천원으로 세트장 내를 돌아다니며 사진 찍기에는 충분할 것 같다.

 

단순히 관람만 가능할 줄 알았는데 공갈빵, 브이콘, 양은도시락 등 추억의 간식도 맛보고 음료도 마실 수 있다, 먹을거리 등을 파는 구멍가게와 전과 막걸리를 먹을 수 있는 주점들이 세트장 안에서 그 시대에 맞게 운영되고 있다. 곳곳이 사진촬영하기 좋고 옛날 교복까지 대여할 수 있어 특별한 추억을 남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 드라마 그 장면 그곳에서 추억놀이 한 장 남겨보자. 순천만 드라마세트장에서 차로 20분 가까이에는 자연생테학습장이자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과 우리나라 첫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순천만정원박람회(2015년 8월 5일 제 1호 국가정원 지정)도 둘러볼 수 있다.

 

도심보다 가장 달을 가까이 볼 수 있는 하늘아래 달동네

세트장 맨 위쪽에 위치한 1960년대 달동네로 올라가는 길 낡은 버스정류장을 알리는 정류소가 보인다. 순천드라마세트장 중 핫 플레이스라 할 수 있다. 원래 군부대 자리였던 이곳은 도심 재생화로 부대가 이전되며 일부를 세트장으로 만들었는데 야산 언덕바지 자연 경사면을 최대한 살려 우리나라 1960년~80년대 서울 관악구 봉촌동 판자촌과 건물들을 그대로 재현한 대규모 드라마세트장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세트장 건설당시 예전 봉촌동의 사실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서울 달동네 철거 시 배출된 쓰레기들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설계부터 나무를 대지 않고 콘크리트를 사용해 실제 건물을 지었다고 하는데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달동네의 애환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달동네로 올라가는 길은 세 갈래로 나눠진다. 어느 길로 가든 그 시대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가파른 길 오밀조밀 붙어있는 집들, 예전엔 옆집 숟가락 젓가락 개수도 다 알고 살았다더니 오늘날 층간소음으로 등을 돌리는 이웃 간의 불협화음은 상상도 못할 시대였을 것만 같다. 최근 드라마 ‘에덴의 동쪽’ 촬영지로 이용되면서 한류열풍을 타고 일본인 관광객이 자주 찾기도 한다고 한다. 송승헌과 송승헌 아역의 집에서 기념 촬영도 추억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장근석과 윤아의 캐스팅으로 핫 이슈가 됐던 2012년 드라마 ‘사랑비’의 배경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인욱(김시후)이 윤희(윤아)를 집에 데려다주고, 인하(장근석)이 씁쓸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도 떠오를 것이다. 달동네 세트장 맨 꼭대기에 완산보육원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역시나 드라마 <에덴의 동쪽>의 촬영지다. 주인공이 버려지고 키워졌던 곳이다. 맑은 밤하늘에 뜬 달이 발아래 도심보다 가장 가까이 느껴지던 곳 그래서 달 아래 달동네가 아니었을까.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라면 아련한 추억에 코끝이 찡해올 수도 있을 것 같다.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