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근대로의 시간여행 (향촌문화관&대구근대역사관)

2017-01-05

지금의 대구 시내 번화가를 동성로로 알고 있다면 그 이전 세대인 1970년대 대구의 중심 이른바 시내로 불리던 대구 최대 번화가는 지금의 중부경찰서, 경상감영공원이 있는 향촌동 일대였다. 이름난 다방과 술집, 음악 감상실, 맞춤구두가 유행하던 구두거리 등 부모에게 들은 어렴풋한 명소들이 자리 잡고 있던 곳, 좀 더 앞선 세대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며 지금의 시대를 만들기까지 그들의 일상과 도시 풍경은 어땠을까. 응답하라 1988을 보며 그 시대의 문화와 그 시대의 제품들이 불러일으키는 향수에 열광하듯 근대로의 시간여행은 시대를 아우르며 엄마 어렸을 적에 혹은 그 이전의 시대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감성 저격의 장소가 될 것이다. 나들이 장소를 정하지 못했다면 가까운 시내로 나가보라. 대구문학관(향촌문화관)과 대구 근대역사관에서 드라마 세트장에서나 마주할 것 같은 그때 그 시절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향촌문화관에서 향촌동을 거닐다

195·60년대 낭만이 있던 대구 번화가의 풍경은 어땠을까. 향촌문화관 1,2층은 그때 그 시절 대구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향촌동 일대를 그대로 재현한 거리를 만날 수 있다. 1층에서는 ‘향촌을 걷다’라는 주제로 일제시대~구한말부터 6.25전쟁 전후까지 대구역을 중심으로 대구의 상업, 금융, 문화, 예술의 중심지역으로 되기까지 중앙로와 공구골목, 교동시장, 향촌동 등 대구의 중심가를 재현하고 있는데 마치 드라마 세트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맨 처음 들어서니 중앙로 최대 상권을 자랑하던 맞춤식 명통구리 양복점과 최초버스 부영버스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만난 어르신 말에 의하면 당시 라디오에서 선전을 자주 하던 곳이라는데 아직도 반고개 열린큰병원과 100세병원 사이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어르신 세대들이 입었을 그 시절 교복과 가방, 일제 강점기 경찰제복을 입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스크린에는 일제 강점기 그 시절 거리 영상이 나온다. 미국 공보원, 빵집, 서점, 다방, 금은방 등 사람들로 붐볐을 거리 풍경이 흥미롭다. 196·70년대 본격적인 공구거리로 변모하며 산업의 기반이 된 북성로 공구골목의 모습과 피난민들의 삶터이자 대구의 상권이 형성된 교동시장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멀티테마 영상실에서는 시민 기증 자료로 구성된 장롱 속 이야기를 통해 대구의 옛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2층으로 들어서면 ‘향촌을 기억하다’라는 주제로, 6.25전쟁 전후 대구의 문인들이 이곳으로 집결하게 된 그 시절 향촌동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1950,60년대 근대문화를 주름잡던 문화예술인들이 문학을 논하고 나라를 걱정하던 시내 풍경들의 모습이다. 좁은 골목길 술 한잔을 기울이며 시대를 논하던 젊은이들이 집결하던 선술집의 풍경이 정겹게 느껴진다. 1층이 관람위주라면 2층은 좀 더 체험을 즐길 수 있다. 60년대 초 대구 거리의 모습들을 보며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천재화가 이중섭이 작품활동 당시 자주 들렀다는 다방에는 담배 은박지를 캔버스삼아 자주 그림을 그렸다는데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다. 음반가게를 모티브로 한 곳에는 오래된 LP판과 그 시절 레코드 기기를 접할 수 있고 극장 세트장 안으로 들어가면 옛날 변사체험도 가능하다. 더욱 반가운 것은 197·80년도 리어카에 설치된 이동식 놀이기구 목마가 전시돼 있어 반갑기까지 하다. 가난해 종이가 귀하던 시절 연필로 쓴 공책 위에 다시 펜으로 쓴 글씨도 볼 수 있어 힘들게 살아 온 우리 윗세대들의 고단함이 느껴져 현재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대구 근대문학·예술 세계에 심취하자.

신나게 근대시대를 즐기고 3,4층으로 올라가면 대구 문학과 동행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질곡 속에서도 끊임없이 발전해온 근대 문학과 근대 문인들을 만날 수 있다. 3층에 들어서면 거대한 조형물에 대구를 대표하는 문인들의 이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방직후 대구에서 발행된 동인지 이름인 ‘죽순’을 형성화한 것이다. 이상화와 이장희, 현진건 등 지역 작가를 기리는 ‘명예의 전당’과 ‘대구 문학 기록보관소’가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 근대문학이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대구와 경북지역의 문인들을 소개해 지역의 문단사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 교육의 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이육사(안동), 박목월, 김동리(경주), 이효상(대구) 등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놀라고 대구가 한국 근대문학의 태동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에 자부심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은 2012년 9월부터 ‘대구 문학자료 기증운동’을 벌여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대구 문인들의 자료를 확보하고 개관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곳이지만 향촌문학관과 더불어 대구시민이라면 꼭 가봐야할 곳이기도 하다. 대구근대문학관은 1,2층에 비해 조용한 편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관람객이라면 좀 더 여유를 갖고 문학을 즐길 수 있는데 문인들의 시를 들을 수 있는 체험관, 작가와의 동행, 명작 갤러리 방송체험, 영상관, 동화 구연방, 동화 감상방, 문학서재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시설을 갖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그 옛날 대구 명성을 이어오던 음악감상실 '녹향'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 클래식 음악 감상실인 녹향은 1946년 성악가를 꿈꾸던 고 이창수 선생이 SP레코드판 500여 장과 축음기 1대로 향촌동 자택 지하에 처음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6·25전쟁 때는 대구에 내려온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으며 양명문 시인의 ‘명태’도 이곳에서 탄생됐을 만큼 대구 근대시대를 대표하는 명소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고전음악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면서 극심한 경영난을 겪게 되었고 대구 원로음악가회의 노력으로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현재는 3남 이정춘 씨가 선친의 뜻을 이어 녹향을 지키고 있으며, 2014년 10월 향촌문화관으로 이전하므로 옛 시절의 향수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시간대별로 영화음악, 팝송, 성악 합창, 오페라 등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

 

◆향촌문학관(대구문학관)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449

▶문의: 053)424-8774 (휴관은 매주 월요일이며 향촌문학관 입장료: 1000원, 대구문학관: 무료)

 

대구 향촌동은 대구 역사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미래를 교감할 수 있는 대구 역사의 산실이다. 대구 읍성의 화약고 자리가 일제 강점기에는 중앙 염매소로 오늘날 중앙시장으로 변모하며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으로 도심의 생기를 불어 넣던 곳이다. 또한 향촌동은 문인들의 정신적 고향이자 예술 활동의 터전이 되었고 6.25 한국전쟁당시 피난 온 예술가들의 사랑방인 다방과 음악감상실이 존재했고 고단한 심신을 달랬던 술집들이 즐비하며 그들이 작품에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곳이다. 대구문학관과 향촌문화관 건물은 1912년 대구 최초의 일반은행인 선남상업은행 건물이 새롭게 재탄생한 곳으로 그 역사적 의미는 클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국난의 위기 때마다 대구 사람들의 진취적인 삶의 원동력을 대구근대역사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구를 있게 한 삶의 원동력, 대구 근대역사관에서 찾다

대구 근현대사를 한눈에 조명할 수 있도록 조성된 박물관이 바로 대구근대역사관이다. 경상감영공원에 조성된 근대역사박물관은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쓰이다 1954년부터 2010년 까지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된 근대 문화유산으로 2011년 개관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형미가 뛰어난데다 역사적 의미를 담은 건물의 원형이 잘 보존돼 2003년 대구시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됐다. 1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조선식산은행실을 발견하실 수 있다. 이곳은 일제 식민지 경제 정책에서 금융 지배를 담당했던 핵심기관으로 1918년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자 경상농공은행이 조선식산은행 대구 지점으로 개편되었는데 금고에 당시 사용했던 은행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 식산은행이라는 낯선 이름의 은행이 일제강점기 어떤 의도로 세워졌고 그 업무는 무엇이었는가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당시 은행에서 사용된 영수증, 주권, 화폐, 주판 등의 옛 은행에서 사용되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런 근대적 경제활동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하던 조선인 지주 혹은 자본가는 이런 신식 제도로 무장한 은행 앞에서 재산을 어떻게 갈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옆 역사연표실에서는 대구부로 개편된 대한제국부터 현재까지 대구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하여 시각 자료와 영상자료로 설명하고 있다. 밖으로 나오니 대구근대역사관에 전시된 경상감영 모형이 설치돼 있다. 경상감영이라면 요즘으로 치면 대구, 부산, 울산 시청에 경상남북도청, 각 지방경찰청을 합친 곳이라 할 만큼 대단한 곳이었다. 대구 경상감영은 경상도 전체를 관장하던 지방수령(관찰사)이 업무를 보던 곳이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관찰사의 근무지답게 장엄했던 건물이 일제침략으로 흔적도 없이 파괴됐다는 사실에 다시금 애국을 느끼게 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곳이 바로 부영버스 영상체험실이다. 체험실로 들어서면 영상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대구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내버스를 도입하여 운행했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영상물을 보며 근대 거리를 체험할 수 있다. 1층에는 1907년 대구의 서상돈이 중심이 되어 시작한 국채보상운동과 1960년 4.19 민주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던 2.28 학생 운동을 시각자료를 통해 만날 수 있다.


 




구문학관에서 문인, 예술가들의 삶을 엿보았다면 이곳에서는 대구 근대 미술, 음악, 문학을 만날 수 있다. 국내최초 문인지 ‘죽순’과 가야금 명창인 최계란이 부른 ‘대구 아리랑’을 감상할 수 있다. 교육의 도시 대구가 만들어지기 까지 대구 지역 근대교육에 대한 내용도 볼 수 있다. 1906년과 1907년에 세워진 계성학교와 신명여학교를 비롯해 달성학교 등 당시 교육관련 자료인 학습지도안, 졸업기념첩, 교과서 등이 전시돼 있다. 서구 문물이 들어온 그 시대 삶도 엿볼 수 있는데 근대문물이었던 전화기와 시계, 안경, 라디오 등 개항이후 유입된 생활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제는 역사드라마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축음기와 인력거도 볼 수 있다. 사과, 섬유 등 대구의 대표적인 특산품이 어떻게 대구에 정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도 알 수 있고 이제는 세계적 기업이 된 삼성이 대구에서 뿌리 내린 과정도 알 수 있는데 그 시절 근대전화기 시대에서 휴대전화 최강국인 현재의 대한민국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발전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박정희와 대구’ ‘근대 산업 도시 대구’ 등의 자료를 통해 근대 대구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층 전시실 안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주로 1900년대 초의 대구의 모습을 찍은 유리건판 사진들과 함께 기획전시가 이루어진다. 근대기 대구의 모습과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상설전시장을 비롯해 기획전시실, 체험실, 문화강좌실, 수유실, 도서실 등이 있어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생각보다 알찬 대구근대역사관과 향촌문화관, 대구근대문학관에서 하루를 투자해보라 적극 강추하고 싶다.

 

◆ 대구근대역사관

▶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67

▶ 문의: 053)606-6430 (휴관은 매주 월요일이며 무료관람)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