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 유럽 여행이야기 '더는 걸어갈 땅이 없었다 '

김동하 유럽 여행이야기 ‘더는 걸어갈 땅이 없었다’

유럽 여행은 한국 대학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고 한다. ‘에스카사’에 ‘대한민국 청년 김동하 유럽 여행 이야기’를 연재 중인 김동하 씨는 220일간 4,017km 유럽 대륙을 두 발로 걸으며 횡단했다.  그는 유럽 도보 여행에 앞서 약 1년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한 경험이 있다. 호주에서 돌아온 뒤, 더 늦기 전에 유럽을 도보로 횡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제주 올레길과 서울에서 목포에 이르는 구간을 걸으며 여행을 준비했다고 한다. 여행 자금의 반은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으로 충당했다.

여행 경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하루에 텐트와 침낭을 포함해 26kg의 짐을 메고 20km 이상을 걸어서 유럽 땅을 횡단한 의지의 대한민국 청년 김동하. 그는 2016년 5월 24일부터 인천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벨라루스, 폴란드, 체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대륙을 걷고 또 걸어서 목표했던 4,000km를 넘긴, 포르투갈의 호까곶에서 여정을 끝났다.

그가 유럽 대륙을 횡단하는 중에 ‘에스카사’ 연재와 함께 SNS에 올려둔 솔직한 여행 뒷이야기는 같은 또래의 청춘들에게 대리만족과 함께 많은 공감을 받았다. 이제 그의 글은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가 걸으며 느꼈던 생각을 모은 책, ‘더는 걸어갈 땅이 없었다’를 소개한다.




인생은 순례길과 닮아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드넓은 하늘, 여유로운 사람들. 순례길을 걸은 지도 보름이 지났다. 무겁게만 느껴졌던 배낭도 이제는 한 몸이 된 듯 익숙하게 느껴진다. 한참을 걷다가 적당히 그늘진 나무 밑에 앉아 아침에 샀던 바게트와 하몽을 입에 넣는다. 귀를 스쳐 가는 바람 소리를 듣고 그 소리 따라 고개를 까딱거려본다. 아, 좋다. 비록 아직도 일행들보다 걸음이 느려 해가 질 때쯤 숙소에 도착하곤 하지만 하루를 오롯이 마치고 배낭을 내려놓았을 때 기쁨은 누구 못지않다.



6개월 전, 회사를 퇴직하고 여행을 떠났다. 물론 주위의 반대도 심했다. 조금만 버티면 이 바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던 3년 차였기 때문에 지금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바보짓’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바보처럼 살지 않아서 그간 내가 얻은 건 무엇인가? 집에서 잠을 자본 것이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일에 치이고 살았다.

3년 동안 내 달력은 온통 ‘일하는 날’과 ‘일하는 걸 준비하는 날’ 밖에 없었다. 처음엔 물론 즐거웠다. 열정에 가득 차 시키는 일이면 마다하지 않고 나서서 했다. 이렇게 힘들수록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빨리 배워서 곧 나의 일을 할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의 일을 하면서 행복할 거라고. 그 날을 위해 살았다. 하지만 문득 어느 날 깨달았다.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 깨달음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다.



3개월간 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변해 있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목마름을 느꼈다. 바다를 헤엄치던 물고기가 다시 수족관에 갇혔을 때 기분이랄까? 한국에 오자마자 미친 듯이 일을 했는데 이번엔 미래의 행복이 아닌 지금 당장 행복을 위해서였다.

밤마다 멀리 떨어진 땅의 별을 그리워했다. 낯선 곳에서 마시는 낯선 공기가 그리웠다. 한없이 경계를 품고 다가가 이내 친해져 맥주잔을 부딪치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겨우 도착한 도시 한복판에서 길을 헤매며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서 있던 내가 그리웠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 세계를 모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펼쳐 유럽을 보았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세계가 있다. 어느 날, 불현듯 나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내가 열차에서 본 세상은 전부 땅이었다. 열차 안에서 간절히 바라던 바깥세상, 두 다리로 그렇게 밟고 싶어 했던 땅이 끝없이 있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나는 그 땅을 밟았다. 그토록 만지고 싶었고 숨 쉬고 싶었고 느끼고 싶었던 대지 위에 섰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온몸 구석구석으로 공기가 퍼졌다. 크게 기지개를 켰다.

철로 위엔 낡지만 단단한 열차 한 대가 있었다. 그 열차는 7일간 쉬지 않고 달릴수 있었고 끝없이 서쪽으로 갈 수 있는 존재였다. 열차는 멈췄고 나는 걸을 준비를 했다. 내 작은 세계는 무너졌고 그렇게 좀 더 큰 세계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글 김동하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