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전문가가 들려주는 네팔 문화 이야기 이해하기 힘든 그들만의 카스트 제도

2017-09-12

네팔 카트만두 번화가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나를 점심에 초대한 한국인이 그곳이 유명한 식당이라고 했다. 식당에서 익숙하지 않은 메뉴를 골라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계산을 하는데 식당 주인을 마주쳤다. 그의 얼굴을 보고 카트만두에서 식당을 차려서 성공한 한국인인가보다 생각하고서 한국어로 "한국분이세요?" 라고 물으니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을 보니 내 말을 전혀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그때야 네팔에는 아리안 계열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 계열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네팔인의 60% 정도가 아리안계이고 나머지 40% 정도는 몽골리안 계인데, 트레킹 가이드로 유명한 셰르파(Sherpa) 민족이나 구릉(Gurung), 림부(Limbu), 라이(Rai)족들은 한국인과 얼굴이 비슷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네팔이 100개가 넘는 민족들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고, 대부분의 민족이 자기들의 고유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고유의 언어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 때문에 이들을 단순히 '네팔인'이라는 말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이해하게 됐다.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단일민족국가라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이런 다양한 민족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까지 유지하면서 한 국가를 이루고 있는 네팔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 다양한 민족보다도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이 있었다. 바로 카스트 제도였다. 네팔에서 처음 카스트 얘기를 들었을때 '네팔에도 카스트 제도가 있구나'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무실의 네팔 직원들과 부대끼며 지내고 다른 네팔 사람들을 만나면서 민족뿐만 아니라 카스트에 따라서도 문화와 생활 습관이 전혀 다르고, 이들의 삶이 얼마나 강하게 카스트 제도에 영향을 받는지 알 수 있었다. 직원이 4명 있었는데 모두 브라만(네팔에서는 '바훈'이라고 부른다)과 크샤트리아(네팔에서는 '체트리'라고 부른다) 계급 사람들이었다. 우리 사무실에는 일주일에 2~3일씩 사무실을 청소하는 디디('언니'라는 네팔)가 왔다. 그 단체는 주택 건물을 임대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점심도 사무실에서 함께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디디가 오는 날이면 직원들은 점심을 먹고 나서도 자기 그릇을 씻지 않고 그대로 설거지통에 넣어두었다. 거기다 직원들은 자기가 마신 물컵마저도 책상위에 그대로 둔 채 디디가 치울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조그만 사무실에 굳이 청소하는 사람까지 둘 필요는 없다.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씻고, 청소는 일주일 한 번 정도만 같이 하면된다"라고 얘기하자 모두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들이 왜 그렇게까지 반대를 하는지 알 지 못했는데, 한참후에서야 그 이유가 카스트 때문인 것을 알았다.


네팔에서는 여전히 카스트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다고 믿는 이가 많다. 그래서 구멍가게조차 청소하는 이를 따로 두고, 고용한 종업원이 화장실 청소는 절대로 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도 많다. 처음에 이런 것들을 알지 못했을 때, 몇몇 브라만 친구들이 몸치장은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도 자기가 앉아 있는 곳 주변이 쓰레기로 가득해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카스트라는 것이 어떻게 이들의 행동을 지배하는지를 알고 난 후에야 이런 행동의 밑바탕에는 '청소'라는 일이 본인의 계급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네팔에서 카스트에 따른 차별은 이미 60여년 전에 법률적으로 철폐됐고, 경제 사회의 중심지인 카트만두에서는 카스트 제도에 따른 차별을 드러내 놓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수 세기에 걸쳐 이들의 생활을 지배해 온 카스트 제도가 쉽게 사라질 리 없다.


한번은 외국 생활을 오래 했다는 네팔인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이러저러한 얘기끝에 카스트 얘기를 꺼내자, 그는 외국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 차별같은것은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때마침 천민 계급의 사람이 그 사람 집에 물건을 배달하러 왔다. 우리는 망고를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집주인은 그 배달원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이를 보며 나는 ' 역시 해외물 먹은 사람이라 조금은 깨어있나보다'생각했다. 그 천민 계급의 배달원은 어쩔 줄 몰랐으며 현관 밖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맨발로 집에 들어섰고, 집주인은 망고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라? 집주인이 이 배달원을 마치 자기 집에서 부리는 사람이나 되는 양 이것저것 막 일을 시키더니, 다 자른 망고의 과육 부분은 잘라서 우리 앞에 내놓고 씨에 붙은 부분만 모아서 배달원에게 먹으라고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배달원은 이마저도 황송한 듯이 구석에서 뒤돌아 먹고는 우리가 먹은 접시들까지 모두 정리해 놓고 돌아갔다. 


이 모습은 나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다른 네팔 사람들은 찬찬히 둘러보니, 그동안 내가 무신경하게 지나쳤을 뿐 이런 모습들은 마트만두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카스트는 내가 막연하게 '신분 제도'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 네팔어로 얘기하고 네팔 사람들과 친하게 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네 카스트는 뭐냐?"라는 것이었다. 내가 성까지 부텽 이름을 말하면 "'김'이 네 카스트냐?"라고 묻기도 했다. 한국에는 카스트 제도가 없다고 대답하면 어떻게 카스타가 없을 수가 있냐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새로운 네팔 친구들을 만나서 인사를 할 때면 성은 빼고 이름만 알려줬는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만나는 이마다 이름만 예기해서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이들의 카스트가 성으로 금방 확인되기 때문에 서로 간에 성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고 얘기를 듣고서야 이해가 됐다. 사실 성을 말하지 않더라도 네팔인들은 사람들의 생김새만으로도 이들의 대략적인 카스트를 구별할 줄 알았다. 내 이삿집 나르는 것을 도와주던 친구는 우리 집주인과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는데 얼굴만 보고서도 브라만이라 단정했다. 당시 나는 집주인 이름도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실제로 '기미레'라는 성을 가진 브라만 계급이어서 깜짝 놀랐다. 이들의 카스트는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가지 카스트와 이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가촉천민듸 단순한 구분이 아니었다. 


이 모든 계급이 다시 여러개의 서브카스트로 나뉘고, 주로 몽골리안 계인 토착민들은 우리가 아는 전통적인 카스트와는 또 다른 계급이 존재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조금은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카스트라는 신분제도는 이해하고 어렵다. 그러나 카스트 제도를 모르고는 네팔인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손으로 밥을 먹고, 절대 남의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으며, 나뭇잎으로 만든 일회용 접시를 쓰는 것까지, 이 모든 문화의 바탕에는 카스트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글 김설미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