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 유럽 여행이야기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그녀, 이젠 함께 걷다

2017-08-30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작은 성당이다. Logrono라는 스페인 중북부에 위치한 한 마을이었다. 밤늦게 성당에 도착한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순례자 명부에 이름을 적고 있었다. 그때 2층 계단으로 한국인 무리가 내려왔다. 반가운 마음이 들어 넙죽 인사를 했지만 추레한 내 몰골을 상상하며 다소 싱겁게 다시 눈을 돌렸다. 그들 역시 갑작스러운 한국인의 등장에 당황해하며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그 무리 중 두 번째에 있던 사람이 지금 나와 함께 걷고 있는 그녀다. 운명의 사람을 만날 때는 환한 빛이 그 사람 곁에서 뿜어져 나오고 시간은 마치 정지된 것처럼 그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라고 늘 생각했었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조금씩 내 곁으로 오는 그녀를 보는 난 눈에서는 하트가 뿅 나올 줄 알았건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나는 한국 사람들과 갑작스러운 조우에 당황했으며 그녀는 눈길도 주지 않고 숙소로 들어갔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빨리 침대에 누워 쉬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 외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녀와 나, 그러니까 우리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자 길’을 걷고 있었다. 약 한 달가량을 걸어 스페인의 끝에 도달하는 이 길에 많은 한국인이 있었고 우리 역시도 그 한국인 중 한 명이었다. 우린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친근하고 털털한 옆집 누나 같았다. 당시 안경이 부러져 고생하던 내게 테이프를 건네는 친절을 베풀고 자신이 사 온 군것질거리를 나눠주는 것을 보았을 때 심성이 고운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성적인 감정을 느낀다거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일은 없었다. 그녀도 마찬가지겠지만, 순례길을 걷고 있던 나는 마음의 짐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라든지 현재의 걱정과 고뇌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본능에 의한 추동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내가 거친 사회생활을 거친 3살이나 많은 그녀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엔 턱없이 어렸다. (그녀 역시 3살이나 어린 내게서 남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내게 단지 착한 누나였다.

사랑은 아주 조금씩 하지만 무섭도록 빠르게 진행된다. 사랑을 암에 비유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마치 암세포가 몸속을 잠식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그녀를 사랑해버린 것이다. 우리가 처음 같이 길을 걸었던 날이 생각난다. 일행들에게서 뒤처진 우리는(지금 생각해보니 그녀가 나와 함께하려고 일부러 하루를 더 쉬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새벽 공기 사이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Burgos 성당을 바라보며 배낭을 멨다. 제대로 얘기 한번 해보지 않은 그녀와 단둘이 길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며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갔다. 하지만 우린 금세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시작했다. 낯선 외국의 시골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만큼 로맨틱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내가 의지할 사람은 너뿐이었고 너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아침 해가 떠오르며 하늘은 분홍빛으로 변했다. 나는 “해가 떴네요.”라고 말했고 너는 “그러네. 하늘 봐,이쁘다!”라고 답했다.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고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냈다. 같은 하늘을 다른 카메라에 담았다. 그곳은 우리만의 작은 우주였다.

반나절을 걸으며 살아왔던 얘기를 했다. 순례자 길의 마법이 있다면 그것은 내 옆에 걷는 사람을 마치 십여 년 넘게 알고 지낸 것처럼 느끼는데 단 5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름이 뭐예요? 사는 곳은 어디시죠? 취미가 어떻게 되시나요?’ 따위의 재미없고 상투적인 질문들은 건너뛸 수 있다. ‘저는 삶이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요. 앞으로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후회했던 것들은 이런 것이에요.’ 와 같은 좀 더 재밌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이 길의 매력이다. 나는 그녀와 나란히 걷기도 때로는 앞서 걷기도 했다.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재잘거리며 수다를 떤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와의 작은 대화가 끝나고 나면 복잡한 수학 문제가 풀리고 난 뒤 맛볼 수 있는 그런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평소에 말수가 적었음에도 이것저것 그녀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녀는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광고 아트 디렉터’라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광고 촬영에 필요한 소품을 제작하고 배치하는 일을 3년간 하며 사회 초년생의 삶을 톡톡히 맛보았다. 하루 2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하며 1년 365일 먼지 가득한 세트장에서 살았다. 이토록 힘들었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지금만 참으면 언젠가 행복해질 거라면서 말이다. 집은 단지 샤워를 하는 곳으로 바뀐 지 오래였지만 버티고 또 버텼다. 하지만 그 ‘행복’이라는 것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얘기가 끝났을 때쯤 우린 숙소에 도착했다. 이미 다른 순례자들이 모든 침대를 차지했고 남은 거라곤 2층 침대 하나밖에 없었다. 그녀는 1층 침대에 짐을 풀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누워 우리가 나눴던 대화를 되짚어 보았다. 아직 직업이란 것을 가져보지 않았던 나는 그녀가 했던 말을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열정을 가지고 ‘내 일’이란 것도 해본 적 없기에 맞장구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단지 나이가 적고 큼의 차이라기보다 아우를 수 있는 감정의 종류가 달랐다.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내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이미 그녀는 느꼈고 그것에 대한 스스로 답을 내렸다.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느꼈던 감정을 이해하기보다 그녀 자체를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이 불쑥 들었다. 그녀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생각하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불현듯 찾아온 이런 생각이 낯설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무척 반가웠다.


멀리서 꽃이 보였다. 그 꽃은 아름다웠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보고 싶은 그런 꽃이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어 간직한다거나 화분에 담아 지닐 수는 없었다. 그 꽃은 그때가 아니면, 그 순간이 아니면 아름다울 수 없는 꽃이었기 때문이다.


밤이 찾아왔고 창문 너머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글을 썼고 그녀 역시 노트를 펼쳐 글을 적었다. 고개를 조금 내밀어 ‘뭘 하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오늘 하루에 대해 일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무척 궁금했다. 그녀의 하루에 내가 있는지 말이다. 그녀가 적고 있는 일기에 내가 등장하는지, 등장한다면 어떤 얘기를 썼을지. 문득 나에 대해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정이 다 되어 갈 때쯤 우리는 불을 껐다. 그녀는 “내일 아침에 봐”라는 말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날은 우리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던 첫 번째 밤이었다.


글 김동하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