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과 레저를 동시에...칠레 중부 도시들

2017-08-08

... 바닷가에 앉아 천 번의 키스를 나눈 뒤 그에게 말했지.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고. 그 역시 그렇게 말했지요. 푸에르토 몬트 당신을 떠난 곳, 왜 그래야 했는지도 모르면서 파란 하늘 밑 푸에르토 몬트의 바닷가 앞 모든 것을 두고 떠난 곳. 다시 돌아온 이 곳, 견딜 수 없는 고요함만이 나에게 말할 거예요. 이제 떠나지 말라고...” 지금은 독일에서 살고 있는 칠레 여가수 파트리시아 살라스의 애잔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푸에르토 몬트’ 노래 가사다. 스패니쉬 기타의 애절함이 비가 잦은 푸에르토 몬트의 날씨와 어우러져 감상에 젖게 하는 노래다. 사실 이 노래는 우루과이 출신 그룹 이라쿤도스(Iracundos)가 1968년 만든 곡으로 비공식적인 몬트 시 노래처럼 돼 있다. 이를 기념해서 몬트 바닷가에 거대한 ‘바닷가에 앉아서(sitting by the sea)’란 제목의 남녀 조각상이 있다. 노래가 유명하듯 2002년에 만들어진 이 조각상도 몬트의 명물이 됐다. 조각상을 보면서 이 노래가 생각난 건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하고 난 뒤다. 버스터미널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지 못한 건 몇 년 사이 칠레에 은행이 많아지면서 업무제휴를 맺은 카드만 사용이 가능 하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돈을 찾고 나니 마음이 푸근해져서 잊혀졌던 것들도 생각이 난 모양이다.


조각상을 보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르마스광장에 세워진 동상을 봤다.푸에르토 몬트에 1852년 처음 정착해 도시를 만든 독일인 가족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유독 내가 묵은 숙소인 핑크하우스에도 나를 제외하고 3팀이 모두 독일인이란 게 생각이 났다. 사실 푸에르토 몬트는 여행객은 물론 사는 사람도 독일출신이 많다고 한다. 그날 오후 차량을 빌려 칠로에섬을 다녀왔다는 독일인 모녀와 숙소에서 만났다. 그녀는 한국인이라고 하자 자신의 팀에도 한국인 선수가 있다고 했다. 팀? 알고 보니 그녀는 함부르크는 상파리에 축구팀의 유일한 여자 매니저였다. 2개의 팀을 관리하고 있는데 한 팀은 그저 그렇지만 상파리에는 괜찮다고 했다. 그가 말한 한국 축구선수 이름은 최경록. 


굉장한 유망주라고 했다.누군지 잘 몰라서 인터넷을 바로 찾아봤더니 U-23 국가대표 선수였다. 그녀는 최 선수 말고도 한국의 젊은 선수 한 명을 더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초이’라고 부른다며 원래 발음이 뭐냐고 물어서 ‘최’라고 했더니 도저히 따라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아쉬운 대로 체 게바라의 ‘체’와 비슷하다고 했더니 그래도 어렵다고 해서 독일어 ‘뮌헨’도 발음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고 얘기하면서 서로 웃었다. 내년에 독일에 가서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녀와 얘기하며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 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멈춘 곳 칠로에섬 안쿠드 

독일인 모녀가 다녀왔다는 곳인 칠로에섬의 안쿠드에 가기 위해 도착하자마자 끊어 놓은 왕복 표를 들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오전 10시40분에 출발한 버스는 한 시간 가량 달려서 칠로에 섬을 오가는 배에 실려졌다. 배에는 매점도 있어서 볼일 볼 사람, 커피를 먹을 사람, 바람을 쐴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볼일을 보느라 분주했다. 배에 탄 시간은 30분 정도.  다시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이 바로 안쿠드로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칠로에섬의 자그마한 도시다. 칠로에섬의 중심은 카스트로. 제주도로 치면 안쿠드가 서귀포, 카스트로가 제주시라고 할 수 있다. 풍경이 아름다워 칠레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도 자주 들른 곳이다. 푸에르토 몬트보다도 훨씬 작은 아르마스광장이 보이는 작은 카페에 앉아 동양인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가게 여종업원의 시선을 받으며 커피를 마셨다. 안쿠드에서 할 수 있는 건 이런 휴식 뿐이다. 안쿠드는 5년 전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버스터미널이 바로 옆에 새로 지어져서 옮겼다는 것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는 것과 새로 지은 건물이나 기존 건물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 등이 특이사항의 전부였다.

 

호수가 만든 유럽 감성 푸에르토 바라스 

푸에르토 몬트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30분쯤(20km) 가면 바다처럼 넓은 호수인 얀퀴우에가 한눈에 들어오는 푸에르토 바라스에 도착한다. 푸에르토 바라스 역시 독일인들이 건설한 도시로 카지노와 아름다운 호텔들이 많은 전형적인 휴양도시다. 푸에르토 몬트와 마찬가지로 1852년부터 독일 이민자들이 정착해 지금도 독일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인구는 3만3천명 정도로 관광업과 농업이 주산업이다. 참고로 칠레 사람들은 푸에르토 바라스를 푸에르토 바라라고 발음한다. 칠레인들은 대부분 단어의 끝에 들어가는 s 발음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라시아스’ 대신 ‘그라시아’라고 발음한다.


화산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푸르티야르

칠레에서 두 번째로 큰 자연 호수인 얀퀴우에의 서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 푸르티야르다. 푸에르토 몬트 숙소 주인이 꼭 가보라고 해서 비가 오는 데도 푸에르토 바라스를 거쳐 온 곳이다. 인구 5천명도 안 되는 마을이지만 많은 호수, 강, 계곡, 숲과 지난해 5월부터 다시 분출활동에 들어간 칼푸코 화산과 만년설이 뒤덮인 오소르노화산이 병풍처럼 푸르티야르를 감싸안고 있다. 아쉽게도 가는 날이 월요일이어서 오페라극장 ‘테아트로 델 라고’는 문을 닫았지만 비오는 호수와 어우러진 주변 풍경들과 추운 날씨에도 호수욕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푸르티야르를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승마부터 온천까지 액티비티의 천국  푸콘

푸에르토 바라스와 푸르티야르를 둘러보고 푸에르토 몬트에서 휴식을 취한 뒤 액티비티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푸콘으로 향했다. 푸에르토 몬트에서 푸콘까지는 5시간이 걸렸다. 같은 이름을 가진 호수위로 눈 덮인 비야리카화산이 보이자 절로 탄성이 나왔다. 하지만 탄성은 30분도 되지 않아 절망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호스텔예약 사이트 중 가장 큰 곳이자 우리나라 여행객들도 많이 이용하는 호스텔부커스에서 계약금만 받아 채고는 예약메일을 숙소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이트가 문제가 많다고 하는 걸 태무심하다가 내가 당한 셈이 됐다.


더 큰 사단은 본격적인 휴가철이라 푸콘의 웬만한 숙소에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왔다갔다하기를 한 시간 반. 며칠 뒤 예약한 산티아고행 버스티켓을 바꿔 당장이라도 가려고 터미널로 발길을 돌리는 데 처음 예약했던 집에서 소개시켜줬던 다른 숙소(거기도 방이 없었다) 사장이 와서 괜찮다면 자신의 집을 사용하라고 했다. 숙소비는 예약한 가격만 달라고 했다. 낡긴 했지만 필요한 시설들은 있어서 짐을 풀었다. 그 사장의 이름은 라파엘로 브라질에서 온 친구였다.그는 바로 청소하는 사람부터 보내서 집을 치워주고 타올 등 필요한 물건들도 갖다줬다. 궁하면 통하고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이 새삼 생각났다. 한숨을 돌리고 나니 며칠 머무를 동안 할 액티비티 생각이 나서 투어사에서 온천투어와 승마투어를 신청했다. 


몇 군데 투어사가 있고 가격도 달랐지만 숙소 잡느라 지쳐서 눈에 보이는 곳으로 가서 예약을 했다. 다음날 숙소 때문에 상했던 기분을 안고 승마투어를 하러 나섰다. 여행사 앞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산속으로 들어가니 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여명 정도 됐는데 각자 말을 배정받고 따로 교육도 없이 자갈길과 숲길을 말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걷다가 뛰다가 했다. 처음엔 중심 잡느라 용을 써 무척 힘이 들고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리듬을 타면서 승마의 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한 시간동안 깊은 산속을 향하던 일행들은 모두 내려서 숲속에 감춰진 비경인 84m 높이의 클라로폭포 구경을 나섰다. 왕복 한 시간인데 코스 자체가 전날 내린 비에 경사까지 심해서 매우 힘들었다. 이런 험한 길을 가이드는 하루 3차례씩 왕복한다고 했다. 20대에 뚱뚱한 친구였는데 힘이 들어도 다이어트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힘들게 내려간 클라로폭포는 마치 쥘 베른 소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에 나오는 감춰진 폭포처럼 폭포 안으로 들어가면 2만년 전 세계로 돌아갈 것 같았다. 다음 날은 푸콘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지오메트리카란 유황온천에 갔다. 자연과 조화를 잘 살린 탕이 20개 가까이 있었다. 온도는 35~45도.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물이 뜨거워졌다. 남미에 온 후 처음으로 탕에 들어가서 목욕하는 호사를 누리기에 주어진 2시간은 충분했다.

 

푸콘의 중심 히긴스거리

거리 양쪽으로 카페, 레스토랑, 바, 투어 에이전시, 슈퍼마켓 등이 밀집돼 있다. 어쩌면 중심이라기보다 사실상 전부다. 남미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푸콘의 가게들은 쇠창살이 없다. 숙소주인 라파엘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들어간 ‘프로헥트’란 가게 역시 넓다란 쇼윈도에 창살이 없는 걸 주인인 로드리고씨가 자랑했다. 그는 40여개국 정도 여행을 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뒤를 이어 푸콘에 정착했다고 한다. 자신의 할아버지는 110년 전에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왔다고 했다. 

로드리고씨는 도시경관디자인 전문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수도권 도시미관 개선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2001년 한국에 두번 다녀왔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 잘 알고 특히 김치가 매우 맛있었다고 했다. 또 인근 테무코에 있는 이건창호 지사장과도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테무코엔 이건창호와 유한킴벌리 소유의 나무 숲이 있다)선물포장을 다 하고 가게를 나오려는데 로드리고씨가 쥬라기시대 부터 지금까지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나무로 만든 것이라며 촛대를 선물로 줬다. 여행 내내 들고다닐 걸 생각하면 부담스러웠지만 처음 만난 이방인에게 선물을 준 그 마음씨를 생각하니 코끝이 찡했다. 역시 여행은 예기치 않은 만남이 감동을 주는 것 같다. 라파엘이나 로드리고씨 같은 사람이 있어서 푸콘이 더 빛나는 곳이 아닐까.


글 김승근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