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 유럽 여행이야기 카우치 서핑(couchsurfing)

2017-06-15

아직도 카우치 서핑은 나에게 불편한 이름이다. 처음 본 사람집에서 잔다는 것이 어떻게 편해질 수 있겠느냐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현관문을 들어설 때 그 긴장과 떨림은 여전하다.



카우치 서핑을 한 횟수가 쌓이면 쌓일수록 나만의 기준이란 것이 생겼다. 처음 만났을 때 크게 느낄 수 있다. 인사를 하고 첫 마디를 나누는 순간 직감한다. 이 사람이 나와 맞겠구나(오늘 하루는 편하게 지낼 수 있겠구나!) 그 직감은 틀린 적이 별로 없다.

첫 느낌이 좋으면 그날도 편안하게 보내고, 첫 느낌이 별로라면 가시방석 위에 앉은 것처럼 눈치를 보면서 잠자리에든다. 두 번째는 세탁기를 써도 되냐고 자연스럽게 물을 수 있느냐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세탁기를 사용한다’는 의사를 밝히는 건, 나로서는 꺼내기 힘든 말 중 하나이다.

오직 나만을 위해 당신 집의 물건을 사용한다는 뜻이 담겨 있어서인지,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끊임없이 내가 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줘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꺼내기가 참 힘들다.

폴란드에서 처음 경험했던 카우치 서핑, 집주인 딸과 함께


어떤 집에선 세탁물을 한 아름 안고 세탁기 좀 써도 되겠냐고 천연덕스럽게 묻기도 하지만 또 어떤 곳에선 도저히 세탁기를 쓰겠다는 말이 안 나와 조심스레 손빨래하기도 한다. 이것은 순전히 마음의 방향에 관한 문제다. 마음이 바깥쪽을 향했느냐 안쪽을 향했느냐. 세탁기 사용은 그 방향의 결과이다. 


호스텔에선 나와 비슷한 여행자들을 만난다. 대부분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에 관해 그리고 각자의 여행에 관해 끊임없이 대화한다. 우리는 모두 일상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중이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친해질 수 있다.

우리는 항상 서로를 반가워한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가까이 다가갈 의무는 없다. 하지만 카우치 서핑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호스트의 하루를 나로 인해 다른 일상이 되어버린 그의 하루로 내가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호스트는 일에 지쳐 피곤한 하루를 보냈을 수도 있고 어떤 호스트는 학기를 마치고 집에 갈 날만 손에 꼽으며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그들은 나를 반가워할 수도 있지만 반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는 각자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데, 주인과 손님이 지닌 역할을 조금 넘은 친밀함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호스트는 말이 많았고 어떤 호스트는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 흐르듯이 잘 흘러간 하루도 있지만 ‘뭐라도 하자고 해야 하나’, ‘그냥 밖에 나가 있을까’란 생각과 삐거덕대며 보낸 날들도 있다. 물론 그런 날들이면 초조하고 불안했다. 내가 혹시 마음에 안 드나, 뭐라도 실수를 했나 하면서.

처음엔 그 불편함을 깨기 위해 이것저것 해보았다. 말도 붙여보고, 질문도 해보고.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썩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마음에 맡긴다. 억지로 짜낼 필요 없이 마음에서 나온 말들을 한다. 안 나오면 뭐 가만히 있고.

체코에서 가진 카우치 서핑, 집주인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사람과 사람은 마치 퍼즐 조각과 같아서 튀어나온 곳과 들어간 곳이 잘 맞물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퍼즐조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홈이 맞지 않을 뿐. 그럴 때마다 억지로 그 홈에 끼워 맞추려고 하기도 하고, ‘어라? 이 조각이 아닌가 보네’하고 다른 조각을 찾기도 했다.

‘이 호스트 나와 안 맞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하루, 이틀을 지내다 보면 꽤 맞는 구석도 발견하곤 한다. 안으로 향했던 방향이 밖으로 향하고, 세탁 좀 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저절로 하고 싶은 말들이 쏟아진다. 퍼즐 조각은 한 면만 있는 게 아니니까. 네면을 돌리다 보면 맞물리는 데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맞는 그림이든 아니든 간에.


대부분 여행자 얘기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여러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과 같다.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위해 퍼즐 조각을 찾았던 때가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꽤 지루했다. 그 퍼즐이 틀리는지 맞는가에 집중했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홈이 맞는다면 아무 곳이나 끼운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를 고민한다. 그렇게 퍼즐을 맞추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뭐


카우치 서핑(Couchsurfing)
카우치 서핑(Couchsurfing)은 2004년 미국 보스턴에 사는 케이시 펜턴(Casey Fenton)이 만든 여행자 네트워크이다. 그는 아이슬란드 여행 경비 절감을 위해 1,500명의 대학생에게 자신을 재워줄 수 있느냐는 메일을 보내고 50통 이상의 답신을 받는다. 여행을 마치고 보스턴으로 돌아와서 204년 정식으로 카우치서핑을 오픈했다.

카우치(Couch 안락한 의자)와 서핑(Surfing 파도타기)의 합성어로 ‘현지인의 집에 있는 쇼파 찾기’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여행자에게는 무료 숙박을, 현지인에게는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새로운 여행 방식의 네트워크다. 여행자나 숙식을 제공하는 현지인은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며 여행이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 편집자 주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