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GENTINA BUENOS AIRES

2017-06-03

여행은 만남이다. 낯선 시간, 낯선 공간, 낯선 사람과의 만남... 여행은 또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다. 그 세계는 때론 빠르고 때론 시간이 멈춰진 듯 느리다. 배낭을 메고 본 다양한 세상과의 만남 그리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지면을 통해 전해 본다.


모든 것이 ‘그럴 수도 있는’ 나라
경유지로 암스테르담을 택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년을 잡고 하는 여행 중 먼저 7개월은 남미와 중미 그리고 나머지 5개월을 유럽과 아프리카로 여정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첫 기착지인 아르헨티나로 가기 위해 34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까지 3번의 남미 여행 중 가장 먼 루트로 가게 된 것이다. 맨 처음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칠레 산티아고로, 두 번째는 미국 달라스에서 역시 칠레 산티아고였다. 둘 다 시간이 30시간 남짓 걸렸다. 비행 시간도 가장 길지만 여행 기간도 맨 처음 한달, 두 번째 넉달 그리고 이번에 7개월로 늘었다. 출발하기 전 왜 남미가 먼저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우선은 12월부터 여름이 시작돼 여행하기 비교적 수월하다는 점이다. 물론 휴가를 가려는 사람들로 인해 교통비와 방값도 비싸질 뿐 아니라 예약도 어렵다. 하지만 날씨는 여행의 필수 요소 중 선두권에 차지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유럽의 겨울도 비록 뼛속까지 습한 추위가 감겨오긴 하지만 아름답다는 점에서 날씨만으로 남미를 먼저 가기로 했다는 설명은 다소 군색한 것도 사실이다. 2년전 KBS 아침마당에서 “남미와 유럽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계산없이 불쑥 내뱉은 말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둘 다 매력이 있지만 유럽은 인간이 신을 향해 바친 문명이라면 남미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는.  

남미는 척박하다. 위험하기도 하다. 갖춰진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하지만 남미는 그 어느 대륙보다 더 매력적임은 부인할 수 없다. 지구 대륙 끝 파타고니아에서부터 안데스의 마지막 종착지인 콜롬비아에 이르기까지 남미는 평범한 인간들에게 자연스럽게 겸손을 배우게 한다. 그 자연 앞에 서면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게 남미를 첫 기착지로 잡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암스테르담을 거쳐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다시 아르헨티나 국적기로 갈아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에로파르케(AEP)공항에 도착한 건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간. 평소 같으면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갔을텐데 한상대회에서 인연을 맺은 이병환 아르헨티나 한인회장이 마중을 나오기로 해 별 생각없이 게이트로 나왔다. 하지만 이 회장은 없었고 연락이 안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공항 게이트에 서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회장이 다른 공항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공항이 2곳 있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편명 확인을 한 후 고속도로를 타고 AEP공항으로 이동하는 중이어서 연락이 되지 않은 것이었다.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외곽 고속도로는 휴대전화가 잡히지 않은 곳이 많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 회장을 만나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다.그렇게 긴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메르세데스 소사(1935∼2009년)는 아르헨티나의 가수로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소사는 76∼83년 아르헨티나 군부정권에 맞서다 1981년 라플라타에서 열린 공연에서 청중들과 함께 체포됐다. 이로 인해 아르헨티나에서 추방되고, 스페인에서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2002년 뉴욕의 카네기홀과 로마 콜로세움의 공연은 매진되기도 했다.


탱고 선율에 묻힌 아픈 역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처음으로 가보고 싶었던 곳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인 ‘엘 아테네오(El Ateneo)’. 숙소 앞에서 잡아탄 택시 운전기사 수아레즈(45)씨는 아르헨티나 저항음악의 어머니 메르세데스 소사*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쉴 새없이 아르헨티나 음악 전반에 관해 얘기를 늘어놨다. 카라바하라는 가문은 모두 12명의 형제가 음악을 했으며 이제는 가족이 늘어 300명이 모두 음악업계에 있다, 코르도바 지역이야말로 아르헨티나 포크음악의 원류가 있는 곳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음악은 그곳의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등 전문가가 따로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묻자 40대 이상의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누구나 이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탱고 뿐 아니라 남미 전통음악인 폴크롤레, 샤카레라 등 아르헨티나는 음악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는 나라다. 그 자유분방함과 정열은 모두 뜨거운 태양아래서 울려퍼지는 음악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택시 기사가 음악 이야기를 줄줄 엮어내는 곳 그게 바로 아르헨티나다. 그래서일까. ‘모든 것이 그럴 수 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부의 편중이 심하고 사립학교 수업료는 서민생활비의 몇배나 되지만 무상교육인 공립학교를 나와도 사회지도층이 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 풍요와 번영에서 쇠락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도 탱고 선율은 멈추지 않는 나라. 30여년전만 해도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 3만명에 가까운 국민이 실종된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음악이 없었더라면 아르헨티나 국민은 질곡의 현대사를 견뎌내기 힘들지 않았을까.

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알려진 엘 아테네오.  2 / 3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 풍경.  4  수도원인 레콜레타는 에바 페론 에비타의 무덤이 있는 등 공동묘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5 아르헨티나는 수입제한조치가 심해 거리에서 낡은 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유리가 깨어져도 구하기 힘들어 비닐을 붙여서 운행하는 차들도 많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여름비가 시원하다 못해 차가웠지만 엘 아테네오는 궂은 날씨와 상관없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늙은이, 사진을 찍는 연인들, 카페에 앉아 화려한 손짓을 하며 얘기를 나누는 중년의 신사들.  책이 배경이 되기도 하고 주인공이 되기도 하면서 서점을 찾은 남녀노소의 사람들과 무언의 소통을 하고 있었다. 엘 아테네오는 1919년 오페라 극장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1929년부터 영화관으로 활용돼 오다 2000년부터 서점으로 재탄생됐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톱100에도 뽑혔다. 무대로 사용됐던 서점 안쪽 공간에는 카페가 만들어져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엘 아테네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축물이나 공간활용도가 아니라 그곳을 찾는 사람과 그들의 책 읽는 모습이 아닐까.  


죽음과 삶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레콜레타
레콜레타(Recoleta)는 수도원이란 뜻이다. 엘 아테네오를 나와 15분 정도 걸어가니 나왔다. 레콜레타는 구역 이름이지만 사실 에바 페론을 비롯해 대통령들,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아르헨티나들의 저명 인사들의 묘지로 더 유명하다. 레콜레타 묘지는 1822년 준공됐다. 묘지 바로 옆에 레콜레 수도회의 수도원이 있다. 군부 독재자였던 페드로 에우제니오 아람부루도 대통령들 옆에 나란히 묻혀 있어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정서를 잘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물론 묘지만 있는 곳이 아니다. 역사적,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들이 많아 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레콜레타 묘지 앞 공원을 끼고 로터리로 내려오면 정치인들의 토론회가 곧잘 열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법대가 있다.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