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 유럽 여행이야기] 체코여행 그리고 인종 차별

김동하 유럽 여행이야기

체코여행 그리고 인종 차별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를 거쳐 체코에 왔다. 걷기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어갔고 이제 제법 걷는 일이 익숙해져 여유를 가지고 관광도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기자기한 도시, 프라하가 수도인 체코는 강대국들의 틈에서 한때는 지도상에서 사라지기도 했던 비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체코여행 (글. 김동하 /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


독일과 러시아의 사이에서 여러 차례 수난을 겪은 체코. 대한민국과 비슷한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체코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우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체코에서의 한 달이 그렇게나 편했는지 모르겠다. 독일로 넘어가기 하루 전, 국경지대에 있던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반나절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가장 먼저 보였던 케밥 가게에 들어갔다.

다소 어두침침했던 케밥 가게. 내가 들어가자 동양인은 처음 봤는지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갑작스레 시선이 집중되자 나는 당황했고 쭈뼛쭈뼛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날 본 주인아저씨는 비아냥거리듯 “베트남 식당은 저긴데?”라며 밖을 가리켰다. 직원들은 모두 폭소를 했고 그중 한 명은 내가 안쓰러웠는지 “케밥? 햄버거? 피자?”라고 다급히 물었다.

순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간 좋은 사람들만 만나왔기에 긴장을 놓았는데 크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무엇을 먹을 거느냐고 묻는 직원의 말소리도, 여전히 나를 보며 깔깔거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가게 안에 있었지만 가게 안에 없는 사람 같았다. 어쩌면 아저씨는 뻘쭘해 하는 나를 위해 조크를 던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유의 조크가 그들의 문화일 수도 있고. 다만 나는 그의 표정과 말투, 올라간 입꼬리를 보고 감정이 상했다. 그 의도가 어찌했던 간 나는 그 한 마디에 매우 위축되었다.

억지로 메뉴판을 봤지만,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모멸감이 몰려왔으며 이후 수치심을 느꼈다. 나를 조롱한 사람들이 만든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하니 불쾌하기까지 했다. 뭐라고 말하고 나갈지 고민하던 찰나, 문득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인종 차별을 당해야 하는지? 그리고 유럽에 처음 왔을 때 다짐. 차별을 깨지 못하면 나 또한 그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그 다짐이 떠올랐다. 정신을 차리고 주문을 하기로 했다.

알고 있는 체코어를 모두 끄집어내 메뉴를 골랐다. 말끝마다 ‘땡큐’를 붙이고 최대한 밝게, 최대한 정중하게 주문을 끝냈다. 감자칩도 먹겠느냐는 물음에 활짝 웃어 보이며 “물론이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조금 당한 눈치였고 이내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직원들과 눈인사를 했다. 눈이 마주치면 살며시 웃어 보였다. 그들 역시 똑같은 미소로 답해주었다. 주인아저씨는 콜라를 하나 더 꺼내어 봉투에 넣었다. 나는 끼워팔기인가 하고 손사래 쳤지만, 그는 “프리! 프리! 포유”라며 내 어깨를 가볍게 치셨다. 그리고 엄지를 올리시며 “굿 럭”이라고. 나 역시 엄지를 올렸다. “땡큐”

나는 인종 차별하는 사람들이 못 배운 사람들이거나 미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종 차별’이란 배움에 기초한다기보다 경험과 이해의 부재로 시작된다고 여긴다. 내가 차별당했을 때 느꼈던 서러움, 그 서러움을 헤아릴 수 있는 이해. 아저씨는 분명 그런 경험이 없었기에 그런 행동을 했으리라 믿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베트남 음식점은 저기야”라고 조롱했을 때, “전 한국 사람이고 케밥을 먹으러 왔어요.”라고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을까. 내일은 좀 더 당당해져야지. 나를 가리키는 손가락 위에 꽃 한 송이를 올려둬야지.


글 김동하 /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