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길, 초량 이바구길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길, 초량 이바구길


좁고 투박한 계단이 한 칸씩 발아래 놓인다. 중반쯤에 다다르자 예쁜 꽃과 바람개비 그리고 촘촘히 붙어있는 건물을 비집고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초량 이바구길의 168계단 위, 빨간색 모노레일 안에서 바라본 부산의 색다른 풍경이다. 



(사진출처=본사취재)

168개의 계단 위 시간의 가교, 168 모노레일

45도의 급경사, 총 길이 40m에 달하는 아찔한 관문인 168개의 계단은 초량동의 산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연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피난민들이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오르내리곤 했다. 2016년 6월부터 이 계단을 따라 선로 길이 약 60m의 모노레일이 정식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고령의 마을 주민들에게 편리한 이동 수단이 되었고 관광객에게는 초량 이바구길에 대한 접근성을 한층 더 높여줬다.

168개의 계단을 단번에 오르내리게 하는 빨간색 모노레일. 이 눈에 띄는 외관의 탈것이 나를 이바구길로 이끌었고, 이곳에서 울려 퍼지는 이야기 소리가 궁금해졌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시간의 가교, 모노레일 타고 부산의 과거로 거슬러 가보자. 

(▲168계단의 모노레일은 높이 30m 깊이 60m로 한 번에 8명이 탈 수 있다 / 사진출처=본사취재)

부산 근현대사의 이야기가 있는 ‘이바구길’ 

부산시 동구의 ‘초량 이바구길’에서 이 ‘이바구'는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를 뜻한다. 이바구길은 그 이름처럼 그곳에 가면 할머니가 들려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가 들릴 것만 같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부산항 개항을 시작으로 해방 후인 1960년대까지 피난민의 생활 터전이었으며, 산업 부흥기였던 1980년대까지의 부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야기의 보고다. 그 후, 2012년 시작된 도심 재생사업의 성공사례로 한차례 주목을 받았고, 현재는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테마거리로 거듭났다. 이바구길은 근현대 부산의 옛 기억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곳이자, 역동적인 세월을 깊이 받아들인 곳이다.


(사진출처=본사취재)

초량 이바구길 추천 여행 코스 

남선창고(터) - (옛)백제병원-동구 인물사 담장 - 이바구 정거장 - 168도시락국 - 168계단 - 168모노레일 - 김민부 전망대 - 다락방 장난감 BOX - 6.25막걸리 - 이바구 충전소 - 이바구 공작소 - 장기려 더 나눔 센터 - 유치환의 우체통


이야기 가득한 초량 이바구길 구석구석 살펴보기

남선창고-백제병원-동구 인물사 담장

부산역 7번 출구로 나가면 이바구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이바구길 투어의 첫 시작은 ‘남선창고’로, 현재는 할인마트 주차장에 터만 남아있다. 남선창고는 1900년 부산 최초의 물류창고로써 함경도산 명태를 보관했던 탓에 ‘명태고방’이라고도 불렸다.

사실 터만 남아있는 남선창고보다 먼저 시선을 끈 곳은 갈색 벽돌 건물의 ‘(옛)백제병원’이었다. 이곳은 1922년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으로 문을 열었으나, 행려병자들의 인체표본을 전시했다는 문제와 그에 따른 적자로 1930년대에 문을 닫고 만다. 이후 중화요릿집 봉래각, 중화민국 영사관·대사관, 일본 부대 장교 숙소로 이용되었고, 해방 후 예식장으로 쓰이는 등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용도가 변해왔다. 1972년 화재 후 1987년 대대적으로 수리가 이뤄져 일반 상가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1층을 카페로 재단장한 상태다. 

본격적으로 이바구길에 도착했음을 실감할 때는 1937년 개교한 초량초등학교를 마주하고 나서부터다. 이곳에서부터 이바구, 즉 초량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초량교회와 초량초등학교 사잇길에 있는 ‘동구 인물사 담장'에서는 부산 동구 초량동이 배출한 유명인부터 역사 속 인물들 그리고 이곳의 역사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출처=본사취재)

168계단-김민부전망대-다락방 장난감 BOX

저 멀리 고개를 들면 ‘168계단’이 아찔한 경사를 자랑한다. 어떻게 피난민들은 물동이를 들고 저 좁다란 계단을 오르내렸을까? 168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168계단으로 불리는 이곳은 부산항에서 산복도로를 잇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현재는 168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손쉽게 이바구 정거장에서 김민부 전망대를 지나 계단의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이 모노레일을 타고 ‘김민부 전망대’를 향해보자. 김민부 전망대는 부산의 대표 시인 김민부를 기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전망대 한쪽 벽면에는 그가 작사한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렀네”

이 노래는 당시 분단의 아픔을 갖고 있던 우리 국민의 정서를 반영한 작품으로, 라디오 방송의 전파를 타고 알려져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곡이다. 

(사진출처=본사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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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본사취재)

김민부 전망대 옆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또 다른 이색공간이 있다. 바로 인형 박물관을 방불케하는 장난감 상점 ‘다락방 장난감 BOX’ 다. ‘마음껏 구경해도 되지만 나가실 때 과자라도 한봉다리' 라는 익살스러운 문구가 적혀있는 이곳에는 디자이너가 수제작으로 만든 해녀 인형부터 추억의 못난이 인형 3남매까지 모든 시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옛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과자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168도시락국-6.25막걸리-이바구 충전소-이바구 공작소

‘168도시락국’은 추억의 도시락, 시락국, 원두커피 등의 메뉴가 준비되어있어 휴식 및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동구 지역 노년 일자리 창출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휴게음식점으로, 6.25막걸리와 함께 2008년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 수상작인 남구 대연동 ‘문화 골목’의 설계자 최윤식 건축가의 작품이기도 하다. ‘6.25 막걸리’ 역시 여행 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막걸리와 음료, 해물파전 등을 맛볼 수 있는 휴게 음식점이다. 


‘이바구 충전소’는 6.25 피난민들의 삶과 애환이 스며있던 판잣집 및 양철집을 형상화한 곳으로, 초량 이바구길을 찾는 이들의 여행안내소이자 게스트하우스다. 지역 어르신들의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가죽공예 체험 및 완제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또한, 지상 2층 규모의 ‘이바구 공작소’는 마을 자료관, 전망 데크 등을 운영하는 지역의 역사관이다. 이곳에서는 해방부터 월남파병까지의 역사와 산복도로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으며, 여행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사진출처=본사취재)

장기려 박사 기념관 -유치환 우체통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를 기리는 기념관이다. 그는 25년 동안 복음병원의 병원장을 지내며 1968년 의료보험의 효시가 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고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지만, 유품은 병원 옥탑방에 남긴 청진기와 낡은 의사복이 전부였다고 전해진다. 

이바구길의 끝자락에 있는 빨간 우체통 하나가 있다. 이곳은 경남여고 교장을 역임한 청마 유치환(1908~1967)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관이다. 이곳에서는 통유리창 너머로 부산항 대교와 남항대교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바구 길의 마지막 여행 코스인 이곳에서 부산을 가슴에 담고 이바구길의 이야기를 엽서에 써 내려가 보자. 이 우체통에 엽서 붙이면 정확히 1년 뒤에 주소지로 배달된다고 하니, 1년 후 이 이야기 엽서와 함께 다시금 이곳을 찾아도 좋을 것 같다.


초량 이바구길을 더 재미있게 둘러보는 2가지 방법

이바구 자전거와 버스투어

이바구길을 더 편리하고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으로 '이바구 자전거'를 소개한다. 이바구 자전거는 시니어 도슨트(docent:문화재 해설사)가 전하는 초량 이바구길의 역사와 숨은 이야기를 들으며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이다. 운행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한 시간 간격이며, 우천시에는 운행하지 않는다. 이용 요금은 성인기준 10,000원이다. 탑승권 구매는 부산역 광장 내에서 가능하며, 운행구간은 백제병원을 시작으로 유치환우체통을 돌아 차이나타운에서 마무리된다. 이바구 자전거는 부산에서 실버산업 활성화를 위해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관광으로 지역의 역사 및 관광을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진출처=본사취재)

‘이바구 버스투어’ 역시 스토리텔러와 함께 이바구길을 둘러보는 관광 프로그램이다. 운행 구간은 부산역에서 출발해 ‘증산 전망대’, ‘유치환의 우체통’, ‘스카이웨이 전망대’, ‘168계단’, 우유 카페 ‘초량1941’과 ‘초량 불백거리’를 거쳐 마무리된다. 탑승 시간은 오전 9:50과 오후 01:50으로 나뉘며, 탑승 장소는 부산역 이바구 주차장 앞이다. 성인 기준 16,000원의 이용 요금이 있다. 버스투어 이용 시 부산 곳곳의 명소들이 담긴 엽서 집을 제공하며, 예약은 필수다. 초량 이바구길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와 예약은 http://www.2bagu.co.kr 공식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다. 


글 손시현 /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