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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술에 타협은 없습니다” WHITE WAVE Young Soon Kim  Dance Company 단장 김영순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타고난 끼와 재능에 이끌려 이 길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절실함과 열정으로 힘들고 막막한 시기를 견뎌내며, 평생에 걸작 하나만 남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이들이다. 예술가의 배고픔은 열정의 순수함을 상징하기에 숭고하고, 예술가에게 부귀영화는 종종 영감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등한시된다. 성공한 사업가에게 사업은 수단일지라도, 성공한 예술가에게 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다분히 이상적이고 지나치게 규범적일 수 있는 이 정의에 무용가 김영순은 고개를 끄덕인다. ‘뉴욕 현대무용계의 대모(大母)’로 불리는 그녀는 그렇게 뼛속까지 예술가이다.


뉴욕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무용계에서 김영순은 유명인이다. 그녀가 뉴욕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무용가로서, 안무가로서, 공연기획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지난 30여 년간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해 왔는지는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무엇을 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죽을 때까지 오직 ‘춤꾼 김영순’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수많은 업적을 되돌아보는 대신, 춤꾼 김영순, 예술가 김영순이 누구인지를 들어보기로 했다.



춤을 추는 김영순
“검정 머리를 휘날리며 춤추는 동양의 신비한 무녀”

6살 때 처음 무용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춤은 김영순의 모든 것이었다. 한국인이지만 세계적인 무용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오직 무용에 매진했다. 수많은 콩쿠르에서 수상한 것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만큼 그녀는 오직 춤추는 것 그 자체에 몰입했다.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당시 무용과 과장이었던 故 임성남(林聖男, 1929-2002: 한국발레 대부로 불리는 무용가로 국립 무용단 단장, 대한민국 국립발레단 1대 단장,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한국발레협회 회장을 역임.)에게서 무용을 사사하였고,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후에는 하루라도 빨리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세계적인 댄서가 되는 꿈을 이루고자 마음이 바빴다. 그 시작점으로 선택한 곳이 뉴욕의 마사 그레이엄 학교(Martha Graham School of Contemporary Dance)였다. 하지만 그 뉴욕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뉴욕에서의 유학 생활은 그녀의 열정과 집념을 시험하는 기간이었다 할 만큼 혹독했다.


아버지가 유학을 반대하신 데다 어려운 형편에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대학 졸업 후에는 선일여자중고등학교에서 무용 교사로 일 년 반 동안 일하면서 유학 자금을 모았는데, 유학 직전에 그 돈을 공연 비용으로 다 써버렸습니다. 당연히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비자가 거부되면서, 오직 춤을 추고 싶은 저의 의도와 열정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단독 공연을 하기로 한 거죠.

76년 12월, 그녀는 장충동 국립극장 소극장(현 달오름 극장)에서 11명의 무용수들을 데리고 최연소무용가로서 이틀간 공연을 했다. 그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잔잔한 호수 위로 퍼덕이며 뛰어오르는 은빛 찬란한 물고기”라는 극찬을 받았다 (2016년 11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뉴욕 현대 무용계의 대모 김영순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 단장” 中). 그 공연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자가 나왔고, 딱 1년만 공부하고 돌아오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마침내 뉴욕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뉴욕으로 떠나던 날 공항에서 외할머니가 부적 하나를 손에 쥐여 주시며 그러셨어요. “영순아, 이제 너는 세상에 나가서 네 엄마의 꿈을 이루어라.” 제 어머니가 원래 춤추는 게 꿈이셨는데 외할아버지께서 반대하셔서 포기하셨습니다. 엄마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부담이 되었다기보다 오히려 ‘내 꿈을 정말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앞이 깜깜하게 느껴졌을 때마다 저를 받쳐준 힘이 되었어요.


꿈 하나만 붙잡고 시작한 유학 생활 동안 견뎌내야 했던 경제적 어려움은 말 그대로 고난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학비와 숙식비를 감당하느라 하루 12시간 이상 무용 연습을 하면서도 베이글 하나로 버텨내야 했다. 다행히 입학하고 4개월 뒤에 루돌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 장학생으로 선발되고 조금은 숨통이 트이게 되었지만, 그 뒤로도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뉴욕에서 열리는 공연이라면 아무리 작은 단역일지라도 무조건 출연했다.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1980년, 그녀는 뉴욕 10대 명문 무용단제니퍼 뮬러 현대무용단(Jennifer Muller & The Works)의 오디션에서 30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전속 단원으로 발탁되었고, 그렇게 무용가로서 그녀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중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공연하며 “검정 머리를 휘날리며 춤추는 동양의 신비한 무녀”라는 찬사를 받았다. 1년에 9개월간을 해외에서 공연하고 뉴욕에 돌아와 머무는 3개월 동안에도 스론 댄스 시어터(Throne Dance Theater) 같은 무용단에서 안무가로 활동하며 잠시도 춤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김영순에게 무용, 춤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무용개론에 보면, 춤은 인간 삶의 모든 감정들을 인간의 몸동작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저는 모든 예술이 스토리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어떤 형태로 스토리를 나누는가가 다를 뿐이죠. 저는 춤을 통해서 스토리를 나누고, 제가 표현하는 스토리가 사람의 삶을 바꾸어 줄 수 있는 계기, 즉 영감(transformative vision)을 줄 수 있기를 바래요. 저는 상업적이지 않은 순수한 예술가의 사명은 걸작(masterpiece)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걸작이란 보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줌으로써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작품을 뜻하죠. 기가 막힌 음악을 들었을 때 가슴 한복판을 찡하게 파고드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저는 관객들의 마음에 꽂히는, 저의 혼이 담겨있는 걸작을 추고 싶어요.



김영순은 무대에서 춤을 출 때의 느낌을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되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정말 완벽하게 몰입이 된 상태에 이르면 내가 없어지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어요. 다시 말해서, 춤을 추는 순간에 몰입이 되면 김영순은 없어지고, 내 몸은 순수하게 스토리를 전달하는 수단(vehicle)이 돼요. 내가 없어지고 내가 추는 춤만 남는 거죠. 그 엑스터시(extasy: 완벽한 몰입으로 인한 무아의 경지) 상태에 다다르면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이 춤 속에서 하나가 되면서 단순히 스토리를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트랜스(transformation: 영감을 주는 상태)가 일어나는 차원으로 가게 되요.


춤으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한 그녀가 애써 말로 풀어 놓은 느낌이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춤을 직접 보면 신기하게도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다. 한 유명평론가는 그녀를 보면서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많은 댄서들 가운데 눈을 뗄 수 없는 댄서”라 극찬하였고, 또 어떤 이는 “그녀의 춤은 맛깔나다!(Young Soon Kim’s dance is delicious!)”라고 평함으로써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개성이 없는 여타의 무용수들과는 그녀가 확실히 차별됨을 인정하였다 (2016년 11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뉴욕 현대 무용계의 대모 김영순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 단장” 中). 이렇게 세계적인 춤꾼이 되고자 한 꿈이 이루어졌다 싶을 즈음, 그녀는 한발 더 나아간 꿈을 꾸고 있었다.



춤을 만드는 김영순
“댄스의 영역을 뛰어넘은 새로운 예술 세계의 창조”

1988년, 김영순은 뉴욕을 거점으로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WHITE WAVE Young Soon Kim Dance Company)’을 창단하면서 그녀의 무용 인생 제2막을 시작한다. 화이트 웨이브 로고의 원은 우주를, 하얀파도는 한국인을 지칭하는 백의민족을 상징함으로써 ‘하얀 파도가 세계로 용솟음친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세계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뜻하는 한류(Korean wave)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한류가 K-Pop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일컫는 것이라면 화이트 웨이브는 한국인 예술인들이 순수공연예술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활약하기를 바라는 김영순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이미 뉴욕의 스론 댄스 무용단(Throne Dance Theater)에서 안무가 및 공동예술감독으로 7년 가까이 활동한 경험이 있긴 했지만,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의 창단은 그녀가 독자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자신의 무용단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1983년에 작품 ‘삶(Alive)’으로 뉴욕주 예술위원회(NYSCA: New York State Council on the Arts)로부터 안무상(Choreography)을 받으면서 안무가로서의 자질은 이미 인정을 받은 터였기에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은 그녀가 안무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고 하겠다. 

“미국 춤과 한국 춤의 정수를 뽑아내어 이를 하나로 결합하고, 두 문화가 품고 있는 정신과 철학을 무대 위에서 선보이며, 서양과 아시아의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다차원적(multidimensional) 작품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관객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무용단의 목표이자 미션으로 삼고,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여 무대에 올렸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녀의 작품 활동을 “댄스의 영역을 뛰어넘은 새로운 예술 세계의 창조”라고 논평하였다 (2012년 6월,WHITE WAVE Young Soon Kim Dance Company: Tour to Korea 보도자료). 그녀의 대표작 몇몇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제가 무용을 한 지 30년이 되던 2007년에 30주년 기념 작품으로 ‘SSOOT(숯)’이라는 작품을 공연했어요. 그 SSOOT I (2007)이 열렬한 호응을 얻으면서 SSOOT II (2008), SSOOT III (2009)를 만들게되었죠. 이 작품을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어요. 어느 날, 친한 의상 디자이너 친구랑 뉴욕 링컨 센터 앞 분수대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요즘 어때?” 하고 묻길래 “그럭저럭.” 그러니까, “뭐 얼굴은 좋은데?”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슴을 열어봐. 새까맣게 타버렸지.” 그랬더니 “숯? 숯덩어리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의 대화가 가슴에 확 와닿으면서, 한국인의 한, 얼이라는 것이 가슴이 숯처럼 새까맣게 타버린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숯은 자신을 태워서 남을 따뜻하게 해 주잖아요. 숯처럼 인간의 삶도 어떤 면에서는 ‘헌신’, 즉 자기만이 아닌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제 춤을 예술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사회에 헌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죠. 춤을 통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고,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비전을 가지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요. SSOOT은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SSOOT 3부작은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숯의 속성을 무용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각각의 공연마다 김영순의 창조적 상상력과 그녀가 추구하는 무용에서의 다차원성(multi-dimensionality) 이 돋보인다. 이작품은 공중에서 천을 가지고 표현하는 에어리얼(Aerial) 댄스를 특징으로 하며 “혼미할 듯 흥분되고, 매우 도발적인 장면 장면의 연속과 더불어 … 가슴을 에는 듯한 비밀스러운 갈망, 우리가 삶에 있어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작곡가 김기영과 한대수의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한국인의 정서를 극대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른 대표작으로는 2010년부터 작업해 온 ‘Here NOW(지금 여기에)’ 시리즈가 있어요. So Long for NOW (2010), Here NOW(2011), Here NOW So Long (2012), Eternal NOW (2014), 총 4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우리가 살면서 ‘지금(now)’ 하면 그때 벌써 과거(past)가 되잖아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지금이라는 순간(moment of very now)’은 무(無: blank)의 상태로 존재할 뿐이죠. 그 공백의 순간을 어떻게 선택을 하고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삶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저는 그 공백의 ‘순간’, ‘지금’을 채우는 것은 ‘희망(hope)’이라고생각합니다.



Here NOW 시리즈에는 ‘지금’이라는 순간에 대한 그녀의 이러한 해석이 그대로 드러난다. 솔로, 듀엣, 트리오로 다채롭게 펼쳐지는 무용수들의 춤은 순간으로서의 지금을 채워나가는 인간의 감정들을 표현하고, 무대 전면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영상은 어느새 ‘과거가 된 지금’의 춤을 동시에 보여준다. 춤, 음악, 영상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극적인 긴장감과 신비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Here NOW 시리즈의 완결편이자 그녀가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꼽는 Eternal NOW는 2014년 한국계 안무가로는 처음으로 BAM(Brooklyn Academy of Music: 브루클린 음악 아카데미)이 주최한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초연을 하였다. 또한 그 공연 영상은 링컨 센터(Lincoln Center)의 뉴욕 공공 도서관에 영구 보관되어 있다.


무용평론가 이종호는 “그의 춤은 … 이해하기 쉬운 춤이라고 하는데, 이해하기 쉽다는 것은 지적이지 못해서 단순하다는 뜻이 아니라감정표출이 뚜렷해서 관객이 쉽사리 빠져들 수 있다는 쪽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며 그녀의 뛰어난 표현성을 칭찬하였다 (2012년 6월, WHITE WAVE Young Soon Kim Dance Company: Tour to Korea 보도자료). 안무가로서의 김영순은 자신이 춤을 추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여러 무용 축제에 올려지는 공연들을 한 편도 빠짐없이 다 본다. 보고 있는 동안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는 까닭이다. 어떤 춤사위를 가지고 만드는가에 따라서 작품이 주는 영감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무브 먼트 언어(movement vocabulary)를 개발하는 것이 작품의 창조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2017 라 마마 무브 댄스 축제(2017 La MaMa Moves! Dance Festival)에 개막작으로 초청되어 공연된 ’iyouuswe(I ﮲You ﮲Us ﮲We: 나 ﮲너﮲우리 ﮲우리들)’는 그녀의 창조적 노력을 반영하는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안무들로 가득 차 있다.



춤을 보여주는 김영순
“브루클린을 문화의 메카로”

작품 SSOOT을 구상하며 김영순은 예술작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사회에 헌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녀의 그런 마음은 그대로 실행에 옮겨졌다. 2001년, 기업인 존 라이언(John Ryan) 씨가 든든한 후원자로 나타나 뉴욕의 동쪽 강변에 100석짜리 무용 전용 극장을 마련하게 되면서, 덤보 아트 축제(DUMBO Arts Festival, aka, D.U.M.B.O. Art Under the Bridge Festival)의 댄스부문 총감독을 맡아 제1회 덤보 댄스 축제를 개최한 뒤로, 2017년 현재까지 그 축제를 이어오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Brooklyn)에서 4일 간 70여 개의 댄스팀이 참가하는 이 축제는 맨해튼 다리 밑 버려진 공장지대였던 ‘덤보(DUMBO: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 지역을 문화의 중심지로 변신시켰다. 

이를 시작으로 그녀는 쿨뉴욕 댄스 축제(2004-2014), 웨이브 라이징 시리즈(2006-2017), 솔로듀오 축제(2016-2017)와 같은 무용 공연의 장을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뉴욕 현대무용계의 대모’라는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다하고 있다. 주로 기부금에 의존해서 진행하는 이러한 행사들을 주최하는 것이 재정 면에서나 인력 면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녀가 이 일을 계속하는 목적은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뉴욕이라는 곳이 세계 예술의 중심 도시고 수천 개의 무용단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장들, 수많은 공연들과 축제들이 있지만, 동시에 실력 있는 무용가, 안무가들도 넘쳐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생 무용단이나 신진 무용가, 신진 안무가들이 무대에 서거나 자기 작품을 무대에 올릴 기회가 굉장히 드물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하는 축제들은 기회가 없는 무용가, 안무가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축제에서 각각의 무용단들은 10분 정도의 공연을 하게 되는데, 그 10분을 보여주기 위해서 짧게는 3~4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까지 안무가는 작품 구상을 하고, 무용수는 연습을 하죠. 그렇게 최선을 다해 준비한 뒤에 무대에 서면,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자체로 행복해진다고 해요.


그녀의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이 주관하는 축제들은 전 세계 무용인들에게 뉴욕 진출의 기회로 인식되면서 해마다 참가자가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무용이 뉴욕에 소개될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한국 현대무용가들이 그녀의 축제를 통해 뉴욕 데뷔에 성공하였다. 이렇듯 신진 무용가, 안무가들에게 기회의 장을 마련해 주고자 노력하는 그녀는 잠재력 있는 무용가를 발굴, 양성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춤을 가르치는 김영순
“인간의 잠재력에는 한계가 없다.”

김영순은 자신에게 선생으로서의 역량이 있는 것이 참 감사하다고 한다. 그녀가 예술가로서 굳게 믿는 것은 ‘인간의 잠재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용가의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선생의 역할은 자신의 잠재력을 알지 못하고 있는 제자, 다시 말해서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모르는 제자에게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워주고 개발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모든 사람은 자신만이 가진 개성이 있는데, 그 개성도 잠재력의 일부라고 볼 수 있어요. 따라서 제자의 개성을 덮어 가리고 있는 층(layer)들을 벗겨주는 작업을 하는 것도 선생의 몫이라 할 수 있죠. 아무리 테크닉이 뛰어난 댄서라도 춤을 출 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결코 훌륭한 댄서가 될 수 없어요. 저는 저희 댄서들에게 늘 자신만의 색깔이 나타나도록 영혼을 실어 춤을 추라고 말합니다.


열정적인 춤꾼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김영순은 “작품을 하는 순간 순간마다 완전히 나를 던진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보고 무용평론가 엘리자베스 지머(Elizabeth Zimmer)는 댄스 매거진(Dance Magazine)에 “기가 막힌 춤꾼이다 … 그녀의 안무는 대단히 열정적이며, 열망으로 가득 찬 다리의 움직임, 또한 수줍은 듯하면서도 흥미를 유발하는 전율적인 움직임이다.”라고 평했다. 비록 이제 더는 직접 무대에 서지 않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율을 느낄 수 있는 걸작을 선보이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안무가, 공연 프로듀서, 선생으로서 현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오직 새로운 작품을 통해서만 그 꿈을 추구한다는 데 있어서 타협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김영순

- 뉴욕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 (WHITE WAVE Young Soon Kim Dance Company: 1988년-현재) 예술감독 / 단장

- 덤보 댄스 축제(DUMBO Dance Festival: 2001-2017) 쿨뉴욕 댄스 축제(CoolNY Dance Festival: 2004-2014) 웨이브 라이징 시리즈(Wave Rising Series: 2006-2017) 솔로듀오 축제(SoloDuo Festival: 2016-2017) 주최

- 뉴욕 한인회 선정 ‘올해의 예술인(Artist of the Year)’상 수상 (1991)

- 백남준과 서울-나이맥스 축제(SeOUL-NYmAX Festival) 초청 공연(1997-1998)

- 뉴욕 100주년 예술 축제에서 ‘Only One Sky(단 하나의 하늘)’ 공연(1997)

- 광복 60주년 기념, 뉴욕 주 상원이 선정한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한인 예술가” (2008)

- 브루클린시 청장 마티 마코위츠(Marty Markovitz)로부터 ‘예술가 공로상(Proclamation)’을 수차례 수상 (2004-2010)

- 육완순 현대무용 50년 축제에서 해외 무용가로 초청되어 공연(2013)

-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 Brooklyn Academy of Music 에서 ‘Eternal NOW(영원한 지금)’ 초연 (2014)

- 브루클린 음악 학교(BAM: Brooklyn Academy of Music)의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PDP: Professional Development Program)에서 뉴욕의 5개 예술단체 중 하나로 화이트 웨이브 무용단이 선정됨(2013-2014)


글 Juyoung Lee
에스카사 편집부

김영순단장님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담겨져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