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감독의 뉴욕 잠입 생존기 ‘투덜투덜 뉴욕, 뚜벅뚜벅 뉴욕’ 중에서 무서운 사모님들

꼰대 감독의 뉴욕 잠입 생존기 ‘투덜투덜 뉴욕, 뚜벅뚜벅 뉴욕’ 중에서 무서운 사모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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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또 4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는 거예요?”

사모님 2명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그나마 사모님 B는 한숨을 쉬면서도 나를 쫓아 계단을 오르려 하는데 나이가 더 많은 사모님 A는 건물 계단에 주저앉아 버린다.


“아이고, 나는 못가. 너 혼자 보고 와라”

후덥한 여름날 오후였다. 두 분에게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월세 2,000달러 스튜디오를 보여주러 도착한 참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5층 워크업건물이다. 뉴욕시엔 이런 5, 6 층 건물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 온 두 사모님에겐 기가 막힌 노릇이다. 50대 중반인 사모님 A와 40대 후반 사모님 B의 아들은 뉴욕의 같은 디자인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전 아들의 방을 구해주고 살림살이까지 마련해 주려고 직접 오셨다. 유학생 자녀에게 비싼 등록금과 렌트비를 지원해줄 만큼의 재력은 있는 분들이다. 그래서 여성의 나이와 지위에 대한 어떤 폄하의 의미도 없이 그냥 편하게 ‘사모님’이라 호칭한다. 뉴욕의 물가에 대해 어느 정도는 각오는 하셨겠지만, 막상 둘러본 뉴욕의 방들은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비쌌고 형편없었다.


“그래도 한국 돈으로 200만 원이 넘는데 어떻게 이런….”

방을 볼 때마다 어안이 없는 표정들이었다. 월세 200만 원 넘는 아파트 대부분이 한국에서 보면 재건축을 벌써 해야 했을 낡은 빌딩이었다. 건물에 들어가면 복도는 바퀴벌레가 나올 것 같이 어둡고 침침했다. 방이 따로 없는 원룸들이었고, 고시원보다 조금 넓었고, 걸어 올라가는 건물 4, 5층이었고, 방에 세탁기는커녕 건물 안에 세탁실도 없었고, 마룻바닥은 삐걱 소리를 냈다.


계단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는 저 사모님들의 고충을 이해는 한다. 더운 여름날 뉴욕에서 지하철을 타는 건 정말 고역이다. 전철역에 대부분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다. 택시비가 아까워서 못 탄 게 아니었다. 빠듯한 약속 시각에 맞춰 바쁘게 옮겨 다니려면 맨해튼에서 택시를 탈 수가 없다. 러시아워에는 걸어서 30분인 거리가 택시로 30분이 걸리기도 한다. 한국에선 이런 폭염에 거리에 나서지도 않을, ‘10보 이상은 무조건 택시를 탈’ 돈 많은 사모님이 찜통 전철역에서 기다리고, 만원 지하철에 껴 흑인과 백인의 겨드랑이 냄새를 맡아가며 기진맥진 나를 쫓아다녔다. 그러다가 또 4층이란 말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는 이곳에 사는 분들이 “뉴욕에 사는 매순간이 아주 행복하고 즐거워 못 견딜 지경”이라는 듯 번듯한 풍경 사진을 자주 올린다. 하지만 내가 늘 주장하듯이 뉴욕은 비싸고, 불편하고, 불친절하고, 번잡스럽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결국 진짜 뉴요커다. 한국에서 잠깐 들른 사모님들에게 그 불편함을 즐기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다.


“지쳐 쓰러져 있는 그대들은 그래도 맨해튼 아파트에 자식들을 넣어줄 수 있는 능력자들이다. 스스로 대견해 하세요. 지금 퀸스와 브루클린에서 룸메이트를 열심히 찾고 있는 유학생들이 부지기수입니다.”라고 속으로 위로해줬다.


어쨌든 두 사모님과 다음날도 아침부터 발품을 팔았다. 다행히 두 분 모두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하나씩 발견했다. 계약하기로 결정하고 서류 준비를 위해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어중간한 오후 시간인데 사모님 A가 점심을 사겠단다. 내가 순두부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사는 사람 생색도 안 나게 순두부는 무슨. 고기랑 냉면으로 합시다.” 한다.


두 분은 자식들 집을 구했다는 안도감에, 나는 돈을 벌었다는 흐뭇함에 분위기 좋게 등심을 먹는 건 좋은데…. 소주가 무척 당기는 것이다. 내가 먼저 술 한 병 시키자는 말은 못 하고 있는데 사모님 B가 너무 반갑게도 “우리 술한잔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해주신다.


권커니 잣거니 낮술을 하다 보니 깍듯이 ‘어머님’, ‘박 선생님’하던 형식적인 분위기는 어느덧 사라지고 농과 웃음마저 오간다. 미국에 살다 보면 이럴때 반드시 나오는 질문이 있다. “미국엔 언제 오셨냐. 그리고 왜 오셨느냐.”


상대방의 반응은 예상하면서도, 굳이 거짓말이나 숨길 것까지는 없어서 뉴욕의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고 했다.


“어머, 멋있으시다.” 사모님 B가 짧은 탄성을 내더니 술잔을 내민다.


솔직히 말하면 손님들 만나서 내 경력을 슬쩍 써먹기도 했고 그 반응을 즐긴 적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영화를 공부한것이 뭐가 멋있는 일일까? 갈수록 마음이 씁쓸해져 그 이야기는 가능하면 안 꺼내려고 하고 있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와서 서류를 작성하고 브로커 수수료를 결정했다. 1년 렌트비의 7.5%라는 단가가 정해져 있지만 내심 후하게 깎아주려고 생각했고, 그래서 후한 금액을 말했다.

….


갑자기 아줌마 근성들 나온다. 조금 전의 화기애애한 분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막무가내로 수수료 액수를 후려치는데 사모님 B는 불쌍한 척하고 사모님 A는 무섭다. 후하다고 제시한 준 금액의 두 배를 깎으신다. 꼼짝 못 하고 당했다. 나는 원래 여자랑 싸우면 못 이기는데 특히 이런 무서운 아줌마들에겐 당할 도리가 없다.


거의 이런 상황이다. 어떤 사람이 장에 가서 물건을 샀다. 상점 주인이 2만원을 부른다. 승강이가 벌어진다. 손님이 딱 1만 원 한 장 놓고 “됐죠? 된 거다? 아이 왜 그래 사람이.” 그리고 가버린다. 합의고 뭐고 필요 없다. 상점 주인은 멍하니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당한다.


사모님 A가 “기분 나빠 하지 마, 내가 비싼 점심도 사줬잖아. 밥값이 200불이나 나왔어.”라며 내 어깨를 다독거린다.


“그래서 내가 순두부 먹자고 했잖아요. 고기 안 먹고 200불 더 받을걸”


사모님들이 내 말에 기분 좋은 듯 하하하 웃는다. 누가 전문가인지 가려진 순간이다. 난 한참 아마추어다, 아직.


저자가 브로커로서 2015년 여름 겪었던 일입니다.


글 박원영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