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Bowl에 빠진 날 Super Bowl Sunday

미국이 Bowl에 빠진 날 Super Bowl Sunday


2월이면 도지기 시작하는 열병! 1월 중순부터 이미 밤마다 스멀스멀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고 머릿속으론 끝없이 승률표가 돌아간다. 비트코인의 등락으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건 댈 바도 아니다. 회사에서도 동료들과의 대화는 온통 이것뿐이다. 재미 삼아 한다지만 동료들과 대진표를 만들어 작은 액수의 돈을 걸고 우승팀을 맞추는 일은 데드라인을 맞춰서 끝내야 하는 회사의 그 어떤 업무보다 지금 중요하다. 이날이 오면 피자집과 버팔로윙을 파는 가게에는 아침부터 긴장감이 돌고 딜리버리맨의 얼굴엔 비장함마저 흐른다. 또 요리 채널은 요리 채널대로 온갖 호들갑을 떨며 이날 맥주와 함께 지인들과 둘러 먹으면 좋을 요리들을 소개하느라 바쁘다. 전자제품 가게에는 이 대목을 놓치지 않기 위한 엄청난 프로모션으로 법석인건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매년 2월의 첫 번째 일요일엔 미 전역이 들썩인다. 바로 슈퍼볼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펼쳐지는 4시간여 동안 거리에서는 자동차를 볼 수 없고, 스포츠 바가 아니고서는 식당에 사람이 없다. 아무리 미국에 오래 살았어도 이 정도까지 슈퍼볼에 광분하는 미국인을 보는 것은 매년 낯설다. 대체 어떤 스포츠이길래 전 미국인들을 이토록 흥분시키는 걸까?



미국의 4대 스포츠라고 하면 야구와 농구, 아이스하키, 그리고 풋볼이라고 부르는 미식축구를 꼽는다. MLB, NBA, NHL, NFL과 같은 프로리그도 결성되어 있어 종목별 결승일이 되면 동네가 들썩인다. 대부분의 ‘보통’ 미국 사람 모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야구면 야구, 농구면 농구 등 이 4대 스포츠의 지역별 팀 이름과 유명 선수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어서 이쪽 방면으로 관심이 없거나 문외한이면 학교에서건 직장 에서건 왕따 아닌 왕따가 되기 일쑤다. 특히 풋볼은 미국이 종주국이자, 오직 미국에서만 대규모 프로리그가 진행되는 스포츠로 진취적이고 개척정신으로 표현되는 가장 ‘미국스러운’ 스포츠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풋볼은 미국 대륙에 처음 온 유럽 사람들이 가져온 타원형의 럭비공을 바탕으로 시작된 독특한 운동으로 쉽게 말하면 어릴 적 하던 땅따먹기의 업그레이드 프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타원형 공을 상대방 진 영 쪽으로 차거나 던지면서 계속해서 전진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데, 궁극적으로 상대방 진영의 End Line에 먼저 도달하는 팀이 승리한다. 풋볼은 공격과 수비가 확실하게 구분지어 있고 각 포지션의 역할과 책임이 분명한 만큼 매우 전략적이고 조직적인 운동이다. 또 몸으로 부딪히고 돌진하며 전진하기 때문에 매우 거친 남성 스포츠로 각인되어 있다.


풋볼은 프로풋볼 리그인 NFL뿐만 아니라 대학 팀끼리의 경기도 인기가 높은데 대학 풋볼 리그는 사실상 오늘날 미국 프로 풋볼 리그가 있게 한 기반이다. 사상 첫 대학 풋볼 경기인 1869년 11월에 있었던 프린스턴(Princeton) 대학과 럭거스(Rutgers) 대학간의 시합 이후 150년 가까이 풋볼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그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대학 풋볼 정규시즌이 끝나고 상위팀들끼리 겨뤄서 지역별 최강자를 가리는 포스트 시즌 경기를 ‘Bowl’ 경기라고 하는데 풋볼 경기장의 모습이 마치 속이 움푹 들어간 그릇, ‘Bowl’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명한 Bowl 게임으로는 로즈 볼(1902년 패서디나에서 시작), 오렌지 볼(1933년 마이애미에서 시작), 코튼볼(1938년 달라스에서 시작), 슈거볼(1935년 투레인에서 시작) 등이 있는데 이 중 가장 오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로즈볼은 매년 1월 1일 캘리포니아주 장미 특산지 패서 디나에서 열리며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중이 운집한다.


2018년 1월1일 104회 로즈볼은 오클라호마대의 Oklahoma Sooners 와 조지아대의 Georgia Bulldogs이 대결해서 여기서의 승자가 뉴올 리언즈에서 같은 날 1월 1일 열렸던 슈거볼에서 맞붙은 클램슨대의 Clemson Tigers와 앨라배마대의 Alabama Crimson Tide의 승자와 애틀랜타에서 전미 대학미식축구 챔피언을 가렸다. 이미 얼마나 해당 지역들이 난리통이었는지 이미 뉴스로 접한 것처럼 이런 대학 풋볼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미국 프로 풋볼리그 NFL이 있을 수 있었고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우수 풋볼 선수들은 이제 더 큰 물, 즉 프로들의 세계 인 NFL로 진출한다. 북아메리카프로미식축구리그 NFL(National Football League)은 산하에 각각 16개의 팀으로 구성된 NFC(National Football Conference), AFC(American Football Conference)를 두고 있으며 양대 컨퍼런스 우승팀이 겨루는 챔피언 결정전이 그 유명한 슈퍼볼(Super Bowl)이다. NFL 초기의 명감독인 빈스 롬바르디의 이름을 따서 롬바르디컵 대회라고도 한다. 경기는 매년 2월 첫번째 일요일에 열리는데 이를 ‘Super Sunday’ 혹은 ‘Super Bowl Sunday’라고 부르며 관련된 모든 것이 화제가 된다. 


경기를 생중계하는 방송국 중계료의 어마어마한 가격도 그렇고, 4시간여의 경기 중간 중간에 나오는 TV 광고는 거의 모든 미국인을 TV 앞으로 다 끌어 모은다는 엄청난 시청률 때문에 광고주들이 사활을 건다. 또 경기 시작 전에 미국의 국가인 Star Spangled Banner를 부르는 가수와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Half Time Show에서 공연하는 가수들은 그 무대에 서는 것 자체를 일생 일대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말 그대로 슈퍼볼은 미국 최대의 스포츠 잔치이다. 제 52회 슈퍼볼은 2018년 2월 4일에 미네소타 주 U.S. 뱅크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개인 스포츠와는 달리 단체 스포츠는 선수도 그리고 보는 사람도 감정 이입의 정도가 훨씬 크다.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하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와 비교했을 때 나 하나의 역할로 인해 팀 전체의 명운이 갈릴 수 도 있는 단체 스포츠는 그래서 그 승부를 관람하는 사람들마저도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참가하는 수십 개의 팀 누구나 우승을 꿈꿀 수 있지만, 어느 누가 그 주인공이 될지는 리그 시작 단계에서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고, 직접 구장에서 몸으로 뛰는 선수들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그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 슈퍼볼 우승 트로피까지 거머쥐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치 자신이 그 일을 이뤄내는 것처럼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Super Bowl Sunday의 광분에 가까운 열기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미국에 사는 우리도 일 년에 한 번쯤은 적어도 가장 미국스러운 문화에 흠뻑 젖어보자. 매콤한 버팔로윙, 치즈가 듬뿍 들어간 나쵸칩과 과카몰리, 맥 앤치즈, 두툼한 햄버거와 핫도그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시원한 맥주! 올해 Super Bowl Sunday에는 풋볼의 경기 룰이 좀 낯설어도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모여 슈퍼볼 경기를 같이 즐겨보자. 30초짜리 하나당 $5 millions (500 만불)을 호가한다는 경기 중간 중간에 나오는 재미있는 광고만 몇 개 보아도, 그리고 Half Time 공연에 나온 가수의 이름과 슈퍼볼 우승팀의 이름만 기억해도 적어도 다음날, 보통은 일주일 한 달을 가는 직장 동료들과의 슈퍼볼 수다에서 머쓱하게 빠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