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에프터눈 티 타임 정신분석가와 상담가, 또 목회자이자 교수로 살아가는 강미영

그녀와의 에프터눈 티 타임 정신분석가와 상담가, 또 목회자이자 교수로 살아가는 강미영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설렌다. 더욱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마치 아이스크림 한 수푼을 덤으로 얻었을 때처럼 달달하기까지 하다. 늦은 오후 한산한 카페 안으로 그 사람이 들어섰다. 블랙 펜슬 스커트 위로 버튼다운 셔츠를 정갈하게 매치한 그는 누가 봐도 차도녀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하고 잠시 말을 섞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 차도녀에 대한 무장은 전면 해제되고 그녀 특유의 너털한 웃음에, 또 다정하고 여유로운 배려에 누구라도 금세 격 없는 친구가 된다.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과 진한 얼그레이를 사이에 두고 그녀가 조용히 말문을 연다. 정신분석가와 상담가로, 또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목회자로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자신의 다채로운 삶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이면에 담긴 한 인간으로서의 깊거나, 혹은 소소한 사유에 대해서… 한여름 열기가 점점 사위어가는 카페 안으로 때마침 The Kinks의 Afternoon Tea가 명랑하게 흐르고 있다.



강미영, 그녀를 수식하는 서로 다른 이름들

“글쎄요, 제가 이렇게 여러 개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살게 될 줄은 저도 몰랐죠. 한국서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어요. 사춘기 무렵부터 신과 종교에 대한 생각이 좀 많았거든요. 이후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목회상담 지도교수님께서 상담센터를 창설하셨어요. 그때 교수님의 권유로 상담센터의 스태프로 함께 일을 하다가 미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죠.

좀 덧붙이자면, 90년대 중반 무렵 한국은 목회상담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된 전문가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와 Drew University에서 M.Div.를 마치고, 뉴욕 Methodist Hospital에서 Chaplin으로 일하면서 맨해튼에 있는 Blanton Peale Institute and Counseling Center에서 정신분석(Psychoanalysis)을 공부했어요.

이후, 4간에 걸친 수련의 과정을 모두 마친 후 뉴욕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획득했죠. 지금은 롱아일랜드(Long Island)에서 영어 회중 목회를 하는 목사로, 그리고 Blanton Peale Institute & Counseling Center에서 Staff Therapist로 일하면서, 같은 학교 Pastoral Care Program In Korean Language의 부 디렉터이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Primary Care Physician을 만나듯이 우리의 정신건강도 전문가를 통한 정기적인 점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건강한 정신없이는 행복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 누구라도 인정하는 사실이잖아요.


삶의 소소한 우연들은 필연적인 조합으로 완성된다

“상담가면서, 또 목사이자 교수로 산다는 것. 얼핏 서로 다른 이름들 같지만 사실 같은 맥을 형성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어렸을 적 일인데요, 비교적 문화활동을 자주 즐기셨던 아버지를 따라 영화를 보러 갔던 기억이 있어요. 어느 작은 섬마을에 새로 젊은 교사가 부임했는데, 그 선생님이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섬마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는 뭐 그런 내용의 영화였죠.

물론 그 당시 무비 트렌드가 그랬겠지만, 예술성은 차치하고라도 다분히 교과서적이고 뻔한 스토리였어요. 그런데 그게 어린 제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던 거죠. 그때는 제가 좀 내성적이고 의존적인 편이었는데, 또 그런 성격하고는 어울리지 않게 남을 돕고 살피는 일을 좋아했었거든요.

기질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 영화 속 선생님 같은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염원 같은 걸 품고 살아온 것 같아요. 조금씩 성장해 가면서, 또 더러 미래가 불투명하거나 삶의 여러 전환점을 지날 때마다 저는 무의식적으로 그 염원을 쫓아 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고요. 그래서 지금 정신분석가로 상담도 하고 또 목회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거겠죠. 서로 다른 분야같지만 결국엔 다 사람을 만나고 돕고 살피는 일이거든요. 어쨌거나 우연한 귀결은 아니라고 믿고 싶어요.”


낯설고 생경한 학문 ‘정신분석(Psychoanalysis)’
그것은 곧 나의 내면세계로 떠나는 긴 여행


“정신분석을 간단히 몇 마디 말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렇게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우선 일반 심리학이 인간의식의 구조와 행동 방식에 대한 탐구라고 한다면, 정신분석은 프로이드가 말하는 무의식의 영역을 조명하는 것으로 인간의 억압된 감정과 욕망이 그들의 행동과 사고에 끼치는 영향을 찾아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흔히 ‘무의식적인 행동, 무의식적인 욕구’ 그런 표현을 하잖아요. 정신분석가는 내담자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하는 그의 무의식 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분석해서 내담자가 자신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거죠. 가령 내담자가 어떤 특정한 멘탈이슈(Mental Issue)를 호소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분석함으로써 현재 내담자의 무의식에 내재된 억압과 불안을 찾아내고 또 그 원인을 유추하는 거죠.

대개 그러한 억압과 불안의 원인이 표면적 증상이나 내담자의 병리 현상과 깊은 관계가 있거든요. 정신분석은 심리상담과는 좀 다르지만, 정신분석을 통해, 갈등하고 분열되어 있던 자아를 통합해 ‘본래의 자기’를 찾아간다는 측면에서 아주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분명한 자기 이해의 기반 위에서만이 새로운 자기로의 Transformation이 가능하거든요. 우린 흔히 자신을 다 안다고 확신하며 살잖아요. 그런데 내가 아는 나 자신이 결코 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정신분석 과정을 통해 조금씩 깨달아가게 된답니다.”


정신건강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

“사회가 발전해 감에 따라 인간의 정신 건강에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계실 거에요. 현대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바쁜 생활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어요. 게다가 다양한 인간관계가 주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고요. 그런데 사람이 가진 에너지는 제한적이어서 해결해야 하는 외적 요인이 많아질수록 내면세계는 점점 더 피폐해지게 마련이거든요.

말하자면 자신의 외적인 삶과 내면의 삶에 에너지 안배를 균등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거죠.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이 생기고, 불안장애가 생기고 여러 가지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되죠. 그런데 사실 정신건강을 스스로 진단하며 살기에는 큰 맹점이 있어요. 가령 우리가 복통을 느끼면 의사를 찾아가잖아요. 그런데 정신적 증상은 복통처럼 쉽게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상담가나 전문가를 찾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우리가 정기적으로 Primary Care Physician을 만나듯이 우리의 정신건강도 전문가를 통한 정기적인 점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건강한 정신없이는 행복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 누구라도 인정하는 사실이잖아요.”


상담의 기술, 내담자가 노출하는 무언의 시그날을 놓치지 않는다

“매주 수요일은 Blanton Peale Counseling Center에서 다양한 인종, 다양한 환자들을 상담하고 있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Private Therapy를 하고 있는데요, 요즘 한국분들의 상담의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담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점점 명확해지는 한 가지 사실이 있어요. 인간의 정신문제라는 것은 인종이나 지위고하 그리고 교육의 정도를 막론하고 누구에게서나 발생한다는 점이에요. 다시말하면 교육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우월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건강한 정신을 보장받지는 못한다는 거죠.

현재 내가 당면한 많은 문제는 사실 어린 시절의 부모나 양육자와의 불완전한 애착 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거기서 파생된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들이 성격장애, 정신장애를 유발하고 현재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내적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고 또 치료하고 회복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죠. 상담할 때, 사실 내담자는 말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문제나 상황을 설명하지만, 상담가는 내담자가 노출하는 말 이면의 여러 시그날들에 집중하면서 상담을 해요.

내담자의 사소한 표정, 몸짓 또 상담 중이나 상담 후에 상담가가 내담자를 향해 느끼는 감정들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죠. 왜냐하면, 그시그날들은 대개가 내담자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발현이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크거든요.”


충동적인 여행 그러나 그것은 내가 내게 주는 선물같은 것

“월요일엔 학교에서 종일 강의를 하구요, 화요일은 교회가 10년간 운영해오는 ‘숲키친(Soup Kitchen)’ 봉사에 참여하고 있어요. 수요일엔 Blanton Peale Counseling Center에서 내담자들을 상담하고, 목요일에는 강의 준비와 목회에 집중하고, 또 금요일엔 제 개인 환자들을 만나서 상담합니다. 토요일에 다시 강의, 그리고 주일엔 영어 회중 목회를하죠.

사실 무척 바쁘게 살아요. 한가할 때가 별로 없는데요, 그래도 가능한 한 휴식을 많이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누군가 그랬다죠? ‘고독을 더 참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떠들기 시작한다’고. 저는 스트레스를 더 참을 수 없을 때는 주저 없이 핸들을 잡는 것 같아요. 스케줄에 지장이 없다는 것만 확인이 되면 바로 차를 몰고 나가거든요. 인간이 모든면에서 조화롭게 성숙할 수는 없나봐요.

다소 유치하고 불완전해 보여도 떠나고 싶은 욕구를 그 즉시 해결함으로써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묵은 체증 같은 스트레스를 다 털어버릴 수가 있거든요. 충동적인 여행이 다소 무모하고 즉흥적이긴 해도 그건 그저 내가 내게 주는 작은 선물같은 것으로 생각해요. 올해는 바다에서 혼자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인간은 자연에서 모성을 발견한다고해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저는 바다가 참 좋습니다.”


우리 자신을 작고 무명한 자로 남게하라
(Keep us little and unknowns--Charles Wesley)


“사람들이 강미영이라는 제 이름 석자를 들었을 때 저는 ‘편안하고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되어 졌으면 하는바램이 있어요. 정신분석가, 상담가라고 하면 뭔가 냉철한 이미지가 연상되겠지만 상담이란 결국 ‘인간 이해’라는 근원적인 문제에서 출발해야 하거든요. 상담가는 내담자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무한히 공감하고 또 온전히 포용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마음을 진단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도 부담이 되는 일이지만, 그 모든 단계의 저변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므로 따듯하고 편안한 분석가, 상담가, 또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죠.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의 동생-이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 자신을 작고 무명한 자로 남게 하여라” 목회자이자 상담가인 제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닌가 싶어요. 흔히 모든 사역은 존재에게서 나온다고 하듯이 낮은 자리에서 누군가를 돕는 무명한 작은 자로, 또 내가사는 삶의 매 순간이 있는 그대로 사역이 되는 그런 사람으로 살 수만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무한한 관용과 따듯한 관심이 치료의 출발
한사람의 회복이 세상을 바꾼다


“두서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무엇보다 S·CASA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사실 많은 한인이 정신적인 문제에 시달리면서도 상담소의 문턱을 쉬이 넘어서질 못하는 형편이거든요.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심리상담이나 정신분석에 대해서 개인과 전문가를 이어주는 매개체나 관련 정보가 많지 않거든요.

S·CASA가 지면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또 독자들이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밖으로 노출하고 도움을 구하는 일에 공공매체로서의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멘탈 이슈로 고통받는 내담자들이 얼마나 큰 아픔 속에서 살고 있는지 아마 상상하기 어려우실 거에요. 그들에 대한 무한한 관용과 따듯한 관심으로 그들이 온전히 치유될수 있도록 저는 상담가로서, 그리고 S·CASA는 그들과 상담가를 잇는 디딤돌 역할을 하면서 선한 도구로 함께 성장해가면 좋겠어요. 한사람이 회복되면 그가 속한 가정이 건강해지고, 또 나아가 사회가 변화되거든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따듯한 위로자, 치료자가 되었으면좋겠어요.”


몇 시간에 걸쳐 깊고 두툼한 학문적 접근과 또는 삶의 부스러기 같은 사유의 소소함을 넘나들며 해 저물도록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신분석가와 상담가로, 또 목회자이자 교수로 분주히 살아가는 다채로운 그녀의 삶이 결국엔 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함이며, 그 한 가지의 맑고 오롯한 가치로 귀결된다는 사실에 사뭇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티 타임은 그렇게 끝이 나고 수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작은 손에서 기분좋은 온기가 느껴졌다. 그 편안하고 따스함이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길 기대하며 카페를 나선다.


강미영
강미영 (mkang2001@gmail.com)
감리교 신학 대학교 신학과/신학 대학원
Drew University M.Div. & STM
Blanton Peale Institute and Counseling Center Psychoanalysis 수료
Licensed Psychoanalyst, Blanton Peale Staff Therapist, 

Private Practice in Manhattan
Psychological assessment for ordination candidates
Blanton Peale Graduate Institute Faculty & Assistant Director
Senior Pastor-Trinity United Methodist Church, Coram, NY


글 Young Choi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