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그 중심에서” 빙판 위의 뜨거운 심장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박관용

2019-03-06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그 중심에서”

빙판 위의 뜨거운 심장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박관용

2013년, 아이스하키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소년들이 핀란드의 비에루마키(Vierumäki) 하키캠프로 모여들었다.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모인 하키캠프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팀은 바로 열여섯의 박관용이 속한 블루팀. 이에 더해 그는 팀 내에서도 가장 큰 활약을 펼쳐 ‘The hardest worker’를 수상했다. 그로부터 4년 뒤, U-20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에 선발된 박관용은 영국에서 열린 2017 아이스하키 세계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사실 그 대회에서 모두가 아이스하키 불모지라 불리는 한국을 두고 ‘꼴찌팀'이 되리라 예상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외관부터 실력까지 ‘날 때부터 아이스하키를 위해 태어난 선수’ 같지만, 키 145cm의 그는 유달리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는 작은 소년에 불과했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박관용, 그의 화려한 이력 뒤에 숨은 노력이 궁금해졌다. 뜨거운 심장으로 차가운 빙판을 녹이는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먼저 아이스하키는 어떤 스포츠인가요?

아이스하키 경기는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착용한 6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스틱(stick)으로 고무원판인 퍽(puck)을 쳐 상대 팀의 골에 넣는 방식으로 진행돼요. 경기 중에는 퍽을 뺏기 위해 상대 선수를 몸으로 가격하는 보디체크(Body Check)를 하는 등, 어느 정도의 몸싸움이 허용된 종목이라 부상이 잦은 스포츠에요. 그래서 헬멧과 장갑은 물론, 어깨와 팔꿈치 등 모든 신체 부위를 보호하는 장비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해야 해요.


Q. 사실 타 종목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보디체크는 아이스하키 관전에 큰 묘미죠. 그렇다면 체격이나 힘이 좋은 선수들에게 경기가 더 유리할 것 같기도 해요. 

체격이나 힘만 좋다고 해서 무조건 유리한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힘만큼이나 균형감각이 좋아야 하죠. 비슷한 신체조건의 선수끼리 보디체크를 했을 때, 안 넘어지는 선수를 보고 “밸런스가 좋은 선수다”라고 말해요. 또 유연성이 좋으면 잘 빠져나올 수 있고 부상을 최소화할 수도 있죠. 이렇게 아이스하키를 하기 위해서는 스케이팅, 균형감각, 유연성 등 모든 것을 고루 겸비해야 해요. 

Q. 2017년도 U-20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에 선발되셨네요. 엘리트 선수 생활을 시작한 중학생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건가요?

사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건 아니었어요. 남들보다 훨씬 체구가 작았거든요. 엘리트 선수 생활을 시작할 중학교 2학년 당시의 키가 145cm밖에 안 됐어요. 고등학교 3학년 초반까지도 170cm 남짓했죠. 체격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뒤처질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어요. 


Q. 키가 굉장히 늦게 자라셨네요. 운동선수에게 신체조건도 사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심적인 부담도 크셨겠어요.

네. 중학교 때부터 키 때문에 선수 생활에 지장이 생길까 봐 이른 취침은 기본이었죠. 고등학교 때는 밤마다 유산소 운동을 중점적으로 했죠. 그러다가 U-18 국가대표 선발 테스트와 입시 준비를 하면서부터는 남들보다 두 배 이상으로 노력했다고 자부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항상 줄넘기 1,000개를 하고, 학교 운동이 끝나면 밤 10시에 크로스핏을 하고 집에 가서 또 사이클을 타고 나서야만 안심이 됐죠. 정말로 아이스하키에 대한 열망이 크고 간절했거든요. 그렇게 몇 년간 간절히 바라고 절실히 노력하니까 이뤄지더라고요. 고3이 다 되어서야 거짓말처럼 10cm가 자랐어요. 


Q. 체력뿐만 아니라 체격까지 신경 써서 훈련해야 해서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아요. 

사실 육체적인 것보다도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난 후, 부모님을 설득시키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어요. 설득보다 고집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웃음) 당시 부모님은 아이스하키가 비인기 종목이고 격렬한 몸싸움이 주 규칙이라 상당히 반대하셨죠. 또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같이 살지 못하고 먼 곳에서 떨어져 혼자 살게 해야 한다는 마음에 저를 더 말리셨어요. 주변에서도 모두 140cm였던 제가 아이스하키 선수가 될 거라곤 상상 못 했죠. 그런데도 저는 매일같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등교를 했어요. 결국 저의 열정을 보시고 허락해 주셨고 열다섯에 홀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Q. 부모님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결국 국가대표 선수가 되셨는데, 혹시 하키선수라는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그렇게 반대하시던 부모님도 막상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멀리서나마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어요. 그래도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죠. 저 빼고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이 다 데리러 오셨는데, 저는 혼자서 감독님 집으로 가고 그랬었거든요. 그때마다 악을 품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어요. 막상 빙판 위에 올라서면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맨땅에서 테니스공을 하키 퍽이라고 생각하고 드리블만 해도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아직도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 위에 올라서면 심장이 뜨거워져요. 


Q. 박관용 선수에게 아이스하키란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아이스하키를 통해서 인생을 배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계속해서 경쟁해야 하는 스포츠의 특성상 왜소한 체격에서 오는 실력의 한계가 저를 힘들게 했는데, 그런 상황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서 버텼어요. 그러다가 키가 급작스럽게 컸을 때도 본래의 민첩성, 균형감각이 유지되면서 시너지처럼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어요. 그 후에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도 자연스레 변했죠. 그때 대인관계에 대해서도 느끼는 게 참 많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실력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이스하키를 통해서 경쟁, 사회, 대인관계, 상처를 극복하는 법까지 참 다양한 방면으로 배웠어요.


Q. 박관용 선수 같은 아이스하키 선수가 있어 앞으로의 한국 아이스하키가 더욱 기대되네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다가오는 2월에 동계체전이 열려요. 국내에서는 가장 큰 대회죠. 제가 속한 한양대학교도 경기도 대표팀으로 출전해요. 특히, 이 대회는 상금이 걸려있어서 더 치열한 경기가 될 것 같아요. 또 아직 제가 선발될진 모르겠지만, 유니버시아드라는 국제대회가 있어요. 장기적으로는 그 목표를 보고 꾸준히 노력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운동뿐만 아니라 학업에도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 하반기 시즌 준비를 하면서 공부까지 하려고 하니까 사실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항상 평점 4.2점을 유지하고 있어요. 제가 욕심이 좀 많아요. (웃음)


Q. 사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꾸준히 해온다는 것이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마지막으로 박관용 선수처럼 어릴 때부터 아이스하키 선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현직 선수로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아이스하키판을 포함한 빙상계에서는 불공정한 일들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때로는 학연, 지연을 실력보다 중요시하기도 하죠. 그래서 먼저 빙상계의 상황을 알고 입문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만연한 부조리함 때문에 하위권에서 중위권 선수들을 제치고 바로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선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20대 국가대표 멤버가 바뀌기도 하죠. 


그렇게 자신의 합당한 대가를 빼앗기게 된다면 심적으로 상당히 버티기 힘들어요. 저도 그런 부당한 일들을 겪어봤고 극복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어요. 이런 것들이 뿌리부터 뽑혀서 더는 부당한 일을 당하는 친구가 없어야겠지만, 당장에 빙상계가 바뀌지 않는 한 아이스하키 선수를 꿈꾸는 친구들이 체력만큼이나 멘탈도 강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또 기본적으로 실력도 뒷받침되어야겠죠? 그래도 무엇보다 ‘꾸준히' 그리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글 손시현  /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