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일상에 조각하다 조각가 + 전시 기획자 정세용 작가

예술과 일상의 경계는 어디일까? 아니, 그 전에 경계가 있기는 한 걸까? 일상을 일탈하든, 일상을 비틀든, 일상에 스며들든 어쨌든 예술의 시작은 일상이 아닐까? 예술가의 고민은 늘 치열하다. 너무 어려우면 대중이 접근하기 힘들고 너무 쉬우면 상업적이라 비판받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예술 자체가 어렵든 쉽든 간에 대중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만 있다면 예술은 좀 더 친근해질 것이며 예술가의 치열한 고민도 보람 있을 것이다.

조각가로 예술을 하고 전시기획자로 대중에게 예술을 소개하는 정세용 작가의 일상과 예술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안녕하세요. 우선 대중이 일상에서 작가님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제 작품은 대구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구 섬유박물관 앞 조형물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게 제 작품이죠. 그리고 시흥 옥구공원과 김천 조각공원, 대구문화예술회관, 경북대학교 미술관 등에도 제 작품이 있습니다.
 
Q. 예술가 가족으로도 유명하시던데요. 가족이 조각과 인연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영남대 조소과 교수셨죠. 퇴임 후에도 활발히 활동 중이시고요. 제 동생도 서울시립대 환경조형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동시대예술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은 경북예술고등학교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있는데요. 집안에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건 맞나 봅니다.


 
Q. 조각가로써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독일의 카셀도큐멘타에 브라켓 매거진의 발행인 자격인 프레스로 초대받아서 참석할 예정이고요. 베니스 비엔날레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7월에는 김해 클레이아크 뮤지움과 울산 문화예술회관 기획전에 작가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Q. 요즘은 멀리플레이어가 대세죠. 작가님도 조각가 겸 전시기획자로도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방천시장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방천시장에는 2009년 4월에 들어갔죠. 여러 예술가들이 손을 잡고 2010년에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방천시장 살리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처음에 다양한 시도가 있었어요. 음악 프로젝트도 있었고 상인과 예술가가 서로 1촌을 맺고, 도로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아이들을 초대해서 체험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있었죠. 그리고 시장 골목에 비어 있는 곳에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공연도 하고 아트마켓을 열기도 했는데 그 중 몇몇 프로젝트의 기획을 제가 맡아서 하다 보니 기획자 명함까지 얻게 되었네요.


Q. 젊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갖기가 어려운데요. 그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 같아요.
작가들에게 개인전의 경험은 중요해요. 전시 뿐 아니라 기획, 홍보 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직접 고민해야 하죠. 개인전을 해보고 싶어도 공간이 없어서 못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작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해 주었죠. 사실 저도 여러 가지로 쉽지 않았지만 마음에 맞는 작가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들의 서포트도 받고 해서 얻은 것이 많습니다.


Q. 방천시장 하면 김광석 거리가 유명한데요. 어느새 대구의 명소가 돼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어요. 김광석 거리도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나요?
그렇죠.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 중 하나가 당시에 지저분했던 옹벽에 벽화를 그리는 프로젝트였어요. 무엇을 그릴까 당시 작가들의 고민이 많았어요. 다양한 의견이 오갔죠. 김우중 회장 벽화를 그릴까, 양준혁 선수 거리를 만들어볼까. 그러다가 나온 주제가 김광석이었어요. 김광석 고향이 대구 대봉동이었다고 하니 어렸을 때 엄마 손잡고 방천시장 한 번쯤은 와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죠.


Q.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김광석 거리가 더 유명해진 것 같은데요?
그게 좀 아쉽습니다. 지금은 김광석 거리만 남고 재래시장은 내팽개쳐진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시장을 살리려고 예술가들이 힘을 합쳤고 김광석 거리도 만들었는데 술집이 많아지면서 월세도 올라가고 있죠. 예술가들이 점점 상인들에게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랄까요. 뉴욕의 소호나 서울의 홍대, 이태원처럼 말이죠. 지역을 바꾼 예술가들이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쫓겨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어떤 프로젝트에 예술가들과 합작할 때 나오는 시너지 효과를 잘 알기에 예술가들에 대한 대우가 아주 좋아요. 예를 들면 프랑스의 경우는 예술가들에게 최소한의 연금과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어요. 방천시장의 경우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문화 콘텐츠로 소개하고 있지만 행정적 지원은 전혀 없거든요.


Q. 행정적 지원을 통해서 방천시장이 문화 콘텐츠가 가득한 곳으로 거듭난다면 좋겠는데요?
방천시장은 투자할 가치가 있죠. 그리고 그건 행정에서 할 일이고요. 방천시장은 국내 관광객 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아주 흥미로운 곳입니다. 시장 안 골목에는 아직 많은 것이 있거든요. 다양한 공방도 있고 대중들이 어려워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곳도 많아요. 이런 작품들도 전시를 많이 해서 보여주고 싶어요.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주저 없이 보여줄 수 있는 대안공간, 비영리 전시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방천시장이 문화마을처럼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장에 왔는데 고급 예술작품들을 볼 수 있다면 정말 특별한 경험이지 않겠어요? 일상에서 예술을 쉽게 접하면 예술이 친근해지는 거죠. 그런 점에서 방천시장은 문화적으로 건강한 거리, 대구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공간이 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행정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술집과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는 데 규제가 필요하다 생각해요.


Q. 2016년 대구예술상 시상식에서 청년예술인상 전시부문에서 상을 받으셨는데요.  방천시장 살리기에 대한 공을 인정받으셨어요. 언제까지 방천시장에 계실 건가요?
내년이면 방천시장에 들어간 지도 10년이 됩니다. 공간 여건이 되면 계속 있겠지만, 10년 동안 방천시장에서 경험했으니 다른 곳에서 다시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빈 공장에 자리를 잡거나 침체된 곳을 다시 살리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다음에는 행정과 부동산, 비즈니스 전문가들과 예술가들이 손을 잡고 팀을 이뤄서 해보고 싶어요.


Q. 조각가로서, 기획자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일단 조각가로서의 계획은 환경조형물과 건물 내외부의 디자인, 그리고 조명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기획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 작가들과 뜻이 맞아 그들과 한국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b]racket 매거진’을 2012년부터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잡지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작가들과 청년작가들이 모일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어요. 1500부 정도를 찍어 전국 미술관과 독립 책방, 레지던시 등에 보내면서 미술작가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고 있는데요. 5월 말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석해 외국 작가들에게 홍보하고 배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엄청 바쁠 것 같네요.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