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로린 마젤이 선택한 마지막 한인 음악가 작곡가 겸 지휘자 정성휘

거장 로린 마젤이 선택한 마지막 한인 음악가 작곡가 겸 지휘자 정성휘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준비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겸 지휘자인 정성휘씨를 뉴저지 잉글우드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기자는 기업인과 비영리단체 운영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지만 문화, 예술 잡지를 표방하는 에스카사답게 문화 예술인들의 인터뷰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그런데 예술가들과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쓸 때는 아무래도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다. 그들의 남다른 에고(Ego) 때문이다.

질문의 내용과 기사 한 줄에도 기자의 의도와 다르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은 취재원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그러나 정성휘 지휘자는 사뭇 달랐다. 솔직하게 소탈하게 음악인으로서의 고민과 걱정을 털어놓았고, 자신의 음악 인생에 대한 평가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는 한마디로 허세가 없는 사람이다. 허세가 없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그러하듯이 그는 목표와 주관이 뚜렷하고 늘 성실하게 음악가의 길을 걸어갈 사람이다. 덕분에 계속 웃으면서 대화가 이어진 편안한 만남이었다.



최근 활동이 궁금합니다.
뉴 브룬스윅에 있는 베리타스 유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같은 지역에 있는 갈보리 교회 성가대를 맡고 있습니다. 버겐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는 부지휘자로 활동하고 유엔 유스 오케스트라도 프로젝트가 있으면 참여해왔죠.

올해 말 새로운 오케스트라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모던 오케스트라(The Music of Modern Orchestra) 와 포트리 필름 오케스트라(Fort Lee Film Orchestra) 그리고 뉴저지 코리안 코럴 소아이어티 (New Jersey Korean Choral Society)를 맡게 됩니다.


3개나 되는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시는건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보통 오케스트라는 메인 오케스트라와 팝스 혹은 대중 오케스트라 그리고 부속 콰이어로 구성됩니다. 예를 들어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보스톤 팝스 오케스트라와 보스톤 콰이어가 부속된 것처럼요. 제오케스트라의 경우 모던 오케스트라가 메인이 되고 포트 리 필름 오케스트라와 뉴저지 코럴 소아이어티가 대중과 콰이어가 되는 거지요.



‘모던 오케스트라’는 조금 생소하군요.
모던은 이름에서 나타내듯이 과거의 대가들이 아닌 현존하는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입니다. 모던 오케스트라는 앞으로 미래의 대가를 발굴하는 역할을 할 겁니다.

이번 시즌에는 서울시향 전속 작곡가인 진은숙 씨의 곡을 연주할 계획을 하고 있지요. 포트리 필름오케스트라는 스크린과 같이하는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대중적인 오케스트라입니다. 섬머 시즌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주로 활동하게 됩니다. 참고로 뉴저지 코리안 코럴 소사이어티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한인 합창단입니다.


해외에서 공부를 오래 하신 편이죠?
네. 그렇습니다. 13살 때 러시아에서 유학을 시작했어요. 부모님의 지인이었던 교수가 추천해서 러시아 음악 영재 학교에서 피아노를 공부했죠. 거기서 대학까지 입학했는데 가족들이 미국 이민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내슈빌에서 정착했다가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NEC) 에서 본격적으로 지휘 공부를 시작해 석사를 마쳤습니다. 이제 오랜 공부가 거의 끝나가고 있어요. 럿거스 대학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박사 과정 중인데 논문만 남았습니다.



피아노와 작곡실력은 오래전에 이미 인정을 받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소니 레이블로 앨범을 내기도 했고 2008년 당시 대형 음반사 크레디아가 주최한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크고 작은 수상 경력들은 많은 편이라서 한국 내에서는 저를 피아니스트로 기억하실 분이 많으실 겁니다.


지휘자라고 하면 마에스트로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피아노 연주가에서 지휘자가 되신 이유는? 연주가의 보편적인 궁극의 목표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는 건가요?
연주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 분야 최고의 연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랑랑, 정경화, 장영주 같은 세계적인 연주자처럼 되고 싶지요. 그게 잘 안되면 지휘로 방향을 바꾸기도 하겠지만, 사실 음악도 운동과 마찬가지입니다. 13살과 17살 이전에 이미 승부가 나지요. 재능은 그 나이가 되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만 이룰 수 없어요. 그러다가 안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지휘자의 꿈을 꾸기도 하죠. 저는 지휘공부가 좀 늦은 편인데 어려서부터 지휘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느 교수님이 저를 보고 지휘자의 재능이 있다고 평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제한된 오케스트라 수 때문에 지휘자들이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웠음에도 저는 졸업과 동시에 유엔청소년오케스트라(Youth Symphony Orchestra for United Nation) 지휘를 맡게 되는 행운도 가졌지요.



거장 로린 마젤이 선정한 세계 지휘자 10인 중 한분이라고 들었습니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이름을 들어봤을 거장 로린 마젤이 전 세계 지휘자 10명을 선정해 지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그 10명에 선정이 되었습니다. 오디션을 통과한 거죠. 그래서 버지니아 캐슬턴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직접 지도를 받았어요.

2014년 로린마젤이 사망하기 불과 1년 전 일입니다. 저는 로린 마젤이 선택한 마지막 한국 음악인 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가 워낙 거장이었기 때문에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저도 덕을 보지 않았을까요? (웃음) 작곡과 지휘 모두 더 많은 경험과 공부가 필요한 일입니다. 꾸준히 쌓아가야겠죠.



전반적인 클래식 음악 산업에 대한 전망은 어떻습니까?
클래식 앨범을 사고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 팬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현실입니다. 거기에 더한 고민은 베토벤과 바하의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도 줄어들고 있는데 저를 포함해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현대 작곡가의 음악은 누가 들을 것이며 어디서 들려줄 기회를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죠. 해답은 따로 없습니다. 꾸준히 계속 작곡해야죠. 그리고 내가 더 영향력 있는 지휘자가 되어서 내가 만든 곡을 떳떳하게 많은 팬에게 연주할 기회를 얻어야죠. 말러처럼요.


지휘자로서의 재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자신의 장점은 어떤점이죠?
통솔력이 중요합니다. 많은 멤버들을 이끄는 일이니까요. 각 연주자를 훈련하고 조련하는 코치가 지녀야 할 능력도 중요하겠죠. 물론 기본이 탄탄해야 합니다. 피아노를 잘 쳐야 하고 작곡 능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좋은 지휘자란 어떤 의미에선 기업의 C.E.O와 같은 역할입니다. 제장점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대표가 아닌 온유함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스타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영감을 끌어내는 지휘를 하고 싶습니다. 간결한 동작으로 정확하게 전달해서 연주자들이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지휘를 하려고하지요.

연주자가 정확한 연주를 하면 청중이 감동합니다. 지휘하는 모습만 멋지다거나 하는, 겉으로 보이는 것을 추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화제를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미국 프로풋볼(NFL) 결승전은 올림픽이나 월드컵보다 더 많은 인구가 시청합니다. 30초당 광고비는 500만달러죠. 그 유명한 슈퍼볼(Super Bowl) 광고에 출연하셨죠?
2016년 제 모습이 나온 광고는 1분 30초 진통제 광고입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이 잠시 나왔죠.


현재 지휘자로서 최고의 위치에서 왕성한 활동중이신대 마지막 목표가 궁금합니다.
꿈과 현실의 차이는 늘 있습니다. 사실 동양인 지휘자가 명망 있는 단체의 지휘를 맡는 건 여전히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워낙 유럽에 기반을 둔 백인들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앵글로 색슨 지휘자에 대한 선호와 권위가 절대적이죠. 물론 보스턴 심포니와 뉴욕 필에서 일본계 지휘자가 나왔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음악적 요소 외에 무척이나 복잡한 정치적인 요소가 필요합니다.

정명훈 씨도 음악 감독의 자리에 올랐을 때 프랑스에서 엄청난 반발을 받았었죠. 저의 최종 목표는 대중들에게 더다가가는 좋은 음악을 계속 작곡하고 지휘하는 일뿐입니다. 재능으로 일단 승부가 나는 연주자가 아닌 작곡가와 지휘자의 길은 끊임 없는 노력과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한 일입니다. 쉬지 않고 갈 생각입니다.



기자의 생각에 그의 장점 중 하나는 멋진 헤어스타일이다. 지휘자는 헤어스타일이 멋져야 한다. 격렬하게 때로는 리드미컬하게 지휘봉을 내젓는 지휘자에게 찰랑거리는 머리결은 비쥬얼적인 권위와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언론에도 소개 된 적이 있지만 정성휘의 지휘 모습은 2016년 2월 방영된 수퍼볼 TV 광고에 삽입되어 화제가 되었다.

스트라빈스키를 지휘하는 그의 모습이 담긴 유투브 영상이 우연한 기회에 광고 담당자의 눈에 들어왔고, 그 장면이 진통제 애드빌의 수퍼볼 TV 광고에까지 삽입된 이유는 지금보다 훨씬 길었고 찰랑거렸던 그의 머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선물 받은 피아노 앨범 'Run Away With Me' 를 들으며 기사를 썼다. 감미롭고 아름다운 연주 앨범이다. 독자들도 들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정성휘 (David jeong)
러시아의 모스크바 고신 스페셜 뮤직 스쿨(Moscow Gnessin Special Music School)과
 차이코프스키 음악원(Tchaikovsky Conservatory)에서 공부했으며,
B.M. (피아노 연주) 및 M.M. (Conductor)학위를
보스턴 뉴 잉글랜드 음악원(New England Conservatory) 에서 보냈다.

소니 뮤직과 유니버설 뮤직이 발간 한 그의 데뷔 피아노 앨범은 NBC 방송에서 소개되었고
러시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 찬사를 받았다.
자신의 레이블인 클래시컬 노트 (Classical Note, Inc)를 통해
피아노 솔로 앨범 'Run Away With Me' 를 발표했고 iTunes를 통해서도 제공된다.


글 Won Young Park 사진 김기범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