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슈퍼우먼이 사는 법 |주|아르데코무이 최현희 대표

슈퍼맨에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악당을 물리치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그 정도일 것이다. 그런 히어로들도 사랑에는 어설프고, 가족에겐 충실하지 못한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혹시 슈퍼맨에게 그런 건 당연하고, 그 외에 집안의 대소사와 집안일 그리고 육아까지 완벽히 다 해놓으라고 한다면 그들은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지위가 예전에 비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높아진 여성의 지위만큼, 아니 오히려 더 여성이 짊어져야 할 무게는 무거워졌다. 일은 물론이요, 집안일과 육아까지 완벽히 해내는 이른바 ‘슈퍼우먼’을 사회는 원하고 있다. 왜 슈퍼맨에게는 바라지 않는 일을 슈퍼우먼에게는 당연한 듯이 바라고 있을까? 사회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한,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은 여성 자신의 몫일 수밖에 없다.

아담하지만 감각적인 건물에 옥수수와 포도가 자라는 텃밭이 있는 디자인 회사 (주)아르데코 무이에서 만난 최현희 대표. 그녀에게 이 시대의 슈퍼우먼이 사는 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디자인 회사답게 건물이 참 감각적이네요. 어떤 일을 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소개 좀 해주시겠어요?

대학 졸업하고 4년 정도는 건축설계회사에서 건축설계와 감리 일을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여자인 내게 조금 더 유리한 일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디자인을 선택했죠. 그리고 디자인 관련회사에 잠시 다니다가 27살에 독립해서 17년째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주거·전시·특화된 공간의 실내 디자인은 기본이고 전원주택이나 단독주택의 경우 골조를 역으로 디자인화해서 계획하고 있죠. 

최근에는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무역회관 부터 침산동 삼성창조캠퍼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여러 공간을 설계하고 시공했어요. 매번 그렇지만 한 공간 속에 이런저런 스토리를 현실화시키는 디자인이라는 일에 또 한 번 매력을 느꼈죠. 그리고 건축과 디자인까지 진정한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알바 알토 같은 유명한 건축가들처럼, 저도 한때는 주얼리 디자인 공부도 하고 실무까지 접하며 보석의 매력에 빠져보기도 했어요. 

한 때 건축디자인 관련해 대학에 강의를 나가기도 했는데 요새는 바빠서 못하고 있어요. 수성구 M 갤러리에서는 모델하우스 디스플레이에서 실제로 다루는 여러 가지 독특한 소품과 가구, 조명을 국내와 해외에서 직접 가지고 와서 전시 판매를 하고 있고요. 특히 브래드피트 침대로 유명한 디자이너 케네스코본푸의 가구를 청담동 쇼룸과 여기 대구 두 곳에서만 협업으로 수입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독립을 하셨네요. 실력이 좋으셨나 봅니다.

그 때는 그렇다고 생각했죠. 하하하. 하지만 당연히 어려움도 많았어요. 짧은 직장생활을 후회했던 적도 많았죠. 직장생활에서 배울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처능력을 간접경험해볼 기회가 그만큼 부족했던 거니까요. 일찍 독립한 만큼 시행착오를 직접 부딪쳐 겪어내야만 했어요. 일을 막 시작했을 때 큰 작업을 맡았던 적이 있어요.

당시 국내 대표 통신사의 서비스존이었는데 완공 후 동성로에서 오픈 행사가 크게 진행됐어요. 디자인은 물론이고 마케팅이며 현장 진행까지 모두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는데 하나 둘 씩 통제가 안 되더니 어느 순간 제 한계를 넘어서버리더라고요. 완전 폭발했죠.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현장을 중단시키고 제 차에 혼자 앉아서 펑펑 울었어요. 나에게 실망 스럽기도 했고요. 그런데 뭐 지금은 힘든 일이 하나 생기면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좋은 책을 읽고 생각과 태도에 변화를 가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고통은 또 다른 깨달음을 반드시 준다’고 생각는 내공을 가지게 됐네요.


저도 배우고 싶은 마음가짐이네요. 사람 상대하는 일은 늘 그렇듯이 힘든 점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고객을 상대하시는 일도 이젠 힘들다고 생각하시진 않겠어요.

그렇죠. 지금은 오히려 배운다고 생각하게 돼요.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특히 큰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회장님을 고객으로 만날 때가 종종 있는데요. 직접 미팅을 해보면 성공한 이유가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저만 해도 잘 모르는 분야는 전문가에게 다 맡겨버리기 일쑤인데요, 회장님들은 정말 작은 데까지 신경 쓰고 간섭하세요. 심지어 버리려고 내 놓은 자재를 보시고 버리지 말라고 아깝다고 하신 회장님도 계셨죠. 그리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회장님 사모님이 계셨는데, 저와 대화하는 걸 현장 작업 관련자들이 옆에서 잠시만 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어요. 

절대 다른 사람 차도 안 타는 사모님이셨는데 두 달 반 이상을 진행하면서 어느새 제 차에 타셔서는 속내도 털어놓으시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시는 모습에 또 다른 감동을 받기도 했죠. 이렇게 인연을 맺은 고객과 연락도 하고 지내다가 10년 쯤 지난 후에 다시 저를 찾아주셔서 또 다시 인연을 이어가기도 하는데요. 시간이 한참 흘렀어도 여전히 이 자리에서 이 일을 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주)아르데코 무이는 고급공사만 한다는 이미지가 있던데요.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같은 유리잔이라도 어떤 건 2천 원이고 어떤 건 2만 원이죠. 그 차이는 색깔과 디자인, 그립감 등이 달라서 그렇죠. 경쟁이 더욱더 치열해지는 이 시장에서 저가의 견적으로 승부내는 것을 아직은 원치 않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읽어내고 그 내용을 전문가의 감각으로 승화시켜서 공간에 담아내는 일이 저의 일인 만큼 큰 프로젝트건 작은 프로젝트건 모든 상황에 항상 제 이름 석 자를 걸고 진행합니다. 

그리고 전문가의 견지에서 짚어드려야 할 세밀한 부분까지 다 제안해드리다 보니 당연히 비싸 보이는 것도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희 회사는 설계와 시공, 세팅과 디스플레이, 심지어 유리잔이나 숟가락 하나까지 모두 한번에 진행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추구하고요, 여러 공간을 계획할 때 가공법이나 시공법을 국내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해외의 사례를 많이 응용합니다. 일하는 거래처들은 좀 고생하지만 고객은 만족하시죠.



초등학생 아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일과 아이를 키우는 일을 같이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지금 이렇게 자리를 잡기까지 힘드셨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아직 극복은 못했고 현재 진행 중입니다. 하하하.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데 아이를 키우는 고민은 지금도 계속 하고 있어요. 심지어 인연이 10년이 넘은 클라이언트의 사업이 중국으로 진출하게 돼서 아이를 낳고 몸조리 두 달 정도 하고는 바로 중국으로 갔는데 한번 가면 일주일씩 있다 오고는 했죠. 7년 정도는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았고, 현재는 친정어머니가 봐주고 계세요. 새벽에 운동을 나가서 퇴근하고 들어오면 늘 아이의 자는 모습밖에 보지 못했죠. 대화 할 시간이 부족해서 생각해낸 게 편지에요. 물론 전화는 수시로 하지만 뭔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거실에 우체통을 하나 두었죠. 아이가 원하는 게 있으면 세 가지 이유를 적어 우체통에 넣어두라든지, 그런 식으로 아이와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그 방법이 생각보다 괜찮았던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이 시기에 아이들은 일기 한 줄 쓰기도 버거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아이는 일기를 줄 노트에 한 장을 다 채운다고요. 하는 말과 표현들이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게 보인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확신했어요. 오랜 시간 옆에 있어주는 것만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요.



네. 워킹맘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씀인 거 같아요. 일도 육아도 잘 하기 정말 쉽지 않잖아요.

쉽지 않죠. 저는 짧은 시간이라도 같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해요. 주말에는 웬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공부도 봐주고 놀러 나가기도 하고요. 어리지만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고 친구처럼 대화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요새는 사춘기도 빨리 와서 우리 아들도 벌써 그런 기미가 보이는 거 같은데요. 화가 나도 소리 지르고 때리기 보다는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엄하게 하려고 해요. 말 안 듣고 울고 하다가도 엄하게 얘기한 후에 ‘생각해보자’ 하고 방문 닫고 나가면 혼자 울다가 진정되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평정심을 갖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일이든 육아든 비슷하네요.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군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무이라는 이름이 ‘디자인 업계에서 유일무이한 토털 디자인 회사가 되자’는 뜻에서 지은 거랍니다. 그리고 ‘MUUI’에서 ‘U’는 그릇을 의미해요. ‘그릇은 곧 공간이고 그 안에 모든 걸 담자’는 의미죠. 한동안은 회사를 더 탄탄하게 키우는 데 중점을 두고 싶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땐 회사를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저는 나만의 독특한 건물을 하나 지어서 잠시 접었던 주얼리 디자인 숍을 다시 작게 열고 싶어요. 그렇게 일도 하고 좋은 지인들과 잘 먹고 잘 놀며 살고 싶어요. 손재주를 타고 나서인지 패션이나 메이크업이나 헤어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고 솜씨가 있죠. 요리도 마찬가지고 와인 소믈리에 전문 과정도 공부했어요. 전 정말 잘 먹고 잘 놀 수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랍니다. 


취재, 글 김미화 작가

S.CAS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