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한 제 사랑은 절실함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비올리스트 한예진

음악에 대한 제 사랑은 절실함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비올리스트 한예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비올리스트, 남들은 하나도 힘들다는 현악기를 둘이나 연주하는 음악가 한예진. 서양적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으로 대변되는 클래식 음악가 이미지보다는 동양적 단아함과 수수함으로 편안하게 다가오는 그녀이기에 그 어떤 난해한 곡도 그녀가 연주하면 친숙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뉴욕 내 다수의 콩쿠르에서는 물론, 이탈리아의 유수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실력파 음악가이면서도 연주를 하는 이유를 물으면, “그냥 음악이 좋고, 그래서 늘 음악을 더 잘하고 싶고,제 음악을 들으러 오는 고마운 청중들에게 최고의 연주로 보답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이렇게 겸손하고 착한 음악가 한예진의 음악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08년 미국 맨해튼 음대 ‘Lillian Fuchs’ 기념 실내악 콩쿠르 우승
2007년 이탈리아 ‘Citta di Brescia’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특별상(Best Performance of Contemporary piece)
2007년 ‘Five Towns Music and Art Foundation Young Musician 콩쿠르 우승


선한 인상과 연주하는 모습이 유독 아름다운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비올리스트인 한예진은 요즘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연주 요청으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현재 롱아일랜드 컨서버토리(Long Island Conservatory: 뉴욕주 롱아일랜드 소재 음악 학교)에서 강사로 재직하며 어린 음악 영재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바흐 소사이어티(American Bach Society: 미국과 캐나다 내 바흐 음악의 연구, 연주, 및 감상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로 1972년에 설립되었다)와 같은 음악 단체나 공공 문화 센터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에서 연주를 한다.

최근에는 유명 클래식 음악가들과 함께 페루의 다섯 개 도시를 돌며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는 갈라 콘서트(gala concert: 여러 연주자가 나와서 각각 짧은 곡을 독주하는 음악회를 의미) 여행을 다녀왔으며, 라이라 뮤직 페스티벌(Lyra Music Festival)에서의 독주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자신이 참여했던 음악회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날 줄을 모르는 그녀에게 연주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음악을 선물하며 소통하는 기쁨


저는 음악이 정말 좋거든요.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청중분들이 주시는 거잖아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제가 거기에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연주를 해 드리는 것 뿐인 것 같아요.

선물이 값진 이유는 받는 사람은 물론 주는 사람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그녀가 각처에서 들어오는 연주 요청을 까다롭게 취사선택하기보다, 일정이 허락하는 한, 흔쾌히 수락하고 늘 기쁜 마음으로 연주에 임하는 것은 그렇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연주하는 까닭일 것이다. 더불어,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 익숙한 그녀는 말로 이야기를 나눌 때보다 연주를 할 때 훨씬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것 같다.

최근에 열흘 동안 페루의 여러 도시를 돌며 투어 콘서트를 하고 왔어요. 그때 가장 좋았던 건, 함께 연주하러 다닌 열 명의 음악가분들은 물론, 현지 관객분들과 음악을 통해 정말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은 거였어요. 제대로 음향 시설이 갖추어진 콘서트홀이 아닌 시청 광장이나, 학교 강당, 현지 교회 등에서 콘서트를 했는데도 정말 많은 분들이 와 주셨고요. 누구나 알만한 유명 클래식 음악이랑 현지인들에게 친숙한 찬송가를 중심으로 연주를 한 덕분인지 오신 분들이 다들 정말 좋아하셨죠. 연주하는 저나 들으시는 관객분들 모두 온전히 함께 즐기면서 소통했던 시간이었어요.

가난한 토착민들의 비율이 높은 페루에서는 클래식 음악 연주를 듣거나 볼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드물다. 그런 사람들에게 훌륭한 연주를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너무나 기쁘고 보람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클래식 음악을 더 알리고 음악을 통해 소통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료 연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많지 않은 강사 월급으로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는 것이 결코 녹록지않을 텐데도 그녀가 수시로 무료 재능 기부를 실천하는 것을 보고 혹자는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겠거니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놀랍게도 상당 부분 ‘상대적 결핍’으로 인한 절실함에서 비롯되었다.



실력으로 증명한 음악에 대한 사랑


클래식 음악 전공자라 하면 으레 부유한 집안의 자녀겠지 하는 인식이있다. 악기값과 레슨비를 비롯해 교육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예진도 7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후로 한국의 음악 전공자들에게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라 여겨지는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를 거쳐 뉴욕 맨해튼 음대(Manhattan School of Music) 석사와 스토니브룩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 박사 과정을 마칠때까지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하고 싶으면 해야지’하고 언제든 선뜻 학비를 손에 쥐여 줄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다. 금속공학 박사였던 아버지가 빠듯한 연구원 봉급으로 식구들과 노부모를 동시에 부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상황에서 그녀가 어떻게 바이올린을 시작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제가 창원에 살 때 어떤 선생님이 동네에 출장 레슨을 오시는데 4명 그룹이 되어야 레슨을 하겠다고 하신 거예요. 그런데 한명이 모자라서 못 하게 될 것 같으니까 아랫집 아주머니께서 악기까지 빌려주시면서 저를 데리고 가셨어요. 그렇게 그룹 레슨을 시작하게 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3명은 그만두고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저에게 재능이 있다고 보신 선생님께서 개인 레슨을 해 주셨고, 1년 정도 됐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1학년 초에 처음으로 진해 벚꽃 축제 음악 콩쿠르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탔어요.

하루에 적어도 3시간은 연습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에 8살 아이는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 노력이 입상으로 이어지자 가르친 선생님도 배운 아이도 욕심이 생겼다.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아이의 부모도 한번 시켜 보자 마음을 먹었다. 시작은 우연이었는지 몰라도 그녀가 음악을 계속하게 된 건 일찍부터 남달랐던 그녀의 열정과 열심 덕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예리한 선생님이 지나치지 않고 발견해 준 재능은 그녀의 성실함으로 빛을 발하게 된다. 창원 내 소규모 콩쿠르 대상부터 부산 콩쿠르, 그 외 여러 콩쿠르에서 연달아 입상하면서 음악에 대한 그녀의 열정도, 실력도 더해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마냥 행복해할 수만은 없었다,

음악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많이 부담스러워 하셨어요. 집안 형편을 아니까 서운했다기보다는 많이 죄송했는데 그래도 포기는 안 되더라고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올라가서 예원이라는 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공부와 바이올린을 모두 잘해야 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엄마, 아빠는 처음부터 분명하게 말씀하셨죠. “과외는 못 해준다. 그래도 네가 시험 봐서 되면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안 되면 그만두자.”

이 말이 가혹하게 느껴졌을 법도 한데, 그녀는 오히려 무조건 그만두라고 하지 않고 기회를 주신 부모님이 감사했다고 한다. 주어진 기회를 놓칠세라 바이올린 레슨과 연습에 매진하는 동시에, 그 어린 나이에 독서실에 다니면서 방학 때도 수시로 밤 12시까지 공부했다. 그렇게 고가 과외 하나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준비해서 당당하게 예원에 합격했다.

그 뒤에도 학교 시험을 볼 때마다 합격하면 계속하고 불합격하면 그만두는 게 부모님의 조건이었어요. 그게 조건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했고,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일단 학교에 들어가면 거기서 레슨과 음악 수업들을 받을 수 있게 되니까 저에게는 학교가 절실했죠. 또, 그런 만큼 좋은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께 최고의 교육을 받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요. 잘 배우고 싶고, 그렇게 해서 실력을 계속 기르고 싶은 마음, 배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배우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바이올린 하나로는 부족했을까? 한예진은 대학교 때 비올라도 배우기 시작해서 박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 바이올린과 비올라 실력을 동시에 갈고 닦았다. 그 결과, 두 악기 모두 훌륭하게 연주하고 가르칠 수 있는 흔치 않은 음악가가 되었다. 이제 어렸을 때부터 가져왔던 꿈을 이루었다는 느낌이 드는지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꿈을 완성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는 지금도 사실 감사하고 행복해요.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유가 거창하게 대단한 음악가가 되고 싶어서였다기 보다는 그냥 음악이 좋고 연주가 좋았기 때문이고,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공부하고 연습하고 연주해 온 거니까요. 계속해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작은 연주든 큰 연주든, 청중이 많든 적든 최선을 다하게 되고요.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어요. 5살짜리 아이든 학부를 이미 졸업한 학생이든, 그 친구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돕는 일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감이 생기면서 음악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고, 더 열심히 음악의 길을 추구하게 되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뿌듯해요.

한예진은 어렵게 음악을 해왔기 때문에 본인처럼 어렵게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더 마음이 가고 도와주고 싶어진단다. 그래서 그런 친구들한테는 레슨비도 많이 안 받게 된다고…… 그러다 인터뷰 내내 어린 시절 힘들게 음악을 공부했다고 얘기한 것이 혹여라도 부모를 원망한 것으로 오해될까 염려되었는지 부모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다시금 표현했다.

사실 부족함 없이 자랐어요. 단지 예원이나 예고에 다니는 굉장히 부유한 친구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좀 있었다는 거였죠. 좀 덜 좋은 악기, 좀 덜 비싼 레슨, 이런 정도요. 생각해 보면 부모님 힘드실 거 알면서도 이기적으로 제 꿈을 고집한 게 죄송하죠. 그리고 어떻게든 끝까지 후원해 주신 게 감사하고요. 부모님이 저에게 제시하셨던 조건을 저는 “정말 하고 싶으면 실력을 갖춰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그 덕분에 저에게 음악이 얼마나 절실한지 깨달았고, 또 절실한 만큼 열심히 하게 되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좌절하지 않고 제가 원하는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렇게 힘을 길렀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로 더 잘 해드리고 싶고, 더 잘 돼서 보여드리고 싶고, 그런 마음이에요.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는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그녀는 항상 조금이라도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이들 레슨을 했고 대학교, 대학원 내내 수십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스스로 학자금과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때로는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도 음악의 길을 가는 게 아니었나 하는 후회나 의심이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이나 음악가가 있는지를 묻자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각각의 음악이 모두 나름의 개성이 있고 아름답거든요. 예를 들어, 베토벤 심포니는 귀가 먼 그가 쓴 음악인데도 정말 아름답잖아요. 삶의 고통 속에서도 음악을 쓰면서 얼마나 환희를 느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나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오선지에 표현해낸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역할은 각 음악의 개성을 제대로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마음을 담아서 재창조하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그 자체로 영광이고 축복이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와 거리를 걸으며 그녀의 일상에 관한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뉴욕 맨해튼에서의 삶이 금전적으로 빠듯해서 다소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맨해튼의 활기와 생동감이 좋다고 했다.

박사 6년 하는 동안 시골(스토니브룩)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다양한 사람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어요. 자신을 창조적으로 개성 있게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기도 하고요. 일주일에 3일 롱아일랜드로 강의를 나가는데, 쉬는날에는 연습 외에, 아침에 요가를 하고 장보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요. 또 시간 나면 친구들이랑 돌아다니기도 하고, 갤러리 구경도 하고요. 참, 요가는 강사 자격증도 따서 가끔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해요. 허리 통증이 심해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허리도 좋아지고 저한테 맞는 운동인 것 같아요. ……

한예진은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도 항상 웃고 있다. 지금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는 그녀의 말이 그대로 느껴진다. 자신이 음악을 그처럼 사랑하게 된 것은, 엄마가 갓난아기였던 언니에게 들려주려고 항상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았는데 마침 엄마 배 속에 있던 자신이 듣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유쾌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살면서 꼭 거창한 무언가를 이루거나 특별한 누군가가 되어야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분명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그토록 절실했던 음악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글 Juyoung Lee 사진 Kibum Kim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