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 브로드웨이 극단 ‘걸 비하인드 커튼(Girl Behind Curtain)’뮤직 디렉터 재즈 피아니스트 최윤미

오프 브로드웨이 극단 ‘걸 비하인드 커튼(Girl Behind Curtain)’뮤직 디렉터 재즈 피아니스트 최윤미



뉴욕의 한인 재즈 뮤지션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최윤미를 인터뷰하기 전 그녀의 웹사이트 yoonmi.net 에서 연주 비디오를 봤다. 편하게 귀에 들어오는 좋은 음악이었다. 그녀를 만나서 그 말을 했다. 그리고 곧 생각했다. 기자처럼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편하고 좋은 음악”이라는 칭찬을 들으며 뮤지션들이 기분 좋게 받아들일까?

혹시 “내 음악이 그렇게 쉽게 들려요?”라고 오히려 갸우뚱하지는 않을까? 재즈는 대중음악이지만 뮤지션들은 재즈가 일반 팝 음악처럼 취급되는 걸 원치 않을 거란 선입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탕한 웃음소리만으로도 최윤미의 성격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재즈에 문외한인 기자가 조금 무식한 질문이라도 편하게 던질 수 있는 상대라는 걸 금세 알았다.



재즈가 어렵다고 느끼는 대중들이 많아요. 왜 그럴까요?
어려우니까요.(웃음) 재즈가 처음 탄생한 20~30년대의 재즈는 사교와 댄스를 위한 음악이었어요. 많은 사람이 특히 젊은이들이 흥겹게 즐겼죠. 그러다가 재즈 연주기법이 발전하고 표현 영역이 확대되고 연주자들끼리의 기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난해한 연주 스타일도 등장했어요. 이른바 프리 재즈. 미술로 치면 추상화라고 할까요? 그런 음악을 들으면 대중은 당연히 쉽게 즐기기 어렵죠


그런데 재밌는 건 누구나 재즈를 좋다고 말하기도 해요. 분위기 좋은 카페나 술집에서 듣는 소울 충만한 여성 싱어의 노래 혹은 감미로운 섹스폰이나 피아노 연주, 그런 음악을 연상하는 거죠. 이걸 라운지 재즈라고 하나요?
물론 그런 음악도 재즈 장르의 중요한 부분이죠. 문제는 대부분 재즈가 그런 장르에만 한정이 되다 보니 조금만 난해하거나 즉흥성이 가미된 연주를 들으면 일단 어렵다고 느낍니다. 사실 재즈의 생명은 즉흥성 (Improvisation)이잖아요. 뉴에이지 장르를 재즈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제가 윤미씨 음악이 편안하고 듣기 좋았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네. 그런 평가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평가를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구요. 제가 하는 건 컨템퍼러리 재즈인데 스윙감이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듣는 분들이 좋다고 느꼈다면 많은 부분이 그 스윙감일거라고 짐작해요. 그리고 저는 클래식을 전공했어요. 재즈와 클래식을 결합한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데 그런 부분이 또한 대중들에게 편하게 다가 가는 듯 합니다. 뉴욕에 오기 전 2014년까지 활동했던 네덜란드에서도 그런 평가를 받았어요.


최윤미는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인천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숙명여대에서 클래식 피아노과를 전공했다. 이후 재즈로 전공을 전향해 네덜란드의 프린스 클라우스 컨서버토리(Prince Claus Conservatory)에서 공부했다. 재학 중에는 트리오를 조직해 유럽에 있는 각종 재즈 페스티발에 초청을 받아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300회 이상 활발한 연주를 하였다. 

2014년 네덜란드 리덴 국제 재즈 콩쿨에서 우승 후 귀국, 1년간 코리아 Wave Jazz 페스티발, 울산재즈페스티발, 북촌 음악 페스티발, 춘천 아트페스티발 등에 초청받아 음악적인 발판을 넓혔다. 2015년 뉴욕에 와서 퀸즈 칼리지 재즈 피아노 전공으로 석사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연주 활동을 벌이고 있다.


뉴욕에 오신 이유를 한 마디로 표현하신다면?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이 있었나요?
그렇게 물어보신다면 어찌 보면 무작정 왔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몰라요. 어떤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을 세우고 온 건 아니었죠. 뉴욕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뉴욕이란 도시가 세계에서 재즈를 제일 잘하는 애들이 몰려오는 곳’이니까 무조건 뉴욕에서 부딪쳐 보자.’라는 생각과 ‘한국에선 좀 답답하다.’ 솔직히 그런 마음으로 왔어요.

한국에 분명 재즈 연주자와 애호가들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껏 연주하고 기량을 향상할 토양은 아니에요. 재즈는 무조건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섞여서 경쟁해야 실력이 늘어요. 실제로 뉴욕에 오니 레전드로 평가받는 대가들을 직접 접할 기회가 많아요. 한국에선 어려운 경험이죠.


그래서 정말 무작정 부딪치고 경쟁하면서 시작했어요? 어떤 정해진 코스가 있는 건가요?
잼 세션에 참가하는 것이 일단은 시작이에요. 그리니치 빌지지의 스몰즈(Smalls) 등 유명 재즈 카페에서 심야에 잼이 시작돼요. 저 같은 연주자들이 새벽까지 무대 옆에서 대기하고 있죠. 그러다가 기회가 되면 치고 나가서 다른 뮤지션들과 연주하는 겁니다. 자기 기량 뽐내고, 얼굴 보여주고, 나라는 사람을 알리는 거죠. 다행히 동양인에 대한 편견은 없어요. 잘하면 끝. 실력이 모든 걸 말해주는 것이 재즈입니다.



먹고 사는 일이 아무래도 큰 문제죠?
뉴욕의 대부분 예술가라면… 특히 저 같은 외국인이라면 당연히 늘 절실한 문제겠죠. 레슨을 열심히 해요. 그나마 배운 거로 돈을 벌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전혀 음악과 상관없는 단순 노동으로 버티는 분도 많은 현실이잖아요. 하지만 돈은 정말 생활할 정도만 있으면 되고 중요한 고민거리는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더 유명하고 좋은 뮤지션과 함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기량을 더 늘리는 것이 늘 최대 목표죠.


지난 3년간 뉴욕에서의 활동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일단 석사 공부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주류에 도전하는 노력을 많이했죠. 운도 따랐다고 생각해요. 타임스퀘어에 있는 대형 재즈 공연장인 ‘스윙 46’에서 올려지는 오프 브로드웨이 프로젝트 ‘걸 비하인드 더 커튼’의 뮤지컬 디렉터를 맡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짧은 경력으로 보면 얻기 힘든 기회지만, 나름대로 유럽에서 활동했던 성과가 도움이 되었어요. 캐스팅의 재량이 있는 자리니까 앞으로 한인 뮤지션을 더 무대에 소개할 기회도 생길 거라고 기대해요.


마지막으로 뻔한 질문 하나. 앞으로의 목표는?
저는 클래식과 재즈를 결합하고 또한 유럽식 재즈를 뉴욕 정통 재즈와 결합하는 한국 뮤지션이라는 나름대로 독특하고 의미 있는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뉴욕의 재즈 음악계에서 저의 존재감을 더 부각하는 활동을 계속할 겁니다. 저만의 음악 색채가 뚜렷한 음반도 내고 유명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세계 투어도 다니고요. 그게 저의 목표가 되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인정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관객, 평단, 동료 음악인의 평가 이전에 나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기량을 키워나가겠습니다.


질문 하나만 더요. 짧게 대답해도 됩니다. 최윤미에게 재즈란 무엇인가요?
자기표현입니다.

최윤미는 현재 트리오 활동과 동시에 여러 음악 프로젝트에 합류해 B.B.King, Cafe Wha, 힐튼 호텔 등 유명 공연장에서 연주하고있다. 혹시 독자분들이 모처럼 재즈 연주장을 찾았을 때, 작고 당차 보이는 동양인 여성 피아니스트가 열정적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면 최윤미일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는 뮤직씬이라고는 하지만 뉴욕에서 활동하는 동양인이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연주장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큰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란다.


에스카사 편집부